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불타는 혈사장 -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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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양환희루에 들려 임호를 데리고 장사로 길을 잡았다. 생각보다 일정이 길어졌지만 얻은 소득이 너무도 컸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힘이 존재한다. 그 중 정보와 금력 그리고 여자들의 힘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임호는 위 호법 덕에 평생 누릴 호사를 다 누린 것 같았다. 상유를 대하는 태도부터 확 달라졌다. 본원에 다녀온 후 환희루의 사람들이 상유를 마치 주인 모시듯 하는 걸 보고 이 젊은 사람의 수완이 보통이 아님을 감 잡은 것이다.
적호문이 가까워지자 상유는 임호에게 눈짓을 하고는 서둘러 적호문으로 말을 달렸다. 적호문 방향에서 엄청난 살기가 감지 된 것이었다. 멀리 적호문이 보이자 건물에 이는 불길과 피어오르는 연기가 보이고 지금도 전투가 벌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상유는 말 위에서 쏜살같이 경공을 발휘해 튕겨 나갔다. 무공을 익힌 이후 등천능운십팔식을 처음으로 극성까지 시전 하는 순간이었으니 순식간에 적호문에 당도할 수 있었다.
장내에는 이미 많은 시신들이 이미 쌓여 있었고 전장은 이미 내전으로 옮겨진 것으로 보였다. 외당 근처에는 혈의를 입은 몇몇이 돌아다니며 적호문도들을 확인사살하고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상유의 몸에서는 엄청난 살기가 피어났고 그것에 놀란 혈의인들이 상유를 쳐다 볼 때는 이미 그들의 목은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내전으로 날아 들어가자 이미 전세가 기운 듯 적호문도들은 세 곳으로 나뉘어 적들의 포위 공격을 받고 있었다. 적월대를 중심으로 하는 가운데 병력은 대전 앞까지 밀려 있었다. 그들의 뒤에는 문파의 여자들과 아이들이 피신해 있었다. 그리고 2개로 나눠진 호월대는 이미 절반이 무너진 것 같아 보였다. 상유는 볼 것 없이 가까운 왼쪽의 적들의 후방부터 치고 들어갔다.
복호대라검법이 극성까지 펼쳐지며 적들의 향해 날아갔다. 뒤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고개를 돌렸던 혈의인 셋이 허리가 잘리며 투둑 나가떨어졌다. 이미 승리를 확신하고 물러서서 지켜보던 지휘부는 갑자기 뒤에서 공격을 받자 놀라며 돌아봤다. 단 한 명에게 후위를 지키던 십여 명이 벌써 죽었고 그 빈틈을 이용해 그자는 왼쪽의 전장으로 뛰어 들고 있었다. 둥글게 원형을 만들고는 안에 갇힌 호월대원들을 희롱하듯이 죽여 대던 혈의인들은 상유의 급작스러운 공격에 포위망이 뚫렸다.
그 사이 상유는 안으로 짓쳐들어 위급한 자들부터 구해내고 있었다. 뒤쫓아 오던 임호 역시 그 순간을 포착해 전장으로 날아 들어왔다. 이십여 명이 겨우 살아남아 혈사장의 놈들에게 유린당하며 하나씩 죽어가던 호월대원들은 상유와 임호가 가세하자 희망의 빛이 살아났다. 상유는 이대로 흩어져서 포위 공격을 받는다면 필패라는 판단이 들었다. 빠른 시간 내에 중앙 대전 앞의 적월대와 합류를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래서 전음으로 작전지시를 하고는 그 방향을 향해 멸절검(滅絶劍)의 초식을 사용하였다. 이 멸절검은 아미파의 선대의 유명했던 멸절사태라는 분이 마교와의 씻을 수 없는 원한을 갚기 위해 창안한 검법으로 지나치게 살기가 강하여 현재 아미파에서는 익히는 제자가 없는 검법이었는데 오랜 세월을 격하고 상유의 손에 펼쳐지고 있었다. 강력한 검기의 가닥들이 중앙 대전 방향을 막고 있던 혈의인들에게 쏟아졌다.
강력한 검기의 가닥들은 막아서는 혈의인들의 검과 몸을 가리지 않고 토막을 내며 계속적으로 밀려 나갔다. 앞의 칠팔 명이 죽어 나가자 뒤에 선 자들은 피하기에 급급했다. 그러면서 길이 생겼다.
“가자! 나를 따라라!”
상유가 먼저 뛰어 들며 다시 한 번 허공에 솟아오르며 멸절검을 펼치자 적들은 엄청난 검기를 피해 사방으로 비산했고 그 사이 이십여 명의 호월대는 중앙의 인원과 합류에 성공했다.
