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응징(膺懲) - 2화
소화사태와 함께 시적시적 걸어 내려오는데 산 아래에서 아주 거센 마기가 쏟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거의 동시에 상유와 소화사태의 신형은 아래로 쏘아졌다. 이미 아미파의 외당에서는 적들과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내전으로 달리며 대충 전체의 전황을 살펴보니 본문의 좌우에는 이미 파병된 몽월문 무사들이 각각 비슷한 수의 적들을 맞아 팽팽한 접전을 이루고 있었다.
몽월문의 호무당과 호민당 무사들이 사백 명씩 좌우를 경계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전면에 쳐들어오는 적들이었는데 그들은 검은 복색의 흑천대라는 마교의 특수 전단이었다. 그 심상치 않은 무위에 전면을 방어 하고 있는 아미파의 제자들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삼백 명 정도로 추산되는 흑천대는 훨씬 많은 병력을 가진 아미파 제자들을 가볍게 처치하며 전진을 하고 있었다.
이미 바닥을 뒹구는 아미파 제자들의 시신이 제법 보였다. 초기 방어에 실패하며 거세게 밀리고 있는 것이다. 상유의 눈에 핏발이 섰다. 그나마 일대 제자들이 사상검진을 짜서 지휘를 하게 되자 밀리는 것이 주춤하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조금씩 밀리고 있었다. 소화사태가 전방 우측으로 달려들자 상유는 전방 좌측을 맡아 달렸다. 거기에는 아미파 제자들과는 다르게 눈에 띠는 화려한 복식의 염나희가 분전을 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급히 다가간 상유는 급히 외쳤다.
“나희! 내가 길을 터 줄 테니 어서 산 아래 있는 호강단부터 불러들여!”
“네. 유랑!”
상유는 소청검을 뽑아 들고는 상황을 살폈다. 그리고 전방과 좌측이 교차되는 취약한 지점을 발견하고는 곧장 달려 나갔다. 쏘아져 나가는 상유의 검에서는 푸른 검경들이 줄기줄기 뻗어 나오며 복호대라검법으로 앞을 막고 있는 흑천대원들을 쓸어 내기 시작했다.
마인들은 갑자기 검경을 쏟아내는 고수가 강력한 힘으로 밀어 붙이며 등장을 하자 당황하여 길을 내주게 되었다. 그 잠깐의 사이를 뚫고 염나희가 번개 같은 속도의 경공을 구사하며 산 아래를 향해 사라져갔다. 그녀의 내공은 무려 사 갑자다. 누가 좇아간다는 것이 불가 했는데 적들 중 일부가 원병을 청하러 가는 것을 눈치 채고 뒤쫓고 있었다.
하지만 거리를 좁히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그 놈들은 곧 죽음을 만나게 될 것이다. 산 아래에는 저승사자들이 기다리고 있음인데 바로 무지막지한 호강단이다. 나희를 내려 보내고 상유는 전체적인 전황을 살피면서 소화사태와 나누어 맡은 자기 지역의 위험한 제자들을 순간순간 돕는 것에 집중했다. 그러다가 여유가 생기면 바로 바로 검기나 검경을 날려 적들을 추살했다.
일각 정도 지나자 상유가 격살한 적도들의 수가 이십여 명에 달했다. 어느 정도 팽팽함이 유지 될 찰나 적들의 후방에서 소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염나희가 이끄는 호강단이 적의 후미를 치고 있는 것이다. 나희는 전황을 보는 시야가 없으니 그냥 적의 후미를 관통하고 있었다. 이백 기의 끔찍한 강시 군단에게 완전히 꿰뚫린 마교 정예 흑천대는 양옆으로 물러서기 급급했다.
급기야 염나희가 호강단을 이끌고 합류했다. 상유는 그녀의 무지막지함에 놀라면서도 그녀를 통해 신속히 명령을 전달하려 했다. 그런데 그녀는 답답했는지 목에 두른 목걸이 하나를 상유의 목에 걸어 주면서 말했다.
