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몽월도(夢月島) -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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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힘이 없었다. 철든 이 후 이렇게 무력한 아침을 맞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일가들이 모여 식사를 하는데 거의 잠을 자지 못한 상유는 밥알이 왜 이리도 거친지.
“보자! 우리 아들 이 모양 만들고 누가 쌩쌩해 졌는지?”
환희문주는 식탁에 앉아 거의 노동에 가까운 식사를 하는 상유를 애처롭게 보더니 맞은편에 앉은 세 자매를 훑어보았다. 그 순간 유독 밥맛이 좋은지 밥을 입 안 가득 담고 있던 미주는 놀라서 밥이 목에 걸렸는지 켁켁 거렸다. 거의 자수하는 수준이었다.
“거봐라! 밥도 갑자기 많이 먹으면 체하는 법이다. 적당히 다독이면서 보약도 챙기고 그러면서 하나씩 하나씩 조심스럽게 먹어야 맛도 있고 몸에도 좋은 법이야.”
“호호호호...”
상유와 미주를 제외한 문주와 자매들이 웃자 상유는 그냥 씨익 웃어주었고 미주는 홍당무가 되어 어쩔 줄 몰라 했다.
“저 제자들의 수련은 어느 정도나 되고 있나요?”
상유가 둘째 누이 미화에게 말을 건넸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으니
“응? 우리 밥 먹고 같이 나가서 보자! 아무래도 동생이 직접 봐야 하지 않겠어?”
미화는 이제 내 차례라는 생각을 하는지 갑자기 밥맛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뭔 차례인지는 모르겠지만...
미화 누이와 환희문 제자들의 연무장으로 들어섰다. 연무장에는 본원 제자 백 명과 이번에 각 분원에서 올라 온 이백 명의 제자들이 질서정연하게 도열해 있었다. 둘이 훈련장의 지휘단상 위에 올라서자
“일동. 차려! 사자님께 경례!”
“충! 충! 충!”
여자들이라고 만만히 볼 수 없는 기세가 그녀들에게 터져 나왔다.
“난 본 문의 호화사자 위상유이다. 이제 모두 일괄적으로 전수받은 포옥검(抱玉劍)을 일초부터 미화 사범의 구령에 맞게 시전한다. 시전하며 내가 지목하는 제자들은 왼편으로 따로 정렬하여 계속 구령에 맞게 검법을 시전하라!”
이에 미화 누이는 강단에 서서 일 초식부터 초식명을 외치며 구령을 붙였다.
상유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삼백 명의 제자들을 바라보며 가끔씩 보법을 전개하는 가운데 제자들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칠초로 구성된 검법의 시현이 다 끝나자 왼편에는 백여 명의 제자들이 분류 되었다. 그런데 분류된 제자들 백 명 중 본원 제자들이 거의 구할 이었다. 그것은 이미 사전에 자질을 분류해서 본원의 제자들로 받은 것이 주효했기 때문이었다.
여름 한참 더울 때 전해준 무공들을 지난 삼개월간 정말 열심히 수련한 흔적이 보였다. 분류한 백여 명의 제자들은 적호문을 기준으로 본다면 호월대 수준은 족히 되었다. 그리고 이십여 명은 이미 적월대 수준 그러니까 일반적인 무림의 분류로 봐도 일류급의 고수였던 것이다. 상유는 이 정도면 되겠다는 안도에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이백여 명의 지속적인 수련을 명하고 뽑힌 백팔 명의 제자들을 이끌고 소연무장으로 이동 했다. 거기서는 모두의 검을 내리게 하고는 이인 일조로 수법과 보법을 이용한 대련을 시행했다. 승부를 떠나 일정 수준에 있는 제자들을 확인하며 다시 분류하기 위해서였다. 한나절에 걸쳐 검증을 마친 상유는 여덟 명을 따로 분류하고는 나머지 인원을 열 개조로 나누었다.
그리고 각 조에서 자발적으로 조장을 뽑을 것을 명령했다. 서로 연배와 무공, 성격들을 알고 있으니 되도 않는 인선을 할 리는 없었다. 아무래도 조원들을 통제하려면 자발적인 협조가 우선이기에 기회를 준 것이다. 잠시 후 조장 열 명이 앞으로 나서고 조장의 뒤로 조원들이 도열하여 열 개의 호화대가 완성 되었다. 역시 눈여겨 본 제자들이 조장이 되어 있었다. 제자들 스스로도 우열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각기 고유 번호를 지정했다. ‘오칠’하면 오조 일곱 번째 대원을 칭하는 것이었다.
“자, 이제 너희들을 환희문 최고의 무력전단인 호화대로 지칭한다. 앞으로 다른 무력전단이 생길 수도 있지만 호화대는 너희 백 명으로 제한하니 영광으로 알고 충성으로 임하라!”
