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93화-회색의검사(2)
검사와 조금 떨어진곳에서 벤하르트는 걷고 있었다. 레니아가 따라가자는 말에 얼떨결에 따라가고는 있었지만 그 이유는 알지 못했다. 검사가 자신들을 구해준것은 분명 감사할 일이었지만 감사에 대한 검사의 태도로 보아 그다지 깊게 생각하고 있지 않아 보였고 또 그럴만한 실력이 되었기 때문에 벤하르트도 깊게 관여할 생각을 하진 않았다.
"그런데 레니아 왜 저 사람을 쫓아가자고 한거야?"
"약간 이상해서 말야."
레니아는 평상시보다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이상하다니 뭐가?"
트레이야도 레니아의 따라가자는 말이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순리로 따지면 그들은 마을로 돌아가 치료를 받았어야 정상이었다. 얼마 걷지 않은 지금도 숨이 차오를 정도로 그들의 몸은 엉망진창이었다.
"저 사람은 왠지 신과 비슷해."
"신이라니?"
벤하르트는 검사를 슬쩍 바라 보았다. 평범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신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벤하르트에게 구별할수 있는 느낌이 있는것은 아니었지만 두보엔과 레니아처럼 무언가 신같은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게서는 인간의 연륜과도 같은 것이 느껴졌다.
"아니 신은 아니야. 분명히 아닐텐데, 이 느낌은.."
레니아는 자신도 모르는 느낌. 정체불명의 검사에게서 처음으로 느껴지는 느낌에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어쨋든 말야. 신이던 신이 아니던 상관 없지만 그게 쫓아가야할 이유라도 있는거야?"
태연하게 트레이야가 물었다.
"그런건 아니지만,"
분명히 그가 신이 아니라는것은 알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미약한 신기(神氣)는 레니아의 호기심을 유발하고 있었다. 얼떨결에 따라가자고 하긴 했지만 너무도 막연한 생각이었다. 돌아가자고 권유하려는 순간 검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너희들 어디까지 쫓아올 생각이지?"
"아 죄송합니다. 저희는 지금 가크마쪽으로 가고 있는데 혹시 괜찮으시다면 같이 갈수 있을까요?"
"상관 없지만 상처는 어쩔거지? 그 상처로 내 걸음을 쫓아올수는 없을텐데,"
그 말에 벤하르트는 검사가 자신들의 걸음에 맞추어 주었다는것을 눈치 챌수 있었다. 당장에 벤하르트만 해도 다리를 절뚝이면서 평상시보다 몇배는 더 느리게 걷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아. 뭐 신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가 이런곳에서 나오게 될줄은 몰랐군. 참고로 말해두지만 이쪽은 단순한 인간이다. 뭐 네가 의아해 하는것도 무리는 아니다만,"
그렇게 말하고 검사는 품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하늘빛으로 투명하게 마치 거품같은 구슬이었는데 셋중에서 레니아만이 그것을 보고 놀랐다.
"치유의보주?"
"이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니, 뭐 정체가 정체이니 만큼 당연한건가."
검사가 들고 있는 치유의보주라는 마도구는 신들이라 할지라도 마음대로 볼수 있는것이 아니었다. 레니아도 책에서만 한번 접해 봤을뿐 그것이 있다고는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럼."
검사가 구슬을 벤하르트와 레니아 트레이야에게 가져가자 상처는 씻은듯이 나았다. 치유의보주는 자신을 제외한 어떠한 자라도 치유할수 있지만 소유하고 있는 본인은 치유하지 못하는 신기(神璣)중 하나였다. 그런것을 단순한 인간이라고 치부한자가 가지고 있으니 레니아가 놀라는것도 당연했다.
"아.."
"이제 됬나. 그정도 실력들이면 내가 없어도 갈수 있겠지?"
"잠깐만요. 어디까지 가시는지 우선 들어보고.."
"가크마까지는 가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홀로 다니는것을 좋아해서 말야. 거기에 그쪽에는 약간 대하기 껄끄러운 사람도 한명 있고 말이지."
검사는 레니아를 보면서 난처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말도 안할테니 같이 가줘."
레니아는 짤막하게 한마디를 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눈은 정체를 밝혀내겠다는 의지가 서려 있었다.
'이런'
그런 레니아의 눈을 보면서 검사는 귀찮은 일에 걸려 버렸다고 생각했다.
