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본색원(拔本塞源) - 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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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유는 조부 위청천의 표정을 보고 심상치 않은 상황에 직면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적진 한가운데 중앙 연무장의 높이 솟아 있는 네 개의 기둥을 쳐다보았다. 이미 행색을 알아볼 수는 없을 만큼 초췌한 모습이지만 기둥마다 걸려 있는 사람들은 오십대의 인물들로 두 명의 남자와 두 명의 여자였다.
상유는 이미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축 늘어진 그들을 보는 순간 전신을 꿰뚫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전율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입을 달싹였다.
“저들이, 저들이...”
위청천은 몸을 서서히 공중으로 부양하고 있었다. 그리고 전신에 엄청난 내기를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쩌렁쩌렁한 사자후를 터트렸다. 피아를 가리지 않고 내력이 약한 자들은 모두 몸을 휘청거릴 만큼 강력한 기운이 사방에 퍼지고 있었다.
“모용중! 네 이놈! 네 주군이 왔다. 앞으로 나서가라!”
그러자 멀리 병력들 사이에 앉아 있던 늙은이 하나가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며 대구를 했다.
“위청천! 어디서 망발이냐? 누가 내 주군이란 말이냐!”
“이 쓰레기만도 못한 놈! 은혜를 원수로 갚는 가문이 어찌 하늘을 우러르고 산단 말이냐?”
“본가는 이미 천년 동안 개처럼 충성을 다해 왔다. 무엇을 더 바란단 말이냐?”
“개처럼? 정말 개가 마구 짖는 소리를 늘어놓는구나. 그럼 진즉에 왜 독립을 원한다고 내게 솔직히 말하지 않았느냐?”
“독립을 해도 천하제일이 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일찍이 하늘의 자손인 우리가 하잖은 네놈들에게 머리를 숙인 것이 어디 가당키나 한 것이냐!”
“하하하! 정말 개가 짖을 노릇이구나! 그렇게 자신이 있다면 나와 겨루자. 네 놈이 이긴다면 원하는 것을 모두 들어주마!”
“내가 왜 그래야 한단 말이냐? 난 너의 목줄을 쥐고 있거늘! 푸하하하!”
“어리석은 놈!”
그리고 위청천은 말없이 공중에 부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기전성으로 상유에게 자신의 뜻을 전하고 있었다.
‘너는 지금부터 이 할애비의 말을 추호도 의심하지 말고 따르거라!’
‘네?’
‘넌 본시 아비, 어미가 없었다. 알겠느냐?’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내가 저들을 공격할 때 너는 전 병력에게 공격 명령을 내리고, 나희와 호강단을 이끌고 장원의 반대편 산기슭으로 도망친 원수들을 쫓아가 하나도 남기지 말고 추살하거라!’
‘......’
‘저들을 결코 만만히 보면 아니 된다. 반드시 이번기회에 발본색원 하여야 하니 이 할애비의 명을 필히 따르도록 하거라! 알겠느냐?’
상유는 지금 상황이 어떤 것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위청천은 저들의 농간에 더 이상 놀아나다가 다시 천추의 한을 남기는 것을 지양하는 것 같았다.
뭐라고 대꾸를 하기도 전에 위청천은 몽월문의 전 병력에게 강한 어조로 명령을 직접 내렸다. 문주는 상유지만 이 자리의 누구도 위청천의 명을 거부할 수 없었다. 상유가 고민하는 것을 보고 위청천이 서두른 것이었다.
“몽월문도는 모두 본 문의 원수인 저들을 박멸하라!”
명령과 함께 위청천의 검이 거센 태풍을 몰고 왔는지 풍검의 식으로 적의 중앙을 향해 날아갔다. 기둥에 묶인 사람들의 생사를 돌보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명이었다. 상유는 도저히 지금의 상황을 눈뜨고는 볼 수가 없었다. 묻지도 확인하지도 않았지만 지금의 상황이 너무도 확연하게 파악이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유는 더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조부 위청천의 명을 따르기 시작했다. 옳고 그름의 판단은 지금 상유의 몫이 아니었다. 오로지 조부 위청천의 고뇌어린 몫인 것이다. 상유는 그가 내린 판단에 감히 왈가왈부 할 수 없음이었다. 상유는 호강령을 길게 불면서 호강단에에 명령을 내렸다.
“호강단은 모두 나를 따르라! 희매 갑시다!”
전력을 다해 장원의 옆을 돌아 장원의 뒤에 있는 산을 훑으면서 도망친 적도들을 찾기 시작했다. 네 개의 기둥에 묶여 있는 사람들은 전에 조부 위청천에게 들었던 자신의 부친 위성룡과 숙부 위성웅 그리고 고모인 위혜령일 것이다. 다른 한 명의 여인이 모용가의 핏줄인 자신의 모친인지는 알 수 없었다.
