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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의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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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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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11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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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람의 계승자 - ep.3 - 남작 영애와 그 수행원들(8)

DUMMY

장대비는 그 후로 사흘이 더 지난 뒤에야 잠잠해졌다. 그래도 아직 먹구름은 남아 있어, 약하게 내리는 부슬비가 태풍의 잔재를 고하고 있었다. 며칠 전 수평선에서 본 게 구름 떼였다면, 이번에는 푸른 하늘이 점점 그 기세를 늘려가는 중이었다. 멀리 보이는 파랑의 조각을 보고 있자니 데루루피아가 떠올랐다. 그녀는 일찌감치 수도에 도착했을 터였다.

풍랑이 그치자 항구는 바빠졌다. 비가 내린 뒤라 어획량을 기대하긴 힘들었지만, 어부들은 그래도 놀 수는 없다며 앞다투어 배를 띄웠다. 도시 중앙에서는 간만에 장이 열렸다. 아낙들은 너도나도 집에서 나와 먹을 것을 사고팔았다. 광장을 가로지르는 말발굽 소리도 실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것이었다.

일행도 출항하기에 앞서 시장을 찾았다. 마차와 말을 처분하러 온 것이다. 랄프의 배는 스무 명은 타기에 무리가 없을 정도의 규모였지만, 그는 말을 태울 순 없다며 한사코 버텼다. 이칼롯이 그를 설득해 보려고 나섰으나 그는 결코 물러설 뜻이 없음을 내비쳤다. 결국 일행은 상회에 들러 말과 마차를 헐값에 처분하기로 했다. 마차야 데루루피아가 사준 것이지만, 말은 델키아를 떠나올 때부터 동고동락한 녀석들이라 아쉬움이 컸다.


“행정관 아저씨가 날 죽이려 들겠구만. 돌아올 땐 새끼를 쳐서 오겠다고 그렇게 장담을 했는데...”


디리터는 가장 시무룩해 있었다. 말을 빌릴 때 보증을 선 것도 그인지라, 그는 말들에게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뭐, 거액의 현상금이 걸린 지금 보증에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겠지만 말이다.

마차를 파는 일에는 루도와 마리네, 디리터와 이칼롯이 투입되었다. 제리온은 귀찮다며 집 안에 퍼졌고, 에레이시아는 일행이 나가 있는 사이 떠날 짐을 챙겼다. 여전히 거리에 나서는 일은 주의를 요했다. 마리네와 디리터, 이칼롯은 항상 하던 대로 변장을 했지만 루도는 여장 대신 후드를 깊게 눌러써 얼굴을 가렸다. 귀족 집 처녀가 상회에 기웃거리는 건 외관상 의심을 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디리터는 그럴 거면 그냥 집에 남아 있으라고 했지만, 사실 루도가 염려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마리네는 그날 이후로 어딘지 모르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었다. 루도는 그런 그를 도저히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때문에 일행은 집을 나섰을 때 마차를 팔기에 앞서 부둣가에 위치한 어패류 창고부터 찾았다. 마리네는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깡패들을 만났던 골목길로 달려갔다. 눈에 들어온 것은 골목길 담장에 여기저기 튀어 있는 핏자국이었다. 시체는 관청에서 일찌감치 수거해 간 뒤였다.


“.....”


예상했던 대로, 피해자는 마리네가 만났던 깡패들인 모양이었다. 그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하는 동안 다른 동료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건장한 남성 다섯을 목표로 잡다니 참 별난 놈이다. 보통은 어린 아이나 부녀자를 노리기 마련인데, 그만큼 실력에 자신이 있다는 건가?”


디리터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는 코밑에 붙인 수염이 아직도 적응되지 않는 듯 연방 재채기를 해댔다. 루도는 조심스럽게 마리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순간 그의 몸이 흠칫 떨렸는데, 루도는 그때 마치 마리네가 자신의 손을 쳐낼 것만 같은 위화감을 느꼈다.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마리네, 어떻게 할래? 좀 더 알아볼까?”


그러나 마리네는 고개를 저었다. 수 초간의 침묵이 흐르고, 그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냐, 어서 시장으로 가자. 더 시간을 지체할 순 없잖아. 나 때문에 여기까지 와줘서 고마워.”


“우리 사이에 고맙긴...”


