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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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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1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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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3.27 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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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1)

DUMMY

“....!”


애써 활기찬 모습을 보이던 루도의 얼굴이 굳어졌다. 안타까운 마음에 니암을 바라보았으나, 그는 시선을 피한 채 무덤덤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놋쇠 대야에 담가진 그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퉁퉁 부은 눈을 깜박이며 말을 이었다.


“있죠,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죽어버려요. 제 가족은 군인들에게서 절 지키려다 모두 목숨을 잃었어요. 그 후 류이너스 신전에 맡겨졌지만, 신전 사람들도 모두 죽어버렸어요. 다들...좋은 사람들이었는데.”


“데루루피아님도, 루도님도, 다른 분들도 모두 죽을 뻔했어요. 전...바보가 아니에요. 모두가 위험에 처한 것이 저 때문이란 걸 알아요. 어제 무참하게 살해당했던 수도회 분들도...아마 제 탓이겠죠. 절 따라왔기 때문에. 술집에 있던 사람들은 대체 왜...?”


“제가 있는 곳에선 사람이 죽어가요. 그곳이 어디든지. 이젠 저 때문에...사람들이 검을 맞대려 하고 있어요. 대체...무엇 때문일까요? 제가 대체 무엇이기에? 제가 대체 무엇을 했길래? 전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는데...단지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을 뿐인데...”


루도는 잠자코 그의 한탄을 듣고 있었다. 니암의 목소리는 차분했으나, 왠지 모르게 울부짖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눈동자가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눈가에 어린 것은 원망과 슬픔. 그 언젠가 자신이 외쳤던 절규와 똑 닮아있었다.


- 난 대체 무엇일까?


니암이 말했다.


“전...아무래도 저주를 받았나 봐요. 자신만으로도 모자라, 타인의 행복까지 파괴해버리는 저주를.”


아니야.


“그만 해.”


“제가 없어지면, 돌아올까요? 제가 빼앗아버린 행복이? 저만 사라진다면...쓸데없는 칼부림이 멈출까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닥쳐!”


철썩. 니암은 쓰러지지 않았다. 단지 그의 상체가 휘청, 하고 흔들렸을 뿐. 이내 그의 뺨에 새빨간 손자국이 부어올랐다. 그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공허한 눈동자가 루도와 마주쳤다. 그래, 그렇게. 차라리, 증오하라고. 차라리, 자신을 저주하라고 울부짖는 눈동자. 왜 그렇게 다들 상냥하고 친절한 걸까? 그렇게 마음을 얻어내면, 또 그렇게 죽어버릴 거면서.

루도의 손이 다시 올라갔다. 니암은 눈을 꼭 감았다. 하지만, 그의 손은 포근하게 니암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나를, 우리를 모욕하지 마.”


니암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왠지 후끈한 바람이 얼굴을 덮친 것 같았다. 루도는 그의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


“난 내 의지로 널 돕고 있는 거야. 네 저주니 뭐니 하는 망상 때문이 아니라고. 설령 그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 하더라도, 그건 내가 불행을 찾아낸 탓이지, 네가 내 행복을 파괴했기 때문이 아니야.”


“....”


“너에게 휘말렸다고? 천만에. 내 인생은 결코 누군가에게 휘둘리지 않아. 살고 죽는 것도 내가 결정할 문제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야. 루루 아줌마도, 수호기사단도, 광휘의 결사도. 모두 자신이 믿는 것을 위해 행동할 뿐이지. 그 때문에 죽게 된다 하더라도, 너와는 관계없는 문제야.”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니암의 눈에서 맑은 무언가가 또르륵 흘러내렸다. 슬프지만, 기쁘다. 기뻐서 더욱 슬프다. 어째서 자신 주변엔 이렇게 과분한 사람들만 모이는 걸까? 왜 마땅히 행복을 누려야 할 사람들은 그렇게 빨리 떠나버리는 걸까? 그는 눈물을 훔쳤다.


“제 친구, 가족. 소중한 모두가 죽는다고요. 그런데 관계가 없다고요? 그들이 원해서 그렇게 된 거이니, 그냥 손 놓고 있으라고요?”