“호각을 한번 힘껏 부세요! 그리고 명령을 내리면 마왕시들이 말을 들을 거예요. 저는 그것이 없어도 저들을 부릴 수 있어요. 유랑이 앞의 열 개 조를 맡아요!”
“뭐야? 이런 게 있었으면 진즉에 가르쳐주지! 아이고 하여간 나중에 봐!”
“호호호. 알았어요!”
“이제 양쪽으로 갈라졌으니 희매가 우측을 맡아!”
나희가 열 개의 조를 맡아 우측을 지원하러 떠나자 상유는 목걸이에 걸린 호각을 불었다.
소리가 크지는 않았지만 엄청난 기의 파동이 퍼져 나갔다. 그 소리에 마왕시들이 상유를 쳐다보았다. 지휘자를 확인하고는 명령을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자신이 붙은 상유는
“일조에서 오조는 흑의인들의 중앙을 파고들어 난전을 유도하라! 육조에서 십조는 좌측의 묵의를 걸친 자들을 척살하라! 너희들의 적은 마기를 품은 자들이다!”
호강단은 상유의 명령에 따라 무지막지한 냄새를 풍기며 적진으로 달려 나갔다.
호강단은 적들도 예상치 못한 전력이다. 이들의 존재를 알았다면 싸움의 양상이 조금은 달라졌을 텐데 그들은 당황한 나머지 무조건 혈강시들을 베어 죽이려고 달려들었으니 금방 재생되는 혈강시들을 상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마왕시들은 그래도 인간과 같은 지능을 가졌음인지 마구잡이 공격을 하지 않고 자신들의 조원들에게 위협이 될 만한 자들을 주로 상대했다.
양옆의 몽월문의 무사들도 처음엔 호강단에 놀라기는 했지만 강시들이 철저히 마교 무사들만을 상대하자 우군임을 인식하고 적절히 우세를 잡아 나갔다. 적들의 후방에는 두 명의 사내와 그 뒤로 열 명의 호위들이 전투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한 명은 마교주의 이제자 사도진이고 다른 자는 마병단을 지휘하는 백마 서열 사위의 고수 남천마왕이었다.
아미파의 기습에는 마병단 팔백 명과 특수 부대인 흑천단의 절반인 삼백 명이 동원 되었다. 뒤쪽 숲에는 투입되지 않은 삼백 명의 흑천대 마인들이 대기 중이었다. 파악한 정보대로라면 이 정도 전력이면 밀고 들어가 우세를 점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준비된 삼백의 흑천대로 종지부를 찍어야 하는데 초반 이각 정도는 뜻대로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난데없이 나타난 젊은 놈 하나와 뒤에서 들이 닥친 강시 군단이 전투의 우열을 한순간에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처음 투입된 병력 중에서 이미 삼 할은 피해를 입은 것 같았고 전세도 눈에 띠게 기울었다. 옆에서 남천마왕은 왜 퇴각 신호를 보내지 않느냐는 눈빛을 사도진에게 던지고 있었다.
사도진은 아직 채 사십도 되지 않은 마교주의 둘째 아들이자 이제자였다. 그는 초기에 혈문을 몰살시킨 장본인이며 혈문주 생사혈왕과 대등한 무위를 선보여 명성을 얻은 자였다. 그는 지금 자신의 명성이나 이름에 흠이 될 이 전투 자체가 믿기지 않았다. 저 놈은 누구이며 이 강시들은 뭐냔 말인가! 정파라는 놈들이 자신들도 다루지 않는 강시를 내 세우다니! 이를 벅벅 갈던 그는 이윽고 퇴각을 지시했다.
옆에 있던 호위 중에 한 명이 뿔피리 하나를 꺼내 불자 날카로운 신호음이 산정에 메아리쳤다. 그 신호를 들은 마교 무사들은 사전에 훈련이 되어 있었는지 조직적으로 퇴각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눈치 챈 상유는 진기를 모아 사자후를 터트리며 함께 명령을 전달했다.
