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II - 청성괴사(靑城怪事) <21>
원연홍은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저희들은 아직 대천마교와 확실한 연을 맺지도 못했는데 함부로 구대문파에 그런 제안을 제시해도 될는지요?"
그건 그랬다.
전(前)장문 원기종과 동맹을 맺은 곳은 마교이지 지금의 대천마교가 아니지 않은가.
풍진운은 그녀의 걱정스런 물음에 지긋이 미소를 띄웠다.
"마교가 새외에서 중원으로 넘어왔을 당시, 구대문파는 일제히 마교를 배척하고 무시했었단다.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겨우 자리잡은 마교가 무너지고 대천마교가 새롭게 일어났다면 그들 역시 똑같은 전철을 밟게 될 것이 자명하다. 과거 원장문이 마교와 뜻을 같이하여 불같이 일어났다지만, 솔직히 마교 역시 원장문과 손을 잡음으로 해서 중원에서 확고한 터전을 일구고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란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구대문파에 대천마교와의 동맹을 주선해주는 일은 대천마교 입장에서 보면 응당 환영해야할 일인 게다. 마교처럼, 중원에서 동반자를 손쉽게 얻는다는 뜻이니까...우리는 대천마교를 이용하여 구대문파와 결속을 다지고 다시 구대문파를 이용하여 대천마교와 동맹을 튼튼히 하면 되는 것이다. 어차피 청성파와 대천마교는 떼려야 뗄 수가 없는 사이, 누가 먼저 이용을 하든 당분간은 서로간에 이득만 있을 테니 크게 나쁠 게 없단다."
"하지만 대천마교 교주가 방문했을 시 청성파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을 해놓았을 것입니다."
곧바로 원연홍의 회의적인 반응이 이어졌다.
이는 청성파 내부에 분열이 생겨 세력이 현저히 약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대천마교 측에서 이미 파악하고 있으니 약해빠진 청성파와 절대로 동맹을 맺으려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풍진운은 오히려 자신만만한 듯 힘을 주어 말했다.
"대천마교는 원로들이 좌지우지하고 있는 청성파를 부담스러워할 것이다. 때문에 차라리 분열된 청성파를 놓고 햇병아리에 불과한 너희들을 밀어줌으로 해서 장차 청성파를 쥐고 흔들 생각을 분명히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장차 우리들은 그것을 이용하여 일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아...."
"구대문파를 돌아가면서 방문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소림, 무당파 그리고 아미파를 제외한 화산, 공동, 곤륜, 종남, 점창파에 발전의 기회를 제공해 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도 문파를 위해 원대한 목표를 실현시키고 싶을 것이기에, 너희들과 손을 맞잡아 대천마교를 발판으로 중원에서 명성을 확고히 다지길 원할 것이다."
여기서 듣고 있던 원연홍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근데 어째서 소림, 무당, 그리고 청성파와 가장 가까운 아미파를 제외하시는 건가요?"
"사람이란 말이다...아래를 내려다볼 때 교만한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란다. 저 세 문파가 과연 다른 문파들이 치고 올라오는 것을 고운 시선으로 바라만 보겠느냐? 물론 아미파는 원장문과의 인연을 생각하여 너희를 도와줄 것이나 과거처럼 적극적이지는 아닐 것이며, 소림과 무당은 은근히 너희들과 원로들 사이의 분쟁을 부추기고 방관하여 지리멸렬하게 만들려 할 것이다."
"하지만 중원무림의 쌍두마차로써 모든 무림인들의 존경을 받는 두 문파가 정말 그런 생각을 품을까요?"
"허허허, 소림과 무당이 최근에 가장 부담스러워했던 문파가 바로 청성파였단다. 청성파의 기세가 드세지면서 덩달아 세력이 약했던 문파들이 청성파와 손을 잡을 시도를 했기 때문이지. 그럼 중원무림을 좌지우지하던 소림과 무당이 과연 그것을 두고보고만 있었을까? 자신들의 세력이 무너지면 중원무림에 큰 분란이 생길 것이라 착각을 하고 있는 그들이다. 자신들이 곧 무림의 법도라고 단정짓고 있는 것이지."
