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나의 밥, 혈문 -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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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네 명의 기녀들이 분냄새를 풀풀 풍기며 날아들듯이 사뿐히 들어오더니 어여쁜 절을 하고는 앉았다. 뇌쇄적인 웃음을 보이며... 하지만
“너 째진 눈! 나가라. 난 눈 째진 것들을 보면 술이 안 넘어간다.”
안 그래도 자신의 단점을 가리기 위해 화장으로 눈을 보정했건만 젊은 놈이 귀신같이 집어내자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그 기녀는 휙 돌아 나갔다.
“너 누런 이! 나가라. 난 이가 누런 여자는 질색이다.”
자신이 쫓겨나지 않은 것에 안도하며 웃음을 짓던 이가 누래서 고민인 기녀는 당황하며 나갔다. 이제는 웃지도 못했다. 까다로운 손님인 것이다. 조마조마 마음을 졸이는데
“너 똥배! 나가라. 난 옷으로 가려도 다 보인다. 그런 불균형한 몸매, 난 볼 수가 없다.”
남은 두 여자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아랫배 안 나온 기녀가 어디 있겠는가? 그녀들은 밤새 술과 안주를 먹어대는데 감춰진 몸매가 좋을 턱이 없는 것이다. 서로 쳐다보던 중 한 명의 기녀가 나갔다. 기세에 밀린 것이다. 그녀가 나가고 나자
“아, 난 네 얘기였는데 쟤도 똥배가 장난 아닌 모양이구나. 나가라. 그리고 총관 들어오라 일러라.”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것에 기뻐하던 그녀는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나갔다. 잠시 기다리자 노련해 보이는 중년인이 한 명 들어왔다. 보기에도 수완이 좋아 보이는 그는
“안녕하십니까? 총관 하일두입니다. 귀한 손님께서 오셨는데 대접이 미흡하여 송구합니다. 혹시 특별히 원하시는 아이나 취향이 있으시면 참고하겠습니다.”
“아하! 하총관 이시구려. 인상이 아주 좋소이다. 나의 취향이 각별한데 이곳에서 그것이 가능할지 모르겠소?”
새파란 놈이 감히 하대를 하며 비아냥댔지만 총관은 투철한 사명의식의 소유자였다.
“공자께서도 인상이 너무 좋으십니다. 취향을 말씀해 주시면 제가 호남성을 다 뒤져서라도 잡아 대령하겠습니다. 말씀 하시지요!”
“하하 그렇소? 일단 이마는 곧고 코는 오똑하며 입술은 앵두처럼 붉고 작으면 좋소. 눈은 마치 흑요석마냥 검으며 눈동자가 반짝이면 더욱 좋지요. 머릿결은 윤기가 흐르며 은은한 향이 멀리서도 묻어나야 하고 목은 하얗고 길어야 하고 어깨는 가녀리며 목울대가 있으면 안 되오.”
“아! 네에...”
“특히 쇄골이 드러나야 보기가 좋겠지요. 신장은 오척반 정도가 가장 적당하고 허리는 한줌 아니 한 팔에 둘러질 정도면 좋겠소. 문제는 가슴인데 가슴은 쳐지지 않으며 적당한 크기에 유실이 너무 검으면 싫다오. 그리고 둔부는...”
듣고 있던 하일두는 점점 인상이 구겨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 정도면 하던 것이 젊은 놈의 요구 조건은 한이 없었다. 이대로라면 월궁에 항아를 데리러 가야 할 것이었다.
더 이상 말을 듣고 있지 않는데도 젊은 놈의 요구 사항은 계속되고 있었다. 정신이 온전한 놈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다가 이제는 확실히 시비를 걸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자 상유의 말을 끊으며
“저 공자님!”
“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그만 할까? 그래 이 정도면 되겠어! 불러 와!”
“그와 같은 아이가 한 명 있기는 있는데 워낙에 특별해서 후원으로 직접 가서 한 번 보시는 것이 어떠실 런지요?”
“그래? 그런 아이가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가 봐야지. 그래 가 보세나!”
상유는 믿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하지만 입가에는 은은한 웃음을 흘렀다. 상유가 일어서자 임호도 따라서 일어섰다.
