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본색원(拔本塞源) - 3화
우측의 장원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 동안 오리(五里)정도 떨어진 좌측의 장원 역시 화마에 휩싸이고 있었다. 이미 혈마대 2개 전단, 천이백 명이 장원을 겹겹이 에워싸고 천천히 피를 말리듯이 외곽부터 치고 들어갔다. 그 장원에는 이제 반신불구가 된 마교주 흑천마황 사천휘와 그의 사대 호법, 막내딸인 사도옥이 지휘하는 홍화대 백 명의 고수가 중심이었다.
전투력은 형편이 없는 정보부대인 마뇌단 오십 명, 그리고 뿔뿔이 흩어졌다가 겨우 목숨을 연명하고 찾아 온 병력을 다시 흑천대라는 이름으로 재편한 이백 명이 전부였다. 처음부터 명도문의 혈마대를 상대할 수 있는 전력이 아니었다. 명도문주 암혈마제 염대철은 온순하고 평화로운 성격이지만 지금도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야말로 발본색원(拔本塞源)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의 전각을 제외하고는 모두 화마에 휩싸였고 죽지 않은 자들은 모두 혈도가 제압된 채 중심부에 있는 전각 앞에 포박되어 있었다. 이미 자신의 수하들이 모두 제압되거나 전장의 이슬로 화했건만 마교주가 있는 전각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 전각을 혈마대원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 그 앞으로 암혈마제가 말에 오른 채로 천천히 다가왔다. 한 때는 자신이 너무도 아끼고 사랑했던 마의 하늘인 마교의 교주가 천만대산의 본거지를 잃고 천리 타향에 쫓겨 와 이런 궁색한 모습인 것이 못내 안타깝기도 하고 알 수 없는 분노가 일기도 했다.
“나와라! 사천휘!”
암혈마제의 진기를 가득 담은 음성이 전면의 건물을 흔들듯 울려나오고 있었다. 그러자 잠 시 후 드디어 전각의 문이 열리며 한 대의 가마가 나타났다. 가마의 네 귀퉁이에는 네 명의 노인이 서 있었는데 그들은 손으로 잡지도 않고서 가마를 부유시키고 있었다.
그 가마의 뒤로는 사도옥이 양쪽으로 호위를 하나씩 달고 쫓아 나오고 있었다. 가마는 암혈마제의 앞에 섰는데 그 위에는 오른팔과 오른 다리가 없는 불쌍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 그는 바로 마교주 흑천마황 사천휘였다. 위청천과의 일전에서 패하며 겨우 목숨만을 부지했던 그는 내력이 흩어지며 폭삭 늙어 있었다.
그는 가마를 내리게 하고는 한발로 가마에서 내렸다. 내공이 일부 흩어지기는 했어도 그 정도 운신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는 가마에서 내리더니 암혈마제의 말 앞으로 다가 오더니 느닷없이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인 그의 입에서 처절한 음성이 들렸다,
“숙부님. 저 천휘입니다. 부디 살려주십시오.”
암혈마제 염대철은 마교의 전전대 교주인 사천휘의 조부의 이제자였다. 즉 개인적으로는 아저씨라고 부를 만 했고 실제로 어린 사천휘를 젊은 시절의 염대철은 정말 조카처럼 아끼던 시절이 있었다. 염대철이 암천독후 상희라를 사랑하여 마교를 떠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그 후 혈마교를 제창한 초기, 암혈마제는 암중으로 마교의 공격으로 인해 죽을 뻔 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지시를 내렸던 사람은 바로 자신의 사부와 사형이었던 사천휘의 조부와 부친이었다. 그런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사천휘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옛정을 들먹이며 목숨을 연명하려는 것이다.
“넌 이제 그만 모든 짐을 내려 놓거라.”
“그 말씀은?”
“마교는 더 이상 이 땅에 존재하지 말아야 한다.”
“옛정을 생각하시어 소질을 제발 살려 주십시오!”
사천휘의 처절한 간청에도 암혈마제가 묵묵부답이자 가마를 지키던 마교주의 호법 중에 앞에 선 둘이 벼락처럼 도를 뽑으며 암혈마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본시 오장 정도의 가까운 거리였기에 그들의 기습은 성공하나 싶었다. 그런데 그들의 빛살과 같은 신형은 암혈마제의 말에 이르기도 전에 사라졌다.
