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II - 일보전진(一步前進) <16>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물기둥이 하늘로 솟구쳤다.
강물 속으로 곤두박질치자마자 살을 에일 듯한 한기가 온 몸을 휩쓸고 지나가고 있었다.
[현룡아! 어서 나오거라! 어서!!]
혹 정신을 잃을까 두려웠던 홍후인이 고래고래 소리를 쳐댔다.
얼른 물위로 올라 온 위현룡은 자신의 품 안에 성운비가 온전히 있는지부터 확인하였다.
눈을 감은 채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을 보아 수면과 충돌 시 곧바로 실신한 모양이었다.
그는 그를 놓치지 않은 채 팔다리를 휘저어 물 밖으로 빠져나갈 시도를 하였다.
이 강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잔잔해 보이나 속 물살은 여간 센 게 아니었다.
보통사람 같으면 금세 체력이 고갈되어 급류에 휩쓸려가겠지만 위현룡은 그리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았다.
긴 시간동안 강류와 사투를 벌인 끝에 성운비를 안전하게 물 밖으로 끌어냈다.
심장에 귀를 대보니 천우신조로 숨이 붙어있었다.
강물 속에 떨어지자마자 바로 끌어올렸기에 물을 그리 많이 삼키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야 이 놈아!! 너 지금 이게 무슨 짓이냐!!]
놀란 가슴을 한번 크게 쓸어내린 홍후인은 두 사람이 모두 무사한 것을 확인하자마자 열이 뻗쳐 펄쩍 뛰어댔다.
[도대체 네 놈의 목숨이 몇 개라고 자꾸 이런 짓거리를 한단 말이냐!! 남의 목숨만 중하고 네 목숨은 아무것도 아니란 말이냐!]
홍후인이 목청을 돋우며 화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지금까지 남을 구하려다 죽을 고비를 넘긴 게 부지기수였다.
아무리 타인을 돕기 위해서라지만 그렇게 자신조차 돌보지 않고 하는 선행을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의 성난 호통소리가 귀청을 뚫고 들어왔지만 위현룡은 제대로 듣지 못했다.
모든 신경이 성운비에게 쏠려있었기 때문이었다.
“선배님! 이 공자의 상태를 좀 봐주십시오!!”
[뭐...뭐?]
지금까지 호통을 치느라 진이 다 빠졌는데 그걸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오히려 서생 놈의 몸 상태만 걱정하고 있었다. 홍후인은 순간적으로 혈압이 쫙 올랐다.
[그 놈이 죽던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이냐!!]
“몸이 너무 찹니다. 일단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 급할 것 같습니다.”
본격적인 어둠이 찾아오면서 기온이 서서히 하강하고 있었다.
때문에 이대로 흠뻑 젖은 상태로 방치한다면 필시 차가운 밤 기온을 견디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서둘러 허리춤에서 부싯돌을 꺼내 주위에 마른 나뭇가지들을 모아 불을 지폈다.
그리고 성운비의 젖은 상의를 벗기고 모닥불 가까이에 놓아 온기를 되찾게 했다.
그 모습을 보는 내내 홍후인은 분노가 가시질 않았다.
[에고 답답한 놈...그렇게 많고 많은 놈들 중에 왜 하필 저렇게 꽉 막힌 놈과 같이 다녀야한단 말인가...]
깊은 밤 들려오는 이름 모를 풀벌레소리가 심난한 적막을 흔들었다.
위현룡은 모닥불이 꺼지지 않도록 나뭇가지를 더 넣으면서 중얼거렸다.
“정말 죄송합니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잘 알고 있었으나 기분이 상한 홍후인은 일부러 못 들은 척 하였다.
위현룡은 계속해서 입술을 들썩거렸다.
“눈앞에서 자진을 시도하려는 저 서생을 모른 척 지나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 말에 참고 있던 홍후인은 도끼눈을 치켜뜨며 따지고 들었다.
[그래 좋다! 죽고 싶다던 놈을 억지로 살게 만든 것은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그것도 상황을 봐가면서 해야 할 것 아니냐? 저런 놈을 살리고자 벼랑 아래로 같이 뛰어들어? 미쳤냐? 미쳤어?]
“.....”
[너는 네 불가사의한 능력 하나만 믿고 설치는 것 같은데 제발 정신 좀 차려라! 아무리 치유가 빠르다고 해도 너는 나약한 인간에 불과하단 말이다!]
위현룡은 묵묵히 그의 말을 경청하면서 죄송한 얼굴을 감추지 못하였다.
