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 세트라티 : 두 개의 제단
성 안에서 정리를 하고 있던 아드리안이 은율 일행이 있는 천막으로 찾아 왔다.
그의 손에는 왕의 가슴에 꽂혀 있던 칼이 들려 있었다.
“어제는 전하의 시신을 정리하지 못해 전해드리지 못했습니다··· “
“아~ 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주님은 좀 어떠신가요?”
은율은 어제 왕의 시신을 부여 잡고 울고 있던 공주의 모습을 떠올리며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이제 조금 기력을 찾으신 것 같습니다··· 강인한 분이시라 금방 회복하실 겁니다···”
“어제 전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공주님 혼자만 남았다고 하시던데··· 다른 가족 분이나 친척은 더 없으신가요?”
차팀장이 아드리안의 말을 듣고 걱정이 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네··· 저희 라이칸 족들은 세부적으로 몇 가지 종족으로 나뉘어 지는데··· 저를 비롯한 병사들은 일반적인 회색 늑대 족이고 전하와 공주님은 저희들과 좀 다르십니다···”
“모두 같은 종족이 아니었네요?”
아드리안의 말에 은율이 궁금한 듯 물었다.
“네··· 전하와 공주님께서는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다이어 울프십니다··· 이제 공주님만 남으셨으니 앞으로 순종 다이어 울프 족은 사라지게 될 겁니다···”
“아~ 다이어 울프··· 어쩐 지 남다르게 보이신다 했습니다···”
은율이 뭔가 아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차팀장이 궁금한 듯 은율에게 물었다.
“다이어 울프··· 그게 뭐예요?”
은율은 차팀장의 질문에 아드리안의 눈치를 보며 차팀장을 나무랐다.
“그거라니요··· 전하와 공주님한테··· “
은율의 말에 차팀장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아드리안의 눈치를 보았다.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신경 쓰지 마세요···”
아드리안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다이어 울프는 지금은 멸종이 되었다고 여겨지는 회색 늑대와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는 종이예요··· 연구에 의하면 생김새는 늑대와 같은 모습을 지니지만 실제로는 늑대와는 이종교배가 불가능한 전혀 다른 종으로 발표된 적이 있었어요···”
어느 새 정우가 모니터로 검색한 결과를 말해 주었다.
“그럼 이미 멸종된 다이어 울프가 사실은 라이칸의 모습으로 살아 있었단 얘기네요?”
“네··· 맞습니다··· 이제 공주님 한 분만이 남으셨지만요···”
차팀장의 물음에 아드리안이 아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면 공주님은 정말 귀하신 분이네요··· 그런데··· 공주님은 짝을 찾지 못하시면 그야말로 정말 다이어 울프는 멸종한다는 얘기네요?”
“아마도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전하께서도 많이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성에서 쫓겨 나기 전에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멀리까지 남아 있는 다이어 울프가 없는 지 찾아 다니시곤 했었죠··· 그다지 성과는 없었지만요···”
아드리안의 말에 은율 일행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 때 병사 하나가 천막을 찾아 왔다.
“아드리안님··· 전하의 장례 준비가 끝났습니다··· “
“그래··· 알았다··· 전 지금 전하의 장례를 진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바쁘지 않으시면 같이 참석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아드리안이 은율 일행에게 말했다.
“네··· 그래야지요··· 금방 따라가겠습니다··· 그리고 어제 싸움으로 상처를 입은 병사들도 치료를 해야 하구요···”
“네··· 고맙습니다··· 그럼 저는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아드리안은 병사와 함께 성으로 떠났다.
“그럼 저희는 전하의 장례와 병사들의 치료가 끝나고 나면 마을로 돌아가는 걸로 하시죠···”
아드리안이 떠나자 은율이 말했다.
“그럼 이 칼은 어떻게 할까요?”
한실장이 아까 아드리안이 가지고 온 전설의 잃어버린 검을 가리키며 말했다.
“일단 카터에 넣어 놨다가 나중에 마을로 가서 장대표님과 윤이사님 만나면 다시 얘기 해요···”
차팀장이 칼을 들어 카터에 넣으려고 하며 말했다.
“잠깐만요!! 아직 넣지 마세요··· “
은율이 그런 차팀장을 급하게 막았다.
“미션 종료 조건이 그 칼을 카터에 넣는 것이었어요··· 지금 그걸 넣으면 이 게임이 끝나고 말아요··· 혹시 모르니 장대표님과 윤이사님을 만나고 나서 넣으시는 것이 나을 것 같아요···”
“아~참··· 그랬었죠··· 큰일 날 뻔 했네···”
“그럼 이 칼은 제가 들고 다니겠습니다···”
한실장이 칼을 손에 쥐며 말했다.
