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43화-고갈
페펜도시에서 헤이로카는 그렇게 멀지 않았다. 길어야 3일 벤하르트나 레니아의 걸음걸이면 이틀이어도 충분히 당도할수 있는 거리임에도 그들은 페펜도시에 머물러 있었다. 그전까지는 베라스키가 전 여행자금을 대어 주고 있었지만 자금원이 사라지자 마자 진정한 의미의 자금난이 시작된 것이었다.
남은 돈으로 재료를 사서 검이라도 재련해 팔아보고 싶었지만, 그 재료를 살 돈이 부족할정도로 이미 그들은 궁핍해져 있었다. 거기에 이전처럼 공방의 주인이 전부 너그럽거나 인자한것도 아니어서 무료로 대여해준다던가 재료를 대어 주는 일을 기대할수도 없었다.
"인색하군."
그렇게 말하곤 있었지만 벤하르트는 이곳 페펜도시의 대장장이를 알고 있었다. 이곳은 벤하르트가 살고 있는 도시였던 라프티의 나라 브렌모스의 도시였기 때문에 어느정도 자국의 대장장이들의 이름은 들리기 마련이었기 때문이었다. 레니아를 만나고 많은 여행을 했다곤 하나 1년 정도의 시간 그렇게 쉽게 대장장이들이 일을 접거나 하지는 않아서 당연히 페펜도시의 대장장이도 벤하르트가 아는 그대로였다. 안다고는 해도 실제로 직접 본것은 아니었고 풍문을 들었을 뿐이었지만,
"어지간히도 실력에 자신이 있는 모양이구려?"
페펜도시의 유일한 공방의 주인의 이름은 돈도 였다. 원래 성격이 편협하고 좁기 그지 없었는데 가뜩이나 브렌모스의 4대도시중 하나인 라프티의 벤하르트의 명성에는 전혀 미치지 못해서 그것에 대한 시기심과 질투가 심했던 남자였다. 기술은 일류인데도 주변에 비교할수도 없을정도의 기술자가 있는 관계로 빛을 보지 못한것이었기 때문에 벤하르트도 어느정도 그의 심정을 이해할수 없는건 아니었지만 그것을 감안한다 해도 돈도의 속은 좁았다.
"그저 조금 만질수 있을 정도로.."
"광오하기 그지 없군. 대장장이를 눈앞에 두고 검을 만들어 주겠다고 말하는건 도대체 무슨 심보지?"
생각해보면 돈도의 말은 전혀 틀린게 없었다. 기술을 보여주고 감동한다는 것은 있을수 있는 일이지만, 그것이 반드시 일어나는 일은 아니었다. 개중에는 이런 사람이 얼마든지 있을수 있는것이다. 하다못해 광석이나 철 정도는 자신이 들고와 부탁을 하는게 예의인 것이다.
그렇게 거절 당한게 이틀 전의 일로 현재 벤하르트는 막노동을 하고 있었다. 페펜도시에 새로운 건물을 건축하는 현장에 일을 구해 그는 한푼 두푼씩 당일로 돈을 벌어 내고 있었다. 최소한도 여행을 위한 자금 1마크닐정도는 모을 요량으로 노력했지만 생각보다 세상은 굉장히 인색했던 것이다.
'이대로 가다간 끝도 없겠군'
건축에 관한 일은 그에게 상당히 맞는 일이었고 몸도 좋은 벤하르트에게 일 자체는 별로 어려운게 없었지만 문제는 시간이었다. 하루에 받는 돈은 50크닐 전혀 돈을 쓰지 않고 모아도 20일을 모아야 1마크닐이라는 돈을 쥘수 있었다.
'레니아가 있는한 이 기간은 어림도 없지.'
생각속에서 20일이라는 생각을 지우고 다시 수정 한다. 식비 숙박비를 빼고 나면 거진 2달에 가까운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야 하는 것이다.
"역시 청부 밖에 없어. 뭔가의 대박을 터뜨리지 않으면 안될것 같아."
"청부라."
