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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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감 상으로 세시간정도 지났으려나 이장과 한조가 된 김진의 이마에는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혀있었다
“진이~ 잠깐 쉬자구~”
“예 이장님 먼저 쉬세요 저는 괜찮아요”
약초를 캐던 이장이 김진에게 휴식을 권하며 자리에 앉았다
“진이~ 나는 차라리 지금이 좋구만~”
이장이 휴식삼아 김진에게 말을 걸자 김진은 거절하지 않고 이장 옆에 않았다
“많은 것들이 불편하게 변했지만 난 지금이 좋네.. 고민할 것도 없고, 세상 복잡하게 살 필요가 없지 않은가”
“(가벼운 미소를 짓는다) 그런가요.. 저도 뭐 똑같아요 이장님. 아무것도 이룬것도 없고, 제대로 된 꿈도 없이 아둥버둥 살았는데.. 이젠 모두가 출발점에 선거 같아요.. 어떤 이에겐 슬픈 출발점이 될 것이고, 어떤 이에겐 조금 덜 슬픈 출발점이 되겠죠...(잠시 회상에 잠긴다) 하. 제가 이장님 앞에서 너무 어른같이 말 한거 같아요(멋쩍게 웃는다)”
그때였다
분명 옆에선 이장의 목소리가 들리는거 같은데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김진의 귀로 새치기해 들어오는 듯했다
알 수 없는 소리가 김진에게 들려왔다. 전류가 흐르는 소리 같기도 했고 파도소리 같기도 했다
‘어... 머지.. 무슨 소리지..’
김진에게는 더 이상 이장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두 손으로 귀를 막고 눈을 감았지만 소리는 계속 들리고 있었다
“이장님. 지금 이게 무슨소리죠?”
김진에게 들리는 소리 때문에 이장의 말소리는 희미하게 들릴 뿐이었다
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이상한 소리가 나는 방향을 찾기 위해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봤지만 자신의 행동을 이상이 여긴 이장이 걱정스럽게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보이는 것 이외에는 소리가 나는 곳을 알 수 없었다
=사냥감이군=
순간 어디선가 들려오는 정확한 음성에 위치를 가늠하고는 돌아봤다
‘저기다!’
김진이 갑자기 고개를 돌아보자 이장도 같은 곳을 바라봤는데 순간 둘은 얼음처럼 굳어진 듯 했다
“호..랑이다..”
이제는 이장의 말이 제대로 들렸다. 잠시 이상해 졌던 청각이 정상으로 되돌아온 느낌이었다
“이장님 저거 호랑이죠”
원채 동물을 무서워하는 김진은 호랑이를 보자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도도도도 도망가야돼 진아”
이장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달리기 시작했다
=어딜가!=
커르르릉!
순식간이었다. 호랑이는 도망가는 이장에게 달려들었다
으아아악!!!
이장의 짧은 비명소리가 산 전체에 울려 퍼졌다
우득.
“.....사.. 살려줘...”
김진은 쓰러진 이장을 보고 속삭이듯 말했다
호랑이가 이장을 쓰러뜨린 후 목덜미를 물자 뼈소리가 났고 이장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김진은 뒷걸음질 칠 경황이 없었다. 오줌이라도 지릴 기세로 그 자리에 망부석으로 굳어버렸다
=너도 먹겠다=
‘살려줘 제발’
김진에게 한발 한발 다가오던 호랑이가 멈칫했다
=나에게 말을 한 것이냐=
김진에게는 호랑이의 음성이 똑똑히 들렸다
‘살려줘.. 제발 살려줘’
=사냥감이 말을 한다=
크르르릉
어느새 호랑이는 김진 바로 앞까지 와있었다
김진을 세워놓고 한 바퀴를 돌며 냄새를 맡는 호랑이였다
=사냥감이 나와 말이 통한다=
김진은 이런 상황이 말도 안 된다는 걸 알았지만 아무런 차선책이 없었다
‘제발 꿈이라고 해줘. 살려줘. 호랑이님 살려주세요’
“살려줘!!!”
김진은 있는 힘껏 살려달라고 외쳤다
=깜짝이야!=
호랑이는 당황한 기색으로 뒤로 물러났다
“진아!”
윤도헌이었다. 하지만 윤도헌과 정씨는 김진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크아아앙!
호랑이는 윤도헌을 바라보며 포효했다
‘안돼. 안돼!’
“안돼!!!”
김진이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너의 친구냐=
김진은 호랑이의 음성이 들렸고 침을 꿀꺽 삼키고는 마음속으로 대답했다
‘그래 내 친구야 해치면 안돼! 제발 돌아가’
“제발..”
슬금슬금 윤도헌이 한 손에 힘을 주며 김진에게 다가가려 했다
약초를 캐기 위해 챙겨온 호미를 꽉 움켜쥔 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좋아 다음엔 먹이를 데리고 와라=
윤도헌이 김진에게 다가가려 하는 순간 호랑이는 유유히 반대편으로 사라져갔다
“진아 진아! 괜찮아!”
“아이고 이장님....”
호랑이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윤도헌과 정씨가 죽은 이장과 김진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김진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분명... 나와 대화한건가... 호랑이가..’
“진아 정신차려봐 다친 덴 없지! 빨리 여기를 빠져나가자 빨리진아”
윤도헌이 김진을 재촉하는 순간 멀리서 메아리를 듣고 달려온 김화수와 김필석이 나타났다
“어떻게 된거야!”
“으아... 이장님이 어쩌다가...”
김필석은 이장을 안고 있는 정씨를 보며 망연자실했다
“혹시나 해서 진검을 챙겨왔는데 호랑이는 어딨는거야”
진검을 뽑다든 김화수가 주위를 둘러봤으나 호랑이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어떻게 호랑이가 있을 수 있지...”
김필석의 말에 다들 공감했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윤도헌이 이장의 시신을 엎고 김진은 김필석의 부축을 받으며 김화수가 앞장서며 산을 내려와 마을로 향했다
“진아..”
“..응”
“정말 다행이야.. 이장님은 안됐지만..”
“응... 일단 빨리가서 좀 쉬고 싶어..”
김필석이 김진에게 몇 마디 속삭였지만 김진의 머릿속에는 아까의 장면이 떠나질 않았다
뜨거운 햇빛이었지만 바람만큼은 시원했다
바람은 산맥을 타고 비어있는 전국의 텅 빈 동물원을 지나쳤다
구조물의 액화와 부식으로 인해 남아있는 동물원표지판이 무색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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