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빨간 완장 - 1화
이치상과의 담론은 시간이 가는 것도 잊게 했는지 깜깜한 밤 자시(子時)가 되어서야 무림맹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외부인들이 맹을 방문할 때 제한되는 귀가 시간이 훨씬 지났지만 어여뿐 권력자 위지랑의 얼굴 한번 비춰주는 것으로 무사히 매화각에 들 수 있었다. 몇 시진을 같이 보낸 동행들과 웃으며 헤어지는 데 꼭 다시 보자는 그녀들의 말은 상당한 의미를 내포한 것 같았다.
숙소로 돌아온 상유는 늦었지만 상쾌하게 씻기 위해 욕실에 들었다. 그런데 잠시 후 오늘의 애인이었던 소향이가 목욕 시중을 들기 위해 따라 들어왔다. 적당히 온도를 맞춘 욕조에 들어 피곤을 푸는데 소향은 부드러운 손길로 목뒤부터 안마를 해주는 것이었다. 목과 어깨를 주무르자 피곤이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소향의 손길은 그야말로 약(藥)이었다.
대충 욕조에서 몸을 씻고 나오자 소향은 아리따운 목소리로
“오늘은 제가 특별히 등과 다리를 지압해 드릴 테니 침상에 엎드리세요.”
가벼운 속옷만 걸치고 침상에 엎드렸다. 꽤나 넓은 침상의 한 쪽에 앉은 소향이의 마법 같은 손은 머리부터 지압을 하기 시작했다. 두피와 머리의 혈들을 적당히 지압한 손길이 목과 어깨를 지날 때만 해도 스르르 잠이 오는 느낌의 지압이었다.
그런데 팔을 거쳐 등과 허리로 손길이 옮겨가자 은근한 반응이 아래로부터 생기기 시작했다. 한 순간 등의 지압을 위해 소향은 상유의 엉덩이에 올라앉았는데 상유의 엉덩이에는 소향의 아래가 그대로 느껴지고 있었다. 부드러운 모발이 닿는 느낌과 따스한 그녀의 중심에서 전해오는 감촉은 이루 말하기 어려운 흥분을 자아냈다. 소향은 단지 얇은 겉옷만 걸치고 안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지압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이 환희문의 기본 교육 과정이었다. 항상 준비된 몸을 갖추는 것인데 이미 작정을 하고 들어 온 그녀였다. 지압을 하느라 조금씩 움직이는 그녀의 엉덩이는 상유의 몸에 목마른 자극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다시 다리를 지압하기 위해 돌려 앉을 때는 상유의 허리에 가득 그녀의 끈적이는 그곳이 느껴졌다. 상유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소향아 뒤쪽은 그만하고 나 뒤돌아 누울 테니 가슴부위를 지압해 주겠느냐?”
“네. 그럼 돌아 누으세요.”
돌아눕자 이미 성이 날대로 난 그것이 이미 천장을 치고 올라갈 듯 했다. 그러나 상유는 눈을 감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가만히 있었다.
그 웅장함에 잠시 머뭇대던 소향은 아무래도 제대로 가슴부위를 지압하고 안마 하려면 상유의 몸에 올라가야 하는데 거대하게 성이 난 그것이 못내 걸릴 듯 꺼림직 했다. 하지만 그녀는 과감히 올라앉았다. 일단 하복부에 앉아 얼굴과 목 부위부터 지압을 하면서 아래로 내려가는데 조금씩 내려가던 엉덩이가 급기야 무언가에 걸리며 멈췄다.
화끈한 기운이 자신의 아래에 닿자 소향이는 가는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살짝살짝 닿으면서도 최선을 다하고자 가슴의 지압을 이어나갔다. 지압을 하며 몸이 살짝 살짝 들리던 어느 순간 이미 충분히 장마를 맞은 그곳에 준비된 돌격이 이루어졌다. 밑에서부터 시작된 강한 공격에 몸이 관통되는 아픔과 더불어 이질적인 성취감에 입에서 기음이 흘러 나왔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대로 상유는 상체를 일으켜 세우고 양 팔로 그녀의 다리와 엉덩이 전체를 안았다. 너무도 관능적인 자세였다. 그리고 서서히 들었다 내렸다를 반복하기 시작하였다. 천천히 시작된 이 행동은 아주 천천히 지각하지 못할 만큼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보다 조금 더 빠른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것은 그녀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비음의 크기였다.
