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아미산은 나의 천국 -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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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역시 상유는 집중을 못하고 있어서 유화를 먼저 돌려보내고 사제를 가까이 불렀다. 이리저리 눈치를 보며 자신을 어렵게 생각하는 모습에 수련은 안타까움을 느끼며
“사제! 우리 솔직하게 말해보자. 내 방식이 마음에 안 들지?”
“네? 아니오. 딱히 그렇다기보다는... ”
“그럼 어떻게 하면 사제가 집중 할 수 있을까? 사제가 솔직히 말해봐.”
그 말에 상유는 순간 눈이 반짝였다.
“저, 사저. 전 뭔가 목표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목표? 어떤 목표를 말하는 것이냐? 예를 들어 봐라.”
“뭐 꼭 예를 들자면, 검식의 전반부를 무리 없이 시전하면 잘했다고 안아 주신다 던지... 뭐 그런!”
수련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상유를 쳐다보는데 그녀의 주위에는 찬바람이 풀풀 날렸다.
“안아줘? 내가 너를?”
“그건, 그냥 예를 든 겁니다. 그냥 예!”
상유는 사저의 심기가 불편해진 것을 눈치 채고는 바로 꼬리를 내렸다. 그런데
“좋아! 전반부를 무리 없이 펼치면 내가 한번 안아줄게. 됐어?”
“네에? 정말이요? 그럼 빨리 해요. 연습! 으하하하!”
마치 세상이라도 얻은 듯이 좋아하는 상유를 보며 수련은 웃음이 절로 나왔다. 상유를 어떻게 다뤄야 할 지 감이 온 수련이었다. 사랑스런 막내 동생 안아주는 거야 뭐 어떨가 싶었다.
목표가 생긴 것은 확실히 효과가 있어서 아홉 살의 상유는 정말 질문이 많았다. 그냥 지나칠 것 같은 것들도 논리적으로 자신이 이해를 못하면 다시 물어왔다. 사실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서야 깨우칠만한 것들의 정곡을 찌르며 물어보는데 수련은 상유의 능력에 내심 감탄하고 있었다. 사부님께 상유가 사사 받은 복호대라검(伏虎大羅劍)이 힘과 강인함을 추구하는 검법이라면, 지금 수련하는 대라수미혜검(大羅須彌慧劍)은 섬세함과 유연한 연속성을 장점으로 하는 전혀 다른 검술이다.
그런데 그러한 차이점을 정확히 인식하고 연결의 고리가 되는 부분에 집중적인 관심을 나타내고 있었다. 같이 시작한 유화가 이젠 도저히 따라 올 수 없었다. 전 육식을 어느 정도 익히는 것만도 보통 일 년이 걸리는데 상유가 집중하자 근 한 달 만에 어느 정도 오의를 깨우치는 것이었다. 그런데 상유는 기이하게도 검사를 받겠다는 말을 아끼고 있었다.
“사제, 이젠 전 육식이 어느 정도 되는 것 같은데 시험을 해봐도 되지 않을까?”
“네? 아니요! 이제 겨우 흉내만 내는 걸요! 이래서야 어디 실전에서 써 먹을 수나 있겠어요? 막상 배우다보니 이 검법은 신행미종보(神行迷踪步)와 함께 사용하지 않는다면 별로 위력이 없을 것 같아요.”
“응? 그걸 어떻게 알았어?”
“제가 볼 때는 이 검법의 요점은 유려한 연속적 공방에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러한 장점을 살리려면 보법이 받쳐 주어야 할 것 같은데... 맞지요?”
“사제 정말 똑똑하구나! 맞아. 나도 그걸 육성에 이르러서야 알았는데, 대단하다!”
수련의 칭찬을 받은 상유는 싱긋 웃으며 으스대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수련은 자기도 모르게 상유의 코를 집게손가락으로 ‘탁’하고 튕겼다. 그런 모습에 상유뿐 아니라 수련 자신도 깜짝 놀랐다.
상유의 적절한 그 말에 수련은 이제 신행미종보를 가르치게 되었다. 이 신행미종보는 아미파의 대다수의 제자들이 익히는 거의 유일한 보법이다. 요결의 핵심은
‘易有太極 是生兩儀 兩儀生四象 四象生八卦’
[태극이 있으니 양의를 낳고 양의는 사상을 낳으며 사상은 팔괘를 낳는다]
앞과 뒤를 기반으로 좌우를 더하고 그 사상에 각기 여덟 개의 움직임을 배합한다. 그로서 보법을 통해 검이 가는 길을 다양하고 자유롭게 함에 있었다.