“자··· 그럼 전하의 장례식도 있다고 하니 여기에 상처 치료가 끝난 사람들 모두 데리고 성으로 함께 가시죠···”
은율이 이렇게 말하고 다른 천막의 사람들을 불러 모으러 자리를 떴다.
성 문 앞의 커다란 광장에는 아직 어제 싸움의 흔적이 여기 저기 조금씩 남아 있었다.
그리고 커다란 제단이 마련이 되었고 그 위에 왕의 시신이 눕혀져 있었다.
그 옆에는 어제 싸움으로 죽은 괴물들의 시신이 쌓여져 있는 또 하나의 제단이 있었다.
실제 1,000여 구나 되는 모든 시체를 놓을 수는 없었기에 대부분은 성 밖에 별도의 장소에서 소각하기 위해 모아 놨고 그 중에 전에 인간이었을 당시 훌륭한 일을 했거나 높은 지위에 있었던 자들의 시신만 따로 왕의 제단 옆에 마련해 놓았다.
아드리안이 말하길 그들 역시도 이 성의 백성이었고, 자의로 괴물이 된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어쩌면 그들이야 말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피해자일 뿐이라고···
그래서 그런지 그들의 제단도 왕의 제단 못지 않게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제단의 주위에는 어제의 전투에 참전했던 백성들과 병사들이 둘러 서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성 안에서 공주가 아드리안의 호위를 받으며 나타났다.
공주는 성 안에 있었던 자신의 예복을 곱게 차려 입고 있었다.
하지만 고운 옷에는 어울리지 않는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장례식은 왕의 부고를 듣고 급히 마을에서 달려 온 나이 많은 시중의 진행으로 시작되었다.
은율 일행은 그들이 하는 장례 절차를 모두 이해 하기 어려웠지만 조용히 그들의 예식을 지켜 보았다.
예식 내내 공주는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끝 내 눈물을 보이지는 않았다.
겉으로는 작고 여려 보이는 소녀일 뿐이지만 다이어 울프의 피가 흐르는 강인한 종족의 한 수장으로서 위엄이 서려 있었다.
그들의 장례식의 마지막은 제단에 불을 붙여 시신을 태우는 것이었다.
성에 있는 광장에 불타고 있는 두 개의 제단은 왕과 백성이 이 생을 떠나는 곳에서는 평등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듯 했다.
장례식이 끝난 후에 은율 일행은 성 안에 커다란 방을 정해 어제 상처를 입은 병사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라이칸 종족의 특징 중에 하나가 상처에 대한 회복이 굉장히 빠르다는 것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많은 상처와 깊은 상처가 있었던 탓에 차팀장의 치료가 필요한 병사들이 많이 있었다.
차팀장의 치료를 지켜 보던 은율은 갑자기 뭔가 생각이 난 듯이 아드리안을 찾기 시작했다.
은율은 아드리안에게 공주님을 뵙기를 청했다.
아드리안은 은율의 부탁에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오늘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른 어린 소녀에겐 힘든 하루일 듯 싶어 최대한 휴식을 주고 싶었던 듯 했다.
하지만 은율은 일행이 마을로 돌아가게 되면 다시 공주를 보지 못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간곡히 부탁을 했다.
은율의 부탁에 아드리안은 은율을 공주에게 데려가 주었다.
공주는 왕의 집무실에 있는 왕좌에 앉아 은율을 맞이해 주었다.
“공주님··· 제가 전하를 지켜 드리지 못한 것에 대하여 죄를 청합니다···”
은율은 어제 이 후 처음 만나는 공주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아니오··· 그건 아버지의 뜻이었소··· 성 안으로 들어가시기 전에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일을 하신다고···”
공주는 처음 만났을 때의 차가움이 아닌 따뜻한 모습으로 오히려 은율을 위로했다.
은율은 자시의 머리에 두르고 있던 라이칸의 투구를 빼서 공주에게 건네주기 위해 앞에다 내려 놓았다.
“이 물건이 있었다면 전하께서 더 안전하셨을텐데, 이 귀한 물건을 저에게 주셨습니다··· 많이 늦었지만 다시 돌려 드립니다···”
“아··· 그게 있었군요···”
공주는 은율이 내려 놓은 라이칸의 투구를 보더니 참고 있던 눈물을 흘렸다.
생전에 아버지가 내내 쓰고 있었던 물건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물건은 내게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군요··· 그리고 사실 이 물건은 라이칸인 우리들에게는 그다시 큰 효용이 없는 물건이었소··· 늑대로 변해 전투를 치를 때는 이 투구가 작동하지 않았거든요··· 그럼에도 어찌나 자랑을 하시던지···”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공주가 얘기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