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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필(一筆)의 서재입니다.

파락공자(擺落公子)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판타지

완결

일필(一筆)
작품등록일 :
2013.09.07 00:33
최근연재일 :
2014.03.02 23:43
연재수 :
9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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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3,679
추천수 :
50,583
글자수 :
603,628

작성
13.11.20 14:30
조회
10,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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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글자
22쪽

74. 천애곡

DUMMY

상유는 아무런 감각을 느낄 수가 없었다. 노파의 공격에 호신강기가 깨어지며 옆구리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것마저도 인식하지 못할 만큼 지친 상유는 그냥 무의식중에 아무런 방향 감각도 없이 한쪽을 향해 달릴 뿐이었다. 다행히도 그 방향은 나루 쪽이 아닌 북동쪽이었다.


다행인 이유는 사도옥이 항구 쪽에 만약을 위하여 열 명의 직속 부하들을 배치해 두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상유의 상태는 그들과 만났으면 죽음을 면하기 어려웠으리라. 수련호에 남아 있던 신투는 이상하게 불안했다. 여자와 함께 나간 상유를 걱정할 이유가 없는데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신투는 점점 더 커지는 불안감에 극성의 신법을 발휘하며 동릉현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남서쪽에서 마기와 사기가 뻗치는 느낌을 받았다. 등이 오싹한 그 기운에 불길한 생각이 들어 달려가 보니 이미 엄청난 전장의 흔적만이 자욱했다. 이미 철수를 하면서 불을 질러 장원 전체의 흔적을 없애려 했지만 신투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엄청난 살육의 흔적이 있었고 그런 살육을 벌일 능력이 있는 사람은 이 주변에 상유 말고는 없었다. 그런데 이 정도의 흔적이라면 상유라고 하더라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신투는 일단 전선으로 돌아와 상유가 귀환을 했는지 확인을 하고는 급하게 몽월도와 주변의 분장과 분단에 비상연락을 취했다. 그리고 전장의 주변을 확인하고는 흔적을 찾아 추적을 시작했다.


상유는 꺼져가는 의식을 붙들며 계속 거친 산야를 달리고 있었다. 이미 바닥이 난 내력이었지만 일식천리신행이라는 신법이 워낙 적은 내력을 필요로 하는 신공이었기에 호흡에서 들어오는 작은 진기만으로도 웬만한 경공을 뛰어 넘는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었다. 다행이라면 옆구리에 난 자상에서 흘러내리던 출혈이 자연스럽게 멈춘 것이었다. 이것은 그나마 상유가 복용한 영약들의 기운 때문이었다.


몸 안에 완전히 용해되지 않았던 영약의 성분이 어느 정도 자가 치료를 해 지혈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미 상당량의 출혈이 있는 상유는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현기증을 느끼고 있었다. 다만 살아야 한다는 무의식이 상유를 달리게 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상유의 뒤에는 아직도 홍화대의 무사들이 추격을 멈추지 않고 있었으니 비록 더딘 속도라고 하더라도 이대로 쓰러진다면 반시진 안에 발견이 될 것이다.


운이 좋아 무의식중이지만 상유가 달리는 방향은 무호단이 있는 방향이었다. 그곳에는 몽월문의 무사 팔십 여명이 주둔하고 있어서 그 경계지역으로 가면 좋으련만 상유는 안타깝게도 보다 오른쪽인 경정산(敬亭山) 방향으로 휘어져 달리고 있었다. 제 정신이 아니기에 어찌 할 수 없는 애가 타는 일이었다. 경정산의 급한 경사를 마치 거대한 메뚜기처럼 껑충껑충 뛰어 오르던 상유는 급기야 산의 팔부 능선에 이르렀다.


상유의 앞에는 깊은 협곡이 자리를 하고 있었는데 까마득한 낭떠러지를 건너려면 최소한 십장 이상을 건너야했다. 평소라면 상유에게 어렵지 않을 거리지만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한 거리인데 상유는 무의식중임에도 자신이 있었는지 그냥 몸을 날렸다. 그런데 채 절반도 가지 못해 움찔하던 상유의 신형은 절벽 아래로 빠르게 떨어지고 있었다.


