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아미산은 나의 천국 - 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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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단 아래 위치한 비무대는 사방 열 장의 크기로 정방형의 경계를 둘러놓았고 단단한 나무로 바닥도 골라 놓은 상태였다. 경계 밖으로 밀려나거나, 목검을 잃거나, 목검으로 상대의 치명적인 부위를 타격했을 때 심판을 보는 호법들이 승패를 가르고 비무자는 이에 승복해야한다. 상유의 첫 상대는 내당주인 목화신니의 제자 정련화였다. 그녀는 올해 스물아홉의 나이로 특출하지는 못해도 제몫을 하는 무던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녀는 아주 귀여워하는 상유가 첫 상대로 지명이 되자 안쓰러운 마음부터 들었다. 어디 때릴 곳도 없는데 하며. 심판의 구호에 따라 인사를 하고 마주섰다. 그런데 정연화가 인사를 끝내자마자 상유는 바로 보법을 밟으며 짓쳐 들어갔다. 연화는 순간 당황하여 재대로 발검을 못하고 그냥 마구잡이로 검집을 이용해 쳐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를 예상한 듯 상유는 오른쪽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며 순식간에 정연화의 왼쪽 목에 검을 살짝 갖다 댔다. 순식간에 승부가 난 것이다. 상유를 우습게 본 연화의 명백한 패배였다. 심판마저 순식간에 일어난 긍패에 어리둥절했지만 곧 상유의 승을 외쳤다. 패하고 들어가는 정연화에게 목화 신니의 매서운 눈초리가 날아 온 것은 당연했다.
설마 자신의 제자 정연화가 지리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나름 앙숙인 화정 신니의 어린 제자에게 망신을 당했다고 여긴 내당장로는 얼굴이 발개지고 있었다. 상유는 손을 흔들어 사부인 화정 신니에게 인사하는 것을 잊지 않았는데 귀여웠다. 그 모습에 좌중의 많은 제자들이 상유의 승리에 크게 소리치며 환호했다.
“사제 멋지다!”
“사숙 멋져요!”
요 정도는 기본이었다. 어디선가 불쑥 튀어 나온 말
“자기 멋지다!!”
느닷없는 이 말의 근원지를 찾는 눈길이 부산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찾을 수가 없었다. 혹시 자기도 모르게 본인이 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자리로 돌아오는 상유를 유화가 달려 나가며 먼저 반겼다. 유화는 상유의 두 손을 잡더니
“야 멋지다. 상유야! 최고야!”
진심으로 상유를 축하하는 유화는 어려서 그런지 일체의 내숭이 없었다. 하지만 상유의 눈길은 수련에게 가 있었다. 그녀의 반응이 궁금했던 것이다. 그녀의 입가에 웃음이 살작 달려 있는 것을 보자 상유는 기뻤다.
분명 기뻐하고 있음에도 백수련의 입에서는 다른 말이 흘러 나왔다.
“사제 앞으로는 그렇게 하면 안 돼! 물론 실전에서는 기습도 중요한 하나의 공격 방법이지. 검에는 눈이 달려있지 않으니까. 하지만 지금과 같이 서로의 무예를 시험 할 때는 성실하게 자신의 무공을 보여줘야 한다고 나는 생각해.”
마음으로는 누구보다 승리를 축하해 주고 싶지만 앞으로의 대련이 남아 있기에 한 번의 승리에 도취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의 표현이었다. 상유는 사저의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후에 몇 번의 대련이 진행되는 것을 상유는 주의 깊게 쳐다봤다. 전에는 대련을 장난의 수단으로 생각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싸운다는 것이 상당히 재미도 있었고 사부님과 사저, 그리고 많은 누이들의 성원도 짜릿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두 번째 대련에 나서는 상유는 이번부터는 침착하고 당당하게 이기겠다는 마음으로 나섰다. 맞은편에는 방이화라는 사저가 마주 서 있었다. 장로원을 맡고 있는 비화선자의 이제자로서 여자로서는 드물게 육척에 가까우니 이제 사척을 조금 넘는 상유는 그녀의 가슴어름의 신장에 불과했다.
시작도 하기 전에 사방에서는 근심 섞인 목소리들이 들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상유는 무덤덤하게 포권을 취하고 마주섰다. 방이화는 정련화의 대련을 지켜본 후라 기습에 주의하고 있었다. 그런데 상유는 그냥 검을 들고는 진지하게 상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귀여운 아이를 어떻게 공격하나 하고 있는데 상유가 부드럽게 보법을 밟으며 우축으로 돌아들어오며 대라수미혜검의 기수식을 펼치는 것이었다.
