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II - 괄목상대(刮目相對) <04>
“무당파 무공을 타문파 사람에게 사사로이 전수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네가 내 제자가 되어야만 전수해줄 수가 있을 것이다. 어쩌겠느냐! 나를 사부로 모시겠냐! 나를 사부로 모시면 너는 무림에서 가장 든든한 배경을 얻게 된다!”
위현룡은 갑작스런 장윤의 제안에 대답은커녕 오히려 말문이 막혔다. 본파의 무공을 타문파 사람에게 전수해줄 수 없는 건 당연한 사실이었다. 물론 이를 알면서도 그에게 무학을 전수해 달라 청했으니 이 점에 대해서는 위현룡도 유구무언일 것이다. 하지만 대신 홍후인의 만류를 뿌리치면서까지 그들에게 귀혼환령검 비급을 선뜻 내어 주었고, 이를 바탕으로 입신의 반열에 들어섰으니 따지고 들자면 공평한 거래로 볼 수도 있겠다.
아무튼 안 되면 안 되었지 자신을 제자로 삼으면서까지 무공을 전수해주겠다는 그의 속뜻은 쉽게 납득하기가 힘들었다.
“어서 말해라. 나를 사부로 모시겠다고!”
반강제적인 장윤의 요구에 원송이 몇 번이나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야...광소자야...너 왜 그러는 거냐!”
“석추승 넌 빠져라!”
광소자 장윤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하는 원송이었다. 하여 그는 왜 갑자기 저런 조건을 거는 것인지 곰곰이 따져 보아야만 했다.
(분명 뭔가가 있다.)
두 사람은 각각 달마신장과 태극혜검이라는 상승무공의 완성을 놓고 평생토록 경쟁을 해온 사이였다. 그런데 그 경쟁이 승패 없이 허무하게 끝나 버린 지금 그들은 자연스럽게 다음 경쟁을 위한 무엇인가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순간 원송의 뇌리에 무엇인가가 갑자기 스치고 지나갔다.
(서...설마!!)
원송은 심각한 얼굴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만일 장윤이 위현룡을 제자로 거둔다면 자신은 제자하나 없는 초라한 존재로 인식될 것이다. 설사 뒤늦게 제자를 찾는다 하더라도 위현룡만한 출중한 무학을 지닌 재목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 찾을 것이 뻔했다. 훗날 장윤이 대단한 제자 자랑을 하면서 얼마나 속을 긁을까를 생각하니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치고 있었다.
(누가 네 속을 모를 줄 알고!)
간신히 장윤의 속셈을 간파한 원송은 억지스런 웃음을 지으면서 위현룡에게 다가갔다.
“나 역시 나를 사부로 모시지 않으면 심법을 전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저 놈 말고 꼭 나를 사부로 모셔라. 솔직히 뒷배경을 논한다면 당연 무당보다는 소림이지!”
잘 나가다 일이 틀어진 장윤은 똥 씹은 표정을 지으면서 원송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야 석추승아! 내가 먼저 저 놈을 제자로 찜했단 말이다.”
“웃기고 있네. 어차피 저 녀석의 의사가 중요한 거지. 누가 네 놈을 사부로 모신다고 하든?”
“뭐! 그러는 너는 사부로 모신다고 하더냐!”
둘이 또다시 티격태격하고 있었다. 이에 위현룡은 두 사람의 사이를 강제로 갈라놓으면서 급히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는 두 분을 사부로 모실 수가 없습니다.”
두 사람은 동시에 위현룡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당혹스런 표정이 역력했다.
“만일 모시지 않으면 심법을 전수해주지 않을 것이다!”
위현룡의 약점을 노리고 나온 회심의 협박이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그래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전 이미 사부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뭐....청성파 출신이라 했으니 당연히 청성파 장문인이 사부겠지.”
원송의 물음에 위현룡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청성파의 그늘 아래 무공을 배웠으니 장문인이 제 스승이십니다. 그런데 장문인 외에 늘 제 곁에서 저를 돌봐 주시고 가르쳐주시는 다른 분이 계십니다. 비록 성함도 얼굴도 모르지만 그 분이 진정한 제 스승이십니다.“
위현룡의 진심어린 말에 홍후인은 그만 목이 메여 왔다.
그의 인생을 철저히 파멸시킨 자신을 사부라 공공연하게 칭하고 있는 것을 보니 뭐라 형용할 수 없이 가슴이 아렸던 것이다. 홍후인은 눈물이 가득 맺힌 눈으로 위현룡을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나에게 사람의 도리와 정을 가르쳐주었으니 현룡이가 오히려 내 스승이지...]