그것은 5년 전 절규하던 자신의 모습. 소중한 친구를 잃고, 분노에 몸을 떨던 자신의 그림자. 그때 람카디스가 말했었다.

믿는다고. 믿으라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고 해도, 난 널 믿는다.


반드시 행복하게 해준다고 했다. 그 괴로운 기억을 반드시 잊게 해주겠다고 했다. 그 약속을 루도는 여전히 믿고 있었다. 세상 모두가 거짓말이라 놀리더라도, 그만은 람카디스를 믿었다.

그는 니암을 응시한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죽은 자를 위한 애도는 필요해. 하지만 언제까지고 거기에 얽매일 수는 없는 거야. 살아남은 자는 짊어지는 거지. 죽은 사람의 몫까지. 억울하면 행복해지면 돼. 죽어간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그들은 절 지키려다 목숨을 잃었어요. 그런데, 그냥 모른 척 살아가라고요? 염치도 없이 뻔뻔스럽게 말인가요?”


“그들이 널 원망하며 죽어가던?”


니암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궁이의 불은 이미 꺼진 지 오래였다. 대야에 담긴 버섯은 퉁퉁 불었다. 그는 결코 니암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꼿꼿하게 선 채, 담담하게 그 시선을 받았다.


“사람이 죽을 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 공포, 원망, 절규. 그래, 흔히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오지. 하지만 말야, 결국 자신의 죽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오면 말이야, 그땐 과거를 생각해. 행복했던 시절을 추억하고, 남겨질 사람들을 생각하며 가슴 아파하지. 그 짧은 시간에 말이야.”


“.....”


“그건 너무나 짧고, 또 그래서 너무나 깊지. 사람은 정말 죽음을 앞둔 순간엔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아. 그게, 진실이야. 한 인간이 얼마나 많은 행복을 갈구하는지 알아? 얼마나 많은 꿈이 있는지 알아? 너를 위해 목숨 바쳤다는 건 그 사람들이 살면서 얻어낸 행복을 모두 너에게 걸었다는 거야. 그런데도, 무책임하게 사라져버리겠다고?”


운명이라는 악기의 건반이 울리기 시작한다. 아직 너무도 미약하여 화음조차 이루지 못하지만, 조금씩, 확실히 그 맑은 소리를 연주하고 있었다.


『꿈...내 꿈은....?』


루도는 니암의 어깨를 꽉 붙잡았다. 확신이라도 시키려는 것처럼, 움켜쥔 두 손에 힘이 들어갔다.


“행복을 파괴하는 저주 같은 건 없어. 넌 단지 재수 없게 불행을 좀 많이 본 것뿐이야. 내...은인이 말했어. 행복은 단지 숨어 있을 뿐이라고. 난 그 말을 믿어. 그러니까, 너도 믿어. 믿을 수 없다 해도, 그래도 믿어. 사라져야 다른 이를 행복하게 만드는 인생 따위, 존재하지 않아.”


『...정말이야? 난 그럼, 이대로 있어도 되는 거야? 당신들과 함께, 쭈욱?』


니암은 허물어지듯 루도에게 안겼다. 열 살배기 소년이 느꼈을 번뇌와 고통, 슬픔, 그 모든 것이 굵은 눈물방울이 되어 옷깃을 적셨다. 루도는 흐느끼는 그를 조용히 다독였다.


“너무 지친 탓일 거야. 이 일이 잘 끝나면, 나랑 마리네랑 신나게 놀러다니자. 개울가에서 천렵도 하고, 나무그늘에서 늘어지게 낮잠도 자고, 그래, 맛있는 라즈베리 파이도 잔뜩 먹고.”


“고마워요....고마워요...으...으흐윽...”


『있잖아, 니암. 넌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겠지만 말이야, 한 번 더 믿어 봐도 좋을 것 같아. 세상은 아름답다고. 모두가 행복해지는 순간이 언젠가 올 거라고.』


각각의 건반이 하나의 화음을 이루기 시작한다. 그건 고작 하나일 뿐이지만, 지금은 그걸로 충분하겠지.

