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173화-경쟁(2)
공방이라기에 연구실 같은 분위기를 생각했었던 벤하르트는 의외의 광경에 한순간 넋을 잃었다. 마치 연철장을 보는 듯한 느낌 도관에 가까운 형태를 지녔던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방금까지의 황토의 땅이 거짓인것마냥 넓은 푸른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고립무원(孤立無援 ) 이곳은 여전하군."
"실례구만, 그렇게 부정적이지는 않다고 원한다면 언제든 나갈수 있으니 상관 없잖나."
"그거야 물론 그렇지만, 말이 틀린건 없잖아? 근처의 수만딜 정도는 아무것도 없는 초원 뿐이니. 어쨋든 감사의 인사는 표해 두지. 고맙다. 조금 무리수를 두었을텐데,"
"얼마만의 친우인데 그것이 아까울까, 편히 쉬고 가라고,"
로엔의 어조는 아주 퉁명스러웠는데 말에는 정이 뚝뚝 배어 나오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로엔이 자리에 앉기를 권했다.
"앉아라."
"사양 않고."
"인(印)아 있느냐? 차를 내오거라."
'인?'
벤하르트가 이상한 이름이라고 고개를 살짝 기웃거릴때 멀리서 우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곧 한 상을 들고 매끈한 머리통을 가진 남자가 들어왔다. 눈썹은 짙고 몸이 다부져 투박해 보이면서도 얼굴을 조금 통통한 귀여운 소년이었다.
"이녀석은 뭐냐?"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요셉이 물었다.
"10년 전에 얻은 제자지. 거기에 인간. 어때 놀랐냐?"
"조금."
본래 둘은 암묵적으로 제자를 삼지 않는 것을 자존심처럼 여겼던 터라 이전에 인을 보았다면 요셉도 상당히 놀랐을 터였지만 자기 자신이 이미 제자를 받았기 때문일까? 의외로 놀란다거나 끓어 오르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10년.. 나이는 몇이지?"
"글쎄 정확한 나이는 몰랐지만 그때가 열살쯤이었으니 이십 전후쯤 되었겠군."
"호오 그런가."
소년이라고 불리기에는 조금 나이가 많은 인에게서 나오는 범상찮은 기운. 많이 갈무리 했다 해도 넘쳐 흐르는 잠재적 기운을 요셉이 놓칠리가 없었다.
'벤하르트와 싸우면 상당히 재밌겠군.'
"그건 그렇고 네가 마계에 다 오다니 비록 실수 였다고는 하나 마계에 오는것은 상당히 꺼릴 일일텐데,"
"뭐 그렇지. 하지만 어쩌겠나. 아직은 가르치고 있는 입장이기도 하고, 가만히 놔둘수가 없더군."
"하."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뱉은것은 미안함을 대변하는 벤하르트 나름의 표식이었다. 보통이었다면 듣지 못할 그 소리도 요셉이나 로엔에게는 누가 곁에서 말하는것과 같이 큰 소리나 다름 없었다.
"그래 얼마나 머물 생각이지?"
"우선 수마행(數魔行)의 탑에 가기 전까지 몸을 전성기까지는 돌려 놔야 겠지. 거기에 이녀석의 단련도 빼놓을수 없으니 대충 일 이주 정도를 잡고 있다."
"수마행이라. 네 실력이면 아주 손쉬운 일일테지만 그곳 조금 위험할텐데,"
"어째서?"
"못들은건가. 가렌더 부크에 가려고 하는 마왕중 하나가 그곳을 점거 하고 있거든. 마왕이 지나가기 전까지는 누구도 그곳을 통과하지 못하게 한다고 하더군."
마계의 배움을 지향하는 무리 중에서도 손을 꼽는 마계학자중의 하나 그에게서 나오는 마계에 대한 정보와 지식 연구는 한 개인이 가지기에는 너무도 거대한 것이기에 학사(學奢)라고 불리우는 로엔의 정보이니 내용 자체에는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그 목적에 대한 의문이 생길 뿐.
'하지만 왜 그런짓을 해야만 하는거지? 설마?'
그는 흘끗 벤하르트를 쳐다보았다. 그의 전부를 알지는 못하지만 거짓말을 하는게 아닌것만은 확실했으니 조작을 했다 해도 그 본인은 아닐터였다.