여기서 풍진운은 다소 난처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마도 세상에 존경을 받고 있는 소림사와 무당파를 비도덕적으로 몰아가고 있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리라.
"한 문파를 이끌어나가는 사람에게는 도덕적인 인격을 갖추는 것이 매우 중요하단다. 허나 어느 정도 그것을 갖추었다면, 적절히 이익을 저울질할 줄 아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장문인의 자질이며, 문파를 번창시키는 초석이다."
풍진운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이었다.
"네 아버지를 보거라. 너는 아버지가 신선처럼 개결(介潔)하다 보는 것이냐? 만일 그랬다면 그는 애초부터 원로들과 대립을 하지 말고 스스로 물러나야 옳았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지. 새외 세력과는 한 길을 걷지 않는다는 중원의 암묵적인 법도를 어기고 마교와 함께 하면서 철저하게 이득을 챙겼고, 종국에 가서는 그 때문에 청성파가 더욱 번창하였다. 어떠하냐? 이것이야말로 장문인의 자질이며 이런 현명하고 냉정한 판단을 지니지 못한 장문인이 있는 문파의 미래는 없는 것이란다. 소림을 봐도 그렇다. 현재의 방장은 전방장과는 성향이 너무나도 판이하다. 대단히 냉철하고 계산적이지. 때문에 소림사 내에서도 너무 세속에 물든 방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다만, 결론적으로 소림사는 현(現)방장 때에 더 거대해졌고 명성도 높아졌다. 그래서 소림사 내에서 더 이상의 잡음은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만일 소림사가 초창기 때부터 대문을 걸어 닫고 조용히 시주나 다녔다면 지금처럼 명성을 얻기는커녕 동네 절간 수준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소림은 무림 최고의 위치에 우뚝 서 있지 않느냐? 이렇듯 소림이 우두머리 역할을 자처하면서 내보이는 성인군자의 이면에는 최고를 유지하기 위한 또 다른 속물의 그림자가 포함되어 있음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하긴 어디 소림사뿐이겠느냐. 무당파 아미파...상위에 있는 문파들의 장문인들은 다 똑같이 현실적이고 실리를 추구한다. 즉 문파의 이득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장문인감인 것이다. 반면 점창파처럼 장문인이 유한데다가 덕만 중요시하고 변화를 싫어하는 문파는 맨 끝자락에서 허덕일 수밖에 없단다."
그의 충고와도 같은 말을 들으면서 원연홍은 뭔가 마음이 답답해지는 것만 같았다.
오랜 세월동안 청성파는 세상과 격리된 채 조용히 무(武)만 닦으며 유유히 흘러가고 있는 것으로 보여졌지만 오히려 그 내면에는 무수한 경쟁과 발전을 부추기는 세상과 치열한 수 싸움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내가 너에게 이런 충고를 해주는 것은 앞으로 네가 좀 더 현실적으로 생각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제부터 마음을 강인하게 다잡고 청성파를 위해서 네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거라. 그리고 청성파의 이익을 위한 결정에 어떤 망설임도 갖지 말거라."
풍진운은 유약한 원연홍이 좀 더 강인한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다.
그녀는 남모르게 나직한 한숨을 쉬었지만 곧 마음을 굳건히 하려 애썼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버지를 대신하여 청성파라는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짊어진 상황이다.
자칫 감상에 빠져 일을 소홀히 한다면 한평생을 바쳐 청성파를 반석 위에 올리려고 했던 아버지의 피와 땀이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럼 구대문파를 방문하는 일의 시기는 언제로 잡으셨는지요?"
"조만간 결정하여 알려주겠지만, 정확한 시일은 떠나는 당일 알려줄 것이다."
