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폭풍 전야 - 3화
시찰을 마치고 지휘부는 모두 정청에 들어왔다. 상유는 이 정천호를 매섭게 노려보며
“당신은 스스로 정천호로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오이까?”
느닷없는 강한 말에 이 정천호는 등이 서늘해졌다. 상유가 약간의 살기를 담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바로 무릎을 꿇더니 애걸을 했다.
“감찰첨사님,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부디 살려주십시오.”
“당신은 대명의 무인으로서 스스로의 몸 하나 관리하지 못했을 뿐더러 이 중요한 전략지에 적들의 마수가 뻗치도록 방치 했다는 사실을 난 용서할 수 없소이다.”
그 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관이 있었다. 두 명의 부천호 중에 하나가 슬며시 정청을 빠져 나가려는 것을 호월원 소속 정호영이 바로 혈도를 짚어 정천호의 옆에 무릎을 꿇렸다.
“이자인가? 해일문과 내통하여 장가도를 적의 아가리에 던져 준 자가?”
“네? 이자는... 네. 그렇습니다. 이자가 섬에 들어와 있는 해일문 사람들과 저를 엮은 자입니다. 저는 그들이 적 도당인지 몰랐습니다. 정말입니다.”
이 정천호는 모든 죄를 그에게 미루며 아예 애걸을 하고 있었다. 상유는 그런 비루한 모습에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일어 당장 목을 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자신은 임 도지휘사사의 고마운 배려 하에 임시로 맡은 직책일 뿐이지 실제 관료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도지휘사가 자신이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을 처리하기 위해 위임해준 것일 뿐이었다. 하지만 상유의 목소리에는 살기가 묻어나고 있었다.
“장가도의 명군 배치와 해일문의 병력 배치를 정확하게 보고하라!”
그 말에 정천호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뒤에 있는 젊은 부천호를 쳐다보았다. 그가 안다는 것이었다. 상유가 그를 직시하자 그는 얼른 다가와 앞에 부복을 하며
“장가도 천호군 부첨사 원호기 삼가 아룁니다. 저들의 병력 배치는 만일을 위하여 제가 정확히 파악해 두었습니다.”
그는 우측선반에서 상황지도 하나를 꺼내 와 신투를 첨사의 부관으로 보았는지 건네주었다. 상황지도를 보니 정확하게 해일문의 병력 배치와 전력이 정확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그는 이 섬의 유일한 지휘무관이었다. 정확히 섬의 상황을 파악해 둔 것이었다.
“원 부천호! 이 시간부로 한시적으로 장가도의 군 지휘권을 내가 행사하겠다. 이의 있는가?”
“아닙니다. 첨사!”
“저 둘을 직위 해제하고 지금 즉시 격리 감호하라! 그리고 장가도의 전 병력은 비상체계에 돌입한다. 전 군은 비상 대기하라!”
해일문은 이백 명의 병력이 주둔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무인이기에 일반 명군들은 그들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대기만 시켜 놓은 것이었다. 그리고 지시를 내렸다.
“원 부천호는 지금 즉시 해일문의 수뇌부에게 감찰첨사가 와서 보잔다고 전해라. 단 그들이 긴장하지 않도록 평상적인 저녁식사를 함께 하자고 전달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무예를 익힌 고수들입니다. 첨사!”
그는 어이없게도 다소 걱정이 된다는 표정으로 상유를 쳐다보았다. 귀여운 자식!
“하하하. 걱정하지 마시오! 우리도 이미 준비를 해서 왔으니 그렇게 얼굴에 ‘나 걱정이야’라고 써놓지 않아도 되오. 그리고 식사 준비도 좀 부탁하오.”
군 지휘관들의 전용식당은 제법 잘 꾸며져 있었다. 십부장 이상이 이용하는 이 군관식당에는 지금 상유와 천면신투가 상석에 앉아 있었고 군사로 위장한 이십 명의 호월원 고수들이 사방에 흩어져 식사를 하고 있었다. 연락을 받은 해일문의 부문주 스즈키는 동영에서 건너온 검객이었다. 그는 이미 중원에 들어온 지 오래되어 중원인과 같은 복장과 언어를 구사하여 특별히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중원식 별호도 가지고 있었다.
무언쾌도라는 별호였다. 그는 언어상의 문제로 거의 말을 하지 않았고 일도류(一刀流)라는 동영의 쾌검법의 달인으로 알려져 있는 자였다. 그는 이번에 감찰 나온 명의 관리가 뇌물을 기대하는 줄 알고 금자가 든 전낭하나를 챙겨들고 비웃으며 식당으로 들어섰다. 휘하의 부하 스무 명을 이끌고서. 그런데 상석 앞까지 와서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지 멈춰 섰다. 인자 수련을 거친 무언쾌도는 남다른 감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호월원 고수들 중에 살기를 흘리는 자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미 입구는 호월원 고수들에 의해 봉쇄가 되어 있었다. 포위가 된 것이지만 무언쾌도는 느긋했다. 그리고 상석으로 뚜벅뚜벅 걸어 올라갔다. 자리에 앉아 느긋하게 기다리던 상유와 신투는 그의 느긋함과 빼어난 감각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너희들. 누구냐?”