일행은 다시 마차를 몰아 시장으로 향했다. 마부석엔 디리터와 이칼롯이 앉았고, 루도와 마리네는 여전히 마차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부슬비가 내리는 데도 시장은 떠들썩했다. 인파를 헤치며 마차를 모는 것도 여간 곤욕이 아니었다. 거기다 바다 사람들은 모두 한 성깔 하는지라, 오히려 왜 이런 좁은 거리에 마차를 끌고 왔냐며 욕설을 내뱉었다. 앞에 앉은 게 이칼롯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돌멩이가 몇 개 날아왔을지도 몰랐다.

디리터는 상회에 들르자마자 마차 값을 흥정했다. 일단 이곳에서 마차를 팔고, 마구간으로 가 나머지 말들을 처분할 예정이었다. 흥정은 꽤 오랜 시간 지속됐다. 디리터가 비록 마차가 작지만 섬세하고 튼튼하다는 이유로 값을 올리면, 상회 마스터는 적재량이 적어 상단 운영용으론 적합하지 않으며, 고위 귀족들이 쓰기엔 다소 조악하다는 논리를 들고 나왔다. 아무래도 둘의 입씨름은 쉽게 끝날 분위기가 아니었다.

디리터와 이칼롯이 상회 건물에 들어가 있는 동안, 루도와 마리네는 밖에 쪼그린 채 시장 풍경을 구경했다. 시장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물건들을 매매하고 있었다. 이렇게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레인스터에서 버섯 장사를 할 때가 생각났다. 루도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킥킥, 그때 계속 있었으면 팔리긴 했을까?”


마리네도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저얼대.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 짓이었어. 그런 걸 누가 사간담.”


그는 옛 기억을 회상했다. 둘은 그때도 이렇게 골목 귀퉁이에 쪼그려 앉아 있었고, 그 앞으로 행인들이 분주히 돌아다녔었다. 그는 데루루피아가 나타났던 방향을 가리키며 웃었다.


“저쯤에서 불쑥 등장했었지. 그땐 버섯에 관심을 가져준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는데.”


이렇게 추억을 더듬고 있자니 메르실 거리도 어딘지 레인스터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리네가 손을 뻗자 손등 위로 빗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는 상쾌함을 느끼며 손가락 끝을 응시했다.

그리고 한 남자가 그의 앞을 지나갔다.


“....!!”


마리네의 눈이 크게 떠졌다. 놀란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고, 턱 끝은 미세하게 떨렸다. 그리고 그는 팔꿈치로 눈가를 사정없이 비비고는, 다시 그 남자를 확인했다. 그 남자의 허리춤엔 노란 비단 손수건이 매어져 있었다.


- 앗... 예뻐라. 되게 비싸 보이네요.


- 저...저희 누나가 지...지어준 겁니다. 관청에 메...메이드로 있어서...


틀림없다. 가장자리에 수놓아진 금사며, 중앙의 장미 문양까지, 그 깡패의 손수건이 틀림없었다. 마리네의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 남자는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띤 채 인파 사이를 이리저리 지나가고 있었다.


“야, 그래도 그 버섯 나름 비싼 거였잖아. 카토르가 애지중지하던 물건이었으니.”


루도는 마리네의 변화를 눈치 채지 못했다. 그는 낄낄대며 과거 얘길 이어갔는데, 이미 마리네의 귀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모든 감각은 그 남자를 향해, 그리고 그의 허리춤에 메인 손수건을 향해.

그가 범인이다.

마리네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치마 속에 메어 둔 검을 끌렀다. 그가 무기를 꺼내는 걸 보고 루도가 놀라서 물었다.


“야. 왜 그래? 무슨 일인데?”


“...찾았어.”


마리네는 조용히 인파 속에 녹아들었다. 그가 어찌나 기민하게 행동하는지 루도는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됐을 때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적어도 마리네를 말려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디리터와 이칼롯은 여전히 상회 안에서 흥정을 벌이는 중이었다. 루도는 상회 2층에 걸린 테라스와 마리네가 사라진 방향을 번갈아 쳐다보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둘에게 알렸다간 마리네를 놓치고 만다. 그는 서둘러 마리네를 쫓기 시작했다. 그는 달리면서 후드를 깊게 눌러쓰는 한편, 품 안의 검을 살짝 뽑아놓았다.