점점 가속이 붙으며 간신히 붙들고 있던 의식마저 꺼져갔다. 시꺼먼 아가리를 벌린 지옥의 입구를 향해 달려드는 상유의 운명은 어찌 될 것인가! 천면신투는 상유의 흔적을 쫓다가 상유의 뒤를 추적하는 일단의 무리를 발견하였다. 신투가 보기에 지휘를 하는 여자는 바로 상유와 배에서 내렸던 젊은 여인이었다.


그 때와 모습이 많이 바뀌었지만 역용의 대가인 신투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지금의 모습이 본 모습일 것이다. 여자들은 보통 화장을 하기 때문에 역용에 훨씬 유리하다보니 상유와 신투의 눈을 속일 수 있었으리라. 역용을 푸니 더 앙증맞고 귀여운 모습이지만 그런 외모가 지금 신투의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주변에 넓게 퍼져 수색을 하고 있는 홍화대는 무려 사십 명이었다. 일부 부상자와 뒤처리를 위해 일부 병력이 빠진 것이었으나 그녀들만 해도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신투는 만약을 위해 가져온 전서구를 품속에서 꺼내 뭔가를 적어서는 날려 보내고 외곽부터 한 명씩 처리를 하기 시작했다. 상유의 흔적을 찾기 위해 흩어진 홍화대는 그때부터 소리 없는 악몽에 하나씩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사도옥이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하고 전 병력을 소집했을 때는 이미 절반이나 되는 이십 명의 대원들이 절명한 후였다. 보이지 않는 적을 상대하는 섬뜩함이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를 것이다. 홍화대는 이제 최소한 네 명씩 조를 이뤄 죽은 대원들의 시신부터 모으기 시작했다. 그런데 죽은 시신들은 이미 상당수가 썩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신투가 천독곡의 무형지독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신투는 천독곡에서 이것을 훔쳐낸 이후 보관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혈마교에 된통 당한 이후 비궐에서 가지고 나왔다. 꼭 죽여야 할 상대 백 명을 죽일 수 있는 양이었다. 이 무형지독은 작은 뿔피리 같은 것을 입안에 감추고 다른 공격의 와중에 함께 사용을 한다. 상대의 삼 장 이내로만 접근 할 수 있다면 알고도 피하지 못하는 절대 독술 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더러 일체의 공격의 기운을 느낄 수가 없으니 상대는 한 순간에 절명을 하게 된다. 특히 신투와 같이 빠른 경신술을 갖춘 자가 시전 한다면 가히 악마의 무기가 되는 것이다. 스무 명이나 죽였지만 신투는 아직 분이 풀리지 않았다. 저들이 계속 상유를 쫓는다면 모두를 다 죽여 없앨 마음이 있는 신투였다.


사도옥은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이백 명의 홍화대를 이끌고 나와 무려 백오십 명을 희생시켰다. 상유가 심각한 타격을 입었으니 발견만 한다면 마지막 목줄을 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더 이상 무리하게 움직이다가는 퇴로는 커녕 이곳에서 뼈를 묻어야 할 판이었다.


천면신투는 그들이 퇴각을 하자 빠르게 상유의 흔적을 찾아 쫓아가기 시작했다. 이미 날이 저물고 있어서 더 이상 지체 한다면 추적에도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그나마 상유가 의식이 없는 상황이었기에 곳곳에 경공을 사용한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신투는 상유가 시전 한 경공이 자신의 성명 절기인 일식천리신행임을 알고 마음이 더욱 부산해졌다. 상유가 이 정도의 짧은 보폭을 보인다는 것은 그만큼 위중함을 나타내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신투는 상유가 올라간 그 길을 정확히 짚으며 드디어 팔 부 능선까지 쫓아 올라갔다. 그런데 마지막 걸음을 뛴 자국은 선명한데 반대편의 어디에도 도착한 흔적이 없었다. 주변을 샅샅이 훑어봤지만 어디에도 상유의 흔적은 없었다. 결국 결론은 상유가 이 천애곡 아래로 추락했음을 말하고 있었다. 신투는 다리에 힘이 탁 풀리며 주저앉았다. 이 천애곡은 바로 지옥의 입구라고 알려진 곳이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이 천애곡의 밑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바람이 수시로 부는데 그 소리가 마치 낭떠러지 밑에서 여인이 슬피 우는 소리처럼 들리는 것이다. 비가 오는 날이면 유독 천둥과 번개가 이곳에 몰아쳐 내리치는 것도 특이한 현상이었다. 그것은 바로 아래 떨어져 죽은 아내를 위해 찾는 남편의 발길이라는 전설이 있었다. 이곳의 아래를 가 본다며 무수한 사람들이 도전을 했지만 하나같이 성공해서 돌아온 자가 없었다.