이미 육년 전 처음 환희문주의 명령이 있을 때부터 기다려 온 이 날이었다. 어느 순간 연모의 정으로 바뀌어 더욱 나서기 두렵던 순간이 이제야 온 것이었다. 무엇을 바라거나 어떻게 변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었다. 다만 그의 손길을 받고 싶고 할 수만 있다면 그의 흔적을 오래 간직하고 싶을 뿐이었다. 이런 순간이 팔 호위 중에 자신에게 가장 먼저 찾아 온 것에 감사하며 평생에 한번뿐인 그 날, 소향은 정말 달콤한 잠을 이루었다.
단잠을 자고 난 위 문주는 언제 일어나 단장을 했는지 모를 소향이가 직접 물을 가져와 세면을 시켜 주었다. 젖은 물수건으로 몸의 구석구석을 닦아주는 예쁜 짓도 하는 소향이는 하룻밤 사이에 용감해졌다. 하지만 그것이 크게 싫지 않은 상유였다. 밖으로 나와 맑은 공기를 마시며 운기를 하는데 멀리서 다가오는 급한 발걸음이 있었다. 눈을 살며시 떠 보니 접객원의 부원주인 이기만이었다.
“위문주! 맹주께서 몽월문주를 조찬에 초대하신다니 어서 준비를 하시지요.”
“네? 왜 급작스럽게 조찬을? 거기 꼭 가야 합니까?”
“네에? 꼭 가야 하냐고요? 하하하. 그래도 맹주님의 초대인데 가야 하는 것 맞는 것 같소이다. 이런 초대는 그동안 본적이 없는 파격적인 것이라오. 내가 볼 때는 손해 볼 것이 전혀 없으니 가는 게 백 번 좋지요.”
“에이~ 아침부터 좀 많이 귀찮은데, 미리 얘기나 좀 해주지. 갑작스럽게 에이, 노친네가 밥 먹자고 부른다는 데 안 갈수도 없고. 여하튼 알았수다.”
이기만 부원주는 기가 차 말이 안 나왔다. 맹주의 식사 초대에 저런 반응이라니? 하지만 위문주의 말도 틀린 것은 없으니 준비할 때까지 기다렸다. 잠시 후 옷을 갈아입고 나온 위 문주의 모습에 이기만은 놀랐다.
제대로 차려 입고 나오는 상유의 몸에 후광이 비치는지 정말 남자인 자신이 봐도 잘 나 보였기 때문이다. 이기만의 안내를 받으며 맹주전으로 들어섰다. 용담호혈! 딱 어울리는 표현이었다. 누가 감히 무림맹주를 해치러 오겠냐마는 보이는 곳과 보이지 않는 곳에 줄줄이 얽힌 호위망이 작은 쥐새끼 한 마리도 통과하지 못하는 방위(防衛)였다.
복도를 따라 한참을 더 가자 다시 전(殿)안에 전(殿)이 나타났다. 앞에 있는 입구를 지나자 바로 이곳이 자연적인 명당인 양 만들어진 조경부터 남달랐다. 자그마한 뒷산, 산에서 흘러나오는 냇물이 냇가를 이루고 작은 연못으로 흘러들었다. 연못의 주변에 지어진 소담한 정자들과 연무장, 이미 오랜 시간이 흐르며 만들어진 자연속의 절경에 들어 선 느낌이 들었다.
꽃들이 만개한 정원을 지나자 야외에 차려진 식탁에 몇몇 사람들이 둘러 앉아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부원주는 급히 부복하며 인사를 하고는 상유의 눈치를 봤다. 부복하고 인사를 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상유는 사람들을 쭈욱 둘러보면서 이기만에게
“아니 어느 분이 어느 분인지 알아야 인사도 제대로 할 것 아니겠소?”
그의 당당한 말에 검미의 끝이 하얗게 흰 초로의 장년인이 상쾌한 웃음을 터트리며
“맞는 말이로군! 젊은 사람이 그 정도 기개는 있어야지. 우리 랑이의 말이 맞구나! 그래 내가 위지천이라는 사람일세.”