"네? 당일이라니요? 아무런 준비도 못하는 상황에서 연락을 받자마자 그날 곧장 떠나야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아무리 그래도 그런 중대를 사전에 준비도 없이 급작스럽게 떠나야한다는 것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는 대목이었다.
그런데 더욱 이해할 수 없는 말은 그 다음에 나왔다.
"그래. 대신 염청석에게는 이 일에 대해서 넌지시 의견만 내비치고 자세한 내용은 철저히 함구하고 있거라. 그리곤 떠나기 바로 직전에만 그에게 전갈을 넣고는 너는 제자들과 함께 무작정 떠나는 것이다."
"그러면 염사형이 굉장히 당황할지도..."
"물론 황당한 얼굴로 허겁지겁 너를 쫓아 떠나겠지."
풍진운은 염청석이 천지일기공의 비급을 몰래 소지하고 있는 것도 모자라 아예 거짓말로 그것을 독차지하려는 흑심이 있음을 알고부터 그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물론 위현룡이 천지일기공을 익혀서 장문인을 죽일 수 있었다는 가설은 매우 그럴듯하다. 허나 그 짧은 시간 안에, 속가제자 출신인데다 무공이 일천한 위현룡이 천지일기공을 능숙하게 익힌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니 일단은 득도 없이 도망친 위현룡보다는 비급을 가지고서 불순한 생각을 품고 있는 염청석에게 더욱 무게가 쏠릴 수밖에는 없는 상황이었다.
일단 여기서 시급한 일은 염청석이 비급을 확실하게 소지하고 있다는 증좌(證左)를 잡아내는데 있었다.
그래야만 순차적으로 풀어갈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염청석이 지니고 있는 비급의 존재를 밝혀내야 할까?
풍진운은 얼마 전 염청석이 소림사로 떠나려할 때 나타난 장삼백의 행동을 본으로 삼았다.
그 누구라 하더라도 일신에 문제가 생기거나 한다면 가장 귀중한 물건부터 먼저 챙기려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염청석에게 있어서 비급이란 생명과 동급이었으므로 떠나기 앞서 비급의 보관이라든가 안전부터 생각하게 되어 있었다. 즉 아예 소지를 하고 떠나던지 아니면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여 어딘가 안전한 장소에 잘 숨겨두려고 할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순간을 노려야만 한다. 믿음직한 제자들을 모아 잠복하고 있다가 비급을 확인하자마자 포위해서 잡아버리면 빼도 박도 못할 것이다.)
"저기...숙부님..."
뭔가 기분이 이상해진 원연홍은 조심스럽게 그의 눈치를 살폈다.
설마 그가 염청석을 의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직감을 받은 모양이었다.
"염청석을 의심해서가 아니라 워낙 중대한 사안이니 만큼 철저하게 비밀을 지키기 위함이니라."
풍진운은 이렇게 설명하면서 얼른 그녀의 생각을 기우로 돌려버렸다.
만일 그녀가 염청석에게 의심을 품게 되면 오히려 입막음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확실한 조치를 취할 때까지 차라리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이 백 번 나았다.
그날 원연홍은 풍진운이 주문한 대로 염청석에게 자신의 의견인양 계획을 설명해보았다.
예상대로 염청석은 그녀의 말을 듣고 눈이 휘둥그레지고 있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그는 황당무계하면서도 과감한 그녀의 계획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청성파를 떠나 원로들이 기거하던 곳으로 옮겨가는 것도 그렇고, 대천마교와의 동맹을 미끼로 구대문파와 결속을 다지고 지지를 받아낸다는 것도 참으로 용의주도한 계획이었다.
확실히 대천마교를 이용해야 한다는 것은 염청석의 머리 속에도 준비되어 있는 각본이긴 했다. 하지만 구대문파와의 연계를 늘어놓고 계획을 세운 원연홍의 식견에 놀라면서도 한편으로 의구심도 생기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무래도 좀 이상하군...평소의 사매라면 저렇게 냉정하면서도 이(利)에 치우치는 면을 보이지 않을텐데...)