언젠가는 노학자가 엄청난 돈을 들여 기다란 줄로 깊이를 측정해 본 결과 무려 천 장이 넘은 것은 확인이 되었지만 더 이상은 확인이 되지 않는다 하였다. 천장이 넘으면 여지없이 줄이 끊어지니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곳의 모양이 호리병과 같은 구조라서 내려가기도 올라오기도 불가능하기 때문이고 절벽이 너무도 매끈해서 오르내릴 지지대가 없다는 것도 문제였다.


신투는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뛰어 내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음이니 밤이 새도록 앉아서 망연히 계곡의 아래를 쳐다 볼 뿐이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 해시가 되자 산 아래쪽에서 횃불을 밝힌 자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다름 아닌 바로 가까운 무호단의 무사들 오십 명이 동원이 된 것이다.


전서구를 받자마자 바로 출동을 하여 도착한 것이다. 그들은 망연자실하여 앉아 있는 신투를 발견했다. 하지만 그의 실의에 빠진 신투의 모습에 누구도 감히 먼저 말을 꺼내지 못했다. 다만 몇몇이 밤을 보낼 준비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신투는 무려 한 달을 산에서 기숙을 하며 상유를 기다렸다고 한다.



겨우 사물을 분간 할 수 있을 정도의 빛이 허락된 공간, 그곳의 한가운데 한 사내가 사지를 벌리고는 엎어져 있었다. 끈적끈적한 느낌, 무언가 몸을 간질이는 느낌이 들지만 사내는 한 홀의 힘도 남아 있지 않은지 꼼짝도 하지 못했다. 왼쪽 눈은 끈적한 바닥에 처박혀 아무것도 볼 수 없지만 오른쪽 눈은 사물을 볼 수 있는 방향에 있었다. 하지만 빛이 무서운지 눈꺼풀마저 무거운지 좀처럼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이 사내가 떨어진 주변은 나뭇잎과 온갖 풀들이 수북이 쌓여서 아래쪽에서부터 썩어가는 냄새가 지독한 퇴비 더미 같은 땅 위였다. 꼼짝도 하지 못하는 그의 고개는 그래도 살짝 오른쪽으로 비틀어져 있었지만 무거운 눈꺼풀을 뜨는데 만도 반시진이 걸렸다. 그나마 달려드는 벌레나 곤충들로 인해 수시로 눈을 깜박대며 그것들을 쫓기에 바빴다. 희미하게 진흙바닥과 옆의 전경들이 그의 망막에 잡히기 시작했다.


태양으로부터 직접 받는 빛은 아니지만 사물을 구분할 정도는 되는 빛이 우측에 작은 풀밭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기억에는 없지만 왠지 낯선 풀들의 모습이다. 저런 풀들도 있었던가? 내가 아는 풀들은 무엇인가? 아니 나는 누구니? 나의 이름은 뭐지? 막연한 기억에 나는 분명 사람인데 어이해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가?


그는 갑작스럽게 이어지는 많은 의문에 머리가 아파왔다. 그러고 보니 이 사내의 머리 뒷부분에 심하게 엉켜 붙은 머리카락이 있다. 검붉게 보이는 그것은 바로 피가 엉클어져 머리카락이 떡이진 것이다. 다행히 더 이상의 출혈은 없어보였지만 아직도 뒤통수는 심하게 부어있었다.


며칠이나 이대로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사내는 뱃가죽이 등에 붙을 만큼 허기가 지는 느낌에 무언가를 먹고자 했다. 하지만 전혀 몸을 움직일 수 없으니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의 살고자하는 집념은 급기야 얼굴 주변에 있던 벌레들을 확인도 하지 않고 꾸역꾸역 먹게 하고 있었다.