상유가 알기로는 육십을 넘어 칠십에 가까운 나이의 위지천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사십대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짙은 눈썹에 호안 그리고 부리부리한 눈은 전형적인 호인의 풍모를 갖춘 자였다. 목소리 또한 쩌렁쩌렁 한 것이 일세를 풍미하는 호걸의 모습이었다.
“저는 호남성의 보잘 것 없는 작은 몽월문이라는 문파를 이끌고 있는 위상유라고 합니다. 사해에 이름 높으신 정천무황을 뵙게 되어 기쁘고 영광스럽습니다.”
“정말인가? 정말이라면 이리 와서 앉게. 자네 기다리느라 다들 뱃가죽이 등에 붙을 지경일세. 밥부터 먹자고. 하하하”
“네 그럼. 맛있게 먹겠습니다.”
상유는 시비가 안내한 자리에 앉았고 어느 순간 이기만은 돌아가고 없었다.
크게 많은 찬(餐)은 아니지만 정갈하게 차려진 밥상에 군침이 돌았다. 상유는 골고루 이것저것 맛보며 아침을 들었다. 대부분 맹주와의 식사에서 저렇게 편하게 밥을 먹는 자를 본 적이 없는 맹주의 시선에 잠시 이채가 어렸다 사라졌다.
“자넨 참 복스럽게 식사를 하는군. 이렇게 우리 가족과 식사를 하게 됐으니 인사나 하며 드세나. 자 우리 공주께서 소개를 해 주는 게 어떨까?”
맹주의 옆에는 둘이 꼭 닮은 두 여자가 있었다. 약간의 노소만 있을 뿐 누가 봐도 모녀임을 알 수 있을 모습이었다. 위지랑은 가볍게 상유에게 고개를 까닥여 인사를 하고는
“위 문주님! 여기 이 아리따운 분이 누구신지는 아시겠지요?”
“물론입니다. 랑매와 딱 닮으시고 나이차가 거의 없어 보이시니 언니시군요!”
“호호호호... 네 맞아요!”
간드러진 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이는 바로 맹주의 아내 강호일미 처용화였다. 그녀는 위문주가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대답하는 것이 아님을 알지만 그와 같이 직접 말을 하자 기분 좋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에 맹주는 훈훈한 웃음을 지으며
“자넨 혀가 고급이구만. 또 눈도 제대로 붙은 것 같고 말이야. 하하하”
“그리고 여기 묵묵히 식사 하시는 분이 바로 ‘과묵남(寡黙男)’ 큰오빠 위지룡, 그리고 저기 잘 생긴 분이 ‘유설남(油舌男)’ 작은오빠 위지궁 그리고 그 옆에 앉아 있는 분들은 바로 오빠들의 사랑하는 처(妻)이며 저의 언니들이죠.”
소개한대로 아빠를 닮은 큰오빠는 별말이 없이 과묵하게 식사를 하고 있었고 엄마를 닮아 잘생긴 작은 오빠는 빙긋 미소를 보여 주었다. 옆의 부인들도 가볍게 눈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위상유입니다. 필요할 때 언제든 불러 주십시오.”
다소 독특한 인사였지만 필요할 때 도와주겠다는 데 싫을 사람은 없는 법이었다. 위지궁은 처음부터 상유에게 관심을 가지고 쳐다보았지만 이제껏 거의 식사에만 관심을 갖던 위지룡도 그 말에 고개를 들더니 상유를 쳐다보며 한마디를 했다.
“자네 도와줄 능력은 되는가?”
뚱딴지같은 말이었으나 단도직입적인 말이기도 했다. 상유는 위지룡의 눈빛을 피하지 않고
“제가 아직 어리고 부족하기는 하지만 제 몫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몫이라... 재미있는 말이군. 두고 보면 알 일이지.”
그 말과 함께 위지룡의 시선은 식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여기 앉아 있는 요 이쁜 것들은 제 조카들 이예요. 순서대로 일(一), 국(國), 민(珉), 경(景), 란(蘭)이죠.”