'꽤나 용의주도하군.'
"이번에 가렌더 부크에 가는 마왕은 무슨 마왕이지?"
"환마왕이다. 조금 꺼려 지지?"
요셉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나를 떼어 두기 위함인가. 냄새가 아주 술술 풍기는군. 안다고 해서 바뀌는건 없지만, 역시 노력하는수밖에 없나 하지만 탑 외에 벤하르트가 빠르게 가렌더 부크에 가는 방법은 생각이 나지 않는데,'
"헌데 단련이라고 말했으니 말인데,"
벤하르트는 로엔의 웃음이 왠지 불길하다고 생각했다. 금방이라도 뒷걸음질 치고 싶은 기분을 느끼던 차 그가 말을 열었다.
"내 제자 녀석은 오랫동안 나와 대련을 해왔었지. 하지만 자네도 알다 시피 봐주면서 하는것은 대련이라기 보다 가르침의 형식이 너무 짙어. 어떤 악조건을 제시한다 해도 실전과는 조금 거리가 멀지. 그게 비록 단순한 대결이라고 해도,,"
"하긴 그렇지."
금새 로엔의 의도를 파악한 요셉이 웃음 지었다. 로엔이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자신이 가장 꺼내고 싶은 이야기였던 것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네 제자와 내 제자를 대련 시켜 보면 어떨까? 보기에는 그렇게 월등한 실력차이가 나는것 같지는 않아 보이는데, 우리가 서로 싸워서 비기는것도 너무 오래지 않았나? 승부라는것은 그 모습이나 방법이 달라져도 승부인 것이니 말일세."
"좋다. 한번 해보자."
'으히익?'
반 강제적으로 방을 나와 마당으로 나온 벤하르트와 인 이라고 불리우는 청년은 어설프게 대치해 서로를 납득이 안간다는듯 바라 보았다.
"스승님. 꼭 싸워야 하나요?"
오랜 시간을 홀로 보내온 어린 청년은 낯선 사람과 마주하는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로엔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보였으나 이미 살기를 마음대로 조절할수 있는 로엔의 무언의 답에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사실 싸우고 싶지는 않지만,"
흘끗 요셉을 바라보고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사람좋게 웃고 있어도 여차 하면 기세만으로 죽일듯 표적으로 삼으리라는 것은 명백했다.
"한가지 말해주지. 급소를 공격하는것도 자유. 상대방을 죽일듯 달려 들어도 상관 없어. 기왕이면 죽일 각오로 싸워 주면 좋지.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싸워도 좋다. 기절하거나 상대가 죽거나 혹은 명백히 승부가 판결이 날때까지 계속된다. 그럼 시작."
"그런데 급소는 조금 뭐하지 않나? 죽는거야 우리가 막으면 된다지만,"
"웃기는군. 제자가 걱정 되는거냐? 하지만 별로 상관 없을거다. 이 규칙으로 득을 보는건 네 제자 뿐일테니까."
대치한 인을 보고 벤하르트가 말했다.
"무기는 들지 않습니까?"
"손이 무기요 발이 무기라는게 스승님의 말씀이기에 별다른 말이 없으면 들지 않아."
성큼 성큼 다가오는 인에게서는 주의라는것이 일절 없어 보였다. 본래가 검사인 벤하르트는 어쩔수 없이 검집을 봉한채 검을 휘둘렀다. 검을 뽑는다면 요셉이라고 해도 맨몸으로 막아낼수 없다고 속으로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검을 휘두른 순간 몸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공중으로 날아 올랐다.
"어?"
빙글 빙글 돌리는 몸을 간신히 추스려 잡고 인을 보니 여전히 성큼성큼 다가 오고 있었다.
'어떻게 된거지?'
다시한번 시야에 기를 집중해 그의 갈비뼈부근을 노리자 이번에는 공격을 확인할수 있었다. 손과 발에 얽힌 기와 기묘한 손놀림으로 벤하르트의 공격을 무효화 하고 또 그것을 역으로 되돌린 것이었다.
"꽤 하는군 저녀석. 10년 짧으면 짧고 길면 긴 시간이지만 대성 까지는 아니어도 자부심을 가질 정도는 되는군."