“아미파 제자들과 몽월문 무사들은 모두 추격을 멈춰라! 그리고 호강단은 적들을 쫓아 백리 안의 적들을 남김없이 추살한 후 이곳으로 귀환하라!”
상유의 명령이 떨어지자 적들을 추격하려던 제자들과 무사들은 신속하게 정열을 하였다.
“다친 제자들을 옮기고 치료부터 우선하라! 그리고 전장을 정리하라! 또한 각 대별로 지휘자들은 피해상황을 집계하여 보고하라!”
이미 여러 번의 전장을 경험한 상유의 지시는 시기적절했다. 상유가 내전 앞으로 가자 소화사태와 장문인등 장로들이 모여서는 상유를 기다렸다.
장문인이 상유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고마운 표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상유야! 아니 몽월문주! 정말 고맙네. 자네가 없었으면 어찌 할 뻔 했는가?”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제가 제 집을 부수러 온 놈들을 물리치는 것은 당연한 것이아닙니까. 아미파는 여전히 제 고향입니다. 이나마 다행이긴 한데, 제 사부님은 어디 계시죠?”
그러고 보니 화정 신니가 보이지 않았다. 지휘부가 다 모였는데 화정 신니만 오지 않을 리가 없었다. 상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 들며 사부를 부르며 찾았다. 그 모습에 침통한 얼굴을 한 장문인 유정선자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화정 신니 외당장로는 검상을 입어 의화각으로 급히 옮겼네. 중상이긴 하나 목숨에는 지장이 없다니 일단 안심 하거라.”
“네? 사부님이 다치셨어요?”
상유는 말을 하며 이미 환자들을 전담하는 의화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 옆에는 걱정 어린 시선으로 나희가 따르고 있었고 소화사태도 당황한 기색으로 같이 달리고 있었다. 장문인과 다른 장로들도 함께 가고 싶었으나 전장을 정리하고 수습해야만 했다. 수십 년 만에 겪은 불행한 전투였다. 수많은 시신과 다친 자들의 신음 소리가 있었다. 몽월문의 대주들도 마찬가지로 사상자를 확인하고 부상자들을 챙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순식간에 의화각에 도착한 상유는 온통 환자들로 가득 찬 전각의 안쪽에서 한참 치료를 받고 있는 화정 신니를 찾을 수 있었다. 그녀는 등과 허리에 긴 자상을 입었고 군데군데 심한 타박상을 입었다. 초기에 너무 밀리며 죽어가는 제자들을 본 그녀가 너무 깊숙이 적진에 뛰어들었고 급기야 이런 상처를 입은 것이다. 담당의원이 치료를 하고 있지만 이미 화정 신니는 정신이 가물가물한지 상유가 왔음에도 알아보지 못했다.
상유는 급하게 품속을 뒤지더니 작은 약병 두 개와 잘 포장된 소환단 하나를 꺼내 의원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의원에게 말했다.
“이것은 소림의 소환단이네. 이것을 사부님께 복용시키시게. 그리고 이 병들에 들어 있는 것은 외상에 탁월한 효능이 있다는 독심귀의가 만든 금창약이니 사부를 치료하고 급한 환자들에게 사용토록 하시게.”
“네? 소림의 소환단이요?”
그 말에 옆에 있던 소화사태도 놀랐다. 이건 돈을 주고도 구하지 못하는 영약이다. 이것이라면 검상이 심하긴 하지만 화정 신니가 회복시키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거기다 독심귀의의 금창약이라면 재료부터가 온갖 귀한 약재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일체의 부작용 없이 부상부위에 새살을 돋게 한다는 명약에 속했다.
의원은 놀라는 와중에도 소환단을 화정 신니에게 복용 시키고 금창약을 검상 부위에 고르게 바르며 치료에 세심한 신경을 썼다. 지켜보던 소화사태가 화정 신니의 옆에 앉더니 그녀의 명문혈에 손을 얹고 내력을 불어넣어 치료를 도왔다. 상유도 할 수 있지만 손이 떨려서 감히 다가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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