마리네는 일정 거리를 둔 채 남자의 인상착의를 꼼꼼히 살폈다. 그는 30대 중반쯤의 나이에, 훤칠한 체격을 가진 사내였다. 그는 일반적으로 무표정이었지만 언뜻언뜻 어리는 미소가 섬뜩한 느낌을 자아냈다. 그는 간단한 경무장을 하고 있었는데, 등에 맨 바스타드(bastard)만큼은 빗속에서도 광채를 뿜어냈다. 경쾌한 발걸음, 여유 있는 표정, 그리고 무기까지. 마리네는 그가 범상치 않은 실력자임을 간파해냈다.

남자는 시장 모퉁이에 자리 잡은 발걸음을 옮겼다. 그즈음 루도가 마리네를 따라잡았다. 그는 마리네의 팔을 낚아채고는 다짜고짜 잡아끌었다. 그렇게 한차례 욕설을 퍼부으려 하는데, 오히려 마리네가 그의 입을 막았다.


“너...! 읍...”


“쉬이...”


정숙을 요구하는 그의 눈이 어찌나 진지했던지 루도는 입을 다물다 못해 숨까지 참았다. 마리네는 술집으로 들어가는 남자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루도는 그를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봐도 처음 보는 생김새였다.


“저 사람이 뭐?”


“범인...살인 사건의 범인.”


“뭐? 그걸 네가 어떻게...”


“일단 따라와.”


둘은 까치발을 들고 조심스럽게 접근하다가, 이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남자는 아직 그들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고, 이곳은 상인들이 나다니는 시장 한복판이었다. 둘은 잠시 심호흡을 한 후 당당하게 술집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테이블 한 개를 혼자 꿰차고 있었다. 아마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리라. 둘은 의심받지 않게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그의 등 뒤 테이블에 앉았다. 루도는 여장을 풀었으므로 둘은 얼핏 봐선 젊은 연인 사이처럼 보였다. 급사가 다가오자 루도는 대충 안주와 술을 달라며 얼버무렸다. 술집 안은 한낮인데도 상인이며 노역꾼들로 붐비고 있었다. 이런 소란이라면 남자의 시선도 분산될 것이다. 둘은 최대한 기척을 숨긴 채 남자의 동태를 살폈다.

루도가 물었다.


“그냥 보통 검사 같은데...정말 맞는 거야?”


“틀림없어.”


마리네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는 깡패가 가지고 있던 손수건에 대해 얘기해 주었다. 그것은 그의 누나가 직접 제작한 것이므로, 복사본이 있을 리도 만무했다.


“그럼 경비대에 신고해야지 않아? 아, 우린 현상범이지...”


살인범을 발견한 것까진 좋은데, 이를 지구대에 알리는 게 불가능했다. 현상금 수배자가 범인 신고하자고 경비대를 방문할 순 없었다. 결국 답은 한 가지였다.


“우리가 잡자. 잡은 후에 행인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면 되지.”


“뭔가 좀 엉성한데...”


루도는 검거 계획에 회의적이었다. 마리네의 기분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소동을 일으키는 것만큼은 사양하고 싶었다. 여장까지 하며 사냥꾼들의 눈을 피했고, 이제 조금만 있으면 출항인데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 있냐는 것이었다. 차라리 살인범이 나타났다고 소란을 피운 후 잽싸게 사라지는 것도 괜찮을 성싶었다.

이러니저러니 하며 뜸을 들일 때였다. 한 사내가 그 남자의 앞자리에 앉았다. 공범인 걸까? 그 남자는 둘에게 등을 돌리고 있어 마음 놓고 관찰할 수 있었지만, 새로 나타난 사내는 자칫 눈을 마주칠 위험이 있었다. 루도는 가게를 구경하는 것처럼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넌지시 그 사내의 얼굴을 확인했다.


“...헉...”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는 비명이 나오려는 찰나에 억지로 숨을 참았다. 혹시 들킨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그는 허겁지겁 메뉴판에 코를 박았다. 마리네는 그들과 등지고 있었기에 새로 온 남자를 살필 수 없었다. 그런데 루도가 저리 기겁을 하는 걸 보니, 뭔가 있긴 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험상궂게 생겼나?


“왜 그래?”


루도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메뉴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살짝 눈만 들어 다시 그 남자를 확인했다. 억눌린 비명이 입술을 비집고 새어나왔다.


“윽...”