입만 벌리면 자연스럽게 들어오니 대단한 노력 없이도 벌레들을 잡아먹는 것은 가능했다. 전갈 같이 생긴 이 벌레들의 딱딱한 껍질을 깨물면 비릿하고 냉한 맛이 들기는 했지만 계속 씹어대자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얼마나 먹었을까? 족히 이십여 마리를 먹고 나서야 대충 허기가 사라지는 것 같았는데 문제는 그 후에 나타났다.


갑자기 배에서 꾸르륵하는 소리들이 나면서 몸에 오한이 들기 시작하는데 그 고통은 전혀 몸에 힘을 줄 수 없는 그를 마치 새우처럼 몸을 웅크리게 만들었으니 그 고통이 형언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사내의 몸에는 서서히 하얀 서리가 앉기 시작했다. 그 서리는 사내의 몸에 입혀져 있던 옷들이 바삭바삭 부서지게 만들었고 결국 사내는 전신을 심하게 떨기 시작했다.


눈에 보일 정도로 심하게 경련을 하며 발버둥을 치기 시작한 지 반 시진, 그의 입에서 허연 분비물들이 흘러나올 즈음! 그의 아랫배에서부터 작은 온기의 씨가 태동을 하였다. 그 따스한 기운은 서서히 몸에 퍼지면서 경련을 멈추게 하였고 이내 구부렸던 사내의 몸은 서서히 펴졌다. 모로 누웠던 몸이 편안해지기 시작하자 사내는 몸을 바로 눕게 되었고 몸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데 그것은 피부를 얼렸던 냉기가 증발하는 것이었다.


찡그리고 있던 표정도 천천히 평화를 되찾으면서 밝아지고 옥을 깎아 만든 듯 한 출중한 외모가 드러났다. 그는 다름 아닌 천애곡으로 떨어진 상유였다. 상유는 추락하면서 의식을 잃었는데 바람을 타며 운이 좋게도 나무 가지들이 우거진 곳에 부딪치며 떨어지던 속도가 완화 되었다. 그 후에 회전하던 그의 몸은 바위의 경사면에 부딪쳤는데 다행인지 등의 정면이었다.


그래서 척추가 크게 손상을 입었지만 사지가 멀쩡한 상태로 떨어질 수 있었다. 그 후에도 떨어지면서 부딪친 몇 개의 바위에는 눈이 쌓여 있어서 그나마 완충 작용을 해주었으니 망정이지 산산조각이 날 상황이었다. 전생에 나라를 구한 충신이었는지 이천 장에 이르는 거리를 떨어져 내리고도 살아났음이니 이 사실을 알릴 수만 있다면 기뻐할 사람은 부지기수였다.


문제는 굵은 나뭇가지에 머리를 부딪치며 기억을 잃은 것과 척추가 마비된 것인데 허기가 그를 살렸다. 허기를 채우려고 상유가 마구 씹어 먹은 벌레가 천애곡과 같이 오랜 기간 냉기가 축적된 지하에만 나타나는 ‘천년빙정전갈’이었는데 이에 대한 기록이 중원에는 전혀 없었으니 그 효능 또한 독심귀의라고 하더라도 알 수가 없었으리라.


땅속 깊숙한 종유 동굴에서나 드물게 서식을 하고 온기가 있는 곳은 아예 나타나지 않음으로 인간과 접촉 할 기회가 없었던 냉독전갈이 그것이었다. 이 천애곡에는 바로 북해의 끝에서나 피어난다는 천년빙화라는 특이한 약초가 군락을 이루며 서식을 하는데 그것을 섭취하기 위해 언 땅을 파고 올라온 것이다.


천년빙화는 극음의 열매를 십년에 한 번씩 단 하나 만드는데 바로 올 겨울이 그에 해당되는 시기여서 사십여 마리의 천년빙정전갈이 나타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천년빙화가 열리기를 기다리는 전갈들의 무리 위에 상유가 추락을 한 것이다. 일부는 상유의 몸에 깔려 죽으며 그 음기가 상유의 몸으로 흡수 되었고 남은 것들은 상유의 몸에 들어간 다른 놈들의 음기를 섭취하려다가 엉겁결에 상유에게 잡아먹힌 것이다.