그리고 마치 우박이 내리듯 무언가가 허공에서 ‘후두둑’ 사천휘의 앞뒤로 떨어져 내렸다. 그건 다름 아닌 기습을 펼치던 사천휘의 호법들 중의 두 명의 육편들이었다. 어느새 잘게 잘린 그들의 육신은 피로 이루어진 비와 함께 사천휘의 전신에 떨어지고 있었다. 단지 암혈마제의 전면에는 빛을 빨아들이는 검은 도가 한 자루 떠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바로 암혈마제의 애도인 천마도였다. 천마도는 염대철의 이기어도에 의해 조정되고 있었는데 사천휘가 느끼기에는 자신이 온전한 몸이었어도 쉽게 상대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가히 자신의 호법들의 경지로는 어찌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두 명의 호법도 그것을 모르고 다시 기습을 실시했다.
또 다시 사천휘의 몸에는 피비와 더불어 잘게 잘려진 고기 덩어리들이 우수수 떨어지고 있었다. 네 명의 다져진 살점과 피는 바로 사천휘의 주변에 수북이 쌓이면서 역한 피비린내를 풍기고 있었다. 그 역겨움에 사천휘는 순간 어지러움을 느낄 정도였다. 사천휘는 혹시 몰라 뒤를 돌아보았다.
혹시라도 사도옥이 분수도 모르고 달려들어 개죽음을 당할까 싶어서였는데 그런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바로 뒤에 서있는 사도옥은 그 당당함은 어디로 갔는지 온 몸을 사시나무 떨듯 하고 있었고 창피하게도 소피를 지렸는지 아래가 흥건했는데 그것을 스스로 인식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암혈마제의 무심한 시선이 사도옥에게 이르자 그녀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네 년이 내 사위를 죽음으로 내몰았었다는 그년인가 보구나?”
“......”
“네 애비 옆에 같이 꿇어라!”
사도옥은 마치 말 잘 듣는 강시처럼 살점이 널브러진 사천휘의 옆자리에 꿇어앉았다. 그리고 그녀의 호위들 두 명은 순식간에 혈마대 조장들에게 제압되어 다른 포로들과 같이 꿇려졌다. 암혈마제는 사천휘와 사도옥은 아예 신경도 쓰지 않고 두 명의 혈마대장에게 싸늘한 어조로 지시를 내렸다.
“마교의 잔당들은 포로로도 필요가 없다. 모두 없애라!”
‘헉!’
이미 승패가 결정 되어 포로로 잡은 자들을 모두 죽이라니 이런 경우는 들어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암혈마제는 마교의 잡초와 같은 끈질긴 생명력을 알기에 결단을 내린 것이다.
반각이 지나기 전에 살아 있던 백오십 명의 마교 잔당들이 모두 시신으로 화했다. 대제자인 이치상에게도 잔정을 베풀지 말고 모두 처형하고 지휘자들의 수급만을 챙기라고 명을 내려둔 상태였다. 그렇다면 이제 마교의 세력 중에 남은 것은 앞에 굻어 앉아있는 단 둘 뿐이었다.
바로 마교주인 사천휘와 그가 늦게 얻은 막내딸 사도옥이었다. 어느 순간 무언가 번쩍 하더니 사도옥은 자신의 우측에 앉아 있던 자신의 아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사도옥은 차마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그 결과가 너무도 두려운 것이다. 다만 조금 뒤에 무언가 쿵하고 넘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몸이랑 부딪친 것이 앞으로 굴렀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부친인 마교주 흑천마황 사천휘의 수급이었다. 부릅떠진 그 눈은 아직도 살아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자의 수급을 챙겨라!”
암혈마제의 지시에 혈마대 조장 중에 한 명이 사천휘의 수급을 작은 상자에 담았다.
그 수급은 자신을 그렇게도 아끼던 부친의 머리였는데 사도옥은 이 사실이 믿기지 않는 것인지 멍한 얼굴로 그냥 앞을 쳐다보고 있을 뿐 이었다.
“네 년의 처리는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맡길 것이다.”
“......”
“저 년을 확실하게 제압한 후, 든든하게 압송하여 나희에게 보내거라!”
그 시간 두 장원의 태산 반대편으로 향하는 일단의 무리들이 있었다. 바로 몽월문의 정예 용무당 천 명이 넓게 포진하여 모용세가를 조여들고 있었다. 그 후면에는 용무상 가득인 호법이, 그리고 좌측에는 생사집혼 장로가, 우측으로는 무영추혼 장로가 병력을 인솔하고 있었다.
그리고 전면은 호월원의 병력을 이끄는 무산일화 장로가 나서고 있었다. 이미 모용세가는 몽월문의 이 기습을 눈치를 채고 있을 것인데 일체의 반응도 보이지 않고 단단히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다. 이미 몽월문의 병력들은 모용세가 장원의 벽에 모두 다다르게 되었다. 거친 반격을 기대하던 용무단의 병력들은 사실 좀 실망스러웠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상유는 드디어 공격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일제히 거대한 장원의 담을 넘어 들었는데 거기서부터 용의주도하게 준비한 모용세가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쥐죽은 듯 웅크리고 있던 모용세가의 병력은 이미 천 명이라는 주력 부대를 평음으로 보낸 후라서 오백 명의 직계와 방계 제자들뿐이었다.