괜한 의심이 들기 시작한 염청석은 그녀의 언행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그 계획은 언제 실행에 옮길 생각이지?"
"일단 청성파에서 나오는 일은 빠를 수록 좋겠지요. 하지만 구대문파를 방문하는 일은 좀 더 세밀한 계획을 세워서 신중히 움직여야겠어요."
"그렇겠군. 그럼 사매의 뜻대로 한번 시도해 보도록 하지. 나 역시 원로들이 장악해버린 청성파에 염증을 느끼던 차였으니...오히려 잘 되었군."
한번 의심을 하면 끝까지 그것을 버리지 않고 파고드는 염청석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녀와 보조를 맞춰주면서 은근슬쩍 뒤를 캐보기로 작심하였다.
그로부터 열흘 정도가 지났다.
청성파는 또 한번 발칵 뒤집어졌다.
기존의 청성파 제자들이 원기종 장문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했다는 이유를 내세워 스스로 물러나 청성산 구석 어딘가에 마련되어 있는 원로들의 처소로 들어가 평생을 근신하겠다고 공포했기 때문이었다.
원로 수장 한백상은 멍한 얼굴로 풍진운을 바라보았다.
얼마 전 그들이 청성파에서 물러나갈 것이라 예견했던 그의 말 그대로 일어나 버렸으니 말이다.
솔직히 염청석 일당들이 청성파를 나갈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비록 원로들이 청성파를 장악하고 있다지만 어떻게 보면 허울뿐인지라, 세력에 있어서 평수를 이루고 있는 염청석이 스스로 고개를 숙일 리는 만무했다.
한마디로 하늘이 두 쪽 나도 일어나지 않을 일이 벌어진 것이다.
처음엔 말도 안 된다며 풍진운을 바보 취급했던 원로들도 이젠 그를 우러러보듯 하고 있었다.
"역시 풍사질의 식견은 뛰어나도다!!"
한백상은 한껏 흡족해진 얼굴로 연신 풍진운을 칭찬하였다.
그 간 살 속에 박힌 가시처럼 불편했던 마음들이 비로소 싹 사라진 것이다.
허나 그러면서도 한백상은 끝까지 경계를 풀지 않았다.
염청석이 사제들을 이끌고 청성파를 떠나 다른 곳에 둥지를 틀었다지만 청성파를 완전히 떠난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자신들도 과거 원기종에게 청성파에는 발을 들이지 않겠다고 해놓고선 이렇게 떡 하니 터줏대감 노릇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더더욱 불안이 사그라지지 않는지도 몰랐다.
그리하여 염청석 측과 더 이상의 삐걱거림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한백상은 늘 동태를 파악하여 보고토록 하였다.
"근래에 원기종 제자들은 어찌 지내고 있느냐?"
한백상의 물음에 풍진운은 즉각 대답해주었다.
"별 움직임 없이 조용히 지내고 있습니다만...청성파에 회의감이 드는 모양인지 많은 자들이 낙향을 결심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일년도 채 못 되어 모두 자진해산 될 것으로 판단되옵니다."
"오! 그러한가?"
그를 굳게 신임하고 있던 원로수장 한백상은 그제야 마음을 편히 놓으면서 청성파의 장래를 놓고 조언을 구했다.
"이제 겨우 청성파를 다잡게 되었으니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그 동안 청성파는 원기종 장문의 독단적인 행동 때문에 청성파 고유의 전통과 명성이 퇴색되었으니 당분간 그것을 되찾는데 힘써야 할 것입니다."
"당연한 말이로다."
"우선 청성파는 중원에 위치한 문파이고, 중원과의 유대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니 만큼 마교와의 연을 완전히 끊고 구대문파와 함께 해야 할 것입니다."