조장들에게 자체 훈련을 명한 상유는 따로 구분한 여덟 명의 제자들을 이끌고 문주 전용 연무장으로 데려갔다. 상유가 이곳을 사용한다고 뭐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상유는 여덟 명을 일일이 손목의 맥문을 짚어도 되는데 단전위에 직접 손을 대고는 내공의 수위를 확인하였다. 그녀들의 따스하고 앙증맞은 배 위에 직접 손을 얹은 이유는 상유 본인만 알 일이었다. 그런데 여덟 명의 어린 제자들은 오히려 자신의 몸을 적극적으로 상유에게 내밀고들 있었다. 묘하게도 여덟 명중 누구하나도 빼지 않았으니 십칠팔 세의 어리고 어여쁜 미모를 가진 그녀들은 무슨 이유일까?
“이제 너희 여덟 명은 새로 신설될 호법단(護法團)의 일원이 되었다. 너희들은 2개조로 나뉘어 나와 행동을 같이한다. 나와 같이 움직이지 않는 네 명은 문주님을 호위하도록 하며 나의 특별한 교육을 받게 될 것이다. 너희들은 최고의 전사들로 거듭나야 함을 명심하고 각골수련하기를 바란다.”
“네!”
충이 아닌 네라는 대답이었다. 하지만 상유는 그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상유와 그녀들은 이렇게 묘한 동거를 시작하게 되었다. 상유는 그녀들에게 등천능운십팔식(騰天凌雲十八式)을 전수하기 시작했다. 자신과 함께 움직이려면 가장 기본이 신법이었다. 느려서야 어찌 함께 행동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날파리 퇴치 작전은 지난번에 본적이 있는 북풍수채부터 시행하기로 하였다. 그들은 다섯 개의 수채가 연합한 상태이며 그들은 동정호 북면에 서로 이웃하여 위치 있었다. 거력도라는 수괴는 명월도라는 섬을 거점으로 수채의 힘과 세력을 모아두고 있어서 한 번에 그들을 상대할 수 있어서 오히려 편했다.
환희문은 이미 전선으로 사용가능한 중급 선박 다섯 대와 소형 쾌속선 이십 여대를 준비해 둔 상황이었다. 이것은 이미 상유가 처음 다녀 간 이후 문주의 치밀한 준비의 일환으로 군부의 전선들을 구입해 개조한 것이었다. 그야말로 군 비리의 표본이었지만 그것으로 인해 엄청난 수전 전력을 보유하게 된 것이니 싫어할 이유는 없었다.
그믐날 밤 달빛이 약해 유독 어두운 그날 밤은 운무마저 끼어 오장 앞의 사물의 분간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 동정호를 헤치며 소형 쾌속선 십여 척이 빠르게 명월도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었다. 배에는 수공에 능한 자들이 있는지 빠른 속력에도 물을 짓치는 소리는 거의 나지 않고 있었다.
각 배에는 십여 명의 여 제자들이 무장을 하고 진지한 모습으로 앞을 내다보고 있었다. 맨 앞의 배에는 상유와 네 명의 호법단원이 다가오는 명월도를 운무사이로 주시하고 있었다. 배들은 명월도의 뒤쪽 벼랑으로 대어졌다. 파도가 심하지 않은 호수였지만 주변에는 적잖은 수중 장애물들이 있어 벼랑 주변에는 어떠한 배들도 다니지 않는데 이 열 한 척의 소형 배들은 사전에 충분한 정찰이 있었는지 정확한 위치에 배를 대고는 익숙한 솜씨로 벼랑위로 밧줄을 던져 밧줄을 타고 섬에 상륙했다.
백여 명이 움직이지만 거의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이 이들의 수준 높은 수련상태를 확인시켜주고 있었다. 이미 정확한 작전 계획에 의해 움직이며 상륙한 인원은 어둠속으로 스며들었다. 이 명월도에는 약 사백 명의 수적들이 살고 있었다. 거력도가 다섯 개의 수채를 장악한 이후 복속시킨 네 수채에는 세력의 절반만을 남겨두고 절반에 해당하는 오십여 명의 인원과 식구들을 명월도로 이주 시켜 직접 통제함으로 반란이나 번거로움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수채 인원이 이백 명 정도였다. 명월도는 그리 크지 않지만 이렇게 많은 인원이 모여 살 수 있는 것은 이들이 농사를 지어서 먹고사는 것이 아니라 약탈을 하여 먹고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섬에는 단지 사는 집만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약간의 기본적인 텃밭과 가축을 기르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거주 지역은 넓지 않았다. 그래도 거주 지역은 기본적인 방어를 위한 벽이 둘러져 있었는데 일장을 넘지 않는 담은 호화대에게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먼저 담을 넘어 경계병들을 소리 없이 추살하는 사람은 상유와 호법단원들이었다. 그리고는 사방을 다니며 군데군데 불을 놓기 시작했다. 타오르는 불길에 먼저 깨어난 수적들은 소리를 지르며 마을 광장으로 뛰쳐나왔다. 그런데 나오는 족족 날아오는 화살에 격중 되어 죽어나갔다. 상유는 원거리 공격을 위해서 멀리 조선(朝鮮)의 강궁을 구해와 호화대에 구비시켰다.
