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II - 일보전진(一步前進) <10>
장윤의 목소리가 다급해지고 있었다.
"맞습니다. 지금으로써는 대안이 없으니 말입니다."
애당초 위현룡은 장윤을 상대로 어떤 술수를 부리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솔직한 심정을 말했을 따름인데 장윤 스스로 덫에 걸려 허우적거리게 된 것에 불과했다.
"가지 마라! 그 땡중은 아무 것도 모르는 멍청한 놈이란 말이다."
그가 본격적으로 허우적대고 있었다.
위현룡은 난처한 기색으로 말했다.
"죄송한 말씀이오나 소림 달마신장이 내력을 생성시키는 방법에서 태극혜검보다 한 수 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자 장윤이 얼굴을 붉히면서 펄쩍 뛰었다.
"웃기지 마라. 그건 말도 안 된다. 달마신장 따위가 뭐라고! 태극혜검에 비하면 그건 무공도 아냐!!"
어찌 보면 마치 어린아이가 떼쓰는 모습 같았기에 홍후인은 그만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어버렸다.
[도대체 연륜을 어디로 먹은 건지...오랜 세월 폐관수련만 하다보니 몸은 커졌는데 사고와 행동이 그것을 따르지 못하는 군.]
홍후인의 말대로 장윤은 보통 사람과는 뭔가 달랐다. 간혹 나이에 맞는 언행을 보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얼토당토 않는 동심(童心)을 내보이기도 하였다.
"말해라! 안 가겠다고 말이다!"
"그럼 저와 같이 기검에 대해서 연구해보시겠습니까?"
"뭔 소리냐! 내가 왜 본문의 무공을 너한테 전수해 줘?"
"그럼 어쩌란 말씀이십니까?"
"뭘 어째? 소림사로 안 가면 되는 거지!"
조건을 내세워봐도 무조건 거부하면서 억지만 부리고 있었다.
위현룡은 말이 통하지 않자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작별을 고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순간 장윤의 몸이 유령처럼 움직이더니 위현룡의 앞을 막아섰다.
"기다려라! 무당파가 네가 들어가고 싶다하여 들어가고, 나가고 싶다하여 나가는 그런 호락호락한 곳인 줄 아느냐? 넌 못 간다!"
"지금 저더러 여기 평생 남아있으란 말씀이십니까?"
"평생 남아? 오! 그거 괜찮은 생각이로구나!"
"..."
"뭐...정 나가고 싶으면 네 한쪽 팔을 여기 놓고 떠나던지...검을 잡고 있는 오른 팔이 좋겠구나."
자신의 방법이 꽤 통했다싶었는지 장윤이 애써 인상을 무섭게 만들고 있었다.
이에 위현룡은 얼굴은 굳힌 채 엄숙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저는 노선배님께 정중히 가르침을 청하려다 거절을 당하여 돌아가는 것입니다. 비록 법도를 어기고 함부로 들어온 것은 맞습니다만, 어찌 그에 대한 죄를 묻지 아니하시고 단순히 개인적인 이유로만 사람의 사지를 함부로 절단하려 한단 말입니까?"
위현룡의 말에 틀림이 없었기에 장윤은 그만 머쓱해졌다. 속으로는 어떻게든 소림사에 못 가게 붙들고 싶은데 도무지 뾰족한 수가 생기지 않는 것이었다.
"노선배님께서 그런 관대함도 없으시니 이 후배는 무척 실망할 따름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야! 잠깐 기다려라! 그럼 이렇게 하자. 나랑 붙어서 십 초식만 버틴다면 온전히 보내주마. 대신 못 버티면 여기 남아라."
위현룡이 떠나려하자 당황했던 장윤이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내세운 조건이었다.
[어라? 이것 봐라?]
뜻밖의 제안에 홍후인은 기가 막히면서도 반색을 하였다.
도대체 위현룡을 얼마나 만만하게 봤으면 저따위 말도 안 되는 조건을 건단 말인가.
[현룡아! 귀혼검법을 잘 조합해서 몰아치면 설마 십 초식을 못 넘기겠느냐 만은...문제는 노력에 비해서 결과가 없구나. 차라리 역으로 네가 그럴싸한 조건을 내세워보거라.]
솔직히 위현룡은 소림사까지 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무당파를 들어오는 데도 엄청난 고생이 뒤따랐는데 그보다 더한 소림사를...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침입해 들어갈지 눈앞이 다 캄캄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가급적 장윤과 사이좋게 기검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 게 백 번 나은 일이었다.
"제가 만일 십 초식보다 훨씬 더 많이 넘긴다면 제 요구를 들어주시겠습니까?"