그는 뭔가 말하려다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멍청하긴, 상대가 코앞인데 이름을 말하면 어쩌자는 거야! 루도는 검지를 세워 탁자 위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뭔가 싶어 손가락을 따라가던 마리네의 얼굴도 점차 창백하게 변했다.


-게네스.


“흐아...?!”


마리네는 잘못 본 게 아니냐는 듯 입을 뻐끔거렸다. 하지만 루도의 눈빛은 단호했다. 잘못 봤을 리가 없다. 아니, 보면 볼수록 확실하다. 한쪽 눈을 가린 안대, 얼굴에 난 잔 흉터, 그리고 무엇보다 허리에 찬 저 무기! 블레이드 부분이 초승달 모양으로 구부러진 두 개의 쇼텔, 그는 레오스 마을에서 아케니온을 지휘하던 게네스가 틀림없었다.

게네스의 등장에 소년들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살인범 검거고 나발이고, 아케니온이 이 도시에 나타난 것이다. 그들이 로샤단을 쫓아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안개송곳니의 우방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거기다 게네스는 일행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아무리 변장을 한다 한들 원본을 직접 본 사람까지 속일 수는 없는 법이다.

게네스와의 거리는 2미터가 채 되지 않았다. 소년들은 그 남자를 방패막이 삼아 최대한 모습을 숨기고는, 어떻게 이 자리를 빠져나갈 건지 궁리하기 시작했다. 아직 그들은 둘의 존재를 모르고 있다. 하지만 일단 게네스와 눈이 마주치면 끝장이라고 봐야 한다. 루도는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소년들의 애타는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급사가 주문한 맥주와 생선조림을 가져왔다. 그는 해맑게 웃으며 물었다.


“맛있게 드십시오. 더 필요한 거 있으세요?”


마리네는 고개를 도리질했고, 루도는 팔을 휘휘 저었다. 게네스가 둘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니 최대한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루도는 맥주를 마셨지만, 그게 목구멍으로 넘어가는지 콧구멍으로 넘어가는지도 몰랐다. 대충 포크로 생선 좀 찌르다 도망치려 하는데 둘의 대화가 들려왔다.

게네스가 말했다.


“출항은 모레입니다. 태풍 때문에 꽤 오래 발이 묶였군요.”


“뭐, 계획이 틀어질 정도는 아니야. 레이시는 당분간 정신이 없을 테니까.”


“대장, 정말 안개송곳니에게 알리지 않을 생각이십니까? 이번 일.”


루도는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게네스가 대장이라고 부를만한 이는 한 명뿐이다. 아케니온의 제랄드. 그가 깡패들을 죽인 것인가? 그렇다면 어째서? 아니, 그것보다 둘의 대화가 더 신경 쓰였다. 레이시와 안개송곳니, 루도에게는 듣는 것만으로 몸서리가 쳐지는 이름들이었다.

그가 소리 없이 웃는 것인지, 의자를 맞댄 마리네에게 작은 미동이 느껴졌다. 제랄드가 말했다.


“이봐, 게네스. 신뢰라는 건 상호작용이야. 레이시가 우리에게 감추는 게 얼마나 된다고 생각해?”


“글쎄요...”


그는 포크를 들어 그 끝을 손가락으로 차례차례 눌렀다.


“그 내용은 몰라도 말이야, 대강 뭔지는 알 수 있지. 예를 들면 로시느라던가, 나타니엘의 마법이라던가, 가린워드의 생존자라던가.”


자신이 언급되자 루도는 황급히 맥주에 코를 박았다. 이미 자신의 존재를 눈치 챈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직설적인 발언이었다. 마리네는 너무 놀라 하마터면 검을 뽑을 뻔했다. 하지만 제랄드는 뒷자리에 앉은 손님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였다. 그는 이번에는 포크를 뒤집어 손잡이 부분을 만지작거렸다.


“후후, 레이시가 우리를 별로 신용하지 않는다는 것만은 확실하지. 게네스, 지금은 나쁘지 않아. 하지만 말이지, 결국 쓸모없어진 사냥개는 잡아먹힐 뿐이야. 그럼 사냥개가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게네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제랄드가 쥔 포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지만, 그게 뭘 뜻하는지는 알아낼 수 없었다.


“전 레이시보다 대장의 속내가 더 궁금합니다.”


제랄드는 유쾌하게 웃었다. 그는 포크를 뒤집어 다시 집게 부분이 위로 오게 했다.


