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II - 심천패왕(深川覇王) <18>
먼동이 터 오려면 아직 한시진이나 남아있었다.
사마제와 그의 무사들은 모두 매복을 한 채 조막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목현탁이 옆에서 낮은 음성으로 속삭였다.
“적들의 수가 많습니다. 일거에 들이치지 않고 시간을 주게 되면 적들이 방비하여 아군의 피해가 클 터이니 신속하게 공격하셔야....”
“그 정도 병법의 기본은 알고 있으니 참견 마시오.”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이 강했던 사마제는 냉랭하게 목현탁의 말을 끊어냈다.
잠시 머쓱해진 목현탁은 아무 말도 못하고 슬쩍 자리를 비켰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사마제의 눈에서는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조막조의 배반으로 그런 것이라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근래에 들어서 이상하게 자주 살심(殺心)이 올라오는 것도 사실이었다.
사마제는 지하밀성 무공을 너무 몰아치듯 연마하는 바람에 피로가 쌓여 그런 것으로 생각했다.
마치 마약처럼 지하밀성의 무공에 도취되어서 식음을 전폐했던 적이 수도 없었던 것이다.
(이번에 돌아가면 잠시 쉬었다가 북학신공을 더욱 연구하여 완벽히 터득할 것이다.)
지루한 밤공기를 들이쉬며 매복하고 있던 차에 저 멀리서 엄청난 수의 검은 인형(人形)들이 어른거렸다. 조막조가 분명했다.
자신들을 죽이고자 저렇게 우글대며 은밀히 다가오는 것을 보자 사마제는 더욱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내 저 놈들을 모조리 없애버릴 것이다!”
앞의 상황은 꿈에도 예상 못하고 있는 조막조는 조심조심 무사들을 이끌며 다가왔다.
혹여 매복하고 있는 사마제에게 폐를 끼칠까 두려워서였다.
“저기...사마대협...”
모기 같은 목소리로 어둠속에 감춰져있는 사마제를 찾았다.
순간 횃불이 오르고, 갑자기 주위가 밝아지더니 큰 호통소리가 사정없이 귀청을 뒤흔들었다.
“저 반역자를 당장 처단하라!”
엄청난 함성소리와 함께 대막천궁의 무사들이 시퍼런 병장기를 휘두르며 달려 나왔다.
조막조와 한적수는 화들짝 놀랐다.
혹여 적벽관이 공격한 것인가 라고 생각했지만 저들은 분명 대막천궁 무사들이었다.
“왜...왜 이러시는 겁니까!”
조막조의 무사들은 무기조차 뽑지 못한 상태에서 무차별적인 공격을 받았다.
비명과 함께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아군들을 보며 한적수가 부르짖었다.
“조대협! 함정이오! 대막천궁이 우리를 죽이려고 기다렸던 것 같소이다!”
가까스로 정신을 수습하고 보니 대막천궁이 자신들을 처단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조막조의 얼굴이 무참히 일그러졌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얌전히 죽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모두 반격하라!”
조막조의 명령에 어쩔 줄 모르던 무사들은 다급히 대항을 시도했다.
희미한 새벽녘에 이렇게 두 패의 미친 듯한 살육전이 시작되었다.
조막조와 한적수는 살아남기 위해 혼신을 다하여 대막천궁무사들과 싸웠다.
“네 놈이 조막조로구나!”
귓가에 이런 분노의 외침이 들리는 듯 하더니 누군가 바람같이 달려와 조막조에게 일검을 날리고 있었다.
놀란 조막조는 얼른 뒤로 피하면서 사마제의 옆구리에 쌍장을 날렸다.
하지만 사마제는 대막천궁에서도 이름난 고수였다.
조막조의 이 조잡한 공격은 그의 살심만 더욱 부채질해주었다.
“네 놈을 산채로 잡아 가죽을 벗겨놓을 것이다!”
사마제의 검이 살기를 내뿜으면서 빠르게 휘둘러왔다.
바보도 아니고 무공으로 그를 격파한다는 생각을 가질 리 없는 조막조였다.
맞부딪치다가 괜히 올가미에 걸려들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 연달아 장력을 몇 번 날리고는 얼른 뒤로 내뺐다.
하지만 그 쪽은 이미 목현탁이 이끄는 동혈문 무사들이 포위망을 구축하여 조막조의 퇴로를 막고 있는 상태였다.
“아...이런...”