근접전을 펼치지 않고 원거리에서 아군의 피해 없이 적들을 추살하는 것은 최상의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수적들이라는 집단은 사실 별반 제대로 된 무예를 익히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인 집단이었다. 그래서 호화대 백 명만으로 얼마든지 제압 가능하지만 그래도 쓸데없는 피해를 자초할 이유가 없어서 이와 같은 작전을 구사하는 것이었다.
아미파에는 오래전 활을 이용한 무예가 있었다. 그런데 활을 저급한 무기로 치부하는 강호인들의 일반적인 추세에 따라 아미파에서도 활을 익히는 제자들이 없었고 그 비전마저 제대로 이어지지 못했다. 하지만 이것을 상유는 재정리하고 요 며칠 환희문 제자들에게 전수하였다. 약간의 진기만으로 무시무시한 공격력을 얻은 이 궁술무예를 되살린 것이다.
순식간에 대비 없이 뛰어나온 수적들은 활에 맞아 수북히 쌓이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상황을 파악한 수적들은 급조한 방패를 들고 일정 형태의 방어진을 만들어 대치하였다. 상유의 신호가 떨어지자 원거리에서 활을 놓던 호화대는 적들과 대치하여 원형진을 완성했다. 화살 공격이 멈추자 비로소 거력도가 거대한 도를 치켜들고는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너희들은 환희문의 계집들 아니냐? 감히 기습을 하다니... 이 썩을 년들!”
그 말소리는 진기가 담긴 상유의 말소리에 금방 묻혔다.
“에이 이 도적놈들아! 어디다 대고 함부로 입을 놀리는 게냐? 이 날파리 같은 놈들!”
“무어라? 넌 그 때 보았던 환희문주의 아들이구나!”
“그렇다. 본인은 파락공자라 불리는 사람이다. 오늘 너희 수채를 정리하러 왔으니 순순히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빈다면 목숨은 거두지 않겠다.”
상유의 진기가 실린 음성에 무공을 전혀 익히지 않은 수적들은 이미 다리가 풀렸다. 항상 약자들을 대상으로 노략질을 해 온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이 바로 무림인인 것이다. 그것도 일정 수준이상의 고수들 말이다.
음성에 담긴 내력만으로도 그가 최근 혈사장을 불태워 대대적인 명성을 떨친 사람, 파락공자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본 것이다. 수하들이 동요를 하자 거력도는 더 이상 이 상태가 유지되면 안 된다고 판단을 했는지 도를 들고는 자신의 최고 자랑인 붕천도법을 시전하며 달려 나왔다. 상유도 쓸데없는 인명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확실한 모습을 보여야 했다. 소청검이 뽑혀 나오고 검에는 하얀 검기가 둘러졌다. 그리고 바로 거력도를 향해 강하게 일도양단으로 내리쳤다.
달려들던 거력도는 감히 막지도 못하고 상유의 검기에 의해 이 장 앞에서 도와 함께 몸이 잔혹스럽게 양분되며 엄청난 피분수를 뿌리고 말았다. 그야말로 일 초에 일도양단이 되어 버린 것이다.
“검기야! 검기! 거력도가 일초에 죽었어.”
수적들은 이 일초의 대결을 보고는 떠들썩해지기 시작했으나 바로 진기가 실린 목소리가
“무기를 버려라! 항복하는 자는 살려주겠다. 하지만 반항하는 놈은 필히 죽이리라!”
벌벌 떨며 무기를 버리는 자들이 생겨났다. 그런데 적진 한가운데서 한 중년인이 나서며
“잠시만 시간을 주시오!”
말을 하고 있는 자는 차림새도 도적의 무리로 보이지 않았다. 무예를 익힌 흔적도 없는 중년 선비로 보이는 자였다. 음성도 온화한 것이 이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자였다.
“저는 부끄럽지만 수채의 책사를 맡고 있는 이진명이라고 하오. 일단 더 이상의 반항은 없을 것이니 우리에게 잠시만 시간을 주시기를 바라오.”
얘기하는 품새나 기도가 정명함을 느낀 상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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