사뭇 검에 묻어나는 기운이 심상치 않자 이화도 같은 수법으로 대응을 했다. 이 한 번의 전개를 보며 좌중은 조용해졌다. 상유를 어리게만 보아왔는데 그의 물 흐르는 듯한 보법과 완벽한 검식은 좀처럼 보기 힘든 초절함이 묻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제자들이 익히고 알고 있는 검식이니 쉬 경지를 알아보는 것 이었다.
첫 번째 충돌은 아무래도 힘에서 밀리는 상유의 손해였는데 이미 그럴 것을 예측한 상유는 물러서는 듯 하더니 바로 미끄러져 들어가며 연격을 펼쳤다. 이번에는 왼쪽으로 돌아들어가며 두 번째 초식을 이어간 것이었다. 절묘한 초식의 연결이었지만 방이화도 역시 같은 초식으로 조금 늦긴 했어도 별반 무리 없이 대응을 했다. 그러자 이어서 상유는 또 왼쪽으로 돌아들어가며 순서대로 세 번째 초식을 이어나갔다. 선공의 이점을 최대한 유지하려는 생각이었다.
방이화 역시 같은 초식으로 맞받아쳤다. 그리고는 왼쪽으로 상유가 또 돌아 들어오자 역시 네 번째 초식을 연결할 거라 생각하고 역으로 공격하려고 했다. 그런데 돌변한 검식이 날아들었다. 거의 접해보지 않은 힘찬 검세가 방이화의 다리를 향해 짓쳐들었다. 미처 대비를 하지 못한 이화가 한쪽 다리를 맞고 물러서는데 상유는 들어오던 그대로 검을 쭉 뻗어 이화의 단전을 찔러버렸다.
신장의 차이가 있으니 하체의 공격에 취약함을 드러낸 것이다. 별다른 타격은 없었으나
“상유 승!”
하는 심판의 결정이 들려왔다. 단전은 인체의 중요요혈이었다. 목검이 아닌 진검이었다면 단전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이화는 미처 자신의 원하는 공격은 한 번도 하지 못하고 상유의 공격을 받아주다가 그냥 패해 버린 것이다.
자신의 패배가 믿기지 않아 서있는 그녀에게 상유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사저의 배려에 감사합니다.”
그때서야 상황을 실감한 이화는 졌음에도 상유의 유려하고 단호한 검식을 칭찬했다.
“난 사제가 어리다고만 생각했는데 오늘 내가 한 수 배웠어. 호호”
이 대련은 상유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 열 살인 키도 사척이 조금 넘는 아이였지만 상유는 결코 만만한 아이가 아니었던 것이다. 비로소 장문인은
“우리 아미파에 복덩이가 굴러들어 왔었네! 아이고 이쁜 놈! 화정 사제가 아까 한 말이 무슨 뜻인지 내 이제 알겠네. 호호호.”
장문인의 말에 문파의 어른들도 크게 찬동을 하고는 화정 신니에게 다가 와 축하도 하고 격려도 하며 함께 즐거워했다. 상유의 장점인 유려한 보법을 최대한 이용하여 자신이 가르쳐 준 대라수미혜검으로 당당히 이기고 돌아 온 상유가 수련은 미치도록 사랑스러웠다. 급기야 두 손을 잡아 손등에 입 맞추어 주기까지 했다.
수련의 평소 모습에 비춰 본다면 파격이라 할 수 있겠다. 그 철갑피 상유마저 얼굴을 붉혔으니 말이다. 직속 사저로서 가능한 일이었지만 많은 동문들이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하지만 수련이 그런 것을 신경 쓸 위인이 아니었으니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사제 이번엔 정말 잘 했어! 나중에 다리를 때린 것은 무슨 초식이야?”
“아~ 그거는 사부님이 전수해 주신 복호대라검의 초식이예요. 그 검법은 최단거리의 전개를 요점으로 하고 있어서 상대의 한 곳을 노릴 때는 아주 최적의 검법인 것 같아요.”
“그렇구나. 아주 위력적이고 시기적절했어! 사제 이제 팔강에 들었네?”
“그런가요? 그럼 두 번만 더 이기면 결승인가요?”
“그런가? 결승에 올라 나랑 대련하면 참 좋겠다. 사부님도 대견해 하실 텐데”
“그런데 이후에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나를 만만히 본 것이 그나마 나의 유리한 점이었는데 이제 그런 장점 없이 대련을 해야 하잖아요.”
“물론 그렇긴 하지만 난 사제가 최선을 다한다면 못이길 이유도 없다고 생각해.”