허탈감과 두려움이 동시에 올라오며 몸이 굳어져버렸다.
그런데 죽음의 그늘이 드리우는 찰나 갑자기 어디선가 커다란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뜻밖의 사태에 조막조는 물론 모든 무사들의 이목이 한 방향으로 돌아갔다.
막 조막조를 끝장내려던 사마제의 뒤통수 뒤로 ‘적벽관의 공격이다!‘ 라는 외침이 또렷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뭐라고!!”
이미 적벽관의 기습을 염려해 쳐들어올 길목에 일단의 무사들을 분산 매복시켜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그 길목을 거치지 않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우회해서 들이쳐 온 모양이었다.
긴급한 상황에서 무엇이 우선순위인지를 판단한 사마제는 목현탁에게 조막조를 처단하라 소리치고는 다급히 적벽관 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때 누군가 앞을 가로 막아섰다.
“또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위현룡이었다.
사마제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네 놈이로구나!! 오냐! 전에 못 끝낸 싸움 이 참에 결판을 짓자!”
진한 살심이 끓어오른 사마제는 들고 있던 검을 집어 던지고 곧바로 북학신공을 끌어올렸다.
붉게 물든 그의 좌수(左手)가 위현룡의 가슴을 노리고 쏜살같이 들어왔다.
[아직 네 실력으로는 저 녀석을 확실히 제압할 수가 없다. 그러니 최대한 버티면서 시간을 끌어라!]
홍후인의 주문과 함께 위현룡은 귀혼검법으로 뻗어오는 사마제의 좌수를 벨 듯이 휘두르면서 연이어 반격에 들어갔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이번엔 우수(右手)에서 장력이 발출되면서 상체를 노려왔다.
그 빠르기에 홍후인과 위현룡은 동시에 놀랐다.
왜냐하면 얼마 전에 맞붙었을 때는 이 정도까지의 신속함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좌장(左掌)이 신체의 삼대요혈을 노리고, 우장(右掌)은 선회하여 반응하는 상대의 움직임을 번개같이 타격한다.
일평생을 검법만 연마하던 사마제였다. 맞지 않은 옷과 같았던 그의 장법은 위현룡과의 실전으로 인해 전보다 더 익숙하고 발전된 무공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홍후인은 그간의 경험으로 사마제의 공격이 더욱 집요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북학신공의 장법이 방어에 특화되어 있기 때문에 검법을 쓰던 자의 성향상, 상대를 집중적으로 공격해 빨리 눌러 쓰러트리려는 방식을 취할 공산이 크다고 본 것이다.
더군다나 기체공이라는 무공까지 익혔으니 접근전과 난타전에서 상당한 이점을 가질 것이 명약관화했다.
이것이 더욱 더 공격에 치중할 것이라는 확신을 주고 있었다.
초반부터 불이 붙은 사마제의 북학신공은 거칠 것이 없었다.
위현룡이 제대로 반격도 못할 정도로 그의 빠른 장공은 사정없이 터져나가고 있었다.
[음...지금 유인책을 써보려는 것이냐?]
의외로 위현룡이 뒤로 물러나기만 해서 나온 물음이었다.
사실 그랬다.
귀혼환령검법과 정반대의 기질을 가지고 있는 북학신공.
확실히 지금까지 만난 상대 중 사마제가 가장 껄끄러웠다.
위현룡은 여러 방법으로 사마제가 사용하는 무공의 약점을 찾으려 애썼다.
그 역시 북학신공에 대해 많은 분석을 해봤었고,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싸워야함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
(힘으로는 귀혼검법이 한 수 위다. 하지만 저 자의 방어능력은 나의 공격을 모조리 무력화시키고 있다. 저 특유의 신체변형술과 외공 그리고 빠른 장공은 난공불락이나 마찬가지다.)
위현룡은 그것들 중에 특히 신체변형술에 신경을 집중시켰다.
검의 공격에 신속하게 몸을 변형시켜 급소를 숨기고, 강력한 외공이 다른 신체부분의 타격을 최소화한다.
(신속하게...)
만일 저 신체변형술보다 더 신속하게 공격이 들어간다면 어떻게 될까? 과연 그것마저 피해낼 수 있을 것인가?
위현룡의 의문은 여기서 시작되고 있었다.
그의 일방적으로 밀리는 모습을 보고 있던 홍후인도 뭔가를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근접전에서 위력이 있는 귀혼검법의 이점을 최대로 끌어올려보겠다는 것이구나.]