그들은 모용세가의 호천 무공으로 단단히 무장이 되어 있어서 담을 넘은 초기에는 급격히 몽월문의 무사들이 밀리고 있었다. 하지만 호월원과 호강단이 밀고 들어가는 정문이 분쇄가 되자 서서히 세력의 균형이 맞춰지기 시작을 했고 남은 병력들이 모두 담을 넘어서자 오히려 몽월문의 병력들이 수를 앞세워 밀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용무당의 무사들은 소몽월진을 이용해 조를 맞춰 큰 부상자 없이 연쇄적인 파상 공격을 펼치기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수에서 우세한데 차륜전을 펴고 있으니 개개인의 능력이 뛰어나도 결국은 물러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거기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호강단이 명령에 맞춰 적재적소에서 활약을 하니 그들이 버틸 재간은 없었다.
축시(丑時)에 시작한 공격은 지루한 공방 끝에 서서히 날이 밝아오는 묘시(卯時)가 되자 승부의 축이 거의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몽월문의 무사들은 사상자는 거의 없었지만 전투 불능 상태가 되어 뒤로 빠진 인원이 이백 명 정도 되었는데 모용세가의 병력들은 그만큼의 수가 죽었을 뿐 아니라 남은 자들도 온전한 자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어느 순간 일정한 신호가 울리고 모용세가의 남은 병력들은 일제히 내전으로 들어서며 문을 다시 걸어 잠그고 수비태세를 갖추었다. 병력들이 쫓아 들어가려고 할 때, 상유는 사자후를 터트려 일단 병력을 멈추었다. 여태껏 저들이 보여 준 모습은 상유의 예상보다 많이 부족했다. 더 치열한 무언가를 준비했을 것이라 믿었는데 뭔가 석연치 않은 것이다.
“할아버님. 어찌할까요?”
“그 영악한 모용중이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무언가 숨겨진 비책이 있을 것이 분명한데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구나.”
“그럼 제가 직접 나서 보겠습니다.”
상유는 말과 함께 말에서 그대로 선 채로 모용세가의 내전 정문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어느새 그의 오른손에는 소청검이 들려 있었다. 정문 십 장 앞에 이른 상유는 검에 묵천 검법의 제 삼식 중에 하나인 파검(破劍)을 운기했다. 소청검의 주위로 번쩍이는 뇌전이 줄기줄기 뻗어 나오는 것을 보니 파검에 태청풍뢰검을 섞은 것 같았다.
상유의 소청검이 서서히 정문을 향하자 마치 긴 번개가 하늘로부터 이어지듯 삼 장 높이의 거대한 문에 떨어졌다.
‘콰과과과 쾅!’
이미 인간의 경지로 보이지 않는 상유의 무위에 몽월문의 무사들은 물론이고 장로들까지 감탄을 터트리고 있었다.
철판으로 덧붙인 거대한 정문이 벼락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서 사방으로 비산을 했다. 그리고 그 비산하는 조각들 사이로 내전의 모습이 서서히 눈에 들어왔다. 결전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라고 여긴 상유는 특이한 내부의 모습에 눈에 이채를 띠었다. 내전의 중앙 광장에는 쫓겨 들어간 모용세가의 병력들이 둥글게 자리한 사이에 십여 명의 사람이 서 있었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땅에 깊숙이 박힌 네 개의 기둥이 있었고 그곳에는 처참한 몰골로 사지가 묶인 네 사람이 있었다. 도대체 이놈들이 무슨 배짱으로 이렇게 하고 있나 분노가 인 상유는 공격명령을 내리기 위해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그 때 뒤에서 위청천의 떨리는 음성이 들려왔다.
“유야. 잠시 멈추거라.”
상유는 동작을 멈추는 순간 할아버지의 음성에서 무언가 알 수 없는 비애를 느끼고 돌아보았다. 마침 말을 타고 있던 위청천이 빠른 속도로 상유의 옆에 날아 내리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좀처럼 보기 힘들게 붉어져 있었다.
- 작가의말
홀인원에 밀려
또다시 트리니티 밀려
우리 상유 얼굴 보기가 너무 미안하네요^^
한동안 안썼더니 저도 흐름을 잃어버려
5600자 쓰는데 무려 5시간이 걸리네요.
곧 완결 할 것 같아 너무 마음을 놓고 있었나 봅니다.
죄송한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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