몇 마리는 살아남았지만 본능적인 위험을 감지하고 땅속으로 도망간 지 오래였다. 누워있는 상유의 몸은 그 천년빙정전갈의 기운에 의해 얼음덩어리로 화할 지경에 이르렀는데 그 순간 단전에 자리 잡고 있던 구지선엽초와 화염초 그리고 공청석유의 기운이 이에 대항하여 격발이 되었다. 격발된 기운은 자연스럽게 무의식중에도 적하신공으로 스스로 운기가 되었던 것이다.


상유를 지배하던 양기가 강력한 음기를 만나자 스스로 융화를 하는 것이었다. 그나마 상유의 내공이 사 갑자에 이르기에 가능한 작용이었지만 그로 인하여 상유는 다시없을 기연을 또 한 차례 얻고 있었음이니 모공과 코와 입으로 주변의 기운들이 몰려들었다가 빠져나가기를 수차례, 급기야 몸의 주변에 강력한 기의 덩어리들이 발산을 하기 시작했다.


영롱한 그 다섯 가지 색깔은 청, 적, 흑, 백, 황색이었다. 그 기운들은 지속적으로 회전을 하며 상유의 몸을 드나들더니 결국은 상유의 정수리 쪽으로 하나씩 사라져갔다. 오기조원(五氣朝元)! 상유는 삼화취정의 단계를 벗어나 일순에 오 갑자의 내공을 넘어서며 오기조원의 경지에 다다르고 있었던 것이다. 사지가 다섯 가지의 색으로 순차적으로 변하며 상유의 피부는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몸의 털들이 숭숭 빠지더니 손톱과 발톱마저도 그냥 툭하고 빠졌다. 그리고는 단지 벌건 고기 덩어리 같은 육체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꿈틀대는데 그 소리는 듣는 이의 소름이 돋게 하는 소리였다. 그 끔찍한 소리는 뼈마디가 부러지며 다시 자리를 잡는 소리였다. 무려 반시진에 걸쳐 이어지던 기괴한 소리가 멈추더니 이어서 꿈틀대던 고기 덩어리가 색을 갖추기 시작했다.


하얀 빛을 뿜어내며 벌건 살덩어리에서 뽀얀 피부들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천천히 인간의 형태가 만들어져 가는데 실로 끔찍하면서도 놀라운 광경이었다. 피육 덩어리가 거의 투명하리만큼 깨끗한 피부를 만들어내자 이제는 빠졌던 손톱과 발톱들이 자리를 잡아갔다.


그야말로 새로운 생명체의 탄생과 같았는데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것은 털이 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머리는 원래가 털이 없었던 듯 매끄러워 젊은 보살 같았고 중심의 거웃이 없자 마치 어린 아이의 고추 같았다. 몰론 그 크기는 무척 거대했지만 말이다.


그 변화의 시간은 길어서 밤이 다 지나고 아침이 되었는지 사물이 구분 될 시간이 되어서야 마무리가 되었다. 상유가 누워있던 자리에는 그야말로 빙기옥골지체가 완성이 되었는데 그는 웬일인지 여전히 진흙 같은 바닥에 누워서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

“나는, 나는 무엇인가?”


“나는, 나는 어이해 이 깊은 계곡에 홀로 누워있단 말인가?”

“홀로? 나는 혼자가 아니었던가? 아니 나는 원래 이곳에 혼자였던 존재였는가?”

“존재? 나는 그 무엇을 위해?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았던 존재인가?”

상유는 미동도 않고 눈을 감은 채 혼자서 중얼대고 있는데 자신의 말에 스스로 의문을 느끼며 존재의 의미를 찾으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 어떤 생각도 이어지질 못했다. 하면 할수록 답답함이 꼬리를 물어서 더욱 혼란만 가중 될 뿐이었다. 그러자 상유는 비로소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형형한 눈빛이 일순 빛을 뿜어내는 착각이 일 정도로 상유의 눈빛에는 넘치는 기운이 숨겨져 있었다. 일단 주어진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상유는 계곡의 주변을 샅샅이 둘러보았다.