위현룡이 20수 만에 패색을 보이자 신이 난 사마제는 아예 끝장을 내기 위해 더욱 과감히 안으로 들어갔다.
위현룡의 몸이 잠시 휘청하는 틈을 타고 쌍장을 앞으로 내밀더니 강맹한 장력을 파도처럼 발출시켰다.
방어능력을 믿고 들어온 공격이라서 공격력은 배증되었지만 몇 군데 약점이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었다.
뒷걸음치던 위현룡의 눈빛이 그때 빛났다.
“지금이다!”
살짝 몸을 숙이는 듯하더니 그대로 앞으로 돌진하며 귀혼검법 본초식을 연달아 두 번이나 내질렀다.
파공음과 함께 날카로운 다섯 개의 검공이 합쳐지듯 생성되면서 사마제의 북학신공의 독주에 제동을 걸었다.
“엇!”
들어가던 장력이 귀혼검공의 힘에 밀리는 것을 느끼자마자 사마제는 직감적으로 위급함을 알아챘다.
그리고 잠깐 주춤하던 사이에 위현룡의 무지막지한 공격이 펼쳐지고 있었다.
귀혼검법에 청성파 특유의 류(流)의 특징이 혼용되면서 엄청난 몰아치기가 생성된 것이다.
지근거리(至近距離)에서 받게 된 공격에 사마제는 이를 악물고 기체공을 시전했다.
그의 몸이 벌겋게 되면서 피가 튀고 살점이 튀어나왔지만 그는 끄떡없이 다 버텨냈다.
[이런! 뭐 저런 놈이 다 있단 말이냐!]
홍후인의 입가에서 이런 신음소리까지 새어나왔다.
기가 막히다 못해 황당하기까지 하다.
보통 사람이었으면 저 공격에 이미 숨통이 끊어져도 골백번은 더 끊어졌을 것이다.
원하던 결과가 나오지 못하자 입술을 꽉 문 위현룡은 마지막 귀혼초식을 내질렀다.
위험한 고비를 잘 넘긴 사마제는 숨을 한번 헐떡이더니 이제 질세라 북학신공의 장력을 끌어올려 곧바로 공격해 들어갔다.
혼신을 다한 두 사람의 무공이 강렬하게 충돌했지만 역시 승부는 나지 않았다.
위현룡은 재빨리 뒤로 물러나면서 무거운 기합소리와 함께 환령내력을 끌어올렸다.
소름끼치는 듯한 느낌이 쫙 퍼지면서 사마제의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고 있었다.
“이것은...”
이름난 고수답게 사마제는 뭔가 검법의 분위기가 급변했다고 직감했다.
얼마 전 경험했던 뾰족한 투창과 같은 검기공이 떠올랐던 것이었다.
최대한 방어를 하면서 몸을 움츠리는데 아니나 다를까 질풍 같은 검기공이 수십 개로 불어나면서 순식간에 안면까지 날아들고 있었다.
그 빠른 속도의 공격을 사마제는 다 피할 자신이 없었다.
허나 자신에게는 목숨줄과 같은 기체공이 있지 않은가.
목숨을 내건 격전 속에서 기체공의 오묘한 원리를 상당수 터득한 상태였다.
“그래봐야 중상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작심한 그는 궁신탄영으로 날아오는 환령검공을 뚫고 위현룡에게 그대로 돌진했다.
붉게 물든 그의 신체를 덮고 있는 외공에 의해 몇 수의 공격이 튕겨 나가버렸다.
위현룡은 물소처럼 밀고 들어와서 장력을 날리는 그의 공격에 아연실색했다.
몇 군데 적중되어서 핏물이 날아오르는데도 악착같이 붙으려하고 있는 것이다.
환령검법은 접근전에서 위력이 상당히 감소되는 검법이었다.
당황한 기색이 위현룡의 얼굴에 드리우기 시작했다.
[위험하다! 어떻게든 저 놈에게서 떨어지거라!]
홍후인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하지만 어느새 강력한 외공을 앞세운 사마제의 인영(人影)이 눈앞에 튀어 올라왔고 연이어 시뻘건 장력이 불을 뿜고 있었다.
사마제의 입 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이미 필승을 점친 것이다.
(아! 늦었다!)
이제는 몸을 빼내기 위해 움직이는 게 더 위험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위현룡은 반사적으로 환령검법 중반부 초식 중에 하나를 시전하였다.
