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월 천하 -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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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매. 마차가 한 대 더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것이 어디쯤 있는 것이오?”
“멀지 않은 곳에 있을 거예요. 제가 찾아올까요? 그런데 호강단이 복귀하고 있나 봐요.”
“음. 그렇군. 그럼 내가 이기전성으로 지시하겠소. 희매는 그대로 있어도 되겠소.”
그리고 상유는 이기전성 수법으로 호강단 1조장에게 마차를 가져오도록 지시를 내렸다.
“모용옥은 앞으로 나오라!”
무림맹에서 그 당당하던 그녀가 어려운 몸짓으로 앞으로 걸어나왔다. 상유는 그녀에게 다가가 기묘한 수법으로 그녀의 혈도를 고루 타격했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당신은 모용씨 중에 유일하게 살아남는 자가 될 것이오. 모두 훌륭한 시아버지와 해맑은 아이들을 둔 덕이오.”
그녀의 표정은 추측하기 힘들었다. 자신이 살아난 것에 안도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가문을 멸문시킬 상유를 원망하는 것인지 알기 힘들었다.
“당신은 이제 그나마 있던 기력도 모두 소진되었고 앞으로 내력을 쌓을 수가 없는 몸이 되었소. 만약 자신 가문의 배덕함에 잊고 다른 마음을 품는다면 일과 경의 앞길을 막는 것이니 알아서 처신하리라 믿소.”
그녀는 아이들 이야기가 나오자 털썩 주저앉아 흐느꼈다. 그녀도 어미였던 것이다. 무림맹에 두고 온 아이들의 무사안일보다 중한 것은 역시 없는 모양이었다. 상유가 아이들을 들먹인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잠시 기다리자 호강단이 마차를 한 대 몰고는 다가오고 있었다. 역시 이목을 흐리기 위한 무리들이라서 그런지 호강단은 큰 손실 없이 복귀했다.
“이제 마차에 올라 부군을 데리고 무림맹으로 돌아가시오. 가거든 맹주께 엎드려 잘못을 빌고 자비를 청하시오. 지금 위지룡의 상황은 그리 좋지 못하니 다른 마음을 먹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오. 내 마음이 변하기 전에 어서 떠나시오.”
그녀가 혈도가 잡혀 운신이 힘든 위지룡을 부축해 마차에 오르자 상유는 다시 지시를 했다.
“호강단 육조는 저 마차를 원거리에서 호위하여 무림맹까지 저 두 사람을 안전하게 모셔라. 만약 중간에 이들이 다른 마음을 품는다면 제거해도 좋다.”
모용옥이 비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위지룡을 부축해 마차에 태우고는 길을 나섰다. 상유는 호강단 육조 열기가 사방으로 흩어져 그들과 같이 떠나가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비로소 남은 자들을 돌아보았다. 단숨에 모두 쳐 죽이고 싶지만 상유는 그들을 모두 마차에 태웠다. 그리고 다시 태산으로 길을 잡았다. 모용세가의 최후의 보루인 후세들을 볼모로 잡았으니 어서 돌아가 모용세가에 남기고 온 조부 위청천의 일을 도우려는 것이었다. 마차를 끌고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었다.
같은 시각, 제남(齊南)에 머무르던 임호의 전단은 패천문의 본문인 평음(平陰)을 향해 마지막 출격을 서두르고 있었다. 평음에는 남아 있던 열 척의 전선에 상류에서 급히 호출되어 온 이십 척의 전선들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모용세가에서 충원된 오백 명의 병력들이 나름 거대한 선단에 승선하여 최후의 결전을 위해 나서고 있었다.
그들은 차라리 수전을 피하고 내륙에서의 전투를 각오했어야 한다. 하지만 평음을 맡아 지휘하고 있는 모용 세가주 모용후의 동생 모용태는 아비나 형만큼 명석하지 못한 자였다. 삼십 척의 전단이 구성이 되자 단순히 몽월문의 선단이 여섯 척이라는 단순한 숫자만 믿고 선단을 꾸려 나선 것이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고 있었다. 평음 포구에 들어서는 입구는 호리병처럼 되어있는 곡구라는 지역이 있었다. 모용태는 그곳에 선단을 넓게 포진시키고 좁은 입구로 들어오는 몽월문의 선단을 격침시킬 요량이었다. 하지만 그런 전략을 석대 선생이 모를 리가 있겠는가? 몽월문의 선단은 삼중 배치의 진영을 바꾸고 곡구로 천천히 들어서고 있었다.