지금껏 동행하면서 자신의 안전에 누구보다도 신경을 써주던 그였다.
어찌 그 고마움을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있단 말인가.
홍후인은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었으나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위현룡을 보자니 자신도 모르게 ‘좀 심하게 다그쳤나.’ 하는 후회가 슬쩍 들었다.
솔직히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자 한 감연(敢然)한 행동은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지 이렇게 비난을 받을 일은 아니었다. 단지 그 방법이 너무 과격하여 쓴 소리를 내뱉었을 뿐이었다.
[저 녀석 천성이 저러니 어쩌겠는가...]
이런 생각을 끝으로 홍후인은 더 이상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그만큼 위현룡이라는 위인을 잘 이해하고 있었기에 그랬는지도 몰랐다.
한참의 시간이 흘러 새벽녘이 밝아올 무렵, 서생은 잃어버린 정신을 가까스로 되찾았다.
“괜찮습니까?”
흐릿한 말소리가 이내 또렷해지면서 누군가의 얼굴이 눈 안에 들어오고 있다.
“저를 끝내 살리셨습니까!”
성운비의 놀란 외침에 잠시 보고 있던 위현룡은 이렇게 되물었다.
“천문을 읽어보니 선생께서 죽는다고 하더이까? 아니면 산다고 하더이까?”
이것은 위현룡이 보내는 간접적인 꾸짖음이었다.
성운비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도 자신이 살아남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인생은 한낱 천기에 의해서 조종될 만큼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미리부터 포기하지 마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거친 세상을 헤치며 꿋꿋이 사는 이유도 바로 자신들의 인생을 쉽게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지 않습니까. 인생을 처음 시작할 때의 설렘을 잊지 마십시다. 힘든 고난이 닥쳐도 태산이 되어 버티는 한, 인생은 선생께서 걱정하는 것처럼 그렇게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입니다.”
위현룡의 조용한 훈계에 성운비는 가만히 위현룡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마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숱하게 만났던 사람들 중 가장 특이한 사람을 만났다고 단정 짓는 모습과도 같았다. 그의 시선을 정통으로 받은 위현룡은 도전적인 음성을 냈다.
“설마 제 운명도 읽어보시려는 것은 아니겠지요?”
이에 성운비는 흐린 미소를 보이며 이렇게 입을 열었다.
“대협을 대하고나서 저 위에 떠 있는 무수한 별들을 보면 말입니다...”
“선생께서는 또 부질없는 일을 하십니다. 그렇게 모든 이들의 운명을 성운(星雲)을 보고 다 알 수 있다고 어찌 장담하신단 말입니까?”
“저는 모든 이들의 운명을 알 수가 없습니다. 운명의 별은 아무에게나 나타나는 것이 아니니까요. 실제로 살아오면서 운명의 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난 것은 저를 제외하고 대협이 처음입니다. 헌데 이상한 것은...”
성운비는 말끝을 흐리면서 묘한 눈빛을 내비쳤다.
“대협이 타고난 운명의 별말입니다. 그것이 하나가 아닌 두개라는 것이 무척 희한하단 말입니다.”
“그것이 무슨 뜻입니까?”
“대협은 길성(吉星)과 흉성(凶星)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보통 사람은 도저히 타고날 수 없는 기이한 일입니다.”
그가 고개까지 갸우뚱거리면서 이런 말을 늘어놓자 위현룡은 그만 웃음을 터트렸다.
“그거 참 잘되었군요. 세상을 살다보면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극히 보통사람의 운명인 듯하니 오히려 반갑습니다.”
성운비는 그 말에 수긍하는 표정을 지어보였으나 금세 속으로는 이렇게 뇌까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협의 별은 가장 크고 밝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이제 선생께서는 어떻게 하실 요량이십니까?”
문득 위현룡이 의향을 물어왔다.
“혹여 제가 또 다시 목숨을 끊을까 걱정하시는 것입니까?”
성운비의 반문에 위현룡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선생께서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확신하시는지요?”
“왜냐하면 저도 예전에 목숨을 끊으려다가 다시 살아난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청성파에서 장문인을 시해한 범인으로 몰려 도피를 하다가 벼랑 끝에서 스스로 몸을 던진 일을 말하는 것이었다. 성운비는 뜻밖의 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협께서 말이십니까?”
“네. 허나 그때 목숨을 건지고 나서 깨달았습니다. 목숨을 끊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해보고 나서 마지막에 이를 때 생각해봐도 늦지 않다는 것을 말입니다. 선생도 저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어떠십니까? 정말로 다시 자진을 시도해보고 싶으십니까?”
