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 세트라티 : 상처 뿐인 승리
하지만 은율은 뭔가 알 수 없는 인기척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은율은 일단 몸으로 문을 가로막았다.
혹시라도 문 쪽으로 도망가려는 것을 막기 위해서 였다.
그리고 카터에서 총과 페인트 총알을 꺼냈다.
은율은 놈이 아무런 무기도 가지고 있지 않을 거란 생각에 일단 놈의 위치와 움직임을 우선 파악하기로 했다.
서로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는 먼저 볼 수 있는 자가 유리한 법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 놈은 무기도 없는 상태였다.
무조건 은율이 유리한 상태였다.
은율은 조심스럽게 총에 총알을 장전했다.
‘덜컥!’
탄창을 총에 끼우는 소리에 창문 쪽에서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은율은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총을 쐈다.
‘드르르르륵~ 드르르르륵~’
은율이 쏜 총알이 벽에 부딪히자 파란색 페인트가 터지면서 얼룩을 만들었다.
그런데 일부의 얼룩이 공중에 떠 있는 듯 허공에서 터져 흘러 내리고 있었다.
은율의 생각이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은율은 얼른 칼을 집어들어 공중에 떠 있는 얼룩을 향했다.
‘빠지직~’
하지만 예상 못했던 전기 공격이 은율을 먼저 타격했다.
마치 정우의 마법막대기에서 나오는 전기 공격과 비슷했다.
갑옷 덕분이었는 지 갑작스러운 공격에 조금 놀랐을 뿐 은율은 큰 타격 없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자리를 잡고 얼룩을 향해 불꽃을 쏘았다.
하지만 불꽃은 그 놈이 쏜 전기와 맞부딪쳐 공중에서 푸른 색 불꽃을 튀며 사그라 들었다.
그리고 또 다시 전기 공격이 은율의 방향으로 날아들었다.
다행히도 놈은 정확한 은율의 위치를 모르는 지 전기는 은율 옆 30cm정도를 벗어나 벽에 맞았다.
은율은 다시 한 번 불꽃을 날리고는 방금 전기 공격이 떨어진 곳으로 몸을 옮겼다.
역시 놈도 방어막이 있었던 듯 은율이 날린 불꽃이 얼룩이 묻어 있던 곳에서 둥근 원을 그리며 퍼졌다.
은율은 최후의 공격이라 생각한 듯 정신을 집중하여 드워프의 팔찌의 힘까지 모아 칼에 불기둥을 만들었고 얼룩이 묻어 있는 곳을 향하여 그것을 날리려는 찰나였다.
갑자기 창문에서 거대한 불덩어리가 은율을 향해 분사 되었다.
은율은 순간적으로 칼에 모았던 푸른 빛의 불기둥으로 자신을 향해 분사되는 불덩어리를 막았다.
불덩어리는 은율의 칼에 부딪혀 둘로 갈라졌다.
하지만 분사되는 불의 힘이 너무 강력했기에 은율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뒤로 나뒹굴고 말았다.
잠시 바라본 창문에 비친 모습은 시뻘건 혀와 빛에 반사된 날카로운 이빨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정신을 차린 은율의 앞에는 무섭게 보이던 용의 모습도 공중에 떠 다니던 얼룩도 보이지 않았다.
은율은 서둘러 창문을 향했다.
창문 너머에는 이미 멀어지고 있는 용의 모습이 보였다.
은율은 손으로 창문의 턱을 세게 내리쳤다.
“이제 괜찮아요··· 저 혼자 걸을 수 있어요··· 내려 주세요···”
성 안에 들어서자 차팀장이 아드리안에게 말했다.
하지만 아드리안은 그녀의 목소리를 못들은 것인 지 아니면 너무 급해서 무시하는 것인 지 차팀장을 들쳐 업은 상태로 계단을 향해 내달렸다.
뒤를 쫓던 한실장과 정우는 아무 것도 들고 있지 않았음에도 아드리안의 속도를 따라 잡을 수가 없었다.
성 위에선 은율이 놈과 싸우고 있는 지 뭔가 부딪치고 부서지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아드리안이 왕의 집무실에 도착하자 마치 내동댕이 치듯이 차팀장을 내려 놓고는 왕에게로 달려갔다.
왕은 은율이 떠날 때와 똑같은 자세로 쓰러져 있었다.
“전하!! 전하!! 일어나십시오··· 아드리안이 왔습니다··· 정신을 차리십시오···”
아드리안이 애타게 왕을 흔들며 깨웠다.
“아··· 아드리안··· 자네가··· 왔구만···”
다행히 왕은 아직 죽지 않았다.
“여기 동방에서 온 의사 분도 오셨습니다··· 이제 곧 괜찮아지실겁니다···”
“아니··· 이제 난 더··· 이상··· 살기 어려··· 울 것 같다··· 이··· 칼을 뽑으···면 더는 버티지··· 못할거야···”
왕은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아드리안의 손을 쥐었다.
“아드리··· 안··· 공주··· 공주를··· 부탁··· 하네··· 이제··· 그 아이··· 하나만··· 남았군···”
“전하··· 약해지시면 안 됩니다··· 어서 가셔서 공주님을 직접 보셔야지요···”
아드리안의 눈에도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겨우 정신을 차린 차팀장이 아드리안의 옆에 앉아 왕의 상처를 보기 시작했다.
