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무림맹(武林盟) - 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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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는 네 남자들은 오대세가의 직계 자식들이었다. 다들 무림맹에서 나이에 비해 낮지 않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주목 받는 후기지수들이었다. 또 소위 선택받은 자들이기도 했다. 그리고 두 명의 여자들 역시 대단한 내력을 가진 처자들이었다. 한명은 사천 당가주의 무남독녀 당서화였다. 알려진 바로는 당가비전을 고루 섭렵한 무림 오화 중 제일 높은 무공을 소유한 처자였다.
여자 치고는 상당한 큰 신장이었지만 균형 잡힌 몸매와 치장 그리고 당문의 무남독녀라는 배경 때문에 상당히 많은 남자들의 선망의 대상인 그녀였다. 그 옆에 앉은 자그맣고 이목구비가 뚜렷하여 전형적인 미인인 처자는 현 무림맹주 정천무황 위지천의 늦게 본 막내딸 위지랑이었다. 어미가 화산 장문인의 딸인 유명했던 강호일미 처용화였으니 그 미모를 빼다 박은 그녀는 무림 오화 중 미모와 배경에서 제일 앞선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런 그녀들의 눈빛이 유독 빛났다. 서로 인사를 하는 자세부터 남달랐다. 그것은 당소저를 연모하는 제갈후의 감정에 못을 박았다. 유독 덩치가 작은 제갈후가 자기보다 큰 당소저를 마음에 담은 것은 이채로운 일이었다. 어느 누가 여자의 질투가 무섭다고 하였나? 남자의 질투 또한 결코 이에 뒤지지 않음일지니...
식사를 마치자 상유는 소향과 함께 아까 냉혈마도와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기혈문의 위치를 물었다. 그런데 여태까지 미소를 머금고는 아무 말 없이 앉아있던 위지랑이 옥음을 내며
“위문주께서는 정말 기혈문으로 가실 것인가요?”
“네. 약속을 했는데 가지 않으면 그가 실망할 것 아닙니까?”
“그럼 그 곳은 소녀가 안내를 해드리고 싶군요. 괜찮으시지요?”
“물론입니다. 그런데 소저께서는 일행이 있지 않으십니까?”
그 말에 위지랑이 사람들을 둘러보자 사람들은 앞다퉈 고개를 끄덕였다. 당서화는 나서며
“어머 랑매! 그렇지 않아도 우리도 궁금해서 가 볼 생각이었어. 거기가 용담호혈이긴 하나 이 무한에서 우리를 함부로 할 만큼 간이 큰 무리들은 없을 거야. 빨리 가자고. 호호호”
“그런데 위 문주께서는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는 화경의 고수라는데?”
제갈후의 걱정인지 못미더움인지 모를 말을 들은 상유는 빙긋이 미소를 보이며
“그도 두 손 두 발 가진 사람일진데 뭐 걱정할 것이 있겠소? 걱정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말이오. 하하하”
느긋한 상유가 앞서서 나가자 위지랑은 재빨리 옆에 서며 길을 안내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밖에는 무림맹 깃발을 단 사두마차가 대기 하고 있었다. 위지랑의 안내로 상유가 마차에 오르자 일행들도 마차에 올랐다. 마차가 크기는 하지만 여덟 명의 인원이 타자 비좁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자 소향은 상유에게 가슴을 바짝 붙이고는 갖은 아양을 떨었다. 그 모습에 다른 이들은 혀를 내둘렀지만 둘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가운 행동들을 하고 있었다. 여하튼 마차는 기혈문을 향해 힘차게 출발을 하였다.
기혈문은 항구의 서쪽으로 이각가량 달리자 나타난 낮은 구릉위에 제법 모양새를 갖춘 장원이었다.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는 그곳은 사실 혈마교의 별장 겸 연락처의 역할을 하는 고즈넉한 산장이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냉혈마도는 무한에 볼 일이 있어 왔다가 번거롭게도 식당에서 작은 분쟁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분쟁보다 오히려 흥미를 느낀 사내를 만나게 되자 비무를 핑계로 초대를 한 것이었다.
기혈문의 정문에 무림맹의 깃발을 단 마차가 서자 경비 무사들은 크게 긴장을 하고는 마차를 주시했다. 걱정하던 마차에서는 여러 명의 선남선녀들이 내리고 그 중 한 아리따운 여자가 다가서서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말을 했다.
“냉혈마도님과 약속이 되어 있어서 왔습니다. 파락공자 몽월문주께서 당도하셨다고 전해 주십시오.”