한때 무림을 거침없이 활보하면서 인정이라는 것은 거추장스러운 짐이라고 생각했던 그였다. 인정을 가지면 가질수록 목숨은 위태해지고 적이 늘어나는 경험을 하고나서부터 생기게 된 자연스러운 처신이었다. 하긴 살벌한 무림판에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어찌 홍후인뿐이겠는가. 호의로 건넨 손이 잘려서 돌아오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그 때문에 홍후인은 늘 군자로 살아가려는 위현룡이 한심하고 못마땅하게 보였다.
하지만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홍후인은 조금씩 깨닫고 있었다. 위현룡이 내민 따뜻한 손을 잡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말이다.
원송은 또 다른 사부가 있다는 위현룡의 말을 정색하며 물고 늘어졌다.
“그러니까 이미 스승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스승을 또 얻었다는 뜻이렷다? 그럼 한 명 더 얻는다고 문제될 건 없지 않느냐?”
정곡을 찌르는 그의 말에 장윤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무림에서는 다른 문파 제자를 또 다시 제자로 받아들이는 것이 도의에 어긋나는 모양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무학의 깊음을 빨리 깨닫고자 한다면 가급적 많은 선생 밑에서 다양한 무학을 공부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란 말이다.”
“그러게! 이번엔 웬일로 광소자 말이 맞다. 뭐 정 꺼림칙하면 대외적으로 말고 우리끼리 있을 때만 사부 제자해도 상관은 없는 거고...”
집요하도록 포기를 하지 않는 그들 앞에서 위현룡은 난색을 감추지 못했다. 개인의 목적을 위해서 이들의 제자가 되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현재 스승인 홍후인의 명예를 생각해서라도 절대 수락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현룡아...혹시 나 때문에 그런 것이라면 상관 말거라. 나는 네가 귀혼환령검법을 완벽히 터득하고 아울러 모든 누명을 벗고 행복하게 살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홍후인의 음성을 들으면서 위현룡은 더욱 결심을 굳혔다.
“죄송합니다만 저는 선배님들의 제자가 될 수가 없겠습니다.”
잠시 동안 어색한 공기가 흘러갔다. 피라미 같은 후배한테 모욕을 당해 냉랭한 분위기가 팽배해졌음으로 홍후인은 내심 고마우면서도 안타깝기만 했다.
소림 원송이 괘씸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데 묵묵히 있던 장윤이 아쉬운 침을 한번 삼키며 입을 열었다.
“좋다! 정 네 뜻이 그렇다면 스승으로 모시라는 말은 하지 않으마. 다만 나한테 무공을 배웠다는 사실만큼은 망각하지 말거라.”
체념하고 있던 위현룡은 뜻밖의 소리에 귀가 번쩍 뜨였다.
“제게 무공을 전수해주시는 것입니까?”
“그럼 어쩌겠냐? 나는 네게 빚을 졌다. 내 성격상 그걸 안고 사는 것은 고역이다. 그러니 태극혜검 심법을 배우고 나서 냉큼 꺼지거라!”
상황이 이처럼 돌변하자 절대로 무공을 가르쳐주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던 원송도 단번에 갈대처럼 흔들렸다.
“나....나도 마찬가지다. 무공을 전수해 줄 테니 소림무공을 전수받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위현룡은 감복한 얼굴로 그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두 분 선배님들의 넓으신 자애에 훗날 이 후배는 반드시 은혜를 갚겠나이다.”
그러나 그들은 위현룡의 인사는 받지도 않고 차갑게 말했다.
“일단 달마신장 심법부터 배우도록 한다.”
위현룡은 머쓱해졌지만 이내 그들의 가르침에 자세를 바로 하였다.
“선배님. 전 이미 심법을 익히고 있는데 그걸 또 배우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위현룡의 신중한 태도에 원송은 기가 차서 대답하였다.
“저런 우둔한 놈....뭐가 어떻게 돼? 당연히 달마신장 심법으로 운공을 해야지.”
“네?”
“나 원...그렇게 한참을 연마해 놓고 네 무공에 대해서 어찌 그리도 모른단 말이냐? 네 무공은 불완전한 무공이다!”
“그...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위현룡이나 홍후인에게 있어서 귀혼환령검은 너무나도 훌륭한 무공이었다. 헌데 단지 내력소모가 있다고 해서 단번에 불완전한 무공으로 폄하한다면 세상에 남아 있을 무공이 몇이나 되겠는가. 어느 무공이든지 약점은 한두 개씩 떠안고 있는 법이었다.