청부라는 말에 레니아는 패길마을을 떠올렸다. 꽤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을 쥘수 있고 또 그날 어떤 일을 저질렀던 그녀가 거절의 의사를 표현할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런 도시에서의 청부는 굉장히 번거로워."
"뭐가?"
"패길 마을은 작은 마을이라 사람들이 오가지 않아 일거리가 중복될 일이 없거든. 그러니 우리가 나서서 해결만 하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받을수 있겠지만 이곳은 달라. 많은 청부업자들이 있거든. 일은 하나고 달려드는 사람은 많으니 자연히 경쟁이 붙을수밖에 없지. 어차피 보수를 받게 되는건 하나 뿐이니까,"
"뭐 그래봐야 일이 하나도 아니고,"
"그 몇가지의 일에 다 몇명씩 우글우글 붙는게 문제라는 거야."
"그렇겠네."
작은 한숨을 내쉬고 둘은 벌어온 돈을 펴들었다. 벤하르트는 손에서 50크닐을 내밀었고 레니아는 한푼도 꺼내지 않았다.
"레니아."
"후우, 원래 돈은 돌고 도는 것이라잖아."
"일은 하고 있잖아 왜 돈이 없는건데!"
그 뛰어난 외모 덕에 음식집에서 일하고 있어 벤하르트보다도 더 많은 돈을 받고 있는 레니아에게 돈이 들어오지 않는다는건 말이 되지 않았다.
"때려치웠어. 그 점장녀석이 집적 거렸거든."
"집적?"
"그럼 벤은 내가 노리개가 되어도 좋다는거야?"
'이 녀석..'
"응?"
그는 이용해먹을줄 아는 여자가 되는것 같아 새삼 레니아가 무섭게 느껴져왔다. 지금까지도 실컷 당해왔는데 앞으로는 더 심해 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뭐라 해도 그는 지고 들어갈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오늘치는 받았을것 아냐."
"치료비랑 식비로 다 써버렸지."
"치료비는 이해한다. 식비는 뭐야!"
"페펜 명물 '페펜'이라는게 있길래."
페펜이라는 마수로 만들어낸 요리인 페펜은 페펜도시의 명물이었다.
"레니아. 우리의 전 재산을 봐라!"
벤하르트의 50크닐을 합해 200크닐 여.. 작은 돈은 아니었지만 당장에라도 벌지 않으면 여행하기는 힘든 금액이었다.
"좋아. 내일부터는 힘내서 청부업을 하도록 하자!"
"말돌리지 마."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한 벤하르트는 그 뒤로도 한동안 레니아에게 설교를 늘여 놓았다. 그 잔소리를 얼마간 듣던 레니아는 벤하르트의 말을 끊어 먹으며 말했다.
"잠깐 청부업이 중복되서 얻기 힘들다고 했었지?"
그녀의 의도를 아직 파악하지 못한채 벤하르트가 말했다.
"그런데?"
"그럼 따로 하지 않을래? 벤은 벤 나름대로 나는 내 나름대로 일을 구해서 할테니까, 어디 누가 더 많이 벌어 오나 해보자고,"
"나쁘지는 않지만 괜찮겠어?"
"그리고 지는 쪽은 한동안 이기는쪽의 부탁을 뭐든지 들어주는 거야."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벤하르트는 그녀의 그런 제안을 전혀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이겨도 그가 그녀에게 시킬 일은 한정되어 있었고 만에하나라도 지는 한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할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벤이 손해를 보는 일은 없잖아. 애초에 지금보다 더 나빠질것도 아니고, 더 이전으로 돌아가서 분명 벤은 나에게 절대 복종해야 하기도 했었고,"
"윽."
두보엔의 일 전의 추억은 분명 나쁘지 않았지만 거론하기에는 가슴 한구석의 양심을 쿡쿡 찔러 오는 추억이었다. 적어도 벤하르트 때문에 그녀는 신이면서 신이 아니게 되어 버렸기 때문에 그 일은 암묵적으로 그녀와 벤하르트의 관계에 있어서 확실한 그녀만의 절대적 무기나 다름 없었다.