루도는 쓰게 웃었다. 이젠 도저히 발을 뺄 수도 없게 되어버렸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막는 수밖에.


‘이렇게까지 폼 잡았는데, 쪽팔리잖아.’


“광휘의 결사는 우리가 막을게. 난 절대 죽지 않아. 난 이름 높은 델키아의 레인저니까. 그러니까 넌 여기서 우리가 무사히 돌아오길 열심히 기도하고 있어. 누가 그러더라. 사람이 무언가를 간절히 기원하면 신께서 그에 보답해 주신다고.”


니암은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끄덕였지만 저었다. 그가 고개를 저었다는 사실은 세상 그 누구도 알지 못할 것이다. 니암과, 다른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는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루도님, 잠시만 혼자 있게 해주실래요? 마음을 좀 정리하고 싶어서요.”


“응? 아아, 그래.”


루도는 머쓱하게 뒤통수를 긁으며 주방을 나왔다. 문을 열자마자 그는 얼굴을 찌푸렸다. 거실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대화를 엿듣고 있던 것이다. 디리터와 마리네는 벽에 귀를 찰싹 붙이고 있었고, 제리온은 문고리에 붙어 있다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다. 심지어 그 이칼롯마저 벽에 기댄 채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는 눈을 감은 채 은은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루도는 입을 비죽이 내놓으며 속삭였다.


‘있으면 얘길 하라고. 이렇게 유치하게 엿듣지 말고.’


엿듣던 사람들은 대답 대신 루도의 머리통을 가볍게 두들겼다. 디리터가 모두를 대신하여 말했다.


‘제법이다, 루도. 니암이 여자였더라면 끌어안고 키스세례라도 날렸을 거야.’


‘쳇, 뭐야 그게.’


제리온이 루도의 목을 조르며 말했다.


‘야 이 꼬맹아! 네놈 덕분에 이젠 도망도 못 가게 됐잖아. 하여간 어린 것들이 허세만 들어가지고.’


‘빠지려면 빠져. 아무도 뭐라 안 하니까.’


‘어이쿠, 잘도 빠지겠습니다, 이 건방진 꼬맹아.’


둘은 옥신각신하면서도 머쓱하게 웃었다. 다른 사람들의 의사는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답은 이미 나왔다. 이제 데루루피아의 결정만 기다릴 뿐. 광휘의 결사를 막아야 한다. 무의미한 희생은 여기서 끝낸다. 일행은 말없이 다짐했다.



***



얼굴에 흐르던 눈물은 어느새 그쳤다. 퉁퉁 불은 얼굴에 눈물자국이 덕지덕지 붙었다. 안쓰러울 정도로 초췌한 모습이지만, 어찌 된 일인지 눈동자만은 맑게 빛났다. 니암은 무릎을 꿇고, 짧게 기도했다.


‘용서해 주세요, 다들. 하지만 자포자기 하는 것은 결코 아니에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참사는 막을 수 있습니다. 제가 반드시 막아 보이겠습니다.’


『우리가 막을 수 있을 거야, 반드시. 니암도 그렇게 생각하잖아? 그러니까, 멋들어지게 해결하고, 함께 돌아가자. 라즈베리 파이는 무슨 맛일지 궁금한데?』


니암은 몰래 빼놓은 마법버섯을 느타리버섯 틈에 집어넣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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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3) +2 15.03.28 1,014 35 17쪽
57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2) +3 15.03.27 1,121 39 10쪽
»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1) +5 15.03.27 1,124 45 10쪽
55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2) +2 15.03.27 1,066 46 15쪽
54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1) +4 15.03.27 1,053 41 20쪽
53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0) +2 15.03.27 1,106 44 17쪽
52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9) +2 15.03.27 1,157 50 15쪽
51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8) +4 15.03.27 1,236 39 16쪽
50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7) +2 15.03.27 1,072 42 12쪽
49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6) +3 15.03.26 1,144 45 9쪽
48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5) +3 15.03.26 1,122 4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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