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II - 암중암투(暗中暗鬪) <04>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보이지 않은 긴장감은 날로 더해져갔다.
적벽관은 매서운 눈초리로 월천교를 옥죄었고 월천교는 더욱 몸을 낮추며 숨을 죽였다.
하지만 매요비는 그 점이 계속해서 맘에 걸렸다.
“손장로는 별 움직임이 없던가요?”
조용히 차를 마시던 매요비가 돌연 수하인 한목풍에게 묻고 있었다.
“별일 있겠습니까? 집회를 연다고 호들갑을 떨긴 하지만 그에 반해 월천교의 세가 점점 시들고 있으니 아마 자포자기하고 있는 게 아닐는지요?”
한목풍의 대답에 매요비는 미간을 찌푸렸다.
“너무 잠잠한 게 이상할 지경이네요. 최소한 팔황문으로 가서 채문주와 의논이라도 해야 할 텐데 그 날 이후로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지요?”
“며칠 후엔 집회를 시작할 것입니다. 이미 은향을 통해서 서로 간에 적당한 타협을 조율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렇겠지요. 그런데 손장로의 용의주도한 성격상, 월천교가 준동하고 나서 주도한 첫 번째 집회치고는 너무 움직임이 없습니다. 또한 채문주와 집회의 규모를 놓고 설전을 벌였을 때도 너무나 쉽게 물러났지요.”
이에 한목풍이 의아한 표정을 얼굴에 드러냈다.
“그 자가 무슨 음모를 꾸며놓고 있다고 확신하시는 것입니까?”
“반 정도는 그렇습니다. 뭔지는 모르지만 손장로는 집회를 위해 월천교 교도들을 새외 전역에 내보냈을 때부터 단 한 번도 경거망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왜 일까요?”
마시려던 찻잔을 내려놓고 잠시 골똘히 생각에 잠기던 매요비는 갑자기 생각난 듯 물었다.
“한대협, 당시 집회를 위해 밖으로 나간 월천교 교도들의 행적들을 모두 파악하셨다고 했지요?”
“그렇습니다. 나가기 전에 몸수색은 물론이고 그들의 목적지까지 수하들을 붙여서 확인하도록 명했었습니다. 하지만 별다른 수상한 점은 포착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그들이 정확히 새외 안에서만 활동하던가요?”
“네. 그렇습니다. 거의 다 그랬지요.”
매요비의 가는 아미(蛾眉)가 위로 살짝 올라갔다.
“거의 다라니요?”
“그들 중 한 명은 새외를 약간 벗어나긴 했습니다. 작은 집회 치고는 꽤 멀리까지 나가긴 했지요. 그래서 제가 특별히 명을 내려 그 자가 포교활동을 다 끝날 때까지 주시하고 돌아올 때도 같이 오라고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포교 외에는 큰 움직임이 없었다고 보고 받았으니 안심하셔도 될 것입니다.”
한목풍의 자신 있는 설명이었지만 매요비는 전혀 개운하지가 않았다.
탁자위에 커다란 새외의 지도가 펼쳐졌다.
“그 자가 간 곳이 어디쯤인가요?”
“여기 부근입니다. 근데 왜 그러시는지...”
매요비는 한목풍의 손가락이 짚은 곳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굵은 선 하나가 경계를 나타내며 지나가고 있었다.
순간 매요비의 눈동자가 갑자기 커지면서 혈색이 살짝 변했다.
“이 곳은 천축으로 가는 길목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새외를 바로 지나서 천축으로 가는 길목인지라 그곳 마을엔 장사치들의 상업적 교류가 활발한 곳이기도 하지요.”
“일전에 채문주가 말하기를 월천교가 과거 천축에 나보교라는 문파의 도움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자가 간 곳이 천축을 가는 길목이군요.”
점점 날카로워지는 그녀의 음성에 한목풍은 너무 당황하여 변명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그 자는 절대로 천축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제 수하가 그를 가까운 거리에서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굳이 갈 필요가 없습니다. 포교하는 척하면서 충분히 나보교 사람들에게 밀담이나 서신 등을 전달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한목풍은 그제야 사안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수많은 월천교 교도들 사이에서 단 한 명이 의외의 행동을 했다면 그 자를 더 철저하게 감시해야한다는 것을 잠시 망각한 것이다.
