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파락공자(擺落公子) -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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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일은 소화사태 사조께서 특별히 저를 지명하셔서 제가 나온 것이니 너무 염려하지는 마십시오. 큰 피해 없이 일이 마무리 될 것입니다. 저희는 피곤하니 그만 물러가 쉬어야겠습니다.”
“사천일검 소화사태께서 직접 지명을 하셨다는 말입니까?”
국주는 그 한마디에 희색을 띠더니 급히 일행을 숙소로 안내하라 일렀다. 안내된 숙소는 내전에 있었다. 대부분의 빈객들이 묵는 방은 외전의 표사들 숙소와 함께 있는 것에 반해 확연히 다른 융숭한 대접이었다. 정갈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독립가옥 안에 거실을 중심으로 3개의 객실과 2개의 욕실이 있는 귀빈용 숙소로 보였다. 상유는 가운데 제일 큰 방을 차지하고 양옆에 사질들이 알아서 하나씩 사용했다.
일단 대충 씻고 나서 밖으로 나오니 화려한 정원을 중심으로 건너편은 국주 일가의 사택으로 보였다. 정원을 감상하며 안으로 들어서자 작은 연못과 정자가 지어져 있었다. 정자에 올라 피곤을 씻기 위해 가부좌를 틀고 운기 조식을 하는 데 정자로 다가서는 가벼운 발걸음이 느껴졌다. 혹시나 모르기에 빠르게 운기를 마치고 눈을 떠보니 다름 아닌 서희 사질이었다. 어느새 씻고는 단정하게 차려입은 그녀가 상유를 찾아 나선 것 같았다.
“아, 서희사질. 바람 쐬러 나왔구나. 안 그래도 심심하던 차인데.”
“사숙. 그런데 저는 내일 일이 걱정입니다. 혈문이라면 결코 만만한 작자들이 아닌데 좋은 방안이라도 가지고 계십니까?”
“글쎄 굳이 방안이 필요 한지 모르겠군.”
“특별한 대안이 없이 그냥 그들과 무력으로 충돌이라도 하게 되면 저희의 세가 작아 불리하지 않을까요?”
“하하. 서희 사질!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난 그들이 무력만으로 표국을 삼키려고 했으면 굳이 이와 같은 방법을 쓰지도 않았을 거라고 봐. 그냥 다 죽이거나 쫓아내고 차지하면 되니까!”
“그럼 어떻게 나올까요?”
“하하. 내일 그들이 직접 와서 하는 모습을 보고 판단하자고. 그런데 이건 뭐야?”
상유는 다짜고짜 서희의 가슴을 두 손 가득 잡아가며 시치미를 뚝 떼고는 묻는 것 이었다. 상유의 손에는 가슴과 더불어 가슴가리개의 한쪽 끝이 잡혀 있었다. 그게 뭐냐고 묻는다는 핑계였다. 당황한 서희는 어찌할 바를 몰랐으나 상유의 장난은 계속 되었다. 아예 끌어 당겨 안더니 옷 속으로 손을 넣고는
“이게 가슴가리개라는 것이구나? 이걸 착용하면 움직이기 불편하지 않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상유를 차마 쳐다보지 못하는 서희는 눈을 감고 그냥 상유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말았다. 이제 더 이상 상유의 말은 없었다. 다만 옷깃을 벌리고는 마음껏 서희의 가슴을 부드럽게 만지고 있을 뿐이었다. 서희는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대부분의 아미파 제자들은 어려서 사문에 들기 때문에 거의 남자를 모르고 성장을 한다.
그녀들에게 성공적인 삶이란 무인으로서 강해지는 것과 또 문파 내에서 일정한 지위를 차지하여 노년을 보장 받는 것이다. 그런 삶을 살려면 애당초 결혼은 불가능한 희망사항이다. 결혼하여 문파를 떠난 이들이 있지만 떠나는 순간 이미 아미파와는 별개의 존재가 되는 부계 사회인 것이다. 하지만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녀들이 사랑도 하지 말란 법은 없었고 오히려 애뜻하고 가슴 뛰는 사랑을 하고 싶은 것이 순진한 그녀들의 바램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로 인해 추문이 생기거나 진로에 방해를 받지 않아야 한다는 이율배반적인 이유 때문에 거의 마음만 있을 뿐 감히 남자를 접하지 못하는 그녀들이었다. 그런 그녀들에게 동문인 상유와의 관계는 묘한 가능성을 주고 있는 것이었다. 결혼하지는 않지만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내인 것이다. 아무 부담 없이 말이다. 상유가 그런 그녀들의 마음을 아는 것인지는 확인은 되지 않았다.