“전하 이제 이 분이 전하를 고쳐 주실겁니다··· 조금만 힘을 내십시요···”
칼은 왕의 가슴 정 중앙을 꿰뚫어 버린 상태로 있었다.
차팀장도 이 칼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이 칼을 뽑아야 치료가 가능할 것 같아요··· 칼이 꽂혀 있는 상태에서는 아무런 치료도 할 수가 없어요···”
차팀장은 칼을 잡고서는 힘을 주어 뽑어려 하였다.
그러자 왕이 차팀장의 손을 힘없이 잡았다.
“이제··· 그만··· 두시오··· 더 이상··· 난··· 어려울 것··· 같소···”
“그래도 전하··· 이 칼을 뽑으면 제가 치료를 할 수가 있어요···”
차팀장의 눈에도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 동안 고마웠소··· 그대··· 들 덕분에··· 이렇게··· 성을··· 찾을 수가··· 있었소··· 내가 죽으면··· 이 칼로··· 그대들의··· 일행을··· 살리시오···”
왕의 이 말에 차팀장은 더이상 팔에 힘을 줄 수가 없었다.
“아드리안··· 공주···를 잘··· 보살펴···주게··· 그 아이가··· 이 성을··· 잘··· 다스릴 수··· 있···”
차팀장의 손을 잡고 있던 왕의 손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전하!! 흐흐흑··· 전~ 하!!!”
아드리안이 왕의 목을 부여잡고 울부짖었다.
“아버지!!!”
그때 뒤에서 공주의 외침이 들렸다.
병사들과 함께 괴물과 싸우던 중에 아버지도 아드리안도 보이질 않자 아버지를 찾아 성으로 들어온 듯 했다.
공주는 아버지를 끌어 안으며 외쳤다.
“아버지!! 저예요··· 보니타가 왔어요··· 눈 좀 떠 보세요···”
차팀장은 공주의 모습을 보고는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그리고는 뒤 돌아 벽 쪽으로 가서 혼자 펑펑 울었다.
그런 차팀장의 어깨에 누군가 손을 올렸다.
그리고 따뜻하게 그녀를 안아 주었다.
어느 사이에 그 자리에 왔는 지 그 사람은 은율이었다.
은율을 보자 차팀장은 더욱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왕을 보냈다.
성 밖으로 나온 은율은 벌써 해가 뜨고 있음을 느꼈다.
희미하게 비추는 햇빛에 성 밖은 그 비참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
여기저기 물어 뜯기고 잘려진 괴물들의 시체와 온 몸이 상처투성이인 채로 지쳐 쓰러져 있는 늑대들의 모습은 참혹했던 지난 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은율 일행은 좁은 성 문을 지나 상처를 입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로 발길을 옮겼다.
하지만 처음 성 안으로 들어 섰을 때와는 달리 발걸음이 너무나도 무거웠다.
비록 전쟁에서는 승리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는 것은 언제 겪어도 쉽게 적응되지 않는 감정이었다.
그리고 그 죽음이 다른 많은 사람들을 위한 희생이었다면 옆에서 그 죽음을 지켜본 사람들의 슬픔은 더욱 배가되었다.
자신은 쉽게 하지 못하는 일을 묵묵히 그리고 아주 당연한 듯이 해 내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미안함도, 부끄러움도 아닌 이상한 감정에 휩싸이게 하기 때문이다.
은율은 이런 착잡한 마음을 가진 채로 숲으로 돌아왔다.
차팀장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차팀장의 표정에 아무 말도 물어 보지 못한 채 슬픈 눈으로 묵묵히 지난 일들을 추억했다.
은율 일행은 숲 속 넓은 공간에 천막을 몇 개 지어 놓고는 다친 사람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하루를 보냈다.
다음 날이 되자마자 기쁜 연락이 왔다.
‘다들 지금 어디 있는거야··· 잠에서 깼는 데 아무도 없네··· ‘
조금 시끄럽지만 그리웠던 장대표의 목소리였다.
‘이젠 좀 괜찮으세요? 목소리 들으니 살만 하신 것 같네요···’
차팀장이 반가운 듯 장대표의 목소리에 화답을 했다.
‘우린 밤 세우도록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혼자 푹 주무신 기분이 좀 어떠세요?’
은율이 장대표를 놀리는 듯 물었다.
‘푹 자다니··· 죽었다 살아 돌아온 사람한테··· 그런데··· 윤이사는 아직 못 일어나고 있는데··· 나보다 더 많이 다친건가요?’
장대표의 질문에 모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한참을 있다가 은율이 말했다.
‘조금 있으면 아드리안과 마을로 돌아갈 거예요··· 저희 잃어버린 검을 찾았거든요··· 이제 우리 세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시면 됩니다···’
‘그래? 어떻게 그걸 빼앗았어요? 고생했네··· 얼른 와요··· 내가 여기서 맛있는 거 만들어 놓고 있을테니까··· 돌아가더라도 마지막 파티는 하고 가야지···’
일행의 속도 모르고 장대표는 신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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