“손장로가 천축세력을 새외로 끌어오려는 속셈일 수도 있습니다.”
매요비의 말에 한목풍은 충격을 받은 듯 경악의 목소리를 냈다.
“변방의 무리들은 절대로 적월교를 감당하지 못합니다. 더군다나 그 사실을 적월교에서 알기라도 한다면 협정이고 뭐고 월천교는 단번에 불바다에 휩싸이고, 주동자인 손장로는 천 갈래 만 갈래로 찢겨죽게 될 터인데 설마 그런 미련한 짓을....”
“한대협, 이건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적월교와 적벽관은 새외와 중원 외에 변방세력에 대한 정보를 거의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만약 월천교가 지금까지 오랜 세월동안 새외의 정보를 나보교 쪽으로 꾸준하게 보냈다면 그쪽은 아마도 상당한 정보가 쌓였겠지요. 이것은 우리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되어 되돌아올 것입니다. 즉 우리는 다 내보인 상태고 저쪽은 짙은 어둠으로 감춰진 상황인 것이지요.”
잠깐 숨을 고른 매요비는 재차 입을 열었다.
“적월교는 나보교에 대한 정보가 전무하기 때문에 수많은 난관과 불확실성에 봉착될 것입니다. 적들이 어느 정도의 규모와 무력을 이루고 있는지, 하물며 뚜렷한 그들의 전투 목적도 파악하지 못하겠지요. 또한 최악의 경우로, 천축에는 나보교만 존재하지는 않기 때문에 그곳의 수많은 문파들과 교파들이 힘을 합친다면 새외와 변방세력 간에 큰 무력충돌이 일어나 수많은 인명이 희생될 것입니다. 이는 적월교뿐 아니라 새외 전체의 존폐가 달린 문제가 됩니다.”
“이 사실을 일단 적월교에 알리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적벽관과 팔황문만으로는 감당이 안 됩니다.”
자세하면서도 끔찍한 그녀의 설명에 마른 침을 한번 삼킨 한목풍이 조심스럽게 의중을 내비쳤다.
하지만 매요비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월천교가 나보교와 내응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무엇보다 적월교는 팔황문과 적벽관을 그대로 놔두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도 월천교와 엮어서 후환을 없애려하겠지요.”
“그....그럼 어떻게 해야....”
“일단 아직 추측에 불과합니다. 지금의 얄팍한 정보로는 변방세력이 새외를 공격할 확률이 없다고 봐야겠지요. 하지만 만약 일어난다면 적벽관은 절대로 적월교에 미리 언질을 주지 않을 것입니다. 사태가 더 커지고 적월교가 단합의 필요성을 느낄 때 우리가 나서야 우리의 가치가 살아나고 적벽관을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매요비의 두 눈동자는 별같이 반짝이고 있었다.
한목풍은 그녀의 깊은 통찰력과 재지(才智)에 마음속으로 감탄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풍전등화와 같은 이 적벽관을 현명한 그녀가 이끌고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깊이 새겨지고 있었다.
“한대협, 곧 열리게 될 집회에 나보교가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모든 인력을 동원하여 천축에서 새외로 들어오는 자들이 있는지, 얼마나 되는지, 아울러 그들이 향하는 각자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하는 것을 세세하게 알아봐 주세요. 매우 중요한 일이니 은밀하고도 신속하게 하셔야 할 것입니다.”
한목풍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신의 안이함으로 심각해진 상황인지라 어떻게든 일이 커지지 않도록 막아야만 했다.
“우선적으로 그쪽 지역에서 활동하는 수하들에게 전서구를 보내 다시 조사를 강화하라 명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인근지역을 살피면서 새외로 들어온 수상한 세력들이 없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그가 간단한 목례만 하고 급히 나가자 매요비는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지도를 다시 바라보았다.