백수련이 보기에 상유는 무예에 관한한 타의 추종이 불가할 정도의 오성(悟性)을 지닌 것 같았다. 문파 내에서 대단하다는 소리를 듣는 자신도 이 보법의 기본을 익히는데 꼬박 일 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는데 이 아이는 접근 방식부터가 달랐다. 이번에도 수련은 상유에게 기본적인 것만 가르치고는 상유가 수련하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기만 했다.
가끔씩 질문을 하면 아는 범위 내에서 차근차근 설명을 한 것이 전부이다. 직접 몸을 움직이기 보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더니 열흘도 안 되어 핵심을 찾아내었다. 그 후에는 일반적인 수련 방식을 버리고 핵심을 중심으로 부분부분 연습을 하고 이것들을 자연스럽게 연결을 하기 시작했다.
결국 상유는 한 달이 안 되어 그 어려운 보법을 육성의 경지까지 수련을 마치는 것이었다. 어쩌면 자신도 지금과 같은 수련 방식을 알았다면 시간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었으리라. 그런데도 상유는 스스로에게 만족스럽지 못한지 반복적으로 수련을 하며 몸이 생각을 쫓아 갈 때까지 한 달을 더 보법에 매달리고 있었다.
그 후 보법이 어느 정도 완성이 되자 대라수미혜검(大羅須彌慧劍)의 전 육식은 며칠이 지나지 않아 제 위력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상유는 유화가 수련을 마치고 먼저 가는 걸 확인한 후에 수련에게 조용히 다가오더니 당당하게 말했다.
“사저... 이제 시험을 봐도 될 것 같아요.”
“응? 그래. 그 동안 열심히 했으니 한번 보자꾸나.”
사저의 앞에 목검을 들고 선 상유는 긴 호흡을 한번 하여 심신을 정리하더니 대라수미혜검을 제 일식부터 풀어내기 시작했다. 부드러우면서도 끝없이 이어지는 검술이 보법과 어우러져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또한 각 식의 절정에 이르러서는 목검의 끝에 약간의 검기마저 비치면서 절도와 강한 힘마저 느껴졌다.
수련은 과연 자신이 최선을 다해 펼쳐도 저와 같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느새 상유는 전 육식을 마무리하고 바로 서서 호흡을 정리하고 있었다. 수련은 상유의 검무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 약속을 의식하지는 않았는데 무심결에 너무도 사랑스러운 상유를 자신도 모르게 꼬옥 안아주었다.
엉겁결에 수련에게 안기며 미처 손을 들어 올리지 못한 아쉬움! 안타까움 가운데서도 사저의 몸에서 풍기는 포근한 체향에 상유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얼마나 오래 안아주는지 그것은 수련이 감동한 시간 만큼이었던 것 같다. 족히 반각은 되었으니 수련이 상유의 영특하고 자랑스러운 모습을 얼마나 아끼는지 상유도 이젠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저... 사저! 후 육식은 언제부터 할까요?”
사저의 속마음을 알게 된 상유의 말은 어정쩡하게 떨어진 둘 사이의 어색함을 지우기 위해 더욱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으응? 내일, 내일부터 하자.”
“네! 좋아요!!”
수련과 대라수미혜검의 후 육식을 수련하며 그 해는 저물어 갔다. 사저의 속마음을 알게 된 상유는 수련의 냉랭한 표정에서 어떤 것이 미소인지를 찾게 되었는데 그것을 알아보는 사람은 문파 내에 두 사람뿐이었다. 사부님과 상유! 언제나 여자들만 보면 막돼먹은 짓을 하던 상유도 수련에게만큼은 그런 행동을 보이지 않으니 사부도 사저도 다 알기에 너무도 귀엽기 그지없었다.
그렇다고 고 버릇을 고친 것은 아니다. 적당한 기회가 주어지기만 하면 상유의 손에 많은 사저와 사질들이 곤란 아닌 곤란을 겪으니 상유만 좋은 것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새해를 맞이한 아미파는 한 해의 복과 평안을 기원하는 축원제를 성대하게 올린다. 새해에는 일 년을 여는 다채로운 행사들이 있었다. 그중에 단연 일대, 이대 제자들의 제일 큰 관심은 누가 뭐래도 ‘등봉제’라는 행사였다.
이 행사를 통해 아미파의 장래를 책임 질 제자들의 지난 일 년의 수련 결과를 문파의 어른들이 직접 보는 것이다. 점검도 하고 축하도 해주며 자신의 제자들에게 새해의 목표를 정해주는 아주 뜻 깊은 행사이다. 다만 행사 자체가 비무의 형태로 치러지다보니 은근히 장로들의 보이지 않는 경쟁이 있었고 그 효과가 일 년간 지속되기에 밖으로 보이는 것보다 신경도 많이 쓰고 중시하는 행사였다.
