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진짜 크네요? -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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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올려! 조금만 더!”
작게 속삭이는 개구진 목소리에는 안타까움이 잔뜩 묻어나 있었다. 하지만 밑에서 등을 대고 받쳐주고 있는 병기는 이제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다.
이미 이 짓을 한지 일각을 넘어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난히 힘이 세고 덩치가 커도 병기 역시 여덟 살 난 어린아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당탕탕...’
“뭐야? 으이그... 상유! 또 네 놈이지? 내가 오늘 이놈을 그냥!”
유곽의 기녀들 다섯은 한참 수다를 떨며 목욕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별안간 욕실 창문 밖에서 들린 이 해괴한 소리는 최근 들어 몰래 욕간을 훔쳐보다가 몇 번 혼이 난 상유의 짓이라는 것을 모두는 정확히 알고는 웃고 있었다. 그 와중에 제일 언니인 유월은 옆에 있는 빨래 방망이를 들고 버릇을 고치겠다며 뛰쳐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욕간의 창문틀 아래 쬐그마한 두 놈이 한데 얽혀 넘어진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유월은 잽싸게 달려들어 두 놈을 향해 빨래 방망이를 들고 위협을 하려는 순간
“와아... 아줌마! 진짜 크네요?”
유월은 상유란 꼬마 놈이 침까지 꼴딱이면서 자신의 몸을 빤히 쳐다보며 지껄이는 소리에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이고! 급하게 달려 나온 나머지 아래 속곳만 걸치고 뛰어 나와 박꽃 같은 젖가슴과 배꼽은 물론 상체가 훤하게 다 드러나 있는 것 이었다. 일단 급히 두 손으로 가슴을 가렸건만 손이 작은 건지 가슴이 큰 건지 가려지지가 않았다. 그걸 게슴츠레한 눈으로 쳐다보는 상유의 징그러운 표정을 보자 유월은 아찔했다.
“야! 이 후레자식아, 눈 안 깔아!”
덩치 큰 병기는 겁이 나 고개를 푹 숙이고 있건만 쥐 알 만한 상유란 놈은 연신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유월의 몸을 감상하고 있었다. 하도 기가 찬 유월은 자기도 모르게 들고 있던 몽둥이로 상유의 머리를 내려쳤다.
‘퍽......’
순간적으로 너무도 약이 오르고 얄미워 때리긴 했는데 이게 웬일인가? 피가 튀며 넘어가는 상유를 보자 유월은 깜짝 놀래서 비명을 마구 질러댔다.
“아악~~ 까악~~ 엄마야~~~”
그 비명에 욕간에 있던 초연, 향란, 문희, 춘영이 달려 나오고 장작을 패던 천씨 할아범까지 놀라서 달려 나왔다. 유월이의 앞에는 머리에 피를 흘리는 꼬마 상유가 쓰러져 있었다. 박꽃 같은 유월의 풍성한 가슴을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쩔 줄 몰라 발을 동동 구르는 기녀들 사이에서 초연이가 얼른 다가와 상유를 안아 들더니 자기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이윽고 다른 기녀들도 얼른 초연의 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초연은 침착하게 젖은 수건으로 상처를 깨끗하게 닦아내고 한쪽에 있는 궤짝을 열고는 약상자를 꺼내 상처를 소독하고 흰 무명천으로 상유의 머리를 정성스레 싸매 줬다.
좀 엉성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야무진 솜씨였다. 그런데 무명천으로 머리를 싸매느라 초연이의 가슴에 바짝 당겨진 채 있던 상유의 눈이 서서히 가늘게 떠지고 있었다. 의식이 없는 줄 알았던 상유가 눈을 살짝 뜨고는 코앞에 있는 초연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군침을 삼키는 것이었다. 혹여나 들킬까 조심스레 말이다. 상처를 다 싸맨 초연은 상유를 침상에 누이고는 휙 하고 뒤돌아보며 유월을 향해 매몰차게 말했다.
“언니 너무하는 거 아니에요? 이 조그만 애가 뭘 안다고 그렇게 빨래 방망이로!”