“정말요? 알았어요. 잘 해 볼게요. 하하하”
상유는 사저의 칭찬이 너무도 기분 좋았다. 본시 금단의 열매가 달다고 했으니...
팔강이 결정되자 잠시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그런데 상유는 사부 화정 신니가 불러서 원로들이 있는 강단으로 가게 되었다. 똘망똘망한 눈망울에 앙다문 굳건한 입술은 잘생긴 열 살 개구쟁이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런 상유가 오늘 등봉제의 단연 화제가 되자 신명이 난 화정 신니가 자랑하기 위해 부른 것이다.
상유가 강단의 전각 안으로 들어서자 사방에서 장로나 원로들이 이쁘다고 안아도 주고 쓰다듬어 주는데 상유는 기분이 좋았다. 사람들로부터 능력을 인정받는다는 것이 이렇게 기분 좋은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장문인의 옆에는 상유가 처음 보는 나이 많으신 분이 앉아 계셨는데 바로 아미파의 살아있는 전설인 소화사태였다. 그녀는 상유와 눈이 마주치자 손짓을 하며 불렀다.
“근데 할머니는 처음 뵙는 분이시네요? 누구세요?”
그 말에 화정 신니가 화들짝 놀라서는 부리나케 달려오더니
“이놈 상유야! 그냥 할머니가 아니라 네게는 사조님이시다. 전대 장문인이신 소화사태 어른이시니 어서 인사부터 올리거라.”
“그럼 사부님의 사부님이시네요?”
상유는 바닥에 엎드려 큰 절을 올렸다. 제법 의젓한 몸짓에 미소를 보이며 소화사태는
“그 놈 참 튼실하구나. 이라 가까이 와 보거라.”
상유가 다가서자 소화사태는 상유의 맥부터 짚어 보았다. 그러더니 빙긋이 웃으면서
“요 놈 이거 걸물일세! 화정아. 요놈이 네게 배운지 얼마나 되었다고?”
“네? 이제 이 년이 조금 넘은 것 같습니다. 가을이 되어야 삼년입니다. 사부님”
“그래? 그런데 이놈 적하신공을 익혔나 보구나?”
“네. 하도 양기가 강하여 금정신공이 맞지 않을 것 같아 연구하면서 대충 가르쳤습니다.”
“화정! 네년도 말년에 복을 많이 받으려나 보다. 이놈 이거 벌써 내공이 사십년은 족히 되겠는데? 적하신공이 요놈에게 딱 맞는가 봐!”
그 소리에 주변의 원로들은 깜짝 놀랐다. 이제 열 살인 아이가 사십년의 내공이라니 기가 막히는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일대제자 중에 내공으로만 따져도 열손가락 안에 든다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그렇게나 됩니까? 저도 상유가 내력이 생각보다 상당 할 거라고만 생각했지 직접 확인해 보지는 않았던 터라... 호호호.”
“유사 이래 처음으로 우리 아미파가 중원의 핵심이 될 날이 멀지 않았어! 요놈이 물건이야! 물건! 뭔가 해줄 것 같은 기대가 팍팍 드는구나. 호호호! 이놈을 내일부터 낮 시간에는 내 암자로 올려 보내거라!”
“네? 제가요?”
대답은 상유가 먼저 했다. 즐거운 날이 끝나가고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이었다.
팔강전에 이어 사강전 역시 상유는 유연한 보법과 상대의 허를 찌르는 공격으로 어렵지 않게 승리를 하고는 결선에 오르게 되었다. 모두의 예상을 뒤엎은 일대 사건이었다. 여태 수백 년을 이어온 등봉제 기록에도 없는 최연소 결선 진출 제자였다. 하지만 결승 상대가 수련으로 결정되자 갑자기 배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는 기권을 하는 얼토당토않은 촌극을 연출하기도 했다.
물론 수련의 매서운 질타를 받기는 했지만 상유는 배를 부여잡더니 화장실로 도망을 쳤다.
결승에 나선 수련은 소해린과 반시진의 치열한 접전을 펼친 끝에 결국 반수 차이로 지게 되었는데 상유는 마치 자기가 진 것처럼 너무도 아쉬워했다. 이제 스물이 된 수련이 서른 살의 소해린과 이런 정도의 접전을 펼친 것만 해도 다들 대단하다고 하였다.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특혜가 소해린에게 더 이상 필요가 없으므로 백수련은 삼년 연속 준우승이지만 상승 무공 하나를 사사 받을 권리를 얻게 되었다. 상유의 분전과 수련의 준우승으로 외당에 속한 제자들은 오랜만에 기를 펴게 되었다. 그리고 개구쟁이 상유가 아닌 정식 일대 제자 상유로 인정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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