그들은 놀라서는 바로 안에 기별을 넣었다. 그러자 잠시 후 총관으로 보이는 중년인이 나와서는 일행들을 안으로 안내를 했다.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안은 수수하게 꾸며져 있었다. 자연적인 모습을 그대로 살린 조경과 오랜 풍상이 느껴지는 기와로 지은 전각은 운치가 넘쳤다. 상유는 이와 같은 모습이 무척 좋게 느껴졌다. 역사와 전통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굉장히 값진 재산이라는 생각을 하며 다시 내전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걸었다.
오솔길이 끝날 무렵 나타난 작은 정원에는 벌초를 잘한 풀밭이 있었고 그 풀밭의 중앙에는 작은 연못과 그 위에 운치 있게 지어진 정자가 있었다. 그 정자에는 지금 일남일녀가 차를 마시고 있었다. 상유가 오는 것을 확인한 냉혈마도는 정자에서 내려서며 반겼다.
“초대한 젊은 친구가 누군지 궁금했는데 이제야 위병에게 들어서 알게 되었소이다. 귀하께서 항간에 그토록 유명한 파락공자 몽월문 위 문주셨구려. 하하하”
“이거 사람을 초대를 하시곤 이렇게 세워만 두십니까?”
둘은 마치 오랜 지기를 만난 것처럼 스스럼없이 대하고 있었다. 같이 온 사람들은 이들이 아까 처음 만난 사람들인지 의아해 하며 같이 자리에 앉았다. 냉혈마도는 격식을 차려 두 손을 모아 포권을 하며 상유에게 인사를 건네는데 내용이 상유의 귀에 박혔다.
“나는 이미 사황문 나형에게 위 공자에 대해 얘기 많이 들었소이다. 난 이치상이오.”
자기소개를 하며 정식으로 인사를 건네 오자 상유도 두 손을 마주 잡아 포권을 하며
“허허 이런 나형을 아시는군요. 저의 유일한 벗인데 이곳에서 그의 이름을 들으니 저도 나형이 그립습니다. 전 위상유라고 합니다.”
둘 사이에는 묘하게도 나한걸이라는 사람이 매개가 되자 일절 적의가 없는 사이가 되더니 금방 호형호제 할 만큼 친하게 어울리는 것이었다. 이치상은 아랫사람에게 연회를 준비하라 이를 정도였다. 멀죽이 있던 사람들이 의식이 되자 상유는 일행들을 소개 했고 이치상도 옆에 있던 다소 차가운 그러나 고운 여인을 소개했다. 그녀는 그의 사부인 혈마교주의 수양딸인 고소운이라는 처자였다. 둘은 혼약한 사이라고 한다.
“부럽습니다! 이런 미인과 혼약을 하시다니 굼벵이도 꿈틀대는 재주가 정말 있나 봅니다. 하하하.”
“굼벵이? 좋네! 내가 자네에 대해 들은 풍문들이 주로 염문이라는 걸 알고 하는 말인가? 어찌 재주가 좋은지 웬만한 여자들은 순식간에 치마끈을 풀게 한다는데 사실인가? 하하하”
치고 받는 그 말에 주위에 있던 여자들은 얼굴을 붉혔지만 단 한사람 소향이만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미 수차례 자신이 확인 바도 그랬으니 뭐 얼굴 붉힐 일이 아닌 것이다.
“뭐 그런 말씀을...하하. 제 조상님들 중에 전생에 나라를 구한 분이 계신 지 지독히도 운이 좋아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막말을 하실 거면 우리 나한걸 그 친구와 더불어 모두 벗이 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하하하. 정파인인 자네가 나와 벗이 되어도 되겠는가? 나야 환영이지만”
“아니, 정이고 사마고 간에 다 사람 사는 모양 아니겠습니까? 전 그런 것 보단 내 등 따신 게 더 중요한 우매한 중생인지라. 하하하”
둘은 의기가 투합 되었는지 갑자기 일어서서는 서로를 끌어안고는 등을 두드렸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전혀 의식하지 않는 행동이었으나 그 당당함에 끌리는 두 여심이 있었다.
물론 비딱한 시선도 있었다. 혈마교도와 친구가 되다니 저 놈 미친 거 아냐 라는.
“자 그럼 우리 식사 전에 몸이나 좀 풀어보실까? 친구!”
“좋지요? 저도 한 오 년간 벽만 쳐다봤더니 제 솜씨가 궁금하던 차였습니다.”