계곡은 생각보다 깊고 넓었다. 모양은 거의 타원형을 이루고 있었고 장축은 백 장, 단축의 길이는 오십 장 정도의 공간이었다. 단축의 한 쪽은 바위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고 맞은편으로는 지하수가 노출되어 흐르는 연못이 있었다. 그리고 양쪽의 깊은 곳에는 이름 모를 풀들과 크지 않은 나무들이 있었는데 제법 과실이 맺힌 나무도 있었다.


상유가 판단하기에 일단 사람이 살 환경이 된다는 것에 어느 정도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식수와 먹을 만한 과실이나 풀들, 물론 그것들이 먹을 수 있는 것들인지는 일일이 확인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리고 의외로 작은 곤충들이 상당히 서식하고 있어서 잘 구분만 한다면 그것도 식량의 일부로 쓸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리고 하늘을 보았다. 아니 하늘을 보고자 했지만 마치 호로병 속에 들어온 것처럼 하늘은 천정의 아주 작은 구멍처럼 보였다. 단지 빛이 그곳을 통해 들어오기에 하늘이라 생각할 뿐이지 그곳이 하늘인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일단 주린 배부터 채워야 했다. 그래서 과실이 맺힌 나무로 다가섰다. 나무라고 하기엔 너무도 작아 가장 높은 가지도 그냥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높이였다.


파란 과실이 대 여섯 개 달린 나무에서 과실을 하나 땋다. 마치 설익은 사과처럼 보였는데 상유의 주먹 절반만한 크기였다. 한입 베어 물자 아주 상큼한 향기와 풍부한 과즙이 입안에 가득 잡혔다. 너무도 맛이 좋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배속으로 들어간 과일의 소화 상태를 확인해 보았다. 상유의 내력은 몸 안의 장기들까지 어느 정도는 감각으로 느낄 수 있어서 과일의 독성 여부와 소화 상태들을 확인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나 그런 것이 가능한 것이 대단한 재주임을 상유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한 것이라고 여길 뿐이었다. 무려 일각이나 반응을 살핀 후 상유는 나머지를 마저 먹었다. 그런데 이 작은 양으로도 넉넉한 포만감이 느껴졌는데 이 역시 그런 거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상유였다. 허기를 면하자 이제는 쉴만한 자신만의 공간을 찾아야 했다.


아무런 인기척이 없으니 다 자신의 공간이지만 편하게 쉬거나 잘 공간을 무의식중에도 찾게 된 상유였다. 일단 높은 바위군락부터 살피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모르기에 꼼꼼히 확인을 하는 상유였다. 천천히 바위 군락의 위쪽을 향해 가던 상유의 눈에 인공적인 조형물이 눈에 들어왔다. 가장 깊숙해 보이는 절벽의 아래에 마치 잘 만들어 놓은 기와집 모양의 동굴 입구가 보인 것이다.


상유는 생각과 동시에 튕기듯 동굴로 다가섰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그곳은 인공의 흔적이 보이는 동굴이었다. 입구는 잘 깍은 계단의 형태가 뚜렷하고 다섯 개 정도의 계단을 오르면 성벽의 정문처럼 꽉 닫친 석문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글자가 석문에 새겨져 있었다.


‘DOOR TO DIMENSION'이라는 문구였는데 아무리 봐도 자신은 알 수가 없는 글귀였다. 상유는 문으로 올라서서 석문을 꼼꼼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문을 여는 장치나 손잡이가 있는지 확인하는데 전혀 찾을 수가 없자 석분의 두께나 재질을 알아보려고 만지고 두드려 보았다.


석문은 거의 금강석에 버금가는 강옥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그 두께가 이 척은 되는 것으로 판단이 되었다. 힘으로 부순다는 것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석문이었다. 설령 부순다고 하더라도 연계된 기관 장치가 있을지도 몰라서 그런 시도는 할 수가 없었다.