대형 전선인 몽월 삼, 사호를 앞세우고 중형 전선 네 척과 소형 쾌속선 이십 척은 모두 몽월호의 뒤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리고 적 전단과의 거리가 백장 안으로 좁혀지자 바로 멈춰서면서 강노를 발사했다. 엄청난 위력의 강노는 먼저 중간 중간에 배치된 패천문의 대형 전선들을 철저히 파괴시키고 있었다.
모용태가 타고 있던 대장선도 강노에 갑판이 크게 부서지면서 심하게 흔들렸다. 그는 급히 뒤로 물러서며 자신의 안전을 도모했는데 그 사이 이미 중간 중간에 있던 대형전선들은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었다. 사거리가 50장 내외인 연노를 장착한 배로는 할 수 있는 것이 두 가지 방책뿐이었다.
죽기 살기로 연노의 사정거리까지 다가가 마주 쏘아대면서 접선을 하여 침몰시키는 것과 아예 뒤로 몰러나 다시 기회를 노리는 것인데 물러서는 것은 오히려 피해를 가중시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당할 만큼 당하고도 마지막에 또다시 도망친다면 자신은 두고두고 가문에서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그는 모든 전선에 일시 공격 명령을 내렸다. 대장선에서 공격 깃발이 올랐으나 각 배의 지휘관들은 감히 먼저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공격 명령을 보고는 몽월호의 중간 중간에 네 척의 중형 전선들이 추가되며 일제히 먼저 나오는 배를 보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모용태는 이 상황이 어이없었지만 재차 명령을 내림과 동시에 사자후를 터트렸다.
“동시에! 모두 동시에 공격하란 말이다!”
그의 노화를 대한 지휘자들은 할 수 없이 전진을 했다. 과연 몽월호의 강노는 조금이라도 앞선 배부터 아작을 내고 있었다.
강노의 집중 공격을 받는 배는 그대로 배가 두 쪽이 날 정도로 처참하게 침몰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질린 전선들은 자연히 진군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지속적으로 패천문의 전선들은 침몰당하고 있었다. 결국 모용태의 고함과 이대로 가면 전멸한다는 위기감이 생기면서 배의 속도가 붙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최고 속도로 달려가고 있지만 몽월 전단과의 거리는 70여장에서 더 이상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마찬가지 속도로 몽월 전단도 물러서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강노는 계속 날아와 이미 열 척의 배가 침몰하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곡구에는 패천문의 배들이 좁은 지역으로 몰려들어 엉키고 있었다.
한 순간 반대의 입장이 되어 버린 것이다. 석대 선생은 꼬이기 시작하여 기동력이 떨어진 패천문의 요소요소에 위치한 배들을 강노로 무너뜨렸다. 중간에 부서져 침몰하는 배들로 인하여 패천문의 선단은 일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그러면서 한 척 한 척 배가 침몰되어 갔고 겁에 질린 무사들 중에는 멀쩡한 배에서 뛰어내리는 자들도 있었다.
일단 배가 침몰하면 배의 무게와 시설물 때문에 수영을 잘하는 데도 휩쓸려 죽는 사람이 많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삼십 척의 배가 절반으로 줄어들 무렵 석대 선생의 지휘 하에 임호의 진격 명령이 떨어졌다. 그러자 몽월 전단은 강력한 강노를 앞세워 배를 부수는 가운데 그대로 패천문의 배와 부딪쳐 갔다.
이미 강노의 공격으로 약해진 패천문의 배들은 철판을 든든하게 덧댄 몽월 전단의 돌파를 버텨낼 수가 없었다. 순식간에 앞에 있던 배 여섯 척이 침몰되자 남은 배들은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이어졌다. 몽월문의 소형 쾌속선들은 격전지 주변을 빠르게 돌아다니며 침몰한 배에서 살아 나온 자들을 추살하고 있었다.