“그런가? 오 년 폐관이라. 이거 조심해야겠는 걸! 살살 하자고.”
둘은 정자 아래로 내려와 삼장 여를 두고 마주섰다. 그리고는 각자의 애검을 뽑아 들었다. 이치상은 마치 몸을 풀듯이 가볍게 검을 휘감으며 짓쳐 들었다. 그런데 그와 함께 웅혼한 검기가 일어나 바람을 일으키며 상유에게 쏟아져 들어왔다. 그의 성명 절학인 철혈검법(鐵血劍法)이었다. 가벼운 손놀림만으로 거대한 검기를 쏟아낸 것이다.
상유는 들고 있던 소청검을 검기의 바람 속에 역시 가볍게 찔러 넣었다. 그러자 검에서 유형의 검기인 검경이 마치 연기가 피어나듯이 흘러나오더니 순간 빠르게 검기의 장막을 찢기 시작했다. 다가서던 이치상은 크게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작은 검경이 이와 같은 폭발적인 힘으로 바뀌며 검기의 막을 찢을 지 예상을 못한 것이다.
“이야! 놀랍네. 위형. 살살 하자니까! 사알 살~~ 하하하”
말은 그렇게 하지만 이치상은 전신의 내력을 거의 팔성이상 검에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한순간 치켜 든 검이 곧장 상유를 향해 뻗어졌다. 그리고는 강한 푸른색의 검경이 밀리는 파도처럼 힘차게 달려 나가는 것이었다.
비무를 구경하는 사람들의 시선은 놀라움에 크게 떠졌고 입은 자신도 모르게 벌어졌다. 아직 이십대인 저 둘은 지금 화경의 경지인 검경을 마구 쏟아내고 있지 않은가! 이는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비슷한 또래의 자신들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한 경지였다. 그런데 이 둘은 자연스럽게 그것도 비무의 형태로 즐기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엄청난 기세로 밀려드는 이치상의 검경에 상유는 즐겨 쓰던 복호대라검법으로 맞섰다.
“복호쟁점(伏虎爭點)!”
역시 한 줄기의 검경이 소청검의 검 끝에서 튀어나왔다. 그런데 아까와는 다른 기세였다. 진청색을 띠는 검경은 이치상의 검경보다는 폭이 좁지만 더 진한 빛깔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밀려드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작은 구멍으로 빠져 나가는 빛처럼 길게 이어질 뿐이었다.
두 검경이 부딪친 순간! 보던 사람들 모두는 엄청난 빛의 폭사에 눈을 감았다. 그리고 들려오는 굉음!
‘콰콰콰콰 쾅!!!’
일행들이 앉아 있던 정자가 심하게 흔들리고 멀리 고풍스럽던 전각의 기와들이 일부 떨어져 내려 바닥에 부서졌다. 둘의 주변에 자욱하던 먼지의 연기가 서서히 가라앉자 일행들은 눈을 비비며 우열을 확인하고자 했다.
그런데 먼지가 걷힌 그곳엔 어느새 검을 접고 서로의 손을 맞잡은 두 사람이 크게 웃으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오늘 난, 전에 나형이 한 말들이 거짓임을 알았네. 사실 들을 땐 말보다 모자랄 것이라 여겼는데 오늘 보니 실제보다 말이 부족하지 않은가 말일세! 나형을 보면 내 가만두지 않을 걸세. 하하하”
“무슨 말씀을요. 오늘 이 위모는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제가 고민하던 부분들이 오늘의 비무로 많이 확인이 되었으니 큰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한 잔 거하게 쏘겠습니다. 아시죠? 제가 환희문에서 한 자리 제대로 한다는...”
말을 하다말고 상유는 그의 약혼녀가 있음을 알고는 급히 말을 멈추었다. 그런데 오히려 고소운이라는 이치상의 약혼녀는 푸근하게 웃으며 대처를 하는 것이었다.
“전 오늘 상랑께서 좋은 벗을 사귄 것 같아 좋기만 할 뿐입니다. 남자들에 세계에 관여할 생각은 없으니 파.락. 공자께서는 저를 신경 쓰지 마세요. 호호호”
전체적인 말의 맥락은 알겠는데 상유의 별호에서 파자와 락자를 힘주어 끊어 말하는 그녀를 보며 둘은 크게 웃었다. 이어진 작은 연회에서 둘은 무공과 삶에 대한 많은 담론을 나누었다. 옆에서 가만 듣기만 하는 사람들에게도 적잖은 도움이 되는 말들이었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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