"무슨 요구? 다른 건 안돼! 십 초식 못 넘기면 넌 무조건 여기 남는거야!"
고집스러운 장윤의 대답이 되돌아왔다.
뭔가 어수룩한 듯하면서도 쉽게 넘어오지 않는 게 참으로 희한했다.
"알겠습니다."
어쩔 수없이 위현룡은 순순히 동의를 해주었다.
장윤은 동굴 벽에 박혀있는 녹슨 철검은 뽑아들었다. 그러더니 "따라와라" 라는 말과 함께 산 정상으로 먼저 달려 올라가는 것이었다.
위현룡이 즉시 그의 뒤를 따랐다.
[엄청난 경신술이로구나.]
초반에 가까웠던 두 사람의 거리는 점차 멀어졌다.
산 타는 일이라면 누구보다 자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장윤에 비하니 경신술의 수준차이가 현저하게 드러나고 있었던 것이었다.
홍후인은 위현룡의 경신술이 그저 그런 실력임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당연하다 인정하면서도 신기에 가까운 장윤의 경공술에는 감탄을 멈추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의제에 버금가는 실력일세...]
위현룡이 산 정상에 당도했을 때, 장윤은 검을 아래로 늘어트린 채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위가 평평하게 잘 다듬어져있는 것을 봤을 때 평소 장윤이 이 곳에서 무공을 연마하는 듯 싶었다.
"참 빨리도 올라온다..."
빈정대는 그의 소리가 들렸지만 위현룡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검을 뽑아 들었다.
"분명 약속했다! 십 초식 못 버티면 여기서 나갈 생각 말아라!"
이 말을 끝으로 장윤의 신형이 빛살처럼 날아들었다.
설마 이렇게 갑작스럽게 공격해올 줄 몰랐던 위현룡은 황급히 검을 틀어 그의 일격을 막아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위현룡은 그의 검격에 밀려 뒤로 나동그라지고야 말았다.
"으캬캬캬. 어떠냐? 나의 실력이!! 내가 이겼다!"
홍후인은 뻔뻔스럽고도 치졸한 그의 행동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런...명색이 사백조라는 작자가 이런 식의 공격을 해오다니...]
물론 싸움에 있어서 선제공격을 누가하든 그것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단 홍후인의 관점에서는 한참 위인 무림선배가 새카만 후배에게 기습공격이라는 방식을 취했다는 게 무척 언짢았을 뿐이었다.
위현룡이 지면을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뭐? 안 끝나다니?"
"십 초식을 조건에 거셨으나 그것이 단판이라고는 하지 않으셨지 않습니까?"
"어...그건 그런데..."
"전 지금부터입니다!"
위현룡이 힘찬 기합을 지르자 단전에서 귀혼내력이 폭발하면서 검으로 빠르게 흘러 들어갔다. 장윤은 아까 와는 전혀 다른 기도가 느껴지자 안색이 살짝 변했다.
"그게 네 본 실력인가 보구나?"
귀혼내력을 흠뻑 머금은 보검이 수평으로 날아올라 앞으로 찔러나갔다.
어차피 십 초식만 버티면 됐으므로 위현룡은 최고로 빠른 검초로만 조합하여 상대에게 틈을 주지 않으려 했다. 일 초식을 시작으로 구 초식까지 순식간에 도달했다.
설마 이렇게까지 속공으로 치고 들어올지 상상도 못했던 장윤은 위현룡의 공격을 막아내는 동안 속수무책으로 십 초식에 다다르려하자 그만 혼비백산하였다.
(어이쿠! 이러다 내가 지겠다!)
구 초식에 연이어 십 초식을 향한 마지막 초식이 위현룡의 검 끝에서 발화되었다.
순간 위현룡은 갑자기 자신을 밀어내는 듯한 태산같은 압박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챙'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손아귀에 쥐어져있던 것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위현룡은 멍한 얼굴로 저만치 처박혀있는 자신의 검을 바라보았다.
분명 승세를 잡고 있었는데 믿을 수 없을 만큼 강맹한 힘이 검을 쳐내버린 것이었다.
한편 장윤은 속으로 식은땀을 주르르 흘렸다.
(하마터면 질 뻔했잖아!)
위현룡을 얕보고 평범한 무당파 검법을 사용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놀라 태극혜검을 시전한 것이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일개 무명인에게 당하여 큰 낭패를 봤을 것이다.
[이 놈아!! 너 지금 뭐 하는 거냐? 저 자의 실력이 월등한데 지금 봐주는 거냐?]