약간 어색한 발음으로 좀처럼 하지 않는 말을 먼저 꺼낸 무언쾌도에게 신투가 일어서며 상대를 하려고 하자 상유는 손짓을 하며 일어섰다.
“태상께서는 잠시 쉬면서 구경이나 하시지요. 제가 이번에 익힌 것들을 시험해 보려고 하니 평가를 부탁드립니다.”
이십 명의 호월원 고수들이 둘러싼 기세는 엄청났다. 제법 한다는 해일문 간부들 이었지만 먼저 무기를 빼어 든 자는 없었다. 그들은 무언쾌도를 믿고 있었으니 그가 적의 수장을 벤 이후에 유리한 상황에서 싸움을 하려는 것이었다. 우습게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난 몽월문주 위상유라고 한다. 그대는?”
“뭐? 몽월문주! 그는 아직 이십 대라고 알고 있다. 당신은...”
상유가 역용을 풀었다. 그러자 얼굴 근육이 꿈틀대며 잘 생긴 상유의 외모가 드러났다. 짙은 눈썹아래 깊은 동공에서 언듯 짙은 살기가 뿜어 나오자 무언쾌도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 물러섰다. 상유의 소름끼치는 기도에 그냥 밀린 것이다.
“난. 해일문 부문주 스즈키다.”
자신도 모르게 본명을 밝히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마저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무언쾌도는 두려움을 떨치려는지 머리를 흔들더니 순식간에 도를 뽑아 상유를 향해 찔러들었다. 하지만 이미 그 자리에 상유는 없었다. 다만 뒤에 앉은 신투가 투덜거렸다.
“뭐야? 무영무음보를 벌써 극성으로 펼치는 거야?”
“하하하. 아닙니다. 이제 겨우 십성입니다.”
어느새 신투의 왼쪽에 선 상유는 신투의 어깨를 안마하듯 토닥이며 말을 하고 있었다.
“뭐냐? 그럼 너의 십성이 내 십이성 극성과 같은 것은? 에이~ 이 불공평한 세상!!”
상유는 다시 어느새 원래 서있던 자리의 좌측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 잡힌 검에는 푸른 검경이 넘실대고 있었다. 태청풍뢰검이었다. 이미 육성의 경지를 보이고 있었다.
무언쾌도는 공중으로 몸을 띄우더니 그대로 검을 아래로 그어 내리며 달려들었다. 그의 도에서는 번쩍거리는 검기가 상유의 몸을 절단 낼 듯 쏟아졌는데 그런 검기에 상유는 검을 교묘하게 흔들며 횡으로 그어갔다. 그러자 검경은 쇄액하는 바람소리와 더불어 찌릿찌릿한 뢰(雷)의 기운을 담아서 검기를 잘라갔다. 잘린 것은 검기뿐이 아니었다.
높이 신형을 솟구친 그의 발목에서도 더불어 피분수가 일었다. 떨어져 내린 무언쾌도는 설 수가 없었다. 그는 발이 없었기에. 착지와 함께 잘린 발목에서 느껴지는 굉장한 고통에 그대로 꼬꾸라졌다. 더 이상 승부는 필요가 없었다. 상유는 그의 혈도를 짚고 진기를 가득 담은 목소리로
“항복하라! 무기를 버리는 자는 살려주마.”
엄청난 무위에 놀란 그 때를 이용해야 아군의 피해 없이 적들의 제압이 가능한 것이다. 적들을 제압하는 것보다 피같은 호위들이 다치는 것을 바라지 않는 상유였다. 멍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적들에게 보라는 듯이 상유는 진기를 가득 담은 소청검을 들어 올렸다. 검에서 푸른 강기가 쭈욱 뻗어 나왔다. 그리고 뇌기가 검의 주변에 번쩍거렸다. 검강을 시현한 것이다.
그것을 보던 적들 중 하나가 검을 떨어뜨리자 그것을 시작으로 모두들 무기를 버리고 손을 머리에 올렸다. 그런 그들을 호월원 호위들이 단전을 봉하고 묶었다. 이십 명의 고수들이 빠진 해일문의 무사들은 앙꼬 빠진 찐빵이었다. 두 개조로 나눠 군사들을 이끌고 외부 초소들부터 훑어 올라가며 적들을 사로잡았다. 근무 중이던 육십 명을 잡고 해일문 장가도 분타의 장원으로 쳐들어갔다. 이들의 장원이 명군의 막사보다 훨씬 크고 좋았다.