총관은 뒤쪽으로 안내를 하더니 계단을 타고 건물의 뒤편으로 상유와 임호를 안내했다. 나름 호랑이굴로 상유 일행을 데려가는 것이었다. 임호와 눈을 마주 친 상유는 빙긋이 웃으며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이 끝나고 우측으로 돌아나가자 여섯 명의 사내가 넓게 포진 한 채 서 있었다. 내려 온 계단에도 둘이 내려와 막고 섰다. 완전히 포위가 되었다고 믿은 하 총관은 돌아서면서 돌변한 표정에 비웃음을 흘리며
“이런 싸가지 없는 놈! 어디서 되지도 않는 허세는.”
“하하하 허세라? 과연 그럴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상유는 보법을 전개했다. 마치 몸이 쭈욱 늘어나는 느낌과 함께 총관의 목은 상유의 손에 잡혀 있었다. 상유가 팔을 들어 올리자 목이 잡혀 들려진 하 총관은 켁켁 거리며 가쁜 숨을 겨우 몰아쉬고 있었다.
“이래서 잔머리 굴리는 놈들이 싫어. 자기가 제일 똑똑한 줄 알거든. 하하하”
상유가 손아귀에 힘을 주어 더욱 들어 올리자 총관은 얼굴이 벌게지며 몸이 허공에 매달려 두 발을 달랑거렸다. 굉장한 악력과 힘이었다. 그러자 앞에 있던 두 흑의 사내가 검을 뽑아 들더니 양쪽에서 상유의 몸을 베어왔다. 제법 날랜 솜씨였다.
“으아악!”
상유의 비명이 아니었다. 오른쪽으로 피하며 왼쪽의 검을 피한 상유가 오른쪽 검로에 총관을 밀어 넣었던 것이다. 총관의 등을 길게 벤 흑의인은 당황했다.
“이놈들, 무시무시한 놈들일세! 자기편을 막 칼로 베는구만. 막 베!”
총관은 목줄이 잡힌 채로 등이 검에 길게 베이자 그 공통을 참지 못하고 컥컥 대고 있었다. 그대로두면 죽을 것 같아 총관의 등을 벤 놈에게 던져줬다.
“너네 총관 죽겠다. 이놈부터 치료해줘라.”
총관을 받아든 흑의인은 바로 총관을 들쳐 업더니 어디론가 달려 나갔다. 그러자 이제는 나머지 놈들이 한꺼번에 덤비는 것이었다. 뒤에 서있던 임호가 뒤의 둘을 맡아 싸움이 벌어지자 상유도 흑의인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좀 전에 상유의 움직임을 본 그들은 쉽게 개별적으로 덤비지 않고 둘이나 셋이 함께 연합하여 달려들었다. 그래봐야 헛짓이었지만... 상유는 이번에 지법을 시험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최소의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에 대한 연습이었다. 아미파에는 대표적인 탄금지(彈琴指)라는 지법이 있지만 상유는 탄금지보다 만서전에서 본 공공일지선(空空一指禪)에 관심이 더 많았다. 바로 선(禪)이라는 단어에 주목했다. 이 단어가 여러 가지의 의미를 가지지만 상유는 ‘고요하다’라는 것에 보다 많은 의미를 두고 수련을 해왔다. 즉, 일지에 한 가닥의 진기를 모아 아무도 모르게 소리 없이 상대를 격중시키는 지법이었다.
요란한 것보다는 실속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다듬고 다듬어 원하는 지법으로 만들어가는 중이었다. 흑의인들의 공격을 표설보를 이용해 가볍게 피하는 상유는 단지 집게손가락만 까딱 거렸다. 그럴 때마다 흑의인들은 중요 혈도에 충격을 받으며 점차적으로 움직임이 느려졌다. 파락을 위해 상유는 적당한 조절을 하는 것이었다. 집요한 상유였다.
일각이 지나자 흑의인 다섯은 결국 검을 놓치고 바닥에 널브러졌다. 임호는 이미 두 흑의인을 피떡으로 만들어 둔 상태였다. 지속적으로 혈사장에 많은 피해를 입은 적호문도로서 당연한 처리였다. 그리고는 위호법의 무공을 감상하고 있었다. 예측 불가한 움직임과 간결한 공격! 마치 상대를 원하는 자기의 공간에 가두고 마음껏 요리하는 맹수의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상유는 문주에 의해 적호문의 호법으로 임명되었었다.
일반적으로 호법은 나이 든 고수들의 몫인데 어린 상유가 하자니 쑥스러웠지만 그 정도 자리는 되어야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는 문주의 충고를 받아들였다. 임호는 어린 호법을 모시는 것에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그는 나이만 어릴 뿐 무공도 어린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현란하기까지 한 상유의 무공을 보며 닮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존경의 염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상유는 쓰러진 놈들을 한데 모았다. 그리고는 의자를 하나 가져 오더니 놈들의 앞에 떡 버티고 앉았다.