경공을 펼치며 달리는 상유의 두 눈에 이슬이 맺히고 있는 것은 바람에 눈이 시려서일까? 호강단 열 개조를 모두 데리고 상유의 뒤를 쫓아가는 나희도 지금의 상황을 어느 정도는 눈치 챌 수 있어서 상유에게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있었다. 거대한 산을 돌아가는데 채 일각이 걸리지 않았다.
달리는 상유의 초감각에 멀리 산기슭을 벗어나 달리고 있는 일단의 무리가 잡혔다. 대략 이백 명이 넘는 엄청난 인원이 절반으로 나누어 두 방향으로 흩어져 달리고 있었다. 도망을 치는 와중에도 머리를 굴려 살아날 가능성을 높이는 저들을 보며 기가 막혔다. 빠르게 동쪽으로 달리는 무리는 호강단 전체 병력을 모두 보내 완벽한 추살을 명했다.
그 와중에도 나희는 북쪽으로 달리는 상유를 따라 오고 있었다. 상유는 혹시나 몰라서 나희에게 어기전성으로 뜻을 전했다.
‘나를 쫓아오는 것을 말려도 되지 않을 것을 아오. 하지만 당신이 위험에 처한다면 결코 나를 돕는 것이 아니니 멀리 뒤에서 지켜보기만 하시오.’
그리고 빛과 같은 속도로 북쪽의 무리를 추격해 갔다. 이제 일식천리신행(一息千里身行)이 묵천 신법과 어우러지며 극성으로 펼쳐진 것이다. 나희도 내공은 오 갑자에 이르는 엄청난 고수이다. 내공에 비해 무공이 상대적으로 약하기는 했지만 상유에게 묵천 무공의 일부를 사사를 받아 화경을 넘어 현경의 경지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유를 쫓아가는 것은 무리였다. 가까이 쫓아오래도 안 될 것이니 상유의 명을 어길 수가 없었다. 물론 상유의 뜻을 어길 마음도 없는 그녀였다. 멀리 이제 관도로 막 접어든 백여 명의 일행은 언제 준비를 해 둔 것인지 두 대의 마차를 중심으로 백여 기의 말들이 호위를 하며 달리고 있었다.
바로 동쪽으로 빠르게 간 놈들이 주력이 아니라 일부러 늦게 움직인 이놈들이 바로 주력인 것이다. 마차가 있는 것을 보면 아녀자나 아이들이 있는 것이니 아마 모용중의 손주 항렬 이하의 인물들일 것이다. 바로 모용 세가의 소가주인 모용성과 모용정, 모용휘, 모용희, 모용옥 형제들과 일가일 것이다. 소가주의 연배는 상유와 비슷하거나 아래일 가능성이 높다.
한 걸음에 십장씩을 이동하던 상유의 몸이 높이 날았다. 그리고 그의 오른손에 들린 소청검에서 번개의 기운이 번쩍였다. 동시에 엄청난 벼락이 치며 앞서가던 마차로 쏟아져 들었다. 소리보다 빠른 빛이 마차를 산산이 부숴버릴 찰나, 푸른빛의 검강이 상유의 뇌검에 쏘아지며 상유의 뇌검강을 빗겨 냈다.
그리고는 주위의 둘러싸고 달리던 병력들 중에 십여 명이 뒤로 돌아서서 상유를 맞이했다. 그들은 일제히 검을 뽑아 들고는 아직 공중에 떠 있던 상유가 내려서는 지점을 향해 폭사되어 왔다. 모두들 검경이나 검강의 초기 형태를 모이는 것으로 봐서 초절정에서 화경의 경지에 이른 자들이었다.
상유는 이들을 곱게 상대할 마음이 없었다. 지면으로 내려서던 상유의 소청검에서 다시 여러 가닥의 검강이 회오리바람처럼 열 명의 적들을 쏟아져 들어갔다. 바로 묵천 검법의 제 삼식인 풍검(風劍)이었다. 정확하게 한명에게 하나씩의 검강이 날아가 그들의 검경이나 검강을 국수 가락 자르듯 부수더니 그들의 몸을 관통했다.
상유는 이미 다시 신법을 전개해 적들을 추격하고 있었고 그제야 그곳에 도착한 나희는 말에서 떨어져 내리는 머리 한복판이 훤하게 뚫린 시체 열 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놀라기는 커녕 지법을 날려 쓰러진 시체의 심장을 다시 꿰뚫으며 확인 사살을 하고 있었다. 나희는 보통의 나약한 여자가 아니었다.
상유와 관련된 일이라면 시체의 심장이라도 씹어 먹을 수 있는 강단이 있는 여자였다.
“이 썩을 놈들! 내가 고이 황천으로 보내줄 것 같으냐!”