“너는 단순히 내력소모만이 문제라 보는 모양인데...귀혼내력이 너무나도 일정한 힘만을 분배하는 덕분에 노련하게 싸움을 이끌 수가 없다는 단점은 보이지 않는 게냐?”
위현룡은 자신도 모르게 광소자 장윤을 쳐다보았다. 무당파에서 그의 태극혜검 내력을 받아 귀혼내력처럼 시전했을 때 힘의 강약을 조절할 수가 있었던 것이 새삼 기억났던 것이다.
“그 뿐인가? 후반에 환령검법이라는 것도 맨 끝부분 초식들은 뭐가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다. 마치 마디가 끊어진 것처럼 연결이 되지 않는 그런 초식들이었다는 게다. 안 그러냐 광소자야? 네가 검법을 조금 아니 말해 봐라.”
원송이 던진 말을 장윤이 바로 이어받았다.
“석추승의 얕은 식견대로다. 기검이라는 특성이 붙은 초식들은 초짜들이 보기에 이상한 조합으로 보이긴 하나 서로 간에 검기가 연결되어 훌륭한 일초식을 형성한다. 헌데 저 땡초말대로 환령검법이라는 것에 후반부 초식들은 너무나도 뒤죽박죽이다. 잘못 연성하다가는 주화입마에 들어서거나 미쳐버릴 수도 있을 만큼 엉망진창이라는 뜻이지.”
홍후인은 그들의 설명을 들으면서 오래전 지하밀성에서 귀혼환령검 비급을 발견했을 때의 정황을 떠올렸다.
그때 그는 지하밀성의 무공들이 모두 도굴되어 있는 것을 보고는 허탈해 있다가 마지막 밀실에서 한 구의 시체를 발견하게 되었고, 의자에 깔려 있던 귀혼환령검 비급을 천우신조로 손에 넣게 되었다.
그런데 그 전에 시체가 있던 탁자 한 쪽에는 종이뭉치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었는데 비급에 눈이 멀었던 홍후인은 별 신경을 쓰지 않은 채 그저 비급만 품에 갈무리하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죽은 사람이 비급을 꺼내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그것을 연마하거나 연구하고 있었다는 건데 탁자에서 무언가를 적다가 죽어 있었으니 분명 후자일 것이다.
[아...그때 그 탁자 위에 있던 종이뭉치들을 가져왔었어야 했는데...]
뒤늦게 진한 아쉬움이 가득했지만 이미 무너져 버린 지하밀성으로 다시 들어가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너는 일단 달마신장 심법을 배우고 나서 곧바로 태극혜검 심법을 익혀야만 한다. 그러면 가지고 있는 귀혼내력이 태극혜검 내력의 특성을 받아들이게 되고, 검법 시전 시 달마신장 심법으로 운행을 하면서 단전에서는 내력이 계속 생성될 것이다.”
“그럼 귀혼검법의 본초식을 쉬지 않고 쓸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건 아니다. 내력소모가 큰 초식을 무한대로 지원할 내력생성은 사실 벅차다. 왜냐하면 내력이 조금씩 생성되기 때문이지. 그러니 네가 그 양을 잘 조절해서 초식을 조합하고 사용해야 할 것이다.”
장윤의 자세한 설명에 위현룡은 눈앞의 어둠이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내력소모로 인해 얼마나 많은 위기를 겪었던가. 비록 내력생성이 크지 않다 하더라도 마음 편히 귀혼검법을 시전할 수 있다는 점은 심적 부담을 없애는 동시에 싸움에서 큰 이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웃기게도 달마신장과 태극혜검 그리고 귀혼환령검은 운용 면에서 9할의 동질성과 단 1할의 이질성을 보인다. 헌데 이 일할의 다름이 세 무공에 독특한 특색을 부여하고 있지. 한마디로 우리들 모두의 무공은 상당히 흡사하면서도 다른 개성을 띄고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홍후인은 내심 감탄을 멈출 수가 없었다. 눈이 빨개지도록 보고 또 보아도 이해 못했던 것들을 저들은 단 시간 만에 귀혼환령검의 전체를 꿰뚫어 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의 심법을 배운들 네 무공은 완벽해지지 않는다. 환령검법 마지막 불완전한 초식들이 남아 있으니....허나 이 정도만 해도 무림에서 최고 고수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을 것이니 너무 과욕을 부리지 말거라.”
장윤의 충고에 위현룡은 즉시 대답하였다.
“일생일대의 기연을 얻은 제가 어찌 더 큰 욕심을 바라겠습니까. 저는 선배님들의 가르침을 받은 것으로 충분히 만족하고 또 만족하고 있습니다.”
