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월 천하 - 1화
보통 구대 문파에 가도 최소 장로 정도의 직급은 받을 수 있는 무위를 가진 자들이라고 봐야 했다. 그들은 상대의 강력함을 알고 일정한 진식을 형성하며 서서히 진기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그들의 검에서 흘러나오는 검기가 서로 중첩 되면서 포위된 상유의 주변을 강하게 옥죄기 시작을 했다.
“호천 소공진? 제법이기는 하다만 어리석기 그지없는 놈들이구나. 이것을 사사해준 것이 누구인지 정녕 모른단 말이냐?”
상유는 묵천 검법의 제 사식인 뇌검의 식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상유의 전신과 소청검에서 번쩍이는 벼락이 일며 주위의 강한 검기에 쏘아져갔다.
아직 본격적인 검식을 펼치지도 않았건만 내력을 운용하는 것만으로 이미 뇌전이 터져 나오며 주변의 압박을 삽시간에 갈라놓는 것이었다. 호천대의 다섯 명은 그런 현상에 등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모용세가의 주력들로서 묵천 가문인 위씨 세가와 호위 가문인 모용세가의 주종관계를 알고 있었다.
완벽한 반란에 성공한 줄 알고 이제 중원의 중심이 될 모용세가에 몸담은 자신들이 크게 부귀영화를 누릴 것이라 믿었었다. 그런데 그들의 반란은 실패였던 것이다. 그리고 주인이 부리던 종의 배덕을 알고 응징하러 왔다는 사실이 이제는 똑똑히 느껴졌다. 무적을 자랑하던 호천 검진이 너무도 허무하게 무너짐을 보고 절망을 느꼈다.
“뇌(雷)는 모든 것을 부순다. 뇌검파천!”
상유의 소청검이 상단세에서 벼락의 기운을 머금은 채로 무영부음보가 펼쳐지면서 동시에 사방을 길게 그었다. 뇌전이 번쩍거리는 검강이 마치 달무리처럼 주변을 휩쓸고 지나갔다. 아름다운 그 모습이 상대의 목숨을 앗아가는 사검의 식이라는 것이 안타까웠다.
호천대의 다섯 호법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강력한 검식으로 상유의 검강을 맞받아치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생각일 뿐 그들이 알고 있는 어떤 무공으로도 상유의 검강을 받아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잘 벼린 검에 작은 오이가 잘리 듯 다섯 명의 신형은 그렇게 깔끔하게 두 동강이 나며 스러져갔다.
그 검강은 그 뒤에 만일을 위해 대비를 하던 남은 자들에게도 그 위력이 거의 줄어들지 않고 그대로 달려들었다. 모용성과 총호법이라는 자는 급히 신형을 솟구치며 공격권에서 벗어났지만 뒤를 받치던 호천대원 다섯 명은 거의 치명상을 입었다. 어떤 자는 허리 대신 허벅지부터 다리가 완전히 잘렸고 어떤 자는 검을 들었던 팔이 어깨부터 잘려 있었다.
거의 무사로서의 구실을 할 수 없을 만큼 타격을 입었지만 그것으로 그들의 죄는 씻을 수 없나보다! 그들은 빠르게 다가오는 죽음의 사신을 피하지 못하고 맞이해야만 했다. 극성의 무영부음보로 상유는 그들 사이를 파고들면서 생의 종지부를 찍어주고 있었다. 상유가 뇌검의 식을 끌어올린 지 채 반각도 지나지 않아 열 명의 호천대는 생을 달리한 것이다.
멀찌감치 물러선 모용성은 자신도 모르게 떨리고 있는 두 손을 애써 감추기 위해 뒤로 돌려 서로 잡아야만 했다. 열 명을 아작을 낸 상유는 더 이상 말도 필요하지 않다는 듯 모용성을 향해 그대로 신형을 날려왔다. 중간에 총호법이라는 늙은이가 혼신의 힘을 다해 날아가는 상유의 옆구리를 향해 검강을 날려왔다.
그가 시전하는 검법은 바로 서문세가의 수천 무공인 수천구세검법(守天求世劍法)이었다. 묵천 가문에서 서문세가에 사사한 무공을 어찌 모용세가의 총호법이라는 자가 극성에 가깝도록 익힌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모용세가가 도를 넘어 타 문파의 무공까지 함부로 취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상유는 처음부터 모용성을 공격하면 총호법이라는 자가 이렇게 공세를 취할 것이라는 사실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모용성을 공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언제든 공세의 방향을 틀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바로 신형을 좌측으로 틀면서 바로 준비된 뇌검의 식을 펼쳤다. 아까와는 다른 굵직한 검강이 마치 거대한 화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검강대 검강의 대결! 어찌 보면 비슷해 보일지도 모르나 강기를 이루는 조밀도에서 근본적으로 차이가 나고 있었다. 화경의 끝자락에서 현경을 바라보는 사람과 이미 현경을 이룬지 오래인 상유의 검강은 비교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상유도 상대를 만만하게 보지 않고 있었다.
