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파국(破局) - 1화
![DUMMY](http://cdn1.munpia.com/blank.png)
상유가 위청천이 있는 홍택단으로 돌아 왔는데 특이한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무림맹주 정천무황 위지천의 고희연을 축하해 달라는 청첩장이었다. 상유는 이번 길에 자신의 가문을 확인했다. 그리고 가문의 멸문과 관련된 엄청난 비화를 듣게 되었다. 그래서 모든 일에 앞서서 이것들부터 처리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위청천의 의견은 좀 달랐다.
“상유야. 모용 세가는 서문 세가와는 다르다. 그들은 모르긴 해도 서문 제운처럼 허술하지 않을 것이야.”
“그러면 어찌 해야 합니까?”
“모용 중이는 아주 철두철미한 자이다. 그는 이미 모든 준비를 마쳤을 것이다.”
“무슨 준비를 말입니까?”
“그들이 반란을 획책한 것이 무엇 때문이겠느냐?”
“자신들의 굴레를 벗기 위함 아닙니까?”
“물론 그것도 있겠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천년을 지켜 온 우리 가문의 무공일 것이다.”
“묵천 무공 말입니까?”
“그렇다. 그들이 그 오랜 기간 동안 발호를 하지 못한 것은 오로지 묵천 무공 때문이니 그들은 네 아비나 직계들을 통해 우리 가문의 무공들을 이미 취했을 것이야.”
“서문 세가는 아니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그 제운이라는 놈이 안타까운 것이다. 실속도 없는 반란에 끼어들어 결국 아무 것도 얻지 못하지 않았느냐?”
“그럼, 모용 세가는 다르다는 것입니까?”
“그들은 특히나 모용 중과 현 가주인 모용 후는 이중 삼중으로 방비를 했을 것이다.”
“그러면 어찌 해야 합니까?”
“그들의 세력과 음모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서문 세가와는 다르게 곁가지부터 치고 들어가야 할 것이니 세세한 것들은 네가 시간을 가지고 준비를 해 보거라.”
“네. 알겠습니다.”
“일단 본 문으로 돌아가자. 그리고 무림맹에도 들려야 하지 않겠느냐?”
위청천의 말을 통해 들어보니 서문 세가를 그렇게 처리한 조부의 처사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모든 것들은 모용 세가에서 치밀하게 준비한 것이었고 서문 세가는 그냥 분위기에 휩쓸려 어리석은 판단을 하고 만 것에 불과했다. 단순히 서문 세가를 보고 모용 세가를 가볍게 보던 상유는 그게 잘못된 판단임을 깨닫고 몽정원을 통해 모든 정보력을 모용 세가에 쏟아 부을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몽월도로 귀환을 하는 길에 무림맹주의 고희연에 참석하기 위해 호북성 무한에서 하선을 했다. 오랜만에 무림맹을 찾은 상유는 바뀐 위상에 맞게 무림맹에서 접객원주가 직접 마중을 나왔다. 십여 년전 처음 무림맹을 찾을 때와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그 때는 접객원 부원주 이기만에게 하찮게 여김을 받았었는데 지금은 무림맹 장로인 점창파 사일일검이 직접 마중을 나왔으니 그 느낌은 묘했다.
“아니, 장로께서 이렇게 직접 나오시다니요? 제가 황송합니다.”
“문주께서는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저희 점창파에 위 문주님은 은인과 같으신 분이시고 지금도 지속적으로 도움을 받고 있는데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하”
무림맹 접객원의 팔기 마차를 타고 무림맹으로 당당히 들어갔다.
이미 무림맹에는 몽월문의 무사와 지원자들이 오백 명이나 상시 거주를 하고 있었는데 문주의 방문에 정문 뒤로 길게 도열해 상유와 위청천을 맞고 있었다. 맹주 직계 병력을 제외하고는 가장 많은 병력을 상주 시키는 문파가 몽월문이었다. 재정도 거의 전체의 삼 할을 감당하니 몽월문이 없으면 제대로 돌아가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맹주님은 오늘 면담이 가능한가요?”
“아! 오늘 오후에는 다른 일정이 있으셔서 죄송하지만 명일 오전에 뵙겠다는 전언이 있었습니다.”