이튿날 날이 밝자마자 최 표국주는 여자들과 무예를 익히지 않은 식구들을 표국 밖의 안가로 대피 시키고 적들을 맞을 준비를 하였다. 사시(巳時)가 되자 일단의 무리들이 조용한 표국 안으로 들어섰다. 한명의 적의를 입은 노인과 그를 호위하는 흑색 무복을 걸친 사내 넷이었다. 그들은 바로 기다리고 있는 표국주를 향해 바로 걸어왔다. 이미 창고 앞을 말끔히 정돈하고 그곳에 대형천막을 치고는 그곳에 표국의 주요인사와 상유 일행이 앉아있었다.
심히 거만해 보이는 적의의 노인은 얼굴에 훈장인 양 긴 칼자국과 날카롭게 찢어진 눈매만으로도 어디 가서든 한자리 할 만한 인상이었다. 그 노인은 천막 삼장 앞까지 다가서더니 바로 표국주를 향해 말을 건넸다.
“최표국주. 반갑소이다. 난 혈문 추혼당을 맡고 있는 혈차도수라고 하오.”
표국주는 상대하기 싫었지만 상대가 인사를 건네오니 마지못해 인사를 하며
“난 신풍표국주 최태식이오. 난 반갑다고 맘에 없는 말을 하지는 못하겠소이다.”
“허허허... 그런가? 그거야 당신 맘 이오만, 우리에게 줄 보상금은 준비 하셨소이까?”
그 말에 표국주가 대답하기를 주저하자 옆의 의자에 앉아있던 상유가 입을 열었다.
“거~ 인상 더러운 영감!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얘기를 하시는 거요?”
혈차도수는 옆에 앉아 있는 새파란 놈이 기도 안차는 말을 하자
“네 이놈! 새파란 놈이 어디서 어른에게 함부로 지껄이는 것이냐? 입을 찢어 놓기 전에 닥치거라!”
“놈?... 입을 찢어?... 내 입을?... 이런 쓰레기 같은 늙은이가 말을 함부로 하는구만”
느닷없는 상유의 시비에 우리 표국 측 사람들도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말리기에는 이미 늦었다. 적의의 사내가 눈짓을 하자 뒤에 있던 사내 둘이 상유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을 본 상유는 두 손을 번쩍 들더니
“잠깐! 여기 좋은 천막 망가지니 저기 넓은 곳으로 가자.”
달려들던 흑의의 사내들은 어이가 없었지만 정말 상유를 따라 그리로 이동을 했다. 그런데 쫓아가던 그들에게 상유는 바로 뒤돌아서며 두 주먹을 날렸다. 어찌 보면 좀 비겁한 모습이었지만 그 주먹에 맞겠나 싶었는데 웬 걸! 두 사내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맞고는 뒤로 나자빠졌다. 미처 권이 이르기 전에 두 사내는 충격을 받고는 넘어진 것이었다. 그렇다면 상유의 주먹은 이미 기를 뿜어내는 수준이라는 것이었다.
자빠진 두 흑의인은 일어서려고 했지만 중심을 잡을 수 없는지 비틀대는데 비로소 그들은 각기 맞은 어깨가 완전히 탈골되고 검을 잡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모습에 남은 두 명의 흑의인은 바로 검을 뽑더니 단숨에 삼장을 뛰어 넘으며 달려들었다. 상유는 그제야 밑에 떨어진 기다란 막대기를 하나 줍더니 두 흑의인의 검이 이르자 환영처럼 검을 피해내기 시작했다.
마치 그 모습이 길게 늘어나는 것 같은 부드러우면서도 빠른 움직임이었다. 피하면서 막대기로 몇 번 슬쩍 흑의인들을 찌르는데 그들은 뻔히 보이는 상유의 막대기를 막지도 못하고 그대로 찔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무 막대기에 몇 번 찔린 두 사내는 슬슬 느려지기 시작하더니 종래는 털썩 주저앉고야 말았다. 상유가 슬쩍슬쩍 찌른 곳은 몸의 중요 혈도들이었다. 혈도를 봉하여 그들의 내력을 제어한 것이다.
혈차도수는 이상하게 생각은 했지만 자신이 데려온 수하들이 전투불능이 되어가자 얼굴을 시뻘겋게 붉히더니 급기야 무기를 뽑아 들었는데 날이 휜 곡도(曲刀)였다. 크기며 무게가 적잖게 나가 보이는 도를 쥔 혈차도수는 무지막지한 도풍을 일으키며 상유에게 도를 휘날리며 달려들었다. 그제야 상유는 막대기를 던지더니 옆구리에 차고 있던 낡은 검을 꺼내 들었다. 그냥 연무장에 있던 낡은 검 하나를 차고 나왔던 것이다.