“근 팔백년의 세월동안 변방은 한 번도 새외를 넘보지 않았는데 이번에 공격을 해온다면 만만의 준비가 되어있겠지. 하지만 천축과 새외와의 지리적 거리는 저들에게도 큰 부담일터이니 우리가 꼭 불리한 것만도 아니다...”
**
나보교는 집회를 위해 모이는 교도들 또는 장돌뱅이들로 위장시켜 거의 천명에 가까운 고수들을 새외로 잠입시켰다.
장돌뱅이들은 그보다 앞서 조금씩 들어와 상업 활동을 하고 있었기에 실상 교도들로 위장해 들어온 숫자는 적었다.
때문에 적벽관 한목풍은 이들의 세력을 정확하게 인지하기가 어려웠고, 그들은 무사히 새외로 넘어와 집결할 수가 있었다.
나보교 무사들의 수장인 낭갈(朗噶)은 월천교에서 막 출발하려는 셋째 강곡(绛曲) 그리고 넷째 초패(礎覇)와 합류를 하였다.
그들은 낭갈이 무사들을 이끌고 오자 놀라면서 이구동성으로 물었다.
“무림공적은 어쩌고 이리 오신 게요?”
낭갈은 껄껄대며 웃었다.
“별 것도 아니었는데 지레 걱정했지 뭔가.”
그때 손복서가 나오면서 반색을 하였다.
“어서 오십시오. 대사.”
“오! 손장로! 정말 오랜만이요.”
손복서가 나보교에 일신을 의탁할 때부터 두 사람의 관계는 친밀하게 이어져오고 있었다.
하여 월천교가 무력적 지원을 요청했을 때 낭갈은 스스로 선두에 서겠다는 자원을 했다.
손복서의 입장으로도 그가 와준 것은 너무나도 든든한 지원이었다.
“적벽관 때문에 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뭐 좀 피곤하긴 했지만 끝내는 이렇게 오지 않았소?”
손복서는 슬쩍 그들이 이끌고 온 무사들을 살폈다.
천여 명도 안 되어 보이는 게 영 미덥지가 않았다.
그 눈치를 챘는지 낭갈이 호기롭게 말했다.
“적월교를 건드리기 전에 일단 우리가 선발대로 먼저 와 본 것이오. 교주께서 신중하신 성격인 것을 손장로도 잘 알고 있지 않소이까?”
나보교 교주를 딱 한번 알현하기는 했지만 그가 신중하다 못해 답답하다는 건 경험으로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과거 손복서가 월천교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때 얼마나 까다롭고 많은 요구를 했던가.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완벽함을 추구하는 성격도 갖추고 있어서 손복서는 내심 뭔가를 바라며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낭갈은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가 성공하고 나면 적월교를 움직여 유인하게 되고, 그 틈에 후발에 남겨져 있는 우리 무사 수천 명이 빠르게 진입하여 기습과 소탕을 하게 될 것이오.”
대기 중인 무사들의 숫자도 만족스러웠지만 그보다 이들에게 그럴듯한 작전이 준비되어 있다는 게 더 안심이 되었다.
“일단 가장 시급한 문제는 무림공적입니다. 지금 당장 그 놈을 찾아서...”
그러자 낭갈이 손을 쳐들면서 손복서의 말을 막았다.
“그 허접한 무림공적이라면 이미 내가 해치웠소.”
“뭐라고요?”
그 말에 손복서는 크게 놀라 펄쩍 뛰었다.
“그 자의 무학이 대단하다고 손장로가 하도 경고를 하여 내심 기대를 했었는데 생각보다 변변치 못하더이다.”
“그 자가 이미 죽었단 말씀이십니까?”
“즉사를 시킨 건 아니지만 내 십단장에 정통으로 적중되어 쓰러졌고, 둘째가 마지막 처리를 하고 이곳으로 오게 되어 있소.”
손복서는 가장 까다로운 무림공적을 단숨에 해결했다는 소리에 고무되어 얼굴에 화색이 다 돌았다.
낭갈의 무학이 나보교 내에서도 꽤나 유명했었는데 이 정도의 실력이라면 적월교 그 누가와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듯했다.