"어때 할거지?"
"좋아. 한가지 받아 둘게 있어. 내가 이기면 분명히 들어주는거지?"
"물론이지."
이때까지만 해도 벤하르트는 알지 못했다. 레니아의 여유로움의 이유를..
그리고 다음날 저녁에야 벤하르트는 패배의 쓴맛을 보아야 했다. 최근들어 레니아와의 승부적인 면에서는 거의 져본일이 없었던 벤하르트기에 더욱 패배감이 짙게 느껴졌고 반면에 레니아는 의기양양한 태도로 일관했다.
벤하르트가 맡은 일들은 전부 육체를 사용하는 일. 즉 무언가에 관련한 단순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에는 전문가가 분명히 존재하는 법이어서 아무리 그가 평범한 사람들에 비해 뛰어나다 해도 일을 놓치는것은 어쩔수 없었다. 그래도 그가 벌어온돈은 그 피나는 노력을 해서 150크닐으로 도시에서의 수확 치고는 꽤 대단한 수익이라 할수 있었다.
반면에 레니아가 맡은 일은 페펜 도시의 지적인 일이었다. 페펜도시는 브렌모스에서도 학자들이 꽤나 많은 곳이었다. 벤하르트와 레니아가 도시에 머무른 것도 벌써 나흘째가 지나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벤하르트정도의 눈썰미를 보이지 않아도 그런 사실쯤은 레니아도 이제 알아 차릴수 있었다. 그것에 그녀는 분명 자신에게 맡는 일이 있을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레니아가 찾는 그런 일은 보통 학자들이 많이 청부하곤 했는데 그중에서도 레니아가 맡은 일은 고대문서의 해석에 관한 자료를 찾는 일이었다. 해석 자체도 아닌 그 해석을 위한 자료찾기를 돕는것도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버거운 일이 아닐수 없었지만, 레니아에게 있어서 그 일은 해석의 자료가 필요 없을정도로 간단한 일인 것이다.
즉 제자리에서 바로 해석을 끝마쳐 버려서 수많은 학자들을 경악에 빠지게 만들었다.
해석을 하는것보다 그 해석이 맞는가 검토를 하는게 더 오래 걸릴 정도였으니 그날 페펜도시의 학자들이 얼마나 술렁였을지는 따져보지 않아도 훤한 것이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500크닐이라는 거금을 받아내어 레니아의 압승이었다.
"음.."
"어때. 승복할수 밖에 없겠지?"
뜻모르게 자신만만할때가 많은 레니아여서 어느정도 방심을 한것은 사실이었지만 벤하르트는 기분이 좋았다. 이런 레니아야 말로 그녀 본연의 모습이라 할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이었지만 조수 시절의 분위기를 느낄수 있어서 였을까 졌음에도 조금 기쁜 마음이 든건 사실이었다.
"후후.. 후."
오랜만에 주도권을 뺏은 레니아는 즐거운 미소를 띄우면서 그와 마주했다. 평소에도 벤하르트를 얼마든지 이용해먹곤 했지만 이것은 정면에서 얻어낸 권리. 얄팍한 재주나 꾀를 부리지 않아도 확실하게 우위를 점할수 있는 패나 다름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뭘 하고 싶은데?"
조심스레 묻는 벤하르트에게 여유작작하게 레니아가 말했다.
"됐어. 그런 권한만 가지고 있으면 돼."
겨우 얻어낸 권리를 바로 사라지게 할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에 당황한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평생 사용해 먹을생각이야?"
"글세."
고작해야 인간한명을 이긴것 뿐인데도 그녀는 신이면서도 마치 신이 된것 마냥 즐거운 기분을 느끼며 오랜만에 새로히 산 책을 꺼내 들고 읽기 시작했다.
==========================================
두시간 뒤에 출근 해야 되는데 5시에 올리다니
내가 왜 이러는 거야.. OTL... 으악;;
Comment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