“하핫! 간단해. 주인의 마음에 들게 더 노력하거나, 아니면 다른 주인을 섬기는 거지. 하지만 어느 쪽이든 송곳니와 발톱이 필요하다는 건 변하지 않아. 그게 우리가 여기에 있는 이유야.”


루도와 마리네는 본래 목적도 잊고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제랄드의 말대로라면, 안개송곳니와 아케니온은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이 틀림없었다. 가린워드 마을에서 레이시가 아케니온을 대동하지 않고 나타난 것도 그런 이유인 모양이었다.

얼마 후 제랄드 쪽 테이블에도 음식이 나왔다. 제랄드는 숭어구이를 한 점 먹은 후 포도주를 마셨다. 반면 게네스는 팔짱을 낀 채 제랄드가 식사하는 것을 구경만 했다. 하지만 제랄드가 주문한 것은 분명 2인분이었고, 게네스의 앞에도 포크와 나이프가 버젓이 놓여 있었다. 그는 게네스가 먹지 않는 것을 보고 낮게 웃었다.


“왜 안 먹지? 이거 비싼 건데.”


그러자 게네스는 포도주병을 들어 병째로 들이마셨다. 순식간에 포도주의 3분의 1가량이 사라졌다. 게네스가 말했다.


“대장, 이제 슬슬 알려주시죠. 다른 녀석들도 불만이 많습니다.”


제랄드는 그 말에 피식 웃었다. 게네스의 발언이 뭘 의미하는 건지 잘 알고 있음에도 그는 짐짓 모른 척했다.


“뭘 말이지?”


“대장...좀 봐주십쇼. 아까 말한, 그 퀴넨으로 가는 이유 말입니다. 로샤단을 쫓으라는 명령도 무시하고 그 섬나라로 가는 이유가 뭡니까?”


“흐음, 그렇게 힌트를 줘도 모르나? 뭐, 이런 거야. 레이시에겐 비밀이 많다고 말했었지? 마찬가지야.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우리 나름대로의 강력한 패가 필요해. 게네스, 기회란 말이지, 왔을 때 잡지 못하면 끝장이라고.”


게네스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루도는 어느새 맥주잔을 거의 다 비워가고 있었다. 둘의 대화를 엿듣다 보니 애가 타 계속 잔을 홀짝인 것이다. 제랄드의 말투는 사람을 안달 나게 하는 특징을 갖고 있었다.


‘어휴, 저 자식 뭘 저리 빙빙 돌려 말해? 사람 화병 낼 일 있나.’


게네스도 그와 같은 생각인 듯,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인상만 찌푸렸다. 그러다 그는 제랄드의 허리춤에 묶인 손수건을 발견하고 물었다.


“대장, 그건 뭡니까? 못 보던 건데.”


제랄드는 손수건을 풀어 탁자 위에 펼쳤다. 그는 히죽 웃으며, 손수건에 새겨진 장미 문양을 어루만졌다.


“얼마 전에 획득한 거다. 노란색 손수건이라니, 왠지 행운의 증표 같은 기분이 들어서 말이지. 우리가 찾는 거랑 비슷하잖아?”


그 순간 마리네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그의 움켜쥔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획득’한 거라니, 어찌 저리 뻔뻔할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을 죽여 놓고도!

그와 제랄드는 거의 등을 맞대고 있었다. 이 정도 거리라면 치마에 숨긴 롱소드가 아닌, 식사용 나이프로도 능히 심장을 찌를 수 있었다. 하지만 마리네는 그러한 충동을 간신히 억눌렀다.

게네스가 말했다.