“근데 집회 때 치자는 계획이 아니었소?”
낭갈의 물음에 손복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설명했다.
“본래는 그럴 계획이었는데 갑자기 적벽관의 움직임이 부산해져서 서두르게 되었습니다. 그 놈들이 워낙 약아빠져서 눈치라도 챈다면 골치 아파지지 않겠습니까?”
“뭐 그건 그렇소. 덕분에 다급하게 움직이긴 했지만 어차피 끝낼 거 후딱 해치웁시다.”
이때 손복서가 수하 한명을 급히 불렀다.
“너는 지금 당장 팔황문으로 가서 은향이에게 전하거라. 지금 거사를 실행하라고. 그렇게만 말하면 알아 들을 것이다.”
수하가 떠나고 난 뒤 그는 바로 낭갈에게 당부하듯 요청했다.
“적벽관은 팔황문에서 가까운 곳에 본거지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니 먼저 적벽관을 치고 나서 팔황문을 접수하는 게 순서일 것 같습니다.”
“어려운 것도 아닌데 그렇게 합시다.”
그러던 중에 낭갈의 둘째 동생인 파상(巴桑)이 돌아왔다.
“어떤 놈들이 끼어들어 그 놈을 빼돌렸습니다.”
“뭐라?”
파상은 급히 자세한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다 듣고 난 낭갈은 얼굴이 벌게지며 짜증이 크게 일었지만 위현룡이 실신하여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는 말에 더 이상의 성질을 내지는 않았다.
어차피 무림공적은 곧 죽을 놈이었고 오히려 독무에서 무사들을 빠르게 후퇴시킨 파상의 결정은 적절한 판단이라 여겼던 것이다.
낭갈이 이끄는 나보교 무사들과 월천교 무사들이 살기등등하여 적벽관의 본단에 다다를 시기는 짙은 어둠이 내린 때였다.
고요한 적막 안에 모여든 그들은 공격 시기를 저울질하였다.
“대사, 아시다시피 적벽관의 수장은 계집인데 그 년은 보자마자 바로 죽이셔야 뒤탈이 없습니다.”
손복서의 말에 낭갈이 아쉬운 듯 물었다.
“얼굴이 반반하다 들었는데 굳이 바로 죽일 필요가 있겠소?”
“그 년은 간교하기가 이루 말할 때가 없어서 약간의 틈을 보이는 순간 도망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발견하자마자 사정 봐주지 말고 무조건 그 자리에서 요절내야할 것입니다.”
낭갈이 여색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잘 알았지만 손복서는 유난히 강하게 자신의 주장을 내세웠다.
이에 낭갈은 쓴 입맛을 다시면서 마지못해 수긍하듯 말했다.
“뭐...일단 봅시다. 내가 알아서 잘 처리할 것이오.”
** **
한목풍은 매요비의 명을 받아 변방세력에 대한 중요 정보들을 입수하여 급히 돌아오는 길이었다.
새외와 변방의 경계지역에서 활동하는 수하들로부터 그곳에 엄청난 수의 무사들이 집결되고 있다는 것과 최근에 약 백여 명의 변방인들이 새외로 넘어갔다는 사실을 전서구로 보고받았다.
이는 너무나 중차대한 문제라 조금이라도 빨리 매요비에게 알려 대책을 마련해야만 했다.
한데 갑자기 저 멀리 어둠속에서 치솟고 있는 벌건 불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처음엔 고개를 갸우뚱거렸으나 점차 적벽관이 있는 방향과 일치되자 발길이 더욱 빨라졌다.
불안한 예감에 전력으로 경공을 전개했고 그 예감이 사실로 판명되자 한목풍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적벽관이 불타고 있었다.
단말마의 비명소리가 차가운 밤공기를 타고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인들이 계속해서 내부로 들어가는 것을 보아 무차별적인 살육이 자행되고 있는 듯싶었다.
-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즐거운 주말입니다.
오늘도 부족하지만 한 편을 올렸으니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물러갑니다.
어려운 시기에 모두 힘내시고 파이팅 하십시오.
늘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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