이는 풍진운이 원연홍 쪽으로 흐름을 터 주기 위해 수를 쓰는 것이었다.
원로들이 대천마교를 배척하게 되면 대천마교 측에서는 보다 수월한 원연홍에게 손을 내밀려 할 것이 자명했고, 확고한 동맹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조력을 보내올 것이 명약관화했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한백상은 풍진운의 말마다 박장을 하면서 무한한 신뢰를 보내주었다.
"자네의 말이 무조건 옳네!"
그때 누군가 긴급히 알려왔다.
"원기종 장문의 제자들 수 십 명이 청성산을 떠나 낙향을 목적으로 하산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곳에는 한때 일대제자였던 자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답니다."
"하하하, 이제야 만사형통이군..."
한백상이 덩실덩실 춤이라도 출 마냥 얼굴에 웃음꽃을 가득 피우고 있었다.
허나 옆에 있던 풍진운의 안색은 흙빛으로 변해 가는 중이었다.
(아무런 기별도 넣지 않았는데 어째서 지금 떠나려 한단 말인가!)
일대제자들이 하산을 시작했다면 그 속에 분명 염청석과 원연홍이 끼어있을 확률이 높았다.
(어서 하산을 막아야한다! 염청석에 대한 준비를 아직 못했는데 이렇게 떠나버리면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어디서부터 혼선이 빚어졌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원연홍을 만나는 일이 시급하다 여겨졌다.
청석각에서 나온 풍진운은 전력으로 그들을 따라잡기 위해 경공을 전개하였다.
그런데 얼마가지도 못하여 난감하면서도 뜻밖의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저 자는 염청석이 아닌가?)
지금쯤이면 벌써 청성산 기슭에 도달해있어야 할 염청석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이목을 피해 은밀히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풍진운은 직감적으로 그가 비급이 숨겨진 곳으로 가고 있음을 잡아냈다.
(급히 오느라 제자들을 이끌고 오지 못했는데 곤란해져버렸군. 일단 염청석을 미행하여 비급에 대해서 알아본 뒤, 곧장 제자들과 함께 뒤를 쫓아 사로잡아야겠다.)
몸을 잔뜩 낮춘 풍진운은 청성파 특유의 보법을 운행하여 귀신같이 염청석을 따라갔다.
염청석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주위를 보니 우연하게도 원기종과 남모르게 만나던 비밀장소가 있는 곳이었다.
문득 원연홍을 이곳으로 처음 데리고 온 날 근처에서 배회하던 염청석이 떠올랐다.
(비급을 숨긴 장소가 우연하게도 이 근처였던 모양이군...)
잠시 짧은 생각을 하며 눈을 한번 깜빡이던 풍진운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분명 전방에서 걷고 있던 염청석이 어느새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이런!!!)
당황한 나머지 그는 자신도 모르게 낮추던 몸을 반쯤 일으킨 채 그의 행적부터 찾으려 애썼다.
그 순간,
풍진운은 배후에서 날아드는 강력한 살기를 느끼면서 몸을 위로 펄쩍 뛰어야만 했다.
"흐흐흐. 저를 찾고 있으셨습니까?"
염청석이 음산한 웃음을 흘리면서 풍진운을 조롱하듯 바라보고 있었다.
풍진운은 속으로 아차 싶었으나 겉으로는 짐짓 노한 척 소리를 질렀다.
"이게 무슨 짓이냐! 어째서 나를 공격했단 말이냐!"
풍진운은 그가 자신을 미행하는 자가 적인 줄 알고 선제공격을 했다는 변명을 해주기를 내심 기대했지만, 염청석은 날카로운 눈빛을 밝히면서 오히려 호전적으로 맞받아 쳐왔다.
"다 알면서 뭘 물으십니까?"
"뭐라!!"
"저를 따라오신 이유가 이것 때문 아닙니까?"
염청석이 낡은 비급 한 권을 손에 들고는 빈정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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