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파국(破局) - 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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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상유는 포권을 한 후 돌아서 맹주전을 나오고 있었다. 그의 떠나는 모습을 위지천은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상유가 나가고 나자 바로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두 아들이 맹주전으로 들어왔다. 차분한 위지궁과는 다르게 위지룡의 안색은 상당히 긴박해 보였다.
“아버님. 그가 무슨 말을 하고 갔습니까?”
“그것이 중요한 것이냐?”
“네?”
위지룡은 무언가 많이 바뀐 아비 위지천의 기색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밀려들었다.
“넌 모용 세가를 알고 있느냐?”
“네?”
“바로 말하라! 알고 있느냐?”
“저, 그것이...”
“이런 못난 놈 같으니라고! 이 아비에게도 말을 하지 않고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이냐?”
“도대체 그 놈이 무슨 말을 한 것입니까?”
“이런! 네 놈은 지금 이 애비의 말이 들리지 않는 것이냐?”
“제 처의 가문이 바로 모용 세가입니다.”
“뭐? 큰 며늘아기의 성이 용씨가 아니라 모용씨라는 말이냐?”
“네. 그렇습니다. 아버님.”
“아! 이를 어찌 한단 말이냐!”
위지천의 한탄 어린 한숨에 영문을 모르는 정무원장 위지궁은 얼굴이 벌게져있는 자신의 형 위지룡을 질책어린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그런 시선에 위지룡은 스스로 자신의 허물을 돌아보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부친에 대한 존경과 사랑은 어디에 갔는지 그의 표정은 슬슬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벌떡 일어서더니 악에 받친 듯 서슴없이 말을 이었다.
“전 그 놈을 두고 이대로 두고 볼 수 없습니다. 이후 저는 제 길을 가고야 말 것입니다.”
“뭐라고!”
부친의 당황스런 대답에 자신의 말을 마친 위지룡은 순식간에 경공을 발휘해 부친의 앞에서 떠나고 있었다.
위지천에게 떠나는 위지룡의 모습은 좀 전에 당당히 걸어 나가던 상유의 모습과 비교가 되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아려오고 있는 것이었다. 위지천은 외모부터 무공에 대한 자질까지 그대로 자신을 빼어 닮은 장자 위지룡을 가히 절세의 고수가 되어 가문을 빛낼 아들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커가면서 위지룡은 성격부터 다소 편협해 지기 시작했다.
무림맹주의 장자라는 배경과 나이에 걸맞지 않는 높은 무공은 그를 거만하게 만들기에 충분란 조건이었다. 어린 나이에 자신의 힘과 배경을 이용해 사람들을 당혹하게 만드는 상황들을 연출하며 즐기던 어느 날 위지룡은 씻지 못할 짓을 벌이고 말았다. 자신의 호의를 무시한 여인을 집요하게 따라가 강제로 범하는 추행을 벌인 것이다.
그런데 그 여인은 호북성의 작은 문파인 호령문의 문주의 여식이었다. 문제는 그 후의 행동이었는데 이를 알고 따지고 드는 호령문주를 달랜 것이 아니라 단 칼에 베어 버린 것이었다. 그 여식을 첩으로 들여도 되건만 감히 자신에게 따지는 모습이 건방지다며 상대를 죽여 버린 일은 굉장히 심각해 결국 정천무황의 귀에 들어가고 말았다.
이 상황을 전해들은 위지천은 불같이 노했고 위지룡을 가문에서 파문하려고까지 하였다. 부인의 만류로 겨우 무마가 되었지만 그 후로 위지룡은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더 엇나가기 시작했다. 다만 철저히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며 음험하게 변한 것인데 그것이 더욱 위지천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속적으로 엽기적인 행동을 보이는 것을 위지천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상하게 변해버린 성격은 주기적으로 광기를 드러내기도 했는데 그나마 친위대가 나서서 무마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도 정식으로 혼인을 하며 그래도 많이 나아져 안심을 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위지천과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다.
자신의 기행에 대한 아비의 불안한 시선은 늘 위지룡을 짓눌렀고 그에 대한 돌파구를 마련해 준 것이 바로 처가인 모용 세가였다. 혼인 후 나아진 것이 아니라 모용 세가에서 나서서 그의 충동과 엽기적인 행동을 감춰 준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나마 무림맹에서 지위를 유지하고 처신하는 것이 가능했는데 그것마저도 사실 부친의 뜻과는 맞지 않는 것이었으니 위지천은 자식을 올바로 교육하지 못한 마음에 가슴이 쓰라렸다.
최근 들어 가문을 걱정하고 앞날을 염려하는 모습에 위지천은 장자인 위지룡을 조금씩 신뢰하기 시작했는데 상유의 말을 듣고 아연실색하게 되었던 것이다. 상유는 많은 것을 말하지는 않았다. 다만 패천문이 모용 세가라는 집단의 다른 모습이라는 사실과 그들이 암중으로 위지룡의 불의를 감춰주고 있었다는 간단한 내용이었다.
위지룡의 불의를 그들이 비호했다면 위지천은 이제 모든 일의 전면에 나설 명분조차 없는 것이다. 자칫하면 자신을 포함한 북부 무림의 세력과 몽월문을 위시한 남부 세력이 충돌한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충돌을 조장한 세력이 있었고 그 세력에 자신도 모르게 동조하였다는 사실을 상유를 통해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한 내막을 알면서도 스스로 독대를 하러 온 상유는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이 자리에 나온 것이니 그 또한 미안한 상황이었다. 상유는 단지 몽월문과 모용 세가가 모두 무림맹에 적을 둔 상황에서 부딪친다면 연결된 수많은 문파들이 참여하여 죄 없는 희생이 있을 것이니 이를 걱정하며 적정한 타협을 하기 위해 온 것이다.