소개한 조카들은 삼남 이녀였다. 위지룡의 자녀가 일과 경이고, 위지궁의 자녀가 국, 민과 란이었다. 위지일이 올해 열 하나이고 순서대로 묘하게도 한 살 터울이었다. 부모를 닮아 일과 경은 과묵한 편이고 국과 민과 란은 발랄한 성격이었다.
아이들은 식사 자리에 초대된 젊은 남자가 좀처럼 없었기에 기이하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막내 란이가 장난스럽게
“할아버지. 그럼 이 분이 우리 랑이 고모 신랑이에요? 잘 생겼다.”
결정적인 한 방에 모두들 웃었다.
하지만 위지랑의 눈빛은 진지하게 빛나고 있었으니 단 하루 몇 시진을 어울렸을 뿐인데 아침부터 아빠를 졸라 조찬에 초대하기까지, 도대체 무슨 마음이 생긴 것일까? 막내딸의 심경을 어느 정도 눈치 챈 맹주 부부는 복스럽게 식사하는 상유를 남모르게 찬찬히 살피고 있었으니...
다소 부담스러운 조찬이었다. 하지만 무림맹주와 개인적인 인연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은 상유에게 큰 인연이었다. 그 날 오후 공식적인 무림맹 고위인사들과 접견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오전에 아미파의 파견 장로인 이화선자에게 인사를 갔다. 이화선자는 소화사태의 제자이자 상유의 사부인 화정신니와 언니 동생하는 사이였으니 상유에게는 사고(師姑)였다.
일찍이 무림맹의 일을 전담하느라 아미산에 자주 드나들지 못해서 상유는 어려서 한 번 뵌 것이 다였다. 그녀는 대단한 미인이었다. 아무래도 대외적인 일을 하다보면 외모도 실력이고 또한 사형제들 중에 유독 영민하여 소화사태의 명에 의해 무림맹의 일을 전담하고 있었다. 무림맹에서 감찰원주를 맡고 있으나 감찰업무이라는 것이 워낙에 민감한 사안들이라 맹규에 규정된 바와는 다르게 유명무실한 업무로 취급을 당하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각 대문파 사이에서 적절한 처세로 아미파의 이익을 대변하며 의견의 조율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 감찰원 전각은 굉장히 정갈했다. 원주의 성격이 그대로 비춰지는 것 같았다. 아미파에서는 백 명의 제자들을 무림맹에 상시 파견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무림맹 하부조직인 육 원, 육 각, 육 대에 고르게 분포 되어 있었고 특히 감찰원에 열 명이 배치되어 이화선자를 지근에서 돕고 있었다.
“여어~ 이게 누구야? 화정언니의 꼬마제자가 언제 이렇게 컸지? 호호호”
“하하하. 사고께서는 여전히 아름다우십니다. 어린 제 가슴에 그리움만 남기시고 너무 오래 떠나 계셔서 이 사질 가슴이 까맣게 타들어간 것 아십니까?”
“호호호. 언니 말처럼 아주 혀가 날래구나. 아미산의 황태자가 이렇게 커서 자기 자리를 만들려고 무림맹에 들어오다니 난 정말 믿기지가 않는구나.”
“소질, 사고님을 뵈니 힘이 막 납니다. 그간 평안하셨는지요?”
“그래. 덕분에 아주 잘 지내고 있다. 안 그래도 너 때문에 지금 맹이 술렁댄단다.”
“네? 무슨 일로요?”
“어제 오후 너의 접견을 앞두고 무영각의 보고가 있었단다. 그런데 보고를 자세히 받아보니 원로들이 알고 있던 것보다 몽월문의 규모나 재력이 대단하다고 판단이 되더구나. 그래서 그 지위나 역할을 정하는데 이견이 많았단다. 협의를 하다 보니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오늘로 미뤄진 것이야.”
“아. 그랬군요. 덕분에 어제 오후 무한 구경 잘 했는걸요.”
“너 아침에 맹주의 조찬에 초대를 받았다고 하던데 무슨 일이 있는 게냐?”
“글쎄요. 뭐 그냥 얼굴을 보고 싶었나 봐요. 그 막내딸이 졸라서 그리 된 것 같아요.”
“랑이가 말이냐? 넌 랑이를 어찌 아는데?”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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