난감했다. 하지만 반 시진을 궁리를 하며 관찰을 해도 별무소용이었다. 첫 술에 배부르냐는 생각에 다시 주위를 살피는데 우측에 동굴이라기보다는 바위들에 잘 가려진 사방 이 장 정도의 정방형의 공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삼 면이 바위들로 가려져 있고 지붕마저 바위가 튀어 나와 있어서 그나마 보금자리가 될 만 했다. 적지 않은 나뭇가지나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어서 상유는 일단 청소부터 시작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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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새로운 도약 - 1화 +10 13.11.22 11,274 339 11쪽
81 81. 불타는 십만대산 - 새연재분 포함^^ +9 13.11.21 11,828 375 22쪽
80 80. 이황 (二皇) +4 13.11.21 10,427 242 22쪽
79 79. 역습(逆襲) +3 13.11.21 9,519 217 23쪽
78 78. 나 위상유가 왔다 +4 13.11.21 10,173 241 22쪽
77 77. 금선탈각지계 +1 13.11.21 10,097 210 23쪽
76 76. 문주의 귀환 +5 13.11.21 10,437 206 24쪽
75 75. 검치 위청천 +4 13.11.20 10,459 231 22쪽
» 74. 천애곡 +6 13.11.20 10,396 220 22쪽
73 73. 사도옥 +5 13.11.19 9,983 231 22쪽
72 72. 당서화 +4 13.11.19 11,220 275 23쪽
71 71. 조화선(調和扇) +6 13.11.18 11,440 261 23쪽
70 70. 삶의 무게- 여기부터 리메이크. +6 13.11.18 11,405 291 21쪽
69 69. 응징(膺懲) - 4화 +28 13.10.07 15,965 471 11쪽
68 68. 응징(膺懲) - 3화 +15 13.10.06 15,668 474 11쪽
67 67. 응징(膺懲) - 2화 +15 13.10.06 15,287 462 11쪽
66 66. 응징(膺懲) - 1화 +19 13.10.05 16,211 475 12쪽
65 65. 동맹과 배신 - 4화 +19 13.10.04 16,550 437 11쪽
64 64. 동맹과 배신 - 3화 +27 13.10.03 16,030 480 13쪽
63 63. 동맹과 배신 - 2화 +15 13.10.03 16,985 489 15쪽
62 62. 동맹과 배신 - 1화 +19 13.10.02 16,377 484 13쪽
61 61. 혈마교(血魔敎) - 4화 +21 13.10.02 16,868 470 12쪽
60 60. 혈마교(血魔敎) - 3화 +20 13.10.01 17,137 493 12쪽
59 59. 혈마교(血魔敎) - 2화 +25 13.10.01 16,785 490 13쪽
58 58. 혈마교(血魔敎) - 1화 +19 13.09.30 17,233 496 13쪽
57 57. 전장(戰場)속으로 - 4화 +19 13.09.30 19,535 574 13쪽
56 56. 전장(戰場)속으로 - 3화 +30 13.09.30 17,462 497 13쪽
55 55. 전장(戰場)속으로 - 2화 +14 13.09.29 18,603 475 13쪽
54 54. 전장(戰場)속으로 - 1화 +18 13.09.29 18,259 498 14쪽
53 53. 반가운 만남 - 3화 +19 13.09.28 18,531 508 13쪽
52 52. 반가운 만남 - 2화 +18 13.09.28 17,121 513 11쪽
51 51. 반가운 만남 - 1화 +16 13.09.27 18,820 488 14쪽
50 50. 폭풍 전야 - 3화 +11 13.09.27 17,865 504 13쪽
49 49. 폭풍 전야 - 2화 +19 13.09.26 19,034 507 11쪽
48 48. 폭풍 전야 - 1화 +24 13.09.26 20,606 496 14쪽
47 47. 몽월문 날다 - 3화 +25 13.09.26 18,996 524 16쪽
46 46. 몽월문 날다 - 2화 +21 13.09.25 19,121 551 13쪽
45 45. 몽월문 날다 - 1화 +24 13.09.25 19,044 545 15쪽