몽월문은 그들과의 분쟁 기간 동안 자발적으로 출맹을 할 것이니 패천문을 무림맹에서 탈퇴시켜 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상유가 요구한 것들은 어느 것 하나 틀리지 않은 것이다. 위지천이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두 문파가 충돌한다면 엄청난 세력을 이미 갖추고 있는 몽월문이 절대 불리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위험을 감수하고 자신을 설득하기 위해 나선 상유 앞에 위지천은 얼굴이 붉어졌던 것이다. 위지천은 자신의 가문조차 제대로 건사하지 못한 깊은 자책감에 마음이 어지러웠다. 그렇다고 지금의 기분대로 모든 것을 내던지고 물러설 수도 없었다. 고희를 앞둔 이 나이에 한평생 정의와 평화를 쫓아 온 자신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점심 식사가 끝난 후 긴급히 소집된 장로회의가 무림맹 장로원에서 개최되었다. 대다수의 장로들은 내일 무림맹주의 고희연이 있는 이 상황에 급작스럽게 소집된 장로회의에 놀란 마음으로 자리를 하고 있었다. 육파일방과 사대세가로 줄어든 일급 문파의 장로 열한 명과 맹주를 포함한 맹주가의 장로 셋, 총 열네 명의 장로와 긴급발의를 한 몽월문주가 둘러앉아 있었다.
평소에 항상 밝은 표정이고 겸손한 몽월문주의 진지한 표정과 막 자리에 들어서는 무림맹주 위지천의 표정은 똑같이 굳어 있어서 장로들은 흔한 덕담 한 마디 나누지 못하고 있었다. 누가 나설 것도 없이 맹주가 먼저 말을 꺼냈다.
“본 맹주는 오전에 몽월문주의 독대를 통해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소이다.”
맹주의 발언에 장로들은 일제히 맹주와 상유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둘의 독대에 무슨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많은 관심을 불러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몽월문주는 자신의 위씨 가문과 다른 문파 하나가 복잡한 연원이 얽혀있음을 밝혔고 이에 상관없는 문파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한시적으로 출맹할 것임을 밝혔습니다.”
청천벽력과 같은 발언이었다. 현재 무림맹을 지탱하는 가장 큰 축 중에 하나인 몽월문이 한시적이라지만 무림맹에서 출맹을 한다는 것은 모두가 생각도 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한 분위기를 정돈하기 위해 상유가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다.
“잠시 집중해 주십시오! 여러분들의 염려와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한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한시적으로 출맹을 하기는 하지만 기존에 우리 몽월문이 감당하던 재정 지원은 그대로 이어 나갈 것이며 감당해야 할 의무도 소홀히 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필요없는 피해를 줄이기 위한 것이니 지나친 염려를 거두시기 바랍니다.”
이 말에 먼저 반응을 한 것은 성격 급하고 상유를 너무도 아끼는 사천 당가의 당문열 장로였다. 그는 벌떡 일어서더니 급하게 말을 이었다.
“몽월문주의 고마운 발언에 먼저 감사를 표하오. 그런데 도대체 어느 문파가 감히 몽월문에 도전을 한단 말이오? 이것은 곧 우리 모두에 대한 도전이 아니오이까?”
“당 장로님! 그건 아닙니다. 강호의 은원은 생각보다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전 이런 상황에서 두 문파를 제외한 다른 문파에서 중립을 유지해 줄 것을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은원을 따지고 협력을 하다 보면 곧 전격적인 대전(大戰)으로 바뀔 것을 우려하는 것입니다. 마교의 세력을 몰아내며 이미 많은 상처와 고통을 겪은 문파들이 다시 전화에 휩싸이는 것을 묵고할 수 없어서입니다.”
상유의 사려 깊은 발언에 좌중은 잠시 침묵에 빠져 들었다. 과연 몽월문과 대적하는 문파가 어딘지 모르는 상황에서 함부로 말을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이어 무림맹주가 결단한 듯 굳건한 목소리로 선언하듯 말을 했다.
“몽월문주의 출맹을 허하며 하루 빨리 다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라오. 그리고 이에 더해서 패천문을 동시에 무림맹에서 파맹할 것임을 선언하오.”
“패천문!”
“패천문?”
드디어 상대가 알려졌다. 그 반응은 의외로 컸다. 과연 호북성 위쪽의 문파들의 파견 장로들의 표정은 생각보다 심각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것을 빠르게 파악한 상유는 잘라서 말을 이었다.
“패천문은 본시 모용 세가라는 저희 위씨 세가의 호위 가문이었습니다. 천년을 이어온 호위 가문이 삼십년 전 저희 조부께서 가문을 떠나 있던 사이 패역무도하게 본가를 침습하여 일가를 몰살한 것입니다. 이 말을 드리는 것은 부디 두 가문의 은원을 해결하는 일에 다른 문파들이 끼어들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입니다.”
그리고 상유는 위지천에게 다가가 그의 결단에 깊은 감사를 표하며 포권을 취하고 당당히 걸어서 장로원을 나섰다. 모두가 흥분하여 분주히 애기들을 나누는 사이 위지룡은 붉어진 얼굴로 자신의 아비인 위지천을 불경스럽게 노려보더니 휙 돌아서 사라졌다. 그것을 쳐다보는 위지천의 마음은 갈가리 찢기고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발언을 아끼지 않았다.
“본 맹주는 단호히 선포하오. 두 문파의 은원에 사사로이 끼어드는 문파가 있다면 무림맹의 화살을 받아야 할 것이오. 그리고 오늘 이 자리를 빌어 무황 친위대장 위지룡을 직위 해제하며 본가에서 파문함을 밝히오.”
말을 마친 위지천이 장내를 벗어나자 위지궁은 급히 부친을 따라 함께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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