그 낡은 검으로 혈차도수의 곡도와 맞부딪치는가 싶었는데 그냥 약간의 힘으로 도를 흘려냈을 뿐이었다. 그 수법은 대다수의 아미파 제자들이 익히고 있는 대라수미혜검의 한 초식이었다. 강한 공격을 작은 힘으로 맞서지 않고 흘려보냄으로서 적의 공격을 무력화 시키는 한 수였다. 지금과 같은 급박한 상황에서 여유롭게 펼쳐내기에는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 보고 있던 사질들의 생각이었다.
감탄해 하는 순간 도를 흘려낸 상유의 검은 바로 연결되며 혈차도수의 왼쪽 어깨를 찔러갔다. 화들짝 놀란 혈차도수가 옆으로 미끄러지며 피했지만 그의 어깨에는 적잖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어린 상대를 우습게 본 자신을 자각한 혈차도수는 왼쪽어깨를 지혈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노부가 너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우를 범했구나. 넌 누구냐?”
“하하. 이제야 정신을 차렸소이까? 난 아미파 일대제자 위상유라고 하오.”
“어린놈이 대단하구나. 하지만 오늘 네 놈을 껍질 채 벗겨 놓고야 말겠다!”
“그래? 내 껍질을 벗겨? 흥, 두고 보자! 누구의 껍질이 완전히 벗겨지는지. 하하”
말을 마치며 상유는 이번에는 왼쪽으로 날아들으며 검을 빠르게 찔러 넣었다.
독사출동(毒蛇出洞)의 수법으로 복호대라검을 펼치는 것이었다. 이미 초식의 틀을 깬 경지이기에 특별히 정해진 검식은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의 빈곳에 정확한 타격을 주는 간결함이 내포되어 있었다. 번개같이 들어오는 검 끝에 놀란 혈차도수는 빠르게 우측으로 돌아나가며 도를 쳐냈다. 그런데 검과 도가 부딪치는 소리가 없었다. 이미 빠르게 검을 회수한 상유는 검식을 대라수미혜검으로 바꾸고는 혈차도수가 돌아나간 우측을 점하며 하체에 검을 들이대고 있었다.
이미 상대의 반응을 예측한 제 이의 공격이었다. 급하게 물러서기는 했지만 이미 왼쪽 허벅지가 길게 베여지며 피가 온통 하의를 적시고 있었다. 하지만 미처 아래를 쳐다 볼 겨를도 없었다. 어린놈이 어찌나 빠르게 연격을 펼치는지 반격의 여지를 주지 않고 바로 짓쳐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래를 베고 빠져 나간 검이 이번에는 다시 왼쪽 어깨를 찔러 들어오자 몸을 틀며 도로 맞부딪쳐갔다.
그런데 상유의 검은 다시 부딪치지 않으며 아래로 향하는 것이었다. 기겁을 하고 피하는 순간 다시 오른쪽 허벅지가 검에 깊이 베였다. 세 번의 격돌이 있었는데 이것은 순식간에 펼쳐진 연격이었다. 보통 한 초식을 나눌 정도의 시간에 이미 세 번의 타격을 입은 것이다. 그제야 혈차도수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이런 연격은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것이다. 그대로 상대가 한번 더 연격을 펼쳤다면 자신의 가슴이 베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한 것이다.
“역시 대라수미혜검은 간결한 연격에는 제격이야! 멋진 검법이란 말이야!”
“으으으... ”
혈차도수가 불안을 느낄 때 상유는 자신이 익힌 검법에 감탄을 하고 있었다.
“이제 정신이 드시오? 노인장! 아직도 백 냥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오?”
혈차도수가 순간 뭐라고 대답할 말을 떠올리지 못하고 있자 상유는 비웃음을 입에 달면서
“아직 그런 생각이 드나보오?”
말과 함께 이번에는 폭풍 같은 검기가 내리쳐 들어왔다. 태산압정(泰山壓頂)의 수법으로 여지껏 보인 검식과는 확연히 다른 기세였다. 이미 하체에 힘을 충분히 싣지 못하는 혈차도수는 있는 힘을 다해 도를 맞받아쳤지만 힘에서 밀리며 뒤로 나가 자빠졌다.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여태 자신을 이렇게 힘으로 굴복시킨 자가 얼마나 있었는가? 더욱이 상대는 아직 새파란 젊은 놈이 아닌가? 그런데 넘어져서 지금의 상황에 황당해 하는 자신에게 상유의 검이 재차 날아 내렸다. 할 수 없이 옆으로 구르며 피하는데 이와 같은 나려타곤(懶驢打滾)의 수만이 자신의 생명을 보장한다는 사실에 기가 막혔다. 구르는 와중에도 옆구리를 베었는지 고통이 밀려들었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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