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147화-교차(4)
탑 안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일방적인 통행으로 이루어 졌다. 저항 없는 둥근 원형의 계단의 끝에 도착하자 광장이라고 생각해도 될정도의 공간에 이르렀다.
"결국 오고 말았나. 제네스."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진중함은 분명 그답지 않은 말투였다. 제네스라고 불리운 남자는 고개를 돌려 상아색 머리를 흔들고는 브레인을 쳐다 보았다.
"오랜만이군요. 스승님."
"....."
"....."
대치한지도 꽤 긴 시간이 지나가고 있을때 루에인이 앞으로 고꾸라지는듯 싶더니 벤하르트에게로 돌진했다. 그에 벤하르트도 검을 움직였지만 루에인의 보법에 의해 그의 검은 허공을 내질렀다. 하지만 일섬의 뜻에따라 다음의 공격을 노린 공격이 연달아 이어졌다.
'일격을 노린게 아니었나.'
검술에 놀란것도 있었지만 벤하르트의 움직임이 전과는 다르게 매끄럽게 움직인 까닭에 루에인은 살짝 거리를 벌릴수 밖에 없었다.
'기를 다루는것도 아니고 단지 검술만으로 이정도의 경지라니. 하지만 이곳에서라면 내가 질 일은 없겠지.'
자신이 유리한 상황이었음에도 벤하르트가 잘 버티고 들어오자 살짝 눈을 찡그리고 그는 다시 검을 들고 벤하르트를 향해 달렸다. 검과 검이 요란하게 부딪혔다. 벤하르트의 최면은 상당히 잘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단순한 움직임에서는 밀리지 않았지만 결정적으로 검술에서 곧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일섬을 사용한다 한들 익숙치 못했기 때문에 처음 공격과 그 후의 공격정도에 사용하는것이 한계인 벤하르트에 비해 루에인은 언제라도 활용할수 있는 제온에게서 배운 검술을 선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소 밀리고는 있었지만 잘 버티고 있었던 벤하르트의 몸에 순간 이상이 오기 시작했다.
"어..?"
몸이 뻑뻑하게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다. 간신히 날아온 공격을 피하기는 했지만 둔해진 몸은 더 이상의 공격을 피할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드디어 걸렸군."
루에인이 웃으면서 검을 들어 쥐었다.
"뭐지 이건."
"아직 '기'를 다루지도 못하는 녀석에게 당할것 같았나. 현재 벤하르트 너의 상태가 어떤지 말해주지. 거미줄에 걸려 돌돌 말린 한마리의 곤충과도 같다는 거다."
''기?' 도술을 사용하는 근원력 인가. 그렇군.'
연철장에서 깊게는 아니었지만 여러가지를 배웠던 벤하르트는 자신을 결박한 무언가를 루에인이 사용했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제네스가 보여준 힘과는 또 다른 무언가라는 것도..
"크윽."
"다리라도 베어 둘까. 살아 있기만 하면 어찌되든 상관 없는것 같았으니."
루에인의 검이 벤하르트의 다리를 향해 날아오자 벤하르트는 피할수 없음을 깨닺고 빛을 자신의 몸에 둘렀다. 검을 방어라도 해보자 라는 마음으로 두른 것이었지만 순간 몸이 가벼워졌다.
"그 검 역시나 탐나는군."
루에인의 기술은 자신의 기를 이용해 싸움 도중 서서히 실처럼 흩뿌리고 그것을 누적 시켜서 몸을 구속하는 것이었는데 벤하르트가 검의 빛을 몸에 두르자 몸에 엉켜 있던 기의 실을 밀어낸 것이다. 백광을 몸에 두른 채로는 빛을 쏘아 낼수 없었기 때문에 그대로 싸울수 밖에 없었지만 그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루에인을 이길수는 없어.'
"이상해. 네녀석 어떻게 그렇게 강해진거지? 분명히 그때만 해도 형편없는 실력이었는데, 어떻게 아오이스에서 수련한 나만큼의 실력을 가질수 있었던 거냐."