엉겁결에 때리긴 했지만 유월이도 정말 때리려고 때린 게 아니었다. 유월이도 눈물을 많이 흘렸는지 눈가가 벌겋게 부어 있었다. 이곳의 어떤 기녀도 상유를 미워하지 않는다. 요즘 들어 가끔씩 말썽을 부리지만 사실 상유는 이 집에 있는 기녀, 다섯 명의 공동의 아들 같은 아이였다.
오년 전, 유곽 앞에 버려진 두 살 배기 핏덩이를 데려다가 돌아가면서 젖동냥까지 해가며 키운 것이 그녀들이다. 올해 일곱 살이 되면서 갑작스레 상유가 성적인 것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데리고 자는 기녀들의 가슴을 만지고 빨고 하는 통에 이상한 버릇이 생길까봐 상유를 위해 천씨 할아범의 방에서 재우고 있었다.
최근 들어 따로 재우고 있었지, 작년까지만 해도 돌아가면서 서로 상유를 안고 자겠다고 다투던 그녀들이다. 이 다섯의 기녀들은 상유가 올바르게 잘 커주기를 바랬는데 이상하리만큼 여자의 가슴에 집착을 하자 자신들의 환경 탓으로 여기고 속상해 하고 있던 차였다. 이 작고 귀여운 상유는 어릴 때부터 예뻐할 수밖에 없는 짓을 많이 했다.
말귀를 알아들을 무렵이 되자마자 키워주는 기녀들을 금방 알아보고 볼 때마다 웃어줬으며 말을 배우더니 그녀들의 이름도 구분하여 불러주는가 하면 가르쳐 주지 않은 창가를 흘려듣고는 귀엽게 따라 불러서 귀여움을 독차지 했던 것이다. 그런 상유를 머리가 깨져라 때렸으니 유월은 할 말이 없었다.
유월이 상유를 눕혀 놓은 침상에 같이 누워 상유를 안으며 보듬어주자 다들 안심을 하며 각자 할 일들을 찾아 밖으로 나갔다. 유월이 상유를 다치게 한 것에 속상해하며 상유를 보듬어주고 있는데 유월의 아래쪽에 무엇인가 꿈틀대고 있었다. 유월의 속곳으로 작은 무언가가 아주 천천히 슬금슬금 다가가고 있는 것이었다.
유월은 그게 무엇인지 알았지만 오늘 이 귀여운 놈을 무지막지하게 때린 죄가 있어 그냥 내버려뒀다. 자기가 요조숙녀도 아니고 그냥 아들 같은 사랑스런 상유가 하는 짓을 못 받아 줄만큼 속 좁은 여자도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연신 꼼질대며 다가서는 손이 이윽고 종착역에 도착할 때까지는 일각이 넘게 걸렸다.
유월이 생각하기에 참 요놈은 일곱 살인 놈이 어떻게 이리도 용의주도할 수 있을까 싶어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오랜 인내와 노력의 결실을 상유는 오른손 가득 느끼고 있었다. 보드라운 모발이 느껴진 것이다. 자신의 머리카락에서는 아무리 만져도 느끼지 못하는 그 부드러운 감촉을 상유는 일각 이상을 음미했다.
사실 장사를 나가야 할 시간이었지만 유월은 상유를 위해 그냥 기다려 줬고 그런 유월을 누구도 부르러 오지 않았다. 한참을 수풀 속에서 노닐던 앙증맞은 손이 이제 조금 더 강렬한 목마름에 아래로 향하려고 움직일 때 유월은 상유의 귀엽고 발개진 볼에 뽀뽀를 해주고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보니 어정쩡하게 위치한 고사리 같은 상유의 손이 너무도 귀여워 유월은 그 손을 잡아 ‘쪽’소리 나게 입 맞추어 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월이 나가자 실눈을 뜨고 있던 일곱 살 상유의 두 눈은 번쩍하고 떠졌다.
“아~~ 아쉽네 아쉬워. 유월 아줌마 거기는 정말 따뜻한데? 너무 조아아아~ 너무 좋아!”
아쉽다는 표정을 얼굴 가득 피어내며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섰다. 상유는 유월이의 빨래방망이를 맞는 순간은 엄청나게 아팠지만 사실 일각 정도 지나자 전혀 아프지도 않았다.