작년까지는 상유나 유화가 어려서 참가를 하지 않고 구경만 했는데 올해는 달랐다.
“유화는 아직 여리고 부족하다만 상유는 내일 행사에 참가하는 것으로 내가 일러 놨다”
“네? 제가요? 전 자신 없는데요?”
“이 놈! 사부가 하라면 하는 것이지. 뭐라고 대꾸질이냐!”
“씨이... 대꾸라도 해야지요. 저도 사람인데.”
“호호 그놈 참! 내일 애꿎은 사저들 두드려 패지나 말거라. 요 짐승 같은 놈아!”
사부의 능청스런 말에 둘러앉은 네 사람은 한참을 웃었다. 신년 새배를 마치고 덕담을 하며 오랜만에 사제의 정을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참 사부님! 저 근 일간 비봉 마을에 한번 다녀오고 싶어요.”
“응? 그래. 산에 들어 온지도 어느 덧 삼 년이 되어 가는구나. 신년 행사가 마무리 되고나면 혼자는 내가 불안하니 사저 수련이와 함께 다녀오도록 하거라.”
“네! 고맙습니다. 사부님”
‘등봉제’라 이름 붙여진 행사는 새해 초이튿날 문파의 모든 어르신을 모시고 또 아미파와 관계된 많은 속가의 제자들도 함께하며 성대히 시작이 되었다. 오전에는 이대 제자들이 개인이나 단체로 검술을 시현하는 것이 보통이고 오후에는 일대제자들이 조를 맞춰 대련을 하는 것이었다. 오전 행사는 이백 명에 이르는 이대 제자들이 각종 재량과 재롱을 펼쳐서 어르신들과 하객들의 박수를 받으며 즐겁게 치러졌다.
그런데 식사 후 이어진 오후의 행사는 시작부터 팽팽한 긴장감이 행사장 전체에 감돌았다. 이번 행사에는 일대 제자 삼십사 명이 참가 신청을 했다. 작년의 수좌와 차좌를 차지한 아미 쌍화는 예선을 거치지 않으며 다른 서른두 명이 예선을 거쳐 두 명의 결선 진출자를 가리게 되는데 결선에 오르기 위해서는 다섯 번의 승리를 거두어야 한다.
그 결선 진출자 둘과 작년의 입상자들이 서로 겨루고 승자들이 마지막을 장식하는 일정이었다. 마지막까지 남는 두 명에게는 사문의 무예 중에 원하는 무공을 하나 선택해 배울 수 있는 특혜가 주어진다. 그것은 장문인만 익히도록 되어 있는 열두 가지의 상승무공 중에도 일부 선택이 가능했다.
장문제자인 소해린은 이미 여러 번의 결승에 올라서 가능한 네 가지를 모두 선택해 익히고 있었으니 더 이상이 필요가 없었고 백수련은 이제까지 이년 연속 결승에 올라 두 가지를 선택해 수련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외에도 나이가 삼십대인 일대 제자 여러 명이 한두 가지씩의 무예를 배운 상태이니 어찌 보면 공평하지 않은 대련이기도 했다.
서른 네 명이 단상 앞에 도열해 장문인과 장로들에게 인사를 하며 시작을 알렸다. 대부분이 이삽십 대의 사저들이고 이제 내년이면 스물이 되어 속가로 나가는 공손세가의 장자 공손기도 그 중에 속해 있었다. 남자는 상유와 공손기 둘뿐이고 모두 열아홉 이상이니 열 살이 된 상유는 유독 눈에 띠었다. 장문인과 장로들은 머리 하나가 작은 상유를 보고 웃으며
“이번엔 우리 꼬마 제자도 참여를 하는군. 사저들이 살살 해야 할 텐데...호호”
장문인의 그 말에 강단위에 있던 원로들과 하객들이 폭소를 터트렸다. 그런데 화정 신니는
“작아도 할 건 다 하는 놈입니다. 장문인께서는 오늘 특별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아~ 외당 장로! 정말이에요? 난 상유가 다칠까 걱정입니다. 호호호”
그새 도열해 있던 제자들이 각자 자리로 돌아가 앉는데 대부분 동문사제들끼리 앉았다.
상유의 천막에는 달랑 셋이 전부였지만 백수련이 미소를 머금고 있음을 상유는 알고 있었다. 하필 첫 비무에 상유가 편성이 되었다.
“사제, 잘 하고 와! 사부님과 내가 사제에게 기대가 큰 거 알지?”
상유는 대답 대신 씨익 웃으며
“아무렴 제가 남자인데 다른 사저들에게 지기야 하겠습니까? 하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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