상유는 곧 다시 앞을 막아서는 열 명을 확인하고는 다시 풍검을 날려 똑같은 방법으로 적도들을 사살했다. 한 치의 시간도 아끼기 위해 그들을 달리는 속도 그대로 처리하고 있었다.
그러기를 무려 일곱 차례, 적잖은 내공의 소모를 감수하고 있었다. 너무도 격분한 나머지 내공의 소모를 두려워하고 있지 않았다. 이미 현경을 이룬지 오래인 상유는 약간의 시간만 주어진다면 호흡뿐 아니라 전신의 모공을 통해서도 손실된 내력을 보충할 수 있기 때문에 크게 걱정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마침내 다시 적도들을 만났을 때는 이제 한 대의 마차만 달리고 있었고 삼십여 명의 병력들 사이에 두 명의 지휘자가 우뚝 서 있었다. 비로소 더 이상 꼬리를 자르는 것으로는 되지 않음을 깨달은 놈들이 최후의 방어를 하기 위해 방어진을 펼치고 선 것이다. 상유는 이제 속도를 늦춰 서서히 날아 내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흩어진 내력을 보충하고 있음을 적도들은 알지 못했다. 그들 중에 한 놈이 앞으로 나서며 상유에게 건방진 어투로 소리를 쳤다.
“네 놈은 누군데 우리를 이리도 핍박하는 것이냐?”
상유는 말을 하는 자를 유심히 살폈다. 나이는 상유와 비슷해 보이고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기세마저 만만치 않은 자였다.
“뺀질거리게 생긴 네놈이 모용이라는 쓰레기 성을 가진 성이라는 놈이냐?”
“뭐? 뭐라고? 이런 후레자식이.”
“하하하. 나를 보고도 내가 누군지 모른다면 네 놈은 쓰레기보다도 못한 놈일 것이다.”
“뭐, 뭐라고?”
“이런 병신 같은 자식! 이젠 말까지 더듬는 것이냐?”
그 소리에 모용성은 마지막 남은 이성이 끈이 끊어져 버렸다. 그리고는 자신의 주변을 둘러싼 백의의 사내 열 명을 제외한 나머지 이십 명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추혼대는 저 놈을 갈기갈기 찢어 죽여라!”
상유는 검은 복색의 추혼대라는 놈들의 무위는 이미 겪어 봐서 알고 있었다. 다만 나중에 남은 놈들이니 조금은 더 강할 것이나 기본적으로 화경의 초입일 것이 분명했다. 상유는 소청검을 들어 사방으로 흩어져 일정한 진법을 형성하며 조여드는 놈들을 향해 다시 풍검의 식으로 십여 가닥의 검강을 날렸다.
그리고 뒤에서 어느새 쫓아 와 이십 장 밖에서 지켜보는 나희를 파악하고는 검식을 진행하는 와중에 어의전성의 수법으로 뜻을 전달했다.
‘희! 지금 북쪽으로 한 대의 마차가 도망을 치고 있으니 그들을 몰래 추격하오. 섣불리 공격하지 말고 내가 갈 때가지 위치만 놓치지 말고 쫓아 주시오.’
곧 그녀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모습에 상유는 안심을 했다. 저 정도의 경신술이면 적어도 어디 가서 쉽게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을 확인하는 와중에도 상유의 소청검은 쉴 새 없이 추혼대라는 흑의를 걸친 놈들을 추살하고 있었다. 그들을 상대하는 데는 여러 번의 움직임도 필요 없었다.
한 번의 움직임에 더도 말고 정확히 다섯 가닥의 검강이 날고 오행에서 뻗어오는 적들의 검경을 부수면서 그대로 그들의 머리를 꿰뚫어 허연 뇌수를 터트렸다. 반각, 단지 이십 명의 추혼대를 박멸하는데 걸린 시간이다. 이십 여명의 화경의 고수를 단지 몇 번의 검술로 상대하는 상유를 보며 모용성의 얼굴은 하얗게 질리고 있었다.
상유는 모용성을 향해 미소를 흘리며 한 발씩 천천히 다가서고 있었다. 그가 보기에 상유의 미소는 아마 지옥 나찰의 썩은 미소로 비칠 것이다. 문득 그는 두려움을 벗어 던지듯 고개를 세차게 젓더니 주변에 있던 나이가 족히 예순은 되어 보이는 자에게 명령을 했다.
“총호법. 호천대가 나서 주셔야겠습니다.”
그러자 총호법이라는 자는 앞을 막아선 다섯 명에게 눈짓을 했다. 상유를 공격하라는 명령인 것이다. 그 말과 함께 그들의 신형은 흔들리나 싶었는데 어느새 상유의 주변을 둘러쌓다. 그들의 신법만 봐도 그들의 경지를 알 수 있었다. 추혼대라는 놈들과는 전혀 수준이 다른 자들이었다.
- 작가의말
오랜만에 다시 1화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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