아깝게 져버리자 홍후인은 위현룡이 무림 선배에게 예를 차린답시고 거세게 공격하지 못했음을 질책하고 나섰다. 실제로 위현룡의 검초에는 빠름은 있으나 상대를 옥죄일 살초가 거의 가미되지 않은 상태였다.
장윤의 녹슨 철검이 그의 목에 겨눠졌다.
"이젠 인정하겠느냐?"
철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태극혜검의 차가운 기운이 피부를 통해 느껴지고 있었다.
위현룡은 얼른 몸을 날려 자신의 검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
"아직 입니다!"
"뭐? 아직? 오호라! 그래도 네가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이구나. 오냐 이참에 태극혜검의 무서움을 똑똑히 알려주마!"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장윤은 태극혜검을 시동하기 위한 내력을 극성으로 끌어올렸다.
엄청난 압박이 부채처럼 쫙 퍼지면서 위현룡의 전신을 휘감았다.
심장이 거세게 쿵쾅거렸다.
[이것이 진정한 태극혜검이란 말인가...]
위현룡과 홍후인에게는 놀라움을 넘어서 어떤 경외감과 두려움이 같이 일어나고 있었다.
연사엽과 대결할 때와는 전혀 다른 기도. 그것에는 인정이라든가 상대에 대한 경시 따위는 조금도 없었다. 그야말로 적을 반드시 죽이겠다는 무서운 집념만이 태산을 무너트릴 기세로 담겨져 있었던 것이었다.
흔히 대결을 할 때 무인들은 반드시 상대를 죽이겠다는 마음을 검에 담는다. 그러나 그 마음이 상대에게까지 전해지도록 하는 것은 웬만한 고수가 아니면 힘든 일이었다.
또한 거기에다가 상대방에게 두려움까지 심어줄 수 있다면, 이는 고수 중에서도 입신(入神)의 반열에 든 고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위현룡은 난생 처음으로 떨리는 마음을 가졌다.
목숨을 내 건 숱한 대결 속에서 한번도 갖지 않았던 나약함을 지금 갖게 된 것이었다.
검을 잡은 손이 떨리고 있었다.
[현룡아!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죽을 지도 모른다!!]
홍후인도 내심 떨리긴 마찬가지였지만 자신마저 그런 기미를 보이면 위현룡의 기세가 꺾인다고 판단하였다. 대결을 하게되면 기 싸움부터 시작된다.
여기서 밀리면 몸이 경직되어 본실력의 절반밖에 발휘할 수 없게 됨을 오랜 경험으로 익히 알고 있는 그였다.
[벌써부터 상대에게 주눅들지 말거라! 귀혼검법은 태극혜검보다 훨씬 위대한 검법이다. 집중하거라! 그리고 명경지수(明鏡止水)가 되어 상대를 파악하고 약점을 찾아라. 너를 믿고 기다리고있는 많은 사람들의 염원을 한낱 두려움 따위로 져버릴 것이냐!!]
홍후인의 호통소리에 위현룡의 두려움은 단번에 산산이 부서졌다.
(나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여기서 밀릴 수는 없다!)
위현룡은 이런 다짐과 함께 이를 악물었다.
그러자 그의 눈동자에 붉은 기운이 엷게 서리면서 뽀얀 강기가 피부를 감싸기 시작했다.
[그렇지! 바로 이거다!]
홍후인은 위현룡의 공격력이 눈에 띄게 상승하고 귀혼외공까지 일어나자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 관찰로 인해 기검이라는 것이 사람의 심리나 성향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 홍후인은 모든 귀혼검법의 문제가 위현룡의 마음에 달렸다고 단정지었다.
장윤도 같은 기검계열인 태극혜검을 시전하자마자 지독한 살기를 드러냈고 그 여파로 엄청난 위력을 뿜어내고 있지 않은가.
반면 위현룡은 장윤에게 어떤 적대감도 없다하여 그저 온화한 마음을 기반으로 하여 귀혼검법을 시전했을 뿐이었다.
헌데 만일 위현룡에게 장윤과 같은 성향이 포함된다면 과연 태극혜검에게 이렇게 밀리게 될까? 최소한 협철곡에서나 약왕문에서 싸운 것처럼만 싸워준다면 태극혜검에 크게 밀릴 것도 없다는 것이 홍후인의 결론이었다.
정신무장을 새롭게 한 위현룡에 의해 귀혼검초가 새롭게 조합되었다.
단 십 초식이라는 능선만 넘으면 되는 것이기에 이번 조합에서는 내력소모가 크나 위력 면에서는 으뜸인 귀혼검법 본초식이 연달아 구성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귀혼검법과 태극혜검의 피할 수 없는 정면대결이 무당산 봉우리 위에서 펼쳐지게 된 것이었다.
Comment ' 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