신투와 상유는 마치 경쟁하듯이 신법과 보법을 이용해 적들의 혈도를 짚어 나갔다. 그런 자들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호월원 고수들에게 걸린 자들은 엄청난 매타작을 당하며 쓰러졌고 병사들에게 사로 잡혀 묶이는 신세가 되었다. 완전히 장악을 하고나자 이미 밤이 깊었다. 호월원 호위하나가 대기하고 있던 본진을 데려오기 위해 떠나고 해일문의 문도들은 모두 하옥이 되었는데 옥사가 부족해 병사들의 숙소 한 동을 옥사로 사용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키 위해 열 명의 호월원 호위들이 병사들과 함께 감시를 하고 나머지는 분타 장원을 뒤졌다. 적지 않은 재물이 나왔는데 그것은 전부 장가도 병사들에게 고르게 나눠주었다. 크게 할 일이 없는 상유와 신투는 운기조식으로 밤을 새웠다. 아침이 되자 몽월호와 동정호에 몽월문의 무사들이 대거 섬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장가도를 구석구석 정리하고 새로운 시설들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이제 장가도는 몽월문 장가장으로 현판을 갈아 달고 최신식의 방어기지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장가도는 군부와 몽월문이 적극적으로 협조하여 왜구나 기타의 적들의 침탈로부터 완벽한 방어망을 갖추게 되었다. 드디어 상유의 몽월문이 장강 십이채를 완전히 접수하였다. 거의 삼년이 걸린 웅대한 계획이 완료된 것이다.
이로써 중원의 젖줄이라는 장강의 인접성들은 몽월문과 협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일부에서는 소림이나 무당과 견줄만한 거대 문파가 등장 했다고 말들이 많았다. 이제 스물일곱이 된 상유는 어느덧 중원의 중심인물로 부각이 되었다. 아미산을 내려 온지 팔 년 만에 이룬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이로써 장강 주변의 다섯 개의 성에 새로운 열 두 개의 거점이 마련되었는데 이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하여 새로운 편제가 필요하게 되었다. 두 분 태상과 두 호법과 더불어 회의를 거쳐 기존 체제를 다시 정리하였다. 몽월도를 본문으로 각 성마다 하나의 중요 거점을 장으로 하고 다른 거점들은 단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호북성의 노학장과 강서성의 조양장, 안휘성의 무호장 그리고 강소성의 장가장이 사대장이 되었고 나머지 여덟 개 호구장, 도문장, 대포장등은 호구단, 도문단, 대포단으로 현판을 바꾸어 달았다. 네 명의 장주와 여덟 명의 단주가 임명되었다. 그들은 적월대 출신의 몽월원 호위 조장과 단원들로 가장 오랫동안 충성해 온 자들이었다.
특히나 가장 중요 거점인 장가장은 임호가 맡게 되었다. 조장들이 장주, 조원들은 단주로 임명되어 영전되는 영예를 안았다. 본문의 조직도 개편되었다. 호월원은 호월당으로 승격시켜 열 명씩 열 개의 조를 만들고 환희문 출신의 호위들이 각 조장을 맡았다. 그리고 당주는 소향이 임명 되었다. 소향은 이미 초절정에 들어 무공도 월등할 뿐 아니라 명석하여 충분한 자격이 있었다.
그리고 기존 호천당과 호무당을 해체 확대 개편하여 추가로 한 개의 당을 더 만들었다. 세 번 째 전투전단의 명칭은 호민당으로 하였다. 또 중요한 것이 각 장과 단의 병력 배치였다. 각 장은 이백 명, 각 단은 백 명의 타격대를 운영하기로 하였다. 거기에 장가장은 전략 요충지이기에 추가로 이백 명을 더 충원하기로 했으니 계획상으로 총 삼천 육백에 이르는 무사들이 필요했다.
현재 몽월문이 가진 병력은 꾸준히 늘어서 이천을 넘어서고 있었지만 오개 성에 이르는 거대 문파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천 명이상의 병력이 더 필요한 것이었다. 그래서 숙의를 거친 결과 그 방안으로 한 달 후에 신입 무사들을 선발하기 위한 ‘몽월무림대회’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물론 어마어마한 상금과 부상이 주어지며 능력에 따라 몽월문의 일반 무사에서 장로에 이르기까지 문호를 개방하기로 하였다.
이 소문은 강호 전역을 강타했다. 그 동안 소속 없이 있던 무인들과 정사의 중간에 있던 무인들, 거기에 은거 했던 전대의 기인들까지 대거 몽월도에서 개최되는 무인 대회에 참가 신청을 하였다. 떠오르는 태양과 같이 눈부신 몽월문에 자신의 꿈과 인생을 걸기 위한 무인들의 발길은 전 중원에서 호남성 악양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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