“호!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이급 문파 숙소이던 매화각이 몽월문이 일급 문파가 되면서 옮기지 않고 확장 공사를 하며 몽월각으로 바뀌었는데 지금은 옆에 있던 전각 하나를 다시 더 합쳐서 가장 큰 전각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맹주전보다도 더 큰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맹주전은 측근과 무사들이 분리된 반면 몽월각은 모두 집중해 있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몽월각에 들어 지친 심신을 달래고 있는데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상유도 오랜만에 만나는 위지랑이었다. 그녀는 이제 서른이 다되어가는 나이였는데 아직 혼사를 치르지 않고 노처녀로 있었기에 무림맹의 많은 사람들이 곤혹을 치르고 있었다. 도도했던 그녀의 성격이 나이가 차면서 아주 날카로워져서 그녀에게 걸리면 괜한 트집을 잡혀 곤란을 겪은 자들이 많았다.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운 자태였고 나이를 먹은 태는 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풍만하고 농염해져서 상유를 자극하고도 남았다.
“흥! 오셨다는 소식에 한 달음에 달려 왔는데 별로 반갑지 않은 모양이죠?”
“하하. 랑매 무슨 말이오? 너무 눈이 부셔 할 말을 잠시 잃은 것이오!”
“호호호. 그래요?”
말과 함께 위지랑은 상유의 품으로 달려들어 안겼다. 농염한 그녀를 살짝 안아주자 그녀의 전신에서 풍겨오는 체향과 느낌에 상유는 일순 정신이 없었다. 특히나 위지랑은 다리를 살짝 들이밀며 도발적으로 상유를 자극했다. 아무도 없어서 다행이었지만 상유는 더 이상 총각이 아니기에 요령껏 그녀를 안아주며 자리에 앉히고는 자신도 옆의 의자에 앉았다.
“꽃밭에 둘러싸여 있어서 저를 보고도 아주 의연하시네요?”
“하하. 그 무슨 말이오. 아주 죽겠소이다. 랑매. 나 좀 봐 주시오.”
“그럼 고희연까지 이틀이나 시간이 남았으니 그 시간은 저에게 주셔야 해요?”
“하하. 알았소. 그런데 위지궁 형은 어찌 같이 안 오고 혼자 오셨소?”
“오라버니는 바쁜가 봐요. 큰 오라버니 처가 사람들이 왔거든요.”
“오호! 그렇군요. 랑매 올케의 가문 사람들이 온 모양이군요.”
“네. 아주 대단해서 아빠도 소홀히 할 수가 없나 보더라고요.”
“어느 가문인데 맹주께서 감히 소홀히 하지 못한단 말이오?”
“그게 안휘성에 있는 모용 세가라고 아주 재력이 좋은가 봐요.”
“모용 세가!”
상유가 버럭 소리를 높이자 위지랑은 깜짝 놀랐다. 왜 상유가 모용 세가에 민간하게 반응하는지 알 수가 없었으나 뭔가 사연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이러한 사실을 위지랑에게 들킨 것이 상유는 못내 안타까웠다. 그들이 소리 소문 없이 움직이고 있을 것이라는 할아버지의 말은 사실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위지랑의 오빠 위지룡은 결혼 한지 십 오년은 넘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모용 세가는 이미 다음 무림맹주가 될 가능성이 있는 위지룡을 일찌감치 포섭하고 있는 것이다. 상유는 왠지 모를 불안감에 순간 소름이 휙 돌았다. 몽월문이 강호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 문파로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그것은 허울뿐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보이지 않는 세력과 힘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일단은 위지랑을 적당히 구슬려 놔야 한다. 위지랑이 협조를 해 준다면 무림맹주가의 속내를 속속들이 알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몽월문을 제외하고 가장 큰 단일 세력은 위지 세가라고 할 수 있었다. 거기에다 무림맹을 통솔하고 있었으니 이들이 모용 세가와 손을 잡는다면 그건 생각하기도 싫은 구상이었다.