부단한 노력을 해왔지만 아직까지도 깨우치지 못한 초식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지금 이 순간 이 초식을 써야만 한다는 판단이 본능적으로 생기고 있었다.
위현룡의 검이 넓게 휘둘러지자마자 뽀얀 검막(劍幕)이 생성되면서 사마제의 무차별적인 장력을 다 막아내기 시작했다.
이겼다고 생각했던 사마제는 기겁을 했다.
연달아 날려 보낸 자신의 북학신공이 모조리 무위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시간이 멈춘 듯한 그 느린 초식 안에서 느닷없이 검 한 자루가 쑥 빠져나와 자신의 인당혈을 노리는 게 아닌가.
이건 상상도 못했던 공격인지라 사마제는 갑작스레 목숨이 경각에 달렸음을 자각했다.
사마제는 위현룡의 이 특이한 공격법을 온전히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하지만 그 역시 보통은 넘었다. 최대한 몸을 비틀더니 기체공을 일으켜 날아오는 환령검공에 비켜나갈 시도를 한 것이다.
공중으로 또 한 번 핏물이 튀어 올랐다.
나직한 신음소리와 함께 뒤로 굴러 떨어진 사마제는 벌떡 일어나며 급히 방어자세를 취했다.
찢어진 머리에서 흘러 내려오는 붉은 액체로 인해 그의 얼굴이 범벅이 되어버렸다.
“이런 빌어먹을!”
가까스로 머리통이 날아가는 위급은 피했지만 받은 타격이 꽤 컸다. 지금까지 버텨주었던 외공이 걸레처럼 찢어져 너덜거리는 느낌이 들었을 만큼 약해져버린 것이다.
거기다가 지금까지 버텨왔던 작은 상처들이 터지고 출혈이 가중되고 있었다.
패했다는 것에 분노가 솟구친 사마제의 두 눈이 붉게 충혈 되었다.
“네 놈을 반드시 죽이고야 말겠다!”
이를 부득부득 갈며 벽력같은 일갈을 한 사마제의 신형이 다시 돌진해 들어왔다.
[저 놈의 공격 기도가 갑자기 증폭되었구나! 하지만...]
여기저기 부상을 입은 사마제의 몸놀림은 기세에 비해 크게 둔화되어 있는 상태였다.
위현룡은 당황하지 않고 좌측으로 몸을 움직이면서 추가공격을 감행하였다.
“으윽!”
환령검공에 적중된 사마제가 비틀거리면서 뒷걸음질 쳤다.
죽을 것 같은 고통이 온몸에 퍼졌지만 그는 다시 버티고 반격을 도모하려고 했다.
보고 있던 홍후인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제갈무도 환령검공을 못 이기고 쓰러졌는데 이 자는 끝까지 버티고 서 있는 것이다.
[저렇게 질긴 놈은 처음이다! 이거야 말로 완전히 너와 상극이 아니냔 말이다.]
“저도 환령내력이 고갈직전이라 더는 힘들 것 같습니다.”
환령내력이 고갈될 때까지도 승부를 보지 못한 사람은 사마제가 처음이었다.
귀혼검법의 내력고갈의 약점을 어느 정도 해소하여 한숨 돌렸는데, 지하밀성의 무공 앞에서 환령검법의 약점이 다시금 문젯거리로 등장한 것이다.
저쪽에서 불화살이 새벽하늘을 뚫고 날아 올라갔다.
이미 계획대로 사마제를 유인해 붙잡아 놓으며 시간을 끌었다.
이제는 퇴각할 시기인 것이다.
위현룡은 뒤로 날쌔게 몸을 빼냈다.
“어딜 도망가느냐! 어서 이리 오지 못할까!”
사마제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 역시 기력이 쇠한데다가 상처의 고통으로 더는 움직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번엔 어쩔 수 없지만 다음엔 또 다를 것이다.“
혼자서 폐관수련을 하면서 북학신공을 익혔을 때는 깨달을 수 없었던 원리가 실전을 거듭하면서 크게 발전되고 있었다.
때문에 다음에 다시 붙는다면 반드시 이길 것이라는 확신이 들고 있었던 것이다.
- 작가의말
안녕하십니까.
문피아에서 정통무협은 이제 하락세인 것 같아서 슬프긴 합니다만...
그래도 부족한 글,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그걸로 행복합니다.
그럼 이만 물러갑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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