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37화-호라반(1)
그렇게 벤하르트일행은 무사히 호라반에 도착할수 있었다. 목적한 대로 벤하르트가 내리자 마자 선원들은 홀가분한 표정이 되어 있었지만 그 얼굴을 보고 벤하르트는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름 불만 스러운 얼굴로 배에서 내리는데 가드바드가 살짝 선물을 건넸다. 고기를 말려 만들어 놓은 식품이었다. 여행길에 상당히 요긴하게 쓰일수 있는 음식이어서 덩치 답지 않게 세심한 가드바드의 배려에 벤하르트는 고마움을 느꼈다.
가드바드가 아니었다면 그가 이렇게 순조롭게 도착할수 있을턱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리기 직전. 속에서 부터 가슴을 살살 갉아 먹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그는 별로 하고 싶지 않은 말을 꺼냈다.
"나의 신상을 말한다면 처음 말했던 것처럼 끝까지 찾아 내서 도륙해줄거다."
위협적으로 검을 휘두르자 바닷물이 솟아 올랐다. 그 행동에 어느 누구도 감히 소리를 내지도 못했다.
"남자 타령도 좋지만, 상황도 봐가면서 하도록 해."
"계집한테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지는 않다!"
끝가지 레니아와 가드바드는 티격태격 대고 있었다. 마법과 주먹이 오가면서 여차하면 싸움으로 번질것 같은 행동에 선원들과 벤하르트는 말렸지만 그것이야 말로 그들만의 인사법이었던 것이다.
바드호에서 내리기 직전 뭔가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입장상 결국 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채 바드호를 떠날수 밖에 없었다.
"결국 정확하게 알아낸것은 뭣하나 없었군."
멀어져 가는 벤하르트와 레니아를 보면서 쉔은 그리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는 어제부터 조금 멍한 상태에 있는 페켓을 바라 보았다.
"어이 페켓 무슨 일 있냐?"
"결정했다!"
평상시에도 조금 이상한 행동을 보이긴 했지만, 바로 어제의 일로 최근의 페켓은 신입들에게 마저 좋은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약간 동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쉔이 물었다.
"뭘 결정해?"
고민거리가 사라진것과 별 관계는 없었지만 의기양양한 태도로 페켓이 말했다.
"들어 봐라. 지금까지 나는 선원을 접고 검사를 하려고 했었거든."
"음? 그런 생각이었냐?"
"기회만 된다면, 그런데 이제 생각을 달리 정했어."
뭔가의 형용사를 억지로라도 붙히자면, 페켓의 눈은 반짝반짝이는듯 했다. 그가 그런 행동을 할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기에 쉔은 다시한번 항구를 쳐다보았다. 이상하게도 벤하르트와 레니아는 아직도 떠나지 않고 그자리에서 바드호를 보고 있었고 그것을 깨달은것은 쉔 하나 뿐이었다. 벌써 다른 선원들은 밝은 얼굴로 일상으로 돌아와 그간 배웠던 것이나 항해를 돕고 있어서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왠지 그렇게 바드호를 보고 있는 그들을 보자니 쉔은 약간 즐거워졌다.
"그래. 무슨 생각인데?"
"나는 선원이면서 검사를 하련다."
"그냥 검사랑 뭐 다른게 있는거냐?"
"평소에는 선원이지만, 여차하면 놀랄만한 검사가 되는것을 목표로 삼겠다는 거야."
뭐에 반해 페켓이 그런 목표를 정했는지 쉔은 알턱이 없었지만, 웃으면서 그 말을 받았다.
"그럼 나도 그걸 목표로 해볼까. 선원을 때려칠 마음도 없고, 검사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것 같으니까,"
"뭐야? 헛소리 하지 마라. 선원겸 검사는 내가 할거라고, 너는 그냥 검사나 해라."
"선원은 때려 치고 싶지 않다고 말했을텐데? 그걸 독점할 이유도 없고 다시 경쟁이나 해보자고,"
"다시 라니. 언제는 경쟁을 했었냐?"
시치미 뚝 떼면서 페켓은 받아 쳤지만, 이미 쉔은 물론이거니와 가드바드나 선원들 사이에도 은연중에 소문이 돌고 있는 사실이었다.
"여하튼 그건 내가 할테니까 너는 그냥 검사나 해라. 너는 뭘 해도 잘 나갈거야."
"싫다고 했잖아."
페켓의 억지에 쉔의 받아치기가 서로 다투는 평상시의 그들을 실은 바드로는 점점 호라반과 멀어져 갔다.
"가버렸네."
지평선의 끝자락 아직 벤하르트의 시선에는 바드호가 보이고 있었지만 레니아는 보이지 않았기에 그렇게 중얼거렸다. 레니아를 자극하기도 싫거니와 별로 기분이 사는것 같지도 않아 그는 그녀의 말에 동조했다.
"그러게."
호라반은 작은 마을이었다. 사실 바닷가를 끼고 있었고 지도에도 항구라고 표시가 되어 있었지만 호라반의 크기는 항구라고 부를수 없을정도로 작았다. 어부들이 없는건 아니었지만 가드바드의 바드호의 반정도 되는 배조차도 하나 없었고 하나같이 작은 나룻배 정도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모래사장에서 바드호가 사라진것을 끝으로 벤하르트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와아아아."
어린아이의 소리가 들려 벤하르트가 고개를 돌렸다. 다섯살이나 되었을까 무릎에도 차지 않는 작은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 나온 것이다. 그 어린아이들 곁에는 조금 큰 여자가 한명 섞여 있었다. 나이는 열살쯤 되었을까. 그녀는 벤하르트와 레니아를 보고 고개를 갸웃 거리고는 총총 걸음으로 다가와 물었다.
"어? 아저씨랑 언니는 본적이 없는 얼굴인데 어디서 왔어?"
"아저씨.."
레니아는 누나로 보여도 벤하르트는 아저씨로 보인 소녀의 순박한 말이었지만, 본래 할아버지였던 벤하르트도 약간은 충격을 받았다. 지금의 얼굴은 그가 20대였을때의 얼굴. 그것이 어른이라면 모를까 어린아이에게 아저씨 처럼 보인다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질문하고 대기하는 소녀를 더 기다리게 할수 없어 벤하르트는 대답했다.
"멀리 바다를 건너서 왔단다."
"진짜? 바다에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있다고 어머니가 그랬는데, 그 바다를 건너 온거야?"
헤 하고 입을 벌리면서 소녀는 감탄했다. 그러다가 레니아쪽으로 시선을 돌리고는 또 천진난만하게 눈을 깜박였다.
'뭐지?'
어린아이를 대하는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레니아도 살짝 긴장하면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예쁘다."
"읏."
"하하. 예쁘단다."
"뭐가