중앙에 합류하자 상유는 상황 파악부터 시작했다. 혁문주와 부문주는 양옆에서 괴기스러운 기도를 가진 두 명의 흑의인들을 상대 하고 있었는데 이미 몸에 치명상을 군데군데 입고 있었다. 정면에는 혁진일과 혁진세를 중심으로 적월대원들이 그 배에 해당되는 혈의인들에게 둘러싸여 고전하고 있었다. 혈의인들의 무공수위를 보건데 금방 무너질 것 같지는 않았다. 빠르게 안쪽을 살펴보니 사모님과 미소는 보이는데 미란이 보이지 않았다.
마음이 급해졌다. 그녀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급하게 아직도 고립되어 있는 오른쪽의 호월대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혈의인의 검을 맞아 쓰러지고 있는 미란이 보였다. 그녀는 싸움에 참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피를 쏟으며 쓰러지는 모습을 본 상유는 피가 거꾸로 도는 느낌을 받고는 그 방향으로 검기를 날렸다. 하지만 어느새 충원된 병력들이 두 겹으로 둘러싸여서 몇몇이 죽어 나갔지만 빈 곳을 재차 메우며 효율적으로 막아서는 것이었다.
상유의 강함을 알아보고 맞서지 않고 진을 짜 충격을 나누어 흡수하거나 흘려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공격이 막히고 나서야 상유는 정신이 퍼뜩 들었다. 냉철히 판단하자면 지금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이 상황을 반전시킬 뭔가가 필요했다. 자신의 힘으로 무작정 적들을 벤다면 결국 내력의 한계가 드러날 때는 도리어 위험할 수 있는 것이다.
냉정하게 최선의 방도를 생각하면서 상유는 위급해 보이는 문도들을 먼저 도와 대전 입구 쪽으로 보냈다. 지금은 우리의 힘을 아끼고 집중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아직도 고립되어 고전하고 있는 미란과 호월대 무리였는데 그 짧은 순간에도 하나둘 쓰러지고 있었다. 가슴이 무너지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혁문주를 협공하는 흑의인 하나를 복호대라검법으로 벤 상유가 문주를 부축이며 대전으로 들어서자 이제야 대전 입구만이 적의 진입 가능한 지점이 되었다. 대략 세 명 정도면 방어가 가능해서 상유를 중심으로 양옆에 혁진일과 혁진세가 자리를 잡고는 방어에 임했다. 입구의 옆으로는 벽일 뿐이니 공격 가능한 적의 인원도 고작해야 여섯 정도만 가능했다.
그렇게 여유가 생기자 상유는 임호를 불러 뒤를 지키게 하고는 수시로 적들 사이로 파고들어 빠른 보법을 시전하며 대라수미혜검법으로 하나씩 베어갔다. 일각정도에 이십여 명이 죽어나가자 적들도 주춤하며 다가서지 못하고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그러자 적들의 뒤에서 지휘자로 보이는 늙은이가 나섰다.
“네 놈이 파락공자라는 놈이구나!”
“이 무슨 짓이냐? 너희들은 누구냐? 무슨 원수를 지었기에...”
“본 좌는 혈문 부문주 혈사노괴 전승일이다. 이미 전세가 기울었으니 이만 항복해라!”
“이런 쓰레기 같은 자식들! 일대일 승부를 제안하는 바이다.”
“헐헐헐. 이런! 겁 없는 아이로구나. 본 문의 몇 문도들을 이겼다고 기고만장하구나. 이미 전세가 기울었으나 네 놈에게 하늘위에 하늘이 있음을 가르쳐 주겠다. 모두 멈추어라!”
그의 말이 떨어지자 일시에 전투는 중지 되었다. 오른쪽의 호월대는 이제 열 명도 되지 않는 인원이었다. 그들이 부상자와 미란을 들쳐 업고 대전 쪽으로 달려왔다. 이미 이겼다고 믿는 혈의인들도 굳이 그들의 이동을 막지 않아 다행이었다. 미란은 이미 의식을 잃은 것으로 보였다. 그녀가 대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상유는 앞으로 나섰다.
“이제 혈문은 나와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자들이 되었다. 내 모조리 죽여 혈문의 주춧돌 하나도 남기지 않을 것이다!”
“허허허. 어린놈이 입만 살았구나. 떠들지 말고 덤벼라!”