총호법의 검강은 상유의 검강과 부딪치는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상유의 검강은 그의 가슴 부위를 그대로 관통하고 지나갔다. 믿기지 않게도 인간의 몸에 커다란 통로가 생겨버린 것이다. 그의 부릅뜬 눈에는 아직도 믿지 못하겠다는 듯 한 표정이 역력했다. 육십 평생을 오로지 검의 한 길을 걸어온 그였다.
전대 가주가 서문 세가의 수천 무공인 수천구세검법을 구해 주어 수련을 할 때는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었다. 검을 든 무사라면 누구나 꿈꾸는 화경의 경지에 오르며 원하는 직위와 가정을 꾸리고 얼마나 만족해했던가! 그런데 그런 행복과 꿈이 이제 보니 모두 허상이고 모래 위에 쌓은 부질없는 성이었던 것이다.
태상가주인 모용중이 묵천 가문을 배신하고 하늘을 거역하는 그 때부터 이미 이런 결말은 예견된 것이었다. 하늘의 도, 인간의 도를 버리고 어찌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겠는가! 아니 오른다고 하더라도 얼마나 누릴 수 있겠는가! 칼을 거꾸로 드는 그 순간부터 어쩌면 자신들의 삶은 인간의 삶이 아니었다.
그런 상념이 그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모든 것이었다. 상유는 그의 주검을 확인하고 모용성을 바라봤다. 그런데 소가주라는 자가 자신의 가신이 죽음으로 자신을 지키는 사이 도망을 가고 있었다. 이미 수백여 장 이상 도망을 치고 있는 그 모습에 상유는 씁쓸함을 감추기 어려웠다.
“저런 비겁한 놈! 저 놈은 가만 두었어도 언제고 자신의 가문을 말아먹었을 놈이구나!”
상유는 신속하게 경공을 끌어올려 모용성의 뒤를 뒤쫓기 시작을 했다. 도망을 가는 모용성은 정말 경공 하나만은 가히 일절이었다. 상유는 천하일절이라는 천면 신투의 무영무음보와 일식천리신행을 극성으로 발휘하면서도 둘 사이의 간격을 좁히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로서는 그야말로 필사의 탈출이기 때문이었다. 혼신의 힘을 발휘해 도망을 치는 그를 따라 잡는데 무려 반 시진이 걸렸다. 그것도 앞서 가던 마차가 보이면서 겨우 따라 잡은 것이다. 모용성은 마차로 다가가며 크게 소리를 쳤다.
“자형! 도와주시오!”
쫓아가던 상유는 모용성의 말에 눈에 이채를 발했다. 그가 자형이라고 부르는 자는 바로 그의 손위 누이인 모용옥의 남편인 위지룡일 것이다. 바로 현 무림맹주의 장자이며 무황친위대를 지휘하던 자이고 지금은 가문에서 축출이 된 자이기도 하다. 그는 부친을 떠나 바로 모용세가에 몸을 의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마지막까지 마차에 남아 생을 도모하고 있었다니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어느새 마차는 멈추었고 문이 열리며 그 특유의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위지룡이 걸어나왔다. 그를 확인한 상유는 내력을 순환시키며 기를 모으기 시작을 했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나란히 선 둘을 향해 독설을 퍼부었다.
“이런, 이런! 세상의 온갖 걸레 같은 놈들은 모두 이 마차에 타고 있었군!”
“네 이놈! 감히 어디서 그런 상스런 말을 감히 나불대는 것이냐?”
“말보다 행동이 상스러운 네 놈이 말할 것은 아니라고 보는데. 오죽하면 네 애비와 가문에서 네 놈을 버렸겠느냐? 이 망종아!”
“뭣! 뭣이라고?”
“자형. 놈의 격장지계에 빠지시면 안 됩니다. 어서 합공으로 저 입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니다. 합공은 무슨! 저 놈의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교만을 내가 처단할 것이다. 처남은 지켜보기나 하시게.”