"글세."
다시 검이 맞붙었다. 루에인이 이상하다고 생각한것은 단순한 실력의 상향 뿐만이 아니었다. 아까까지 반응하지 못했던 공격에 점차적으로 반응 할수 있게 한번 당한곳은 당하지 않게 벤하르트는 그 짧은 싸움 속에서도 분명하게 강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설마 하는 의혹이 지금에는 점차 확신으로 바뀌어 갔다. 원래의 격이 있었기 때문에 아직은 루에인쪽이 확실하게 위였지만 이제 벤하르트가 루에인을 이긴다 해도 이상할것은 없을 정도로 격은 좁혀져 있었다. 그 실력에 대한 질투 보다도 더 먼저 생각해야 할것을 깨달은 루에인은 재빨리 자신의 발을 놀렸다.
'호영(狐影)'
루에인의 몸이 오른쪽으로 치우치는것을 보고 오른쪽을 막을 준비를 한 벤하르트는 그 움직임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분명 오른쪽으로 와야 할 공격이 왼쪽에서 쇄도한 것이다.
"크으아."
몸을 돌려 피하려고 해도 애초에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던 터라 미처 방어 하지 못한 그는 왼팔에 상처를 입고 말았다. 벤하르트가 당한것을 보고 초조해진것은 K였다.
'저대로 끝나는건가.'
루에인조차 파악할수 있었던 점차 나아지는 벤하르트의 움직임을 K가 모를리가 없었다. 이 짧은 전투로도 이정도로 강해질수 있는 남자를 그가 놓치고 싶어할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로서도 차마 루에인에게는 손을 쓰지 못했다.
'아오이스를 버릴까?'
살짝 그런 생각마저 해보았지만 곧 그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오이스에 있음으로서 얻을수 있는 전투는 벤하르트와는 비할수 없을 정도 아쉬운 마음은 금할 길이 없었지만 저울질 하는것이 어불성설인 것이었다.
한쪽 팔을 쓰지 못하자 벤하르트는 급속도로 밀려 갔다. 그 상황에서 그는 어쩔수 없음을 알고 왼쪽 팔을 방패 삼아 루에인에게 돌격했다. 한손을 방패로 놓는다는것.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택하지 않을 방법 이었지만 루에인은 그마저도 상상 했었다는듯 몸을 피하고는 벤하르트의 목을 향해 공격했다. 목의 뒷쪽에는 붉은 피의 선이 그어지고 점차적으로 벤하르트는 힘이 빠져 나감을 느꼈다.
'죽는..건가?'
'무력..?'
'.....'
상상된것은 절대 일어서서는 안될 그가 지금 가장 두려워 하고 있는 그것의 광경이었다. 자신이 죽는것보다도 더욱 두려운 광경. 레니아와 트레이야가 죽어있는 그런 광경을 상상한 벤하르트는 정신이 아득해져옴을 느꼈다.
'안돼!'
점점 가라앉어 오는 시야 속에서 그는 검은 무언가를 보았다.
'흐음?'
벤하르트의 변화를 먼저 감지한것은 K였다. 곧이어 루에인도 그 변화를 눈치 챘지만 놀라는 기색은 없었다. 처음 만났을때 자신의 얼굴에 상처를 준 기술을 어떻게 있을수 있을까.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의 그것이군."
흑색의 빛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어두운 빛을 날리며 벤하르트가 움직였다. 빛을 막는것에 막연한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루에인은 그 빛을 피하며 벤하르트의 움직임을 살폈다.
'없어?'
바람을 찢는 소리에 반응해 반사적으로 검을 들어 루에인은 벤하르트의 공격을 막았다.
"이 움직임은 뭐지?"
의문에 답할 벤하르트는 말도 없이 검을 휘둘렀다. 빠르고 정확하게 루에인의 급소를 노리고 들어오는 공격을 거리를 두고 피했다.
'아.?'