그와 연계를 하니 걸리는 것이 또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앞에 있는 위지랑과의 애매한 관계이다. 그녀 역시 일찍이 지금은 아내가 된 당서화와 함께 상유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을 상유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그런 바램은 성사는커녕 시도도 되지 않았었다. 최소한 상유가 혼사를 할 무렵에 무림맹주는 자신의 딸 문제로 상유에게 말이 있었어야 하는 것이 맞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전에 처음 만나 식사를 하고 그 후에 좋은 관계를 유지할 무렵 상유는 감각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정천무황이 자신을 사위로 삼고 싶어 한다는 것을. 그런데 자신이 혼사할 무렵부터 정사대전이 끝나고 지금까지 이미 상당 시간이 지나고 있었건만 자신의 딸을 그대로 두고 있는 것이 기이했다. 그래서 상유는 확인을 해야 했다.
“랑매. 우리 솔직한 이야기를 좀 해 봅시다.”
“네? 무슨?”
“우리는 사실 처음 주루에서 만나고 이치상 형의 장원에 함께 갈 때부터 서로 호감이 있었소. 맞지?”
“네. 왜 옛날 일은?”
“그리고 날 조찬에 초대를 할 때도 랑매는 물론이고 무황께서는 날 마음에 들어 하셨던 것 같은데?”
“네. 휴우... 그래요.”
“그런데 왜 우린 지금 이대로인 것이오?”
어찌 보면 심해 보이는 데도 상유는 직접적으로 위지랑을 몰아 붙였다. 뻔뻔해 보일 정도였는데 상유는 개의치 않았다. 필요하다면 더한 짓도 할 수 있는 상유였다. 대답을 기다리는 상유를 보며 위지랑은 말없이 상유를 쳐다보더니 눈물부터 글썽거리기 시작했다. 뭐라고 말을 할 것도 같은데 말은 하지 않고 그냥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일어서 방문을 열고 뛰어 나갔다.
상유도 놀랐지만 어떻게 말리기도 적절치 않아 그냥 앉아서 상황 파악을 하려고 명상에 잠겼다. 모용 세가는 어느 정도까지 강호의 세력들에 침투해 있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자신과 직접 교류를 하지 않는 문파들은 모두 의심을 하고 확인을 해 봐야만 했다. 상유는 우선 급히 몽월문으로 전서를 날렸다.
이렇게 한가할 때도 아니고 무림맹이라고 해서 안전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무림맹에 파견되어 있는 무산일화 장로를 불러 비밀리에 비상을 지시했다. 그리고 무산일화와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는데 상유가 알지 못하는 사이 모용 세가는 이미 무림맹에도 패천문(覇天門)이라는 문파로 입회가 되어있었다.
버젓이 이급 문파의 인정을 받으며 일급 문파가 없는 산동성을 대표하는 문파로 평음에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기민하고 대단한 움직임이었는데 어떻게 그것을 눈치도 채지 못하고 있었는지 위청천의 말이 실감이 났다. 지금 수면에 떠오른 것이 그 정도라면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이 떠오르며 수면 아래 감춰진 그들의 진면목을 하루 속히 찾아야 했다.
그 날 밤 상유는 무영무음보를 극성으로 시전하여 맹주전에 잠입을 했다. 용담호혈이기는 했지만 천면신투의 경지를 넘어선지 오래인 상유에게 그들의 경계는 의미가 없었다. 거기에 조부 위청천에게 전수 받은 절기들로 상유의 무공 경지는 측량이 불가하다고 할 정도였다. 과연 걱정하던 일이 확인이 되었다.
이곳은 맹주의 개인 집무실이었다. 그곳에는 눈이 퉁퉁 부은 위지랑이 아비인 정천무황에게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그 옆에는 다정한 그의 둘째 오빠 위지궁이 앉아서 곤란에 처한 그의 아비를 대언하고 있었다.
“왜? 왜 저에게만 이러시는 거예요? 아빤 제가 정말 이렇게 평생 혼자 지내도 좋단 말인가요?”
“랑아. 아버님이 왜 그러시겠느냐? 그건 아니다. 다만 몽월문과 우리의 가야 할 길이 다르니 다른 사람을 찾아보라는 것 아니냐?”
“왜? 가야할 길이 다른데요? 그렇게도 무림맹주의 자리가 중한 것인가요?”
그 말에 위지천은 눈을 감은 채 잠잠히 있었지만 위지궁은 깜작 놀라 위지랑을 말리고 그녀를 안아 들고는 자리를 벗어나고 있었다.
Comment '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