벤하르트는 다쳤던 다리를 손으로 들어 보면서 신기한듯이 발을 구르면서 걷고 있었다. 디노사인트의 부리에 구멍이 나서 과다하게 출혈을 일으켰었던 다리가 언제 그랬냐는듯 말끔히 낳아 있었던 것이었다. 놀란것은 트레이야도 마찬가지였다.
"감사합니다."
벤하르트가 잊지 않고 인사 했지만 검사는 손을 휘저으면서 말했다.
"그럼 나는 먼저 보내주지 않겠어? 무리지어서 다니는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
"하지만,"
벤하르트는 등뒤의 레니아를 흘끔 쳐다 보았다. 독기라고 말해도 좋을정도로 레니아는 눈에 불을 켜고 검사를 바라 보고 있었다. 바라본다고 해서 답이 나오는것도 아닐텐데 그녀는 무서우리만큼 빤히 쳐다보기를 반복했다.
"저기 실례지만 이름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벤하르트가 최대한 공손히 물었다.
"아무렇게나 불러도 되지만, 그냥 '검사' 라고 불러도 되고, 하지만 정 부르고 싶다면 '제로'로 좋아."
'이상한 이름이군.'
그 뒤로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벤하르트는 꽤나 오래 산 사람이었다. 관계를 맺는것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누군가와 대화한 시간만 따지면 적다고는 할수 없는 시간을 살아왔다. 침묵을 유지한채 걷는 제로의 모습은 그와 대화하는것을 꺼려한다는것을 그는 알수 있었다. 마치 과거의 자신과 같이..
식사도 하지 않고 상당히 빠른 속도로 제로가 걸었기 때문에 반나절도 되지 않아 그들은 가크마에 도착할수 있었다.
"도착했군 그럼 나는 이만, 아 참고로 구해준것은 빚진것도 아니고 단지 내 마음 내키는데로 한것이니까 고마워하거나 사례를 할 필요가 없어."
"아.."
잠깐. 이라고 말하기도 전에 그 자리에 이미 제로는 없었다. 분명히 정확하게 제로의 모습을 보고 있었는데 언제부터 있었냐는듯 그의 눈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뭐지? 도대체. 귀신에게라도 홀린건가?"
아주 오래전 읽었던 귀신에 대한 이야기를 상기하면서 벤하르트가 중얼거렸다.
"이야.. 신기한데,"
트레이야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역시 대르나드를 벗어난 세상은 넓구나.'
세상에는 저것보다 더 대단한게 많을 것이라고 멋대로 오해하면서 트레이야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레니아는 제로가 사라진곳을 보면서 눈살을 찌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나 에코트에 비해서는 상당히 작은걸. 촌락이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실제로 마을은 에코트에 비하면 정말 상당히 작았다. 사는 사람만 따져도 백을 간신히 넘을 정도로 작은 마을이었다. 하지만 벤할트는 그런 아담함이 더 마음에 들었다.
"그래 우선 여관이나 잡아 볼까?"
상처는 씻은듯이 나았지만 몸의 피로함은 평상시에 비할바가 아니었다. 디노사인트와 싸우고 곧바로 쉬지도 않고 거진 반나절 가량을 더 걸었기 때문이었다. 벤하르트의 제안에 트레이야와 레니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은 작았기 때문에 다른 마을과 달리 여관도 하나 밖에 존재 하지 않았다. 여관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인상좋게 웃으며 주인과 그 딸처럼 보이는 여자가 벤하르트를 맞이했다.
"어서오세요~"
"아 네. 요금이 하루에 어떻게 되나요?"
주인처럼 보이는 인자하게 생긴 중년 여자가 방긋 웃으면서 대답했다.
"1인당 40크닐 입니다."
"1인당 40크닐!!!!?"
벤하르트와 레니아도 놀랐지만 소리를 지른것은 트레이야였다. 대르나드에서 여관을 운영하고 있던 그녀가 그런 가격을 듣고 가만히 있을리가 없었다.
"이봐 뭐가 잘못 된것 아냐? 한 방에 40크닐 이겠지?"
"틀립니다. 여기서는 1인당 40크닐이에요."
가크마의 유일한 여관 주인인 무니스는 가늘게 눈웃음 지으면서 말했다. 삽시간에 그들은 그녀의 인상좋은 웃음이 여우같다고 느끼게 되었다.
"이곳은 워낙에 촌구석이라서 사람이 잘 찾아 오지 않아요. 저희도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어쩔수가 없으니 양해해 주셧으면 합니다. 그럼 쉬었다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나가서?"
"끄으 악질이다. 벤하르트 내가 대르나드에서 저런짓 했다면 지금쯤 나올수 있었을까?"
"글세."