시큰 거리는 고통에 팔을 보니 막아낸 검에 맺힌 검은빛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어쩔수 없이 그는 검을 놓을수 밖에 없었다. 대응책 같은것을 생각하려 해도 쉽사리 나올리가 없었다. 검과 벤하르트를 상대로 가장 확실하게 이길수 있는것은 한대도 맞지 않고 상대를 제압할수 있는 역량의 차이라는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역시 죽일수 있을때 죽이지 않으면, 내가 먹히는군. 언제나.. 언제나.. 하지만 쉽사리 죽어주지는 않겠다.'
눈빛을 바꾸고 그는 자세를 잡았다. 본래 그가 있었던 곳 천도문은 맨손의 무도를 하는 곳. 검술을 배우기 전의 그는 완벽한 무도가라고 할수 있었다.
'저 눈 역시 정신이 있는것 같지는 않은데,'
맨손과 검의 차이는 말로 표현할수 없을 만큼의 차이를 보인다. 맨손으로 검을 막을수 없다는것이 첫번째요. 간격의 차이가 있다는것이 두번째라 할수 있었다. 첫번째의 문제는 맞을 생각이 없는 루에인에게 상관이 없다고 할수 있었으나 두번째 간격의 문제로 루에인은 섵불리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 벤하르트와 대치해 있던 루에인은 벤하르트의 눈을 보았다.
'저 눈은..?'
아오이스에서 대행자가 되기 위해 배워야 할것들은 단순한 검술 이나 자신의 육체를 강하게 하는 정도의 간단한것이 아니었다. 그 외에도 잡다하게 자신의 지식을 기를수 있는 여러가지 시험을 거쳐야 했기에 루에인은 많은것들을 억지로라도 배울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벤하르트의 눈을 통해 그는 하나의 추측을 할수 있었다.
'대답을 안한게 아니라 의식을 잃고 못한것인가? 그러고 보니 한동안 저곳에 있었군.'
슬쩍 움직이자 벤하르트의 시선과 몸도 그에 따라 움직였다. 추측은 확신으로 바뀌었고 루에인은 미소지었다. 그는 바닥을 향해 일장을 내질렀다. 쿵 하고 으깨진 바닥에 벤하르트가 반응해 움직였다. 움직임은 빨랐으나 어딘가의 교과서처럼 틀에 박힌 움직임 그것에 맞춰 루에인은 부수었던 돌과 함께 달려 나온 가루를 힘껏 벤하르트의 눈에 던졌다. 아주 짧은시간. 경직으로서 얻을수 있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짧은 시간이었지만 반격의 기회로 삼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의 시간이었다. 제정신 상태의 벤하르트였다면 충분히 루에인의 행동을 알아차릴수 있었겠지만 지금의 그는 의식을 잃고 루에인의 움직임에 반응하여 따라가고 있었기 때문에 공격과 더불어 사용한 한줌의 돌가루에 미처 반응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 루에인은 급소와 함께 신체의 움직임을 멈추는 8곳을 동시에 가격했다.
'됬다. 이건 오히려 이녀석이 정신을 잃어서 더 쉽게..'
움직여서는 안될 벤하르트의 팔이 움직였다. 신체의 빠르기와 정확도가 상승했다 해도 내구력은 그대로라고 생각했던 루에인은 그의 공격을 버젓히 맞아 줄수밖에 없었다.
"이 괴물녀석이. 으아아악."
검은 빛이 그의 몸에 달라 붙었다. 떨어 뜨릴래야 떨어 뜨릴수 없는 그 저주의 빛에 루에인은 극심한 고통을 느꼈다.
[털썩]
고통속에서도 벤하르트가 쓰러지는 것을 확인한 그는 벤하르트의 옆에 떨어져 있는 검을 주워 벤하르트를 죽이려 했다. 아오이스에서는 가급적이면 살려 오라고 했지만 지금의 그에게는 그런 명령을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는 달리 검을 손에 쥐자 맺혀있던 검은 빛이 기다렸다는듯 그를 향해 덮쳐 왔고 그는 비명을 지를새도 없이 빛에 덮혀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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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참대전 스타트. 자 달려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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