일말의 온정도 베풀지 말라는 문주의 명령이 있었기에 보이는 족족 처 죽이고 있었다. 그야말로 모용세가와 관계된 자들을 발본색원 하여 추살하고 있는 것이었다. 배위에서 허리 아래를 물에 담그고 있는 자들을 추살하는 것은 어른이 아이를 상대하는 것과 같았다. 수없이 많은 자들이 그 강물에 피를 뿌리며 죽어갔다.
두 척의 몽월호와 네 척의 준형 전선은 순식간에 각자에게 부여 되었던 추격의 대상들을 격침시켰다. 기본적으로 두 선단의 기동 능력의 차이는 눈에 띄는 것이었다. 이제 남은 배는 단 세 척뿐이었다. 중형전선들이 두 척의 배를 해결할 동안 몽월호 두 척은 적의 대장선을 향해 강노를 쏘면서 쫓아갔다.
별로 서두르지도 않았다. 이미 적의 대장선은 몇 발의 강노를 맞아 정상적인 기동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 대장선의 양 옆으로 다가서는 몽월호에서 석대 선생의 지휘에 따라 강노 열 발이 일시에 발사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대장선은 완전히 풍지박살이 나면서 침몰하기 시작했다.
해상에서 소형 쾌속선들이 적들을 추살하는 사이 접안을 한 배에서 드디어 병력들이 상륙을 했다. 그 배에 타고 있던 호무당의 팔백 명의 병력은 일시에 평음에 위치한 패천문의 본가를 향해 달렸다. 하지만 살아 움직이는 것 중에 남아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미 패천문의 전선들이 패퇴하는 것을 보며 모두 도망을 친 것이다.
하지만 임호는 거기에서 그만 두지 않았다. 병력을 백 명씩 네 개조를 편성하여 적들을 추격하여 추살할 것을 명했다. 그리고 남은 병력을 이끌고 모용세가를 향해 출발했다. 약속한 날이 바로 오늘이었기 때문이다. 임호는 이동 중에 재수 없게 만난 이들을 만난 패천문도들도 남김없이 추살했다. 이제 장강은 물론 황하까지 몽월문에 귀속이 되는 순간이었다.
해가 붉게 물들며 긴 그림자를 늘어뜨리는 시간이 되어서야 상유의 일행은 겨우 태산 근처에 도달할 수 있었다. 마음은 바빴으나 볼모인 그들을 데려가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늦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태산의 관도를 따라 올라가던 샹유는 더 이상 모용세가 방향에서 아무런 전투가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초감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상유가 위청천의 명을 받아 잔당을 소탕하러 떠날 때, 그곳에는 천 명의 용무당과 백 명의 호월원 무사들이 있었다. 거기에 용무상 가득인 호법과 생사집혼 장로, 무영추혼 장로, 무산일화 장로까지 있었으니 남은 잔당을 뿌리 뽑는 일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이 시간이면 모든 전투가 마무리 되어 있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태산을 오르는 상유는 묘하게도 목적지가 가까워질수록 심장의 고동이 빨라지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진정시키기 어려웠다. 그렇지 않았다면 벌써 일행들을 앞서 먼저 목적지로 달려갔을 것이다. 결국 상유는 심법을 운용하여 마음을 진정시키면서 모용 세가가 멀리 보이는 곳에 이르렀다.
멀리 병력들이 일정한 진세를 이루며 흩어져 방비를 하는 가운데 가득인 호법과 장로들이 침통한 얼굴로 모여 무언가를 숙의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갔을 때 비로소 일행의 앞에 놓인 단상위에 하얀 천이 덮인 주검들을 볼 수 있었다.
상유가 돌아온 것을 본 호법과 장로들은 일제히 오열을 터트리며 무릎을 꿇었다.
“소신들을 죽여주십시오! 소신들의 불충을 용서하지 마십시오!”
그들의 그 말을 듣는 순간 상유는 일순 다리가 풀려 휘청거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그 때 어기전성이 들렸다. 조부 위청천의 남겨진 뜻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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