혈사노괴는 검은 도를 들어 올리며 진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상유는 그가 결코 만만치 않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현재 무림백대고수에 속하는 자였고 그런 자와의 승부는 처음인 상유였다. 상유는 소청검에 진기를 주입했다. 소청검은 상유가 내력을 쏟아 넣자 하얀 기운이 검신에 둘러지며 작은 떨림이 생겨났다. 준비가 되자 상유는 선공을 시작했다.
“복호랑낭(伏虎踉擃)!
엎드렸던 호랑이가 거세게 뛰어들며 찌르는 초식이었다. 최단거리를 가장 빠르고 강력하게 한 점을 찔러가는 수법이었다. 혈사노괴는 당황했지만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뒤로 빠지며 도를 들어 상유의 검을 쳐냈다. 하지만 상유의 검은 노괴의 반응을 이미 예측한 듯 도에 살짝 부딪치고는 바로 아래로 향하며 상대의 하체를 길게 베어갔다. 대라수미혜검이었다. 강력한 힘은 없었으나 부드러운 연격(連擊)이었던 것이다. 물러서던 노괴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허벅지 한쪽을 베였다. 하지만 노괴는 뒤이은 연격을 눈치 채고는 오히려 다가서며 바로 이어지는 상유의 검에 도를 마주쳐 나갔다. 그러자 상유는 힘에 밀리며 뒤로 튕겨 나왔다.
“허허허 그 놈 영악한 놈이로구나. 내가 너를 너무 얕잡아 보고는 한칼을 맞았구나.”
혈사노괴는 이제 상유를 함부로 볼 수 없음을 인정하고 독문무공인 추살도법(鎚殺刀法)을 펼치기 시작했다. 강력한 기운을 담은 도가 상유의 머리위로 떨어져 내렸다. 그야말로 맞으면 몸이 갈라질 힘이었다. 맞부딪치는 것은 어리석다 판단한 상유는 표설보를 전개했다. 왼쪽으로 살짝 움직이자 바로 도가 그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상대의 움직임에 따라 변초를 가져가는 그 정도의 능력은 충분히 되는 혈사노괴였다. 그런데 도가 다 지나가도록 도에 아무런 느낌이 없다고 생각한 순간 불쑥 오른쪽에 상유가 나타나 검을 휘둘렀다.
“무중생유(無中生有)”
그야말로 시작과 중간이 없이 바로 검이 지쳐들고 있었던 것이다. 혈사노괴는 도를 회수하기 어렵게 되자 왼손을 휘둘러 상유의 검을 쳐냈다. 검과 그의 손이 맞부딪쳤는데
“챙!”
하는 소리가 들렸다. 노괴의 왼손에는 철갑수가 끼여져 있었던 것이다. 많은 전투에서 노괴의 도만 상대하던 많은 자들이 이 왼손의 철갑수로 펼치는 암묵장에 최후를 맞이했다. 노괴의 비기가 지금은 그의 목숨을 구한 것이었다. 상유는 당혹스러웠다. 시간이 가고 초의 진행이 반복될수록 자신에게 불리했다. 상대가 자신의 수를 모를 때에 빠른 결말을 보아야지 상대가 자신의 장단점을 알게 된다면 이기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지리한 싸움을 바라지 않는 상유는 양심공을 운용했다. 반각 안에 승부를 보지 못하고 혈사노괴가 자신이 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전세를 뒤집기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질지도 모르는 싸움을 할 노괴가 아니기에 다시 혼전에 빠져 든다면 승(勝)보다는 패(敗)가 될 가능성이 더 높아지게 된다. 자기 자신뿐이라면 몸을 뺄 수 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검에는 복호대라검을 운용하면서 왼손에 공공일지선(空空一指禪)을 따로 운용했다.
“복호압정(伏虎押釘)!”
강한 기세를 담은 상유의 검이 상대를 찍어 누를 듯 덮쳐갔다. 혈사노괴는 추살도법을 운용해 상대의 검에 정면으로 마주쳐갔다. 검과 도가 부딪치며 서로 뒤로 튕겨나는데 노괴는 갑자기 도를 떨어뜨렸다. 분명 약간의 득을 얻은 격돌이었는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며 팔을 보니 팔꿈치에 동전만한 구멍이 나서 피가 사방으로 튀고 있었다.
어리둥절해 있는 순간 무릎에 힘이 빠지며 몸이 무너졌다. 상대의 멍한 상황을 이용해 상유의 검이 낮게 휘둘러진 것이다. 평소라면 어렵지 않게 막을 수 있는 정도인데 예기치 못한 상황에 오른 팔이 망가지자 허탈감이 감각을 무너뜨린 것이다. 그리고 두 무릎의 관절이 잘려 나가며 앞으로 넘어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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