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초연 아줌마의 품에 안겨 치료를 받으니 깨어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거기다 우리의 큰 가슴 유월아줌마가 가슴이 터져라 안아 주니 이런 일만 계속 있다면 자신은 매일 빨래방망이로 맞으라고 해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근데 초연 아줌마 냄새는 아무리 맡아도 싫지가 않네. 엄마 냄새도 그럴 텐데...”
밖으로 나오자 순박하고 어벙벙한 모습의 병기가 걱정하는 얼굴로 상유를 기다리고 있었다.
“상유야! 괜찮아? 미안해. 내가 넘어지는 바람에...”
“히히. 난 괜찮아! 밥이나 먹으러 가자”
병기는 유곽 아래 길 건너편에 사는 아이였다. 전쟁 통에 부모를 잃어 늙은 조모가 혼자서 어렵게 키우고 있는 아이였다.
나이는 병기가 상유보다 한 살 많았고, 잘 먹지도 못하는데 병기의 덩치는 다른 집 열 살배기 만큼 큰 아이였다. 그나마 유곽에는 안주로 쓰고 남는 음식들이 많아서 상유가 시시때때로 먹을 것을 챙겨주니 상유를 대장처럼 믿고 따르는 순진한 아이였다.
덩치는 좀 작아도 상유는 이미 동네의 또래 아이들 중에서 대장 노릇을 하고 있었다. 상유는 일단 아주 끈질기고 집요해서 상유의 비위를 거스르고 멀쩡한 아이가 없을 정도로 상유는 꼬마 독종이었다.
이마를 무명천으로 동여 맨 상유는 위풍당당하게 병기를 데리고 주방으로 갔다. 주방에는 찬모가 장사에 쓸 안주와 음식들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할머니! 배 고파요.”
상유의 앙증맞은 목소리에 찬모는 웃으며
“조금 기다려라. 금방 밥 차려 줄 테니, 근데 이마는 멀쩡한가 보다?”
“네. 히히히”
“어이구 이 귀신같은 놈아! 쬐끄만 게 그렇게 여자가 좋으냐?”
“네? 뭐 딱히 그런 건 아니고 사랑스럽다고 해야 할까요?...크크크”
“호호호. 이런 망할 자식 같으니라고 호호호”
찬모가 차려 준 밥을 병기와 서둘러 먹은 상유는 병기와 함께 마을 뒷산으로 올라갔다.
이미 저녁을 먹은 아이들이 뒷산에 십여 명 모여 있었다. 일곱 살에서 아홉 살까지 다양했지만 그 아래로는 없었고 상유가 나타나자 애들은 주변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다 모였어?”
상유는 대장이라도 되는 듯이 당당한 눈빛으로 아이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응. 대장까지 열 한명 다모였어!”
정말 대장이었다. 남자아이 여덟에 여자 아이가 셋이었다. 상유는 아이들에게 자기가 여덟 살이라고 속이고 있었다. 한 살이야 넘어가지만 두 살이나 어리다고 하면 자기를 무시할 거라는 생각이 영악한 상유에게 있었던 것이다.
“자 그럼, 오늘은 어디야?”
“오늘은 저 아래 밤나무골 참외밭이야”
“이야 참외 맛있겠다. 자루는 누가 준비했지?”
그러자 둘이 나서며
“나랑 형우가 가져 왔어.”
“좋아. 그러면 밤나무골로 한번 돌격해 볼까?”
요놈들은 주변 마을을 돌아가면서 서리를 하고 있었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이기에 걸리면 사단이 나지만 상유가 대장 노릇을 하면서부터는 한 번도 걸리지 않고 성공을 하고 있으니 아이들이 상유를 따르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출발할 때 서산에 걸려 있던 해는 밤나무골에 도착을 하자 어느새 넘어가고 어두컴컴해지기 시작했다. 그 어둠속을 살금살금 움직이는 무리가 있었으니 여덟 명의 남자 아이들이었다. 여자애들 세 명은 주변에 흩어져 망을 보고 남자애들은 두 조로 나누어 재빠르게 참외밭으로 들어가 잘 익은 것만 골라서 자루에 담고 있었다. 이윽고 자루 당 쉰 개의 참외를 담은 꼬마 일당들은 발소리도 죽이며 참외밭에서 빠져 나왔다.