“좋다! 그나마 주제파악을 하는 놈이라는 것이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군. 그럼 시작하자!”
이렇게 해서 위현룡은 달마신장과 태극혜검의 심법을 차례로 배우기 시작했다. 두 가지 심법을 운행하면서 정신을 집중하자 자연스럽게 귀혼환령검법의 초식들을 머릿속에 펼쳐졌다. 각 초식들이 지닌 묘를 터득하면서 한 차원 높은 경지로 들어서고 있는 것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위현룡이 깊은 숨을 내쉬면서 정신을 차리자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홍후인이 급히 물었다.
[어떠하냐? 단전을 보니 귀혼내력이 안전하게 자리 잡은 것 같다만....]
위현룡은 얼른 몸을 일으켜 검에 귀혼내력을 흘려 보았다. 예상대로 내력은 검을 타고 바닥으로 뚝뚝 떨어져 소비되고 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에 비례해 단전에서는 귀혼내력이 계속 생성되며 비움(空)을 채우고 있었다.
위현룡은 그토록 애태우던 단점이 말끔히 해소되자 기쁨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성공이다! 현룡아! 네가 해냈다! 네가 해냈어!]
홍후인은 너무나 감격스러워 몸을 덩실 덩실거렸다.
위현룡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 겪었던 고난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눈물이었다.
“이게 모두 선배님 덕분입니다!”
[무슨 소리냐! 내가 무슨 일을 했다고! 다 네가 노력한 덕분이지. 그리고 저 두 사람이 너를 도왔고, 하늘도 너를 도왔다.]
위현룡은 아직까지 가부좌를 틀고 깊은 참선에 들어가 있는 그들을 감사한 낯빛으로 바라보았다.
“저분들의 은혜를 어찌 다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문득 바닥에 놓여 있는 하얀 종이 한 장이 눈에 띄었다.
[저기 석추승이 남겨 놓더구나. 읽어 보거라.]
그가 남긴 편지인 듯싶었다. 위현룡은 말없이 그것을 주워 읽어보았다.
- 세상을 살면서 맺은 인연은 하나같이 다 소중한 것인데 하물며 사제지간의 연은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느냐. 인생이 배움의 연속이요 세상만물이 스승이니, 그 안에서 인간은 하찮은 존재일 뿐이니라 .-
편지를 읽고 나서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나왔다.
애초부터 스승이라는 직함은 그저 인위적인 것에 불과한 것일 뿐,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배우는 자와 가르치는 자 간의 존중과 신뢰가 아니겠는가.
위현룡은 자신이 스승이라는 테두리만을 중요시하여 그들의 가르침을 하찮게 여기는 오만한 실수를 했음을 깨닫고는 크게 후회하였다.
[현룡아...이 분들은 진정한 네 스승이시다.]
한동안 고개를 떨구고 있던 위현룡은 지긋이 눈을 감은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있는 원송과 장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세 번 절을 하면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제자 위현룡은 두 분 스승님께서 내려 주신 태산 같은 가르침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며 떠나겠나이다.”
동굴 밖으로 나오자 차가운 아침 공기가 피부를 자극하였다.
날이 훤히 밝은 지금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뿌연 안개 속에 쌓인 소림사가 신비스런 정취를 내뿜고 있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이 멋진 풍광을 음미하고 있을 수는 없는 듯하였다.
[이제부터가 문제로구나...겁도 없이 호랑이굴로 들어왔으니 나갈 때는 정신 바짝 차려야 할게다.]
“일단 어제 밤 들어온 길을 되짚어서 나갈 시도를 해보겠습니다. 어쩌면 의외로 손쉽게 빠져나가게 될 지도 모릅니다.”
[그래. 광소자와 함께 올 때도 소림승들의 이목을 교묘하게 피할 수 있었으니 가능할 수도 있겠구나.]
위현룡은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한 뒤 아래로 그대로 뛰어내렸다.
달마신장과 태극혜검의 상승심법을 전수받은 지금 그의 몸을 전보다 더 가볍고 날렵해져 있었다.
이것을 보고 홍후인은 매우 감탄하였다.
[역시 소림과 무당심법은 내공증진 뿐만 아니라 다른 부수적인 능력도 같이 끌어 올려 주는 구나.]
소림사원의 지붕위로 사뿐하게 올라앉은 그는 몸을 낮추고는 앞으로 쏜살같이 내달렸다.
귓가로 날카로운 바람소리가 지나가면서 그의 신형은 비호처럼 날았다.
Comment ' 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