44 44. 천면신투(千面神偸) - 4화 +15 13.09.25 20,716 598 27쪽
43 43. 천면신투(千面神偸) - 3화 +14 13.09.25 19,871 488 12쪽
42 42. 천면신투(千面神偸) - 2화 +27 13.09.24 21,310 567 11쪽
41 41. 천면신투(千面神偸) - 1화 +15 13.09.24 21,738 563 16쪽
40 40. 빨간 완장 - 4화 +19 13.09.24 21,978 686 15쪽
39 39. 빨간 완장 - 3화 +18 13.09.23 21,585 593 12쪽
38 38. 빨간 완장 - 2화 +24 13.09.23 20,201 637 12쪽
37 37. 빨간 완장 - 1화 +14 13.09.23 22,415 614 14쪽
36 36. 무림맹(武林盟) - 4화 +20 13.09.22 19,933 575 12쪽
35 35. 무림맹(武林盟) - 3화 +22 13.09.22 19,457 549 12쪽
34 34. 무림맹(武林盟) - 2화 +12 13.09.21 20,875 571 13쪽
33 33. 무림맹(武林盟) - 1화 +24 13.09.21 21,450 601 17쪽
32 32. 아! 몽월문(夢月門) - 5화 +18 13.09.21 20,290 635 14쪽
31 31. 아! 몽월문(夢月門) - 4화 +18 13.09.20 21,664 625 15쪽
30 30. 아! 몽월문(夢月門) - 3화 +16 13.09.20 22,883 611 12쪽
29 29. 아! 몽월문(夢月門) - 2화 +14 13.09.19 23,192 617 12쪽
28 28. 아! 몽월문(夢月門) - 1화 +16 13.09.18 24,838 637 16쪽
27 27. 몽월도(夢月島) - 4화 +19 13.09.18 21,799 586 13쪽
26 26. 몽월도(夢月島) - 3화 +14 13.09.17 22,822 729 15쪽
25 25. 몽월도(夢月島) - 2화 +13 13.09.17 23,854 625 14쪽
24 24. 몽월도(夢月島) - 1화 +18 13.09.16 24,478 648 12쪽
23 23. 불타는 혈사장 - 3화 +17 13.09.16 27,534 710 15쪽
22 22. 불타는 혈사장 - 2화 +12 13.09.16 25,898 742 12쪽
21 21. 불타는 혈사장 - 1화 +16 13.09.15 26,172 733 12쪽
20 20. 환희문 - 4화 +23 13.09.14 25,329 663 13쪽
19 19. 환희문 - 3화 +11 13.09.14 27,113 714 13쪽
18 18. 환희문 - 2화 +14 13.09.13 27,685 725 11쪽
17 17. 환희문 - 1화 +8 13.09.13 27,075 699 12쪽
16 16. 나의 밥, 혈문 - 2화 +24 13.09.13 28,552 867 12쪽
15 15. 나의 밥, 혈문 - 1화 +11 13.09.12 29,346 777 11쪽
14 14. 강호 출도 - 3화 +16 13.09.12 31,135 796 12쪽
13 13. 강호 출도 - 2화 +17 13.09.12 27,904 816 12쪽
12 12. 강호 출도 - 1화 +22 13.09.11 26,199 764 12쪽
11 11. 파락공자(擺落公子) - 3화 +23 13.09.11 25,636 779 11쪽
10 10. 파락공자(擺落公子) - 2화 +14 13.09.11 27,426 817 12쪽
9 9. 파락공자(擺落公子) - 1화 +18 13.09.10 27,367 778 12쪽
8 8. 성장의 아픔 - 3화 +22 13.09.10 26,001 736 12쪽
7 7. 성장의 아픔 - 2화 +14 13.09.09 26,675 724 11쪽
6 6. 성장의 아픔 - 1화 +17 13.09.08 30,128 796 11쪽
5 5. 아미산은 나의 천국 - 3화 +21 13.09.07 30,804 807 12쪽
4 4. 아미산은 나의 천국 - 2화 +13 13.09.07 29,936 797 12쪽
3 3. 아미산은 나의 천국 - 1화 +25 13.09.07 29,294 728 12쪽
2 2. 진짜 크네요? - 2화 +16 13.09.07 33,475 800 12쪽
1 1. 진짜 크네요? - 1화 +21 13.09.07 44,026 759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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