“난 혈문을 사랑한다. 왜냐면 몇 년 전 혈차도수라는 늙은이가 크게 보태 주더니 얼마 전에는 거기가 어디더라? 맞아. 길수라는 곳에서는 변후성인가 하는 놈과 친구들이 마구 도와주더구나. 그러니 내가 어찌 혈문을 좋아하지 않겠느냐?”
그 말을 들은 흑의 무사들에게 불과 같이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 이름은 바로 파락공자! 그와 더불어 상대가 자기들을 죽이지 않은 의도를 알아챘다.
“파락공자님! 저희들은 말단이라 목숨 값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허허 이 친구들 누가 목숨 값 달래던가? 아닐세. 다만 알고 싶은 것이 있는데...”
“말씀하십시오. 저희들이 아는 것이라면 최선을 다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하기야 죽으면 돈이 뭐며 정보가 다 뭔가? 모두 부질없는 짓이지. 그대들은 그래도 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군 그래. 지금 장사에 있는 혈문의 고위직들의 구린 거 알고 있다면 말해봐라. 시시껄렁한 것은 질색이니 알아서들 하고.”
자신들을 요 모양으로 만든 손가락을 까딱거리자 흑의 무사들은 질겁을 하며 서로 말하려고 하여 시끄러웠다. 이에 깔끔한 정리를 하는 상유였다.
“그만! 하하하 성질들 하고는... 말하고 싶은 사람은 먼저 손을 들고 허락을 구해라!”
다섯 명의 손이 거의 동시에 올라갔다. 자신이 아는 것을 다른 놈이 먼저 말하면 큰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래. 너!”
“전 혈사노괴 부문주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변태적 성향의 소유자입니다. 어린 여자아이들을 잡아와... ”
“거 듣기 거북하지만 내용이 아주 좋군. 그래. 다음 너!”
“전 혈의당 제일 대주 강춘수의 비리를 알고 있습니다. 그는 남문 도박장의 책임자로 있는데 매일 수입의 일할을 빼돌리고 그 중에서 아주 일부를 수하들에게 나눠주는데...”
“좋아. 그것도 실한 내용이구만. 다음 너!”
“저도 혈사노괴의 변태적 성향을 말씀드리려 했는데 저 놈이 먼저! 하지만 저만 아는 비밀이 있습니다. 혈사노괴의 작은 딸 피사리는 애비를 닮아 남자가 없으면 잠을 자지 못합니다. 이미 내전의 종들 중에 그녀와 동침을 하지 않은 자가 없을 정도인데 다음 달 귀곡혈장 남상길의 장자에게 시집을 간다고 합니다.”
“오호! 그거 환상적인 얘기로군. 좋아 자네는 가도 되네! 기왕이면 멀리 가시게나!”
“네. 감사합니다. 공자님.”
그자는 쏜살같이 집으로 달려갔다. 이 밤이 가기 전 일가족을 데리고 멀리 떠나야하기 때문이었다. 살아 온 터전을 잃는 것이지만 그래도 죽는 것보다야 나은 일이었다. 한 명이 통과를 하자 어떤 것이 요구되는지를 눈치 챈 흑의인들은 혈사장을 괴멸시키는데 적극적인 동참을 하게 되었다. 고위급 인사들의 비밀부터 사파간의 갈등을 부축일만 한 적지 않은 정보들을 취합한 상유는 흑의 무사들을 하나씩 보내줬다.
그런데 한 명은 남았다. 남의 일에 별 관심이 없던 개중에 착한 놈이었다. 이놈은 어찌할까 고민하던 상유는 그를 시켜 기루에 불을 놓도록 하였다. 물론 사람들이 대피하게끔 큰소리로 외치라고 하는 말도 잊지 않았다.
“불이야! 기루에 불이 났다!”
불을 놓은 흑의인마저 돌려보낸 상유는 느긋하게 ‘불이야’를 외치며 적호문으로 돌아갔다. 무얼 하다 뛰어 나왔는지 지금 기루의 밖에는 홀딱 벗은 남녀들이 허둥지둥 뛰어다니는데 참 볼 것이 많았다. 불구경도 재미있는데 이것 또한 만만치 않은 구경꺼리라서 한밤중임에도 엄청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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