“대장...혹시 퀴넨으로 간다는 이유가...”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제랄드가 말한 노란색의 의미는 그도 잘 아는 것이었다. 그제야 안개송곳니의 눈을 피해 이곳까지 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드디어 찾은 겁니까? 베릴의 수정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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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람의 계승자 - ep.3 - 남작 영애와 그 수행원들(3) +3 15.04.09 981 26 19쪽
121 람의 계승자 - ep.3 - 남작 영애와 그 수행원들(2) +4 15.04.09 754 26 13쪽
120 람의 계승자 - ep.3 - 남작 영애와 그 수행원들(1) +1 15.04.09 1,023 26 17쪽
119 람의 계승자 - ep.3 - 이름없는 자(6) +3 15.04.09 949 29 16쪽
118 람의 계승자 - ep.3 - 이름없는 자(5) +2 15.04.09 835 31 15쪽
117 람의 계승자 - ep.3 - 이름없는 자(4) +7 15.04.07 1,147 36 22쪽
116 람의 계승자 - ep.3 - 이름없는 자(3) +2 15.04.07 946 32 17쪽
115 람의 계승자 - ep.3 - 이름없는 자(2) +2 15.04.07 756 33 11쪽
114 람의 계승자 - ep.3 - 이름없는 자(1) +2 15.04.07 1,041 29 18쪽
113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4) +1 15.04.07 996 29 14쪽
112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3) +4 15.04.06 1,000 32 15쪽
111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2) +1 15.04.06 994 29 15쪽
110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1) +1 15.04.06 973 28 16쪽
109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0) +1 15.04.06 1,012 28 13쪽
108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9) +2 15.04.06 903 31 12쪽
107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8) +4 15.04.06 865 29 12쪽
106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7) +3 15.04.05 995 26 12쪽
105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6) +1 15.04.05 902 29 10쪽
104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5) +1 15.04.05 890 31 11쪽
103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4) +2 15.04.05 805 29 15쪽
102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3) +4 15.04.05 996 28 13쪽
101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2) +1 15.04.05 797 30 12쪽
100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 +1 15.04.05 1,033 29 12쪽
99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1) +5 15.04.04 973 34 11쪽
98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0) +3 15.04.04 947 32 14쪽
97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9) +2 15.04.04 890 26 12쪽
96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8) +1 15.04.04 1,091 26 14쪽
95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7) +1 15.04.04 984 28 15쪽
94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6) +3 15.04.04 1,028 26 15쪽
93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5) +2 15.04.03 1,149 33 11쪽
92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4) +2 15.04.03 798 29 18쪽
91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3) +2 15.04.03 952 27 13쪽
90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2) +2 15.04.03 750 30 13쪽
89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 +2 15.04.03 1,080 32 11쪽
88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1) +2 15.04.02 972 35 11쪽
87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0) +1 15.04.02 952 34 13쪽
86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9) +2 15.04.02 1,016 34 17쪽
85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8) +1 15.04.02 924 36 15쪽
84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7) +2 15.04.02 854 35 16쪽
83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6) +2 15.04.01 1,084 32 14쪽
82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5) +1 15.04.01 1,019 38 16쪽
81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4) +3 15.04.01 1,088 34 18쪽
80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3) +1 15.04.01 1,125 37 14쪽
79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2) +2 15.04.01 928 39 19쪽
78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 +1 15.04.01 945 34 18쪽
77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6) +3 15.03.31 1,124 40 17쪽
76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5) +1 15.03.31 1,030 34 14쪽
75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4) +4 15.03.31 1,053 34 13쪽
74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3) +2 15.03.31 950 35 14쪽
73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2) +1 15.03.31 877 39 13쪽
72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1) +4 15.03.31 893 35 15쪽
71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7) +7 15.03.30 1,026 44 23쪽
70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6) +4 15.03.29 897 40 16쪽
69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5) +2 15.03.29 945 35 17쪽
68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4) +1 15.03.29 1,127 36 20쪽
67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3) +1 15.03.29 1,124 33 16쪽
66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2) +2 15.03.29 1,092 39 14쪽
65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1) +4 15.03.29 1,300 36 13쪽
64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完) +7 15.03.28 1,178 45 17쪽
63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8) +3 15.03.28 1,261 36 14쪽
62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7) +2 15.03.28 1,083 40 12쪽
61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6) +4 15.03.28 1,147 38 15쪽
60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5) +2 15.03.28 1,131 39 16쪽
59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4) +2 15.03.28 1,074 35 14쪽
58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3) +3 15.03.28 1,023 36 17쪽
57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2) +3 15.03.27 1,127 40 10쪽
56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1) +5 15.03.27 1,133 46 10쪽
55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2) +2 15.03.27 1,073 47 15쪽
54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1) +4 15.03.27 1,059 42 20쪽
53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0) +2 15.03.27 1,114 45 17쪽
52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9) +2 15.03.27 1,163 51 15쪽
51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8) +4 15.03.27 1,243 39 16쪽
50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7) +2 15.03.27 1,082 42 12쪽
49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6) +3 15.03.26 1,151 46 9쪽
48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5) +3 15.03.26 1,129 4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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