이미 상유의 무공을 확인한 모용성이 당황해하는 사이 벌써 위지룡은 자신의 최고 절기인 매화삼십육신검형을 펼치며 상유를 향해 쇄도해갔다. 화산의 최고 절기이며 무림 십대 검법에 속하는 매화삼십육신검형은 그의 부친인 위지천의 성명절기이다. 그가 검식을 펼치자 벌써 사방에 짙은 매화의 향기가 가득하며 그 사이로 검강이 줄기줄기 뻗쳐 나왔다.
이른바 서른여섯개의 검으로 피운 매화로부터 각기 다른 검강이 쏘아져 나오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본 모용성은 비로소 안심을 하는 것 같았는데 상유는 소청검을 위지룡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떨쳐내면서 자신도 매화삼십육신검형을 시전하는 것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상유의 왼손에 작고 아름다운 부채가 하나 들려져 있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상유가 펼치는 화산의 검식은 결코 위지룡의 검식에 뒤지지 않았다. 십여 장을 떨어져 있는 둘 사이에는 매화의 그윽한 향취가 퍼져 나오는 와중에 강하게 검강들이 부딪치기 시작했다. 하나씩 부딪칠 때마다 폭음과 더불어 진동이 생기면서 주변은 삽시간에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위지룡은 상유의 기운을 확인하며 재차 더욱 강한 검형을 펼쳤다. 하지만 상유 역시 그만큼의 기세로 맞받아쳤다. 또다시 폭음과 진동이 둘 사이의 공간을 진공으로 만들 무렵 누가 비겁한 자의 자손이 아니랄까봐 모용성은 슬며시 상유의 디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막 공격을 하려던 차 돌연 위지룡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물러서는 그의 앞에는 뭔가가 파닥 거리고 있었는데 그건 바로 검을 쥐고 있던 그의 오른팔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의 팔은 어깨에서부터 깔끔하게 잘려 나간 것이다. 그쯤 상유는 임무를 마치고 돌아 온 조화선을 왼손으로 받아쥐었다.
상유는 두 번째 격돌이 이루어질 때 양의공을 운용하여 왼손에 있던 조화선으로 어선술을 펼친 것이다. 고금 십대 병기라는 조화선은 소리와 기척도 없이 날아가 위지룡의 오른팔을 잘라내 버린 것이다. 검이 곧 생명인 무사에게 자신의 주체인 오른팔이 잘려나가는 것은 너무도 치명적인 일이다.
아직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새로운 무공들을 미처 펼치기도 전에 무공을 시전할 팔을 잃어버렸으니 그의 표정은 가관이었다. 그는 지금의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의 어깨에서 검붉은 피가 마구 솟구치고 있지만 그는 지혈을 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른팔을 잃은 그는 이제 화경은 고사하고 초절정의 고수만 만나도 목숨을 잃을 수 있다.
슬금슬금 다가가 기습을 하려던 모용성은 자신이 믿고 있던 위지룡이 허무하게 병신이 되는 것을 보고 일순 정신이 몽롱해졌다. 그리고 다리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 청천벽력과 같은 말이 들렸다. 그의 상태를 확인한 상유가 사자후를 터트린 것이다.
“꿇어라!”
완전히 심지가 흔들린 모용성은 아무 생각없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평소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연속적으로 심적 타격을 입으면서 심지가 약해진 것이다. 상유는 재빠르게 무영무음보를 펼쳐 그의 혈도를 짚었다. 그리고 멍하게 지혈도 하지 않고 있는 위지룡의 혈도도 제압을 하고 지혈까지 해 주었다.
“이제 그만 나와도 되오. 나희!”
말과 함께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나희가 상유의 옆에 나타났다.
“마차를 모는 놈들은 제가 제압해 두었어요. 유랑!”
“잘 했소. 그럼 이제 마차 안의 놈들을 확인해야 하는데 확인을 하면 마음이 약해질지 모르니 그냥 마차에 있는 그대로 한꺼번에 다 죽여야 하겠소!”
상유의 그 말을 들었는가? 마차의 문이 열리며 십여 명의 사람들이 몰려 나왔다. 그곳에는 비겁하게도 성인 남자가 숨어 있었다. 바로 모용성의 동생인 모용정이었다. 그리고 여동생인 모용희 그리고 위지룡의 처인 모용옥이 있었다. 그리고 모용성과 모용정의 아내 그리고 아이들 여섯 명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았건만 모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상유는 문득 언젠가 무림맹주 위지천의 아침 초대에서 봤던 위지룡의 아이들이 떠올랐다. 바로 위지일과 위지경이라는 위지룡의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이제 제법 컸을 텐데 그 아이들은 무림맹주가 거두고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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