트레이야가 묻는 말에 너무 깊게 생각하지 않고 벤하르트가 말했다. 그리고 묵묵히 돈주머니를 열어 보았다. 에코트에서 사용한돈 때문에 그의 돈주머니는 슬슬 바닥을 들어내고 있었다. 아직 35마크닐은 넘었지만 에코트에서 쓴 돈을 생각해볼때 절대 오래갈 돈이 안된다는것은 벤하르트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정말 마음같아서는 노숙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오늘 같은날은 쉬고 싶다 라는게 벤하르트를 비롯한 모두의 생각이었다.
'120크닐이면 10일을 묵어도 1200크닐 1마크닐 하고 200크닐 정도인가.. 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에코트에서 아무리 돈을 많이 쓴다고 해도 정도라는게 있는것이다. 그렇게 돈을 많이 사용했는가? 하고 벤하르트는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어이 트레이야 레니아. 너희 뭐 몰래 돈 쓴적 있어? 돈이 너무 없는데?"
"어? 당연히 있지. 여유 자금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할것 같아서 5마크닐 정도 뺏는데?"
"나도 10 마크닐 하고 이정도."
벤하르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돈을 헤프게 쓴다고 해도 1마크닐이 얼마나 큰돈이던가. 금전 감각이 없어도 이정도 까지 없지는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벤하르트는 여유롭게 웃음 짓고 여관 주인에게 말했다.
"네 방 주세요."
레니아와 트레이야가 돈을 가지고 있었다는 안도감에 벤하르트는 미처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에코트에서 그들은 10마크닐이 넘는돈을 써버렸다는것을..
"여어. 오랜만."
이미 어두컴컴한 밤 어둠속에서 가벼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목소리에 검은 그림자가 살짝 움직였다.
"그래 이곳에서의 생활은 어때? 할만 하신가?"
"상관 없다. 부른 용건은 뭐지?"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어둠속에서 제로가 모습을 들어내었다. 검은 머리때문인지 얼굴의 표정을 잘 확인할수 없었지만 목소리에서 묻어나오는것은 차가움밖에 없었다. 그것을 알고 있는 가벼운 목소리의 남자가 제로의 앞에 모습을 들어내었다.
"내가 호출했다면 그건 뻔한일 아닌가? 너는 우리의 '사도'니까."
제로는 입가에 마른웃음을 흩뿌렸다. 그리고 손을 가볍게 움켜쥐었다.
"뭐 내가 불렀을때 기분이 좋았을리가 없었겠지만 오늘은 특히나 안좋아 보이는군?"
"아. 낮에 어떤 자들을 만났다. 그중 하나는 분명 신이었을테지."
"아 그렇군. 그리고 한 사람은 남자였을거야. 그렇지?"
재밌다는듯 남자가 물어오자 제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 그 일행은 노시엘트의 약신 레니아겠군."
"약신?"
"그래. 잡신중 하나지. 한번 두보엔과 싸워서 노시엘트를 버리고 인간과 함께 달아 났다고 하던데 이런곳까지 왔나. 재밌군."
"그랬나. 그래서 그렇게 힘이 없었던 것이었군."
레니아가 제로에게서 미약하게 신기를 느꼈지만 신이 아니라고 확정했듯이 거의 신의 힘이 남아있지 않은 레니아를 보며 제로는 그녀가 신이라는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왜?"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너는 네가 할일을 하면 되는거야. 내가 내 할일을 다해야 하는듯."
"그럼 물론이고 말고,"
남자는 종이 하나를 들고 제로에게 건네주었다. 종이는 점차 얼룩이 생기더니 한사람의 초상화가 되어 제로에게 날아갔다. 그리고 제로의 표정이 굳는다. '아직' 죄를 짓지 않은 무고한 사람을 죽여야 하는 자신의 선택에 그는 굳은 의지로 자신의 마음을 굳게 만드는 종이를 받아 들였다. 언제나 오고 가는 평범한 밤이었지만 언제나 종이를 받는 밤은 제로에게 길고 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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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참대전 완료! 두번째 연참대전을 완료했습니다. 20일동안 중간에 주말 하루씩 설하루를 빼고 다 올리다니,, 그리고 감각도 서서히 돌아오는듯 하고 기분좋습니다. 이 페이스로 계속해서 올릴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어쨋든 자축이나 하면서,,, 앞으로 조회수가 오르길 기도해보겠습니다. 열심히 쓰기나 해야겠지만요,
그리고 왠일로 오늘은 선작이 쪼매 늘었습니다. 경사에 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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