‘오늘도 성공이구나!’ 좋아하면서 망을 보던 아이들까지 모여서 이동하려는 순간, 양 옆의 숲에서 귀신인 양 시꺼먼 덩치의 세 사내가 큼직한 몽둥이를 들고 나타났다.
“요런, 요런 꼬마 도둑님들이시네? 그렇게 바리바리 싸들고 어디를 가시려고?”
세 사내 중 덩치가 제일 큰 사내가 몽둥이를 휘휘 저으며 위협적으로 걸어 나오며 말했다.
“던지고 튀어!”
상유의 말과 함께 미리 준비를 했는지 아이들은 주머니에서 돌멩이들을 꺼내 던지기 시작했다. 크진 않지만 돌멩이들은 다가서던 사내들의 몸에 아프게 꽂혔다. 당황하여 넘어지고 피하는 사이 꼬맹이들은 사방으로 흩어지더니 산속으로 내달려 뛰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봉변을 당한 세 명의 사내들은 화가 치밀어 오르는지
“잡아! 저기 저 계집애들을 잡아! 하나만 잡으면 다 불게 될 거야! 저 년부터 잡아!”
화가 난 사내들은 어리고 작아 행동이 굼뜬 미향이를 쫓아 달려갔다. 상유는 도망가면서도 아이들의 상황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미향이를 향해 달려가는 세 사내를 보았다. 그냥 둔다면 미향이는 바로 잡힐 것이다.
상유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이를 악물고는 같이 뛰던 병기에게
“너 먼저 유곽으로 가 있어! 알았지?”
“넌 어쩌고?”
“내 걱정 말고 어서 잽싸게 뛰어!”
상유는 기껏 도망쳐 온 길을 되돌려 미향이가 간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야! 이 꺼벙한 놈들아! 야 이 덩치만 큰 꺼벙한 자식들아!”
미향이를 쫓아가는 사내들의 뒤쪽에서 상유가 큰 소리로 약을 올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쏟아 놓은 참외를 집어 던지더니 미향이가 거의 다 따라 잡힐 것 같자 이젠 아예 참외밭으로 들어가서는 발로 마구 참외들을 뭉개며 참외밭을 아예 망가뜨리고 있었다.
사내들은 상유의 하는 꼬라지에 피가 거꾸로 돌았다. 참외밭 주인이 난리를 칠 것이다.
“야! 이 죽일 꼬마 놈아! 그만! 그만!”
세 명중 제일 연장자로 보이는 자는 얼굴까지 발개져서는 소리를 치고 있었다. 그리고
“얘들아! 참외밭 다 망가지기 전에 저기 저 개자식부터 잡자!”
세 사내는 멍청하게도 모두 한꺼번에 돌아오고 있었다. 한 명은 미향이를 잡아도 될 텐데 말이다. 상유의 입장에서는 참 다행인 일이었다.
“꺼벙한 아저씨들이 날 잡으러 오시네? 나 잡아봐라! 하하하.”
그리고는 참외밭 반대편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사내들이 큰 걸음으로 쫓아가기 시작하자 금방 서로간의 간격은 줄어들었다.
그런데 상유는 미리 봐뒀는지 오른쪽으로 급하게 선회하면서 수풀 속으로 뛰어들었다. 우거진 수풀 속은 나무들이 얽히고 섥혀 있어 작은 다람쥐 같은 상유는 잘도 빠져 나갔지만 덩치가 큰 사내들은 좀처럼 움직이는 것이 힘들어 쫓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확인한 상유는 의기양양하게 그대로 달아났다.
영악한 상유의 긴밀한 행동이었다. 장정들이 더 이상 쫓아오지 못하자 상유는 느긋하게 반대편으로 빠져 나왔다. 그리고는 유곽이 있는 비봉(飛鳳) 마을을 향해 유유자적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갑자기 큰 나무 뒤에서 아까 그 덩치가 가장 큰 사내가 몽둥이를 휘두르며 나타났다. 뒤를 돌아보니 이미 수풀 쪽에는 다른 사내 둘이 막아서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 작가의말
1화가 엉성해서 자꾸 수정을 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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