"뭐 그렇지. 가 아니라 네가 뭔데 내 제자를 평가 하는거냐? 그렇다면 네 제자는 어떠냐 공격을 하지만 실속은 없고 단순한 움직임으로만 이루어진 저것의 어디가 훌륭할까? 우리 인이야 말로 그 몇배는 뛰어나지."
"아마 지금은 그럴거야."
"뭐?"
전체적으로 인은 벤하르트에 비해 기를 다루는데 능숙한데다 공격이 정교했고 또 벤하르트가 의아해 할만한 기술들을 많이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압도하고 있었으나 결정적인 순간을 잡지는 못했다. 순간을 노리고 들어오면 언제 그랬냐는듯 벤하르트의 자세에 틈이 사라진 것이었다. 결정적으로 끝이 나지 않는것에는 벤하르트와 인이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것에 있었다. 실력이 비슷하기에 전력을 다해 싸워도 한쪽이 월등한 우위를 보여주거나 하지는 않았고 또 서로가 살초를 이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만큼 승부가 더뎌질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하는수 없구만, 인 너도 무기를 사용해라."
인의 키보다 배는 더 긴 봉이 날아 들었다. 봉을 쥐자 마자 공격이 마치 신들린듯 벤하르트에게 날아들었다.
"으윽."
그 맹공을 다 막을수 없어 벤하르트는 의식을 집중해 백색의 빛을 내어 냈다. 하지만 애초에 이기려는 생각을 가진것도 아니요 검을 뽑은것도 아니었기에 약하디 약한 기운은 그 맹공을 막아내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머리를 치는가 싶더니 어느새 봉의 뒷끝부근이 그의 다리를 노려 왔다. 그는 그 공격을 한끗차이로 피해내었다.
"흐음."
"어때?"
"굉장하다... 라고 말할줄 알았냐. 그래 봐야 내가 보기에는 재롱일 뿐이지."
"네가 보기에는 재롱이지만 저녀석 본인으로 보면 어떤데?"
"뭐 대단하기야 대단하지. 나이는 꽤 들었지만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실전 아마도 인위적으로 만들어 졌을 터인 실전에 대한 감이겠지. 엉망진창인 기술로 저만큼 인과 싸울수 있다는게 기적일 정도로, 아마 순수하게 신체를 정직히 다루는 능력만 따지면,,"
"그러니 벤하르트와 인이라는 저 아이는 상극이다. 인에게 없는 임기응변의 결정체나 다름 없는것이 벤하르트이고 벤하르트에게는 전혀 없는 네녀석의 공수(攻守) 기교의 묘리를 인은 깨닫고 있으니까, 아마 이 대련은 서로에게 많은 도움이 될거다. 그러니 아무쪼록 잘 부탁한다."
슬슬 인의 승리로 굳어져 가고 있었지만 로엔은 불만스러운 얼굴을 했다. 지금에야 인이 이길수 있다지만 인의 기교를 벤하르트가 익히게 되고 기를 좀더 능숙하게 사용하게 되면 승자는 아마 벤하르트일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걱정 마라. 원래 저놈은 받고만 있지 않으니까, 끝에 가서는 벤하르트가 이길수밖에 없겠지. 녀석의 세월이나 경지를 무시할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그때까지 인이 강해지는 걸 생각해 봐라. 약관의 나이와 백에 가까운 세월을 보낸 늙은이.. 의 차이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손해를 보는건 이쪽이라고."
'음? 그것도 그렇겠군.'
인이라면 적게 살아도 200년은 살수 있게 자신이 도와주면 되고 고작해야 20나이에 벤하르트를 꼭 능가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수준의 차이가 너무 나서 로엔이 할수 있는 대처법을 인이 따라갈수 없었기에 난제를 해결할 방도가 그로서는 없었기에 단순 승부로 보면 패전이라 할지라도 인에게 빗대어 보면 이득이었다.
"뭐 상부상조하는게 미덕이지. 친구사이에야 더할게 있겠나."
"그렇게 말할줄 알았다."
반쯤은 그를 인정하면서 고마움을 표하는 말이었지만 나머지 반은 그의 단순함을 놀리는 말이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로엔은 껄껄 거리면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함께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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쬐금 오랜만에 올리는데 그간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조금 고민 했습죠. 쓰면서도 이러면 어떨까 싶은 내용도 있고,, 하지만 고민을 한게 좀 효과는 있는듯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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