위현룡은 진심으로 그에게 묻고 있었다. 성운비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제 운명의 별은 대협께 목숨을 구원받자마자 이미 하늘에서 사라져버렸습니다. 이렇게 운명까지 거스르면서 살아났는데 소생이 어찌 근근득생(僅僅得生)하겠나이까.”
“그 말씀은 선생의 재예(才藝)를 많은 사람들을 위해 쓰실 것이라 믿어도 된다는 뜻입니까?”
“하하하. 대협 마음대로 생각하십시오.”
두루 뭉실 넘어가긴 했지만 위현룡은 그가 자신의 삶에 작은 희망이나마 심었다는 것에 무척 기뻐했다.
어둠이 점차 걷히며 날이 밝아왔다.
더 이상 하늘에는 별도 달도 없었다.
“자 그럼 저는 여기서 그만 가봐야겠습니다.”
성운비는 작별인사를 하는 위현룡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대협께서 미천한 소생의 목숨을 구하셨으니 언젠가 결초보은(結草報恩)할 기회가 생길 것입니다.”
“보은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저는 그저 선생께서 당당히 하늘을 보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고대할 뿐입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위현룡은 그렇게 그와 아쉬운 작별하고 떠나갔다.
허나 과연 이 두 사람의 인연이 여기까지일지는 두고 볼일이겠다.
한편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자가 있었다.
마른 몸뚱이에 낡은 도포를 걸치고 주름살투성이의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사람, 바로 무당파 광소자 장윤이었다.
그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코웃음을 쳤다.
“미친 놈...저 놈은 분명 미친놈이다!”
그러나 그렇게 빈정거리는 투로 내뱉으면서도 가슴 한 켠이 아련해지는 것은 메마른 그도 막을 도리가 없는 노릇이었다.
“무림공적 위현룡이라...살인을 밥 먹듯 저지르는 악인이라 하던데...이거 정말 웃기지 않은가.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내던져 저런 하찮은 서생 놈을 살려내는 악인이라...거 참 재미있구만.”
** **
소림사는 이제 하루면 당도할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위현룡은 가끔씩 잿빛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홍후인에게 말했다.
“선배님, 조만간 큰 비를 뿌릴 것 같습니다만.”
[그렇구나. 슬슬 장마가 시작되려는 것 같은데 오히려 잘 된 일이 아니겠느냐? 소림사로 몰래 잠입해 들어가자면 차라리 이런 날씨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소림사는 아마도 무당파보다 더욱 들어가기가 힘들겠지요?”
[아무렴! 소림사야말로 난공불락(難攻不落)일 테니 고심 좀 해야 할 게다.]
순간 천둥번개가 내리쳤다.
그리고 ‘후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물방울이 어깨 위에 떨어진다 싶더니 이내 굵은 빗방울이 되어 마구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치 앞도 분가하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폭우였다.
[어디 비를 그어갈 곳을 찾아보는 게 좋겠구나.]
홍후인의 주문에 따라 위현룡은 산길에서 벗어나 인근 마을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어디 버려진 민가가 있다면 그 곳에서 비를 피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얼마나 가지도 않아 전방 어디에선가 말울음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말발굽 소리가 아닌 걸로 봐서 가까운 곳에 마구간이 있는 민가가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말울음 소리가 나는 곳에 당도했을 때 민가 같은 것은 없었다.
단지 마차 한대가 진흙탕에 잠겨 오도 가도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마차를 끌던 말은 미끄러졌는지 진흙바닥에서 버둥대고 있었고 마부인 듯한 남자가 홀로 힘겹게 마차를 밀고 있었다. 또한 마차 창문으로는 한 여인이 걱정스런 낯빛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저런...한쪽 수레바퀴가 빠져서 움직이질 않는 모양입니다.”
[그러냐?]
홍후인이 또 시작이라는 투로 응수하고 있었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려는지 척 보면 삼천리였다.
[왜 내 눈치를 보는 거냐? 어차피 내가 만류해도 가서 도와줄 것 아니냐?]
“아...아닙니다. 선배님께서 원치 않으시면...”
마음은 이미 마차 쪽으로 가있으면서 입만 뜻을 같이 하고 있었다.
홍후인은 그 모습이 왠지 애처롭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여 생핀잔을 주었다.
[에라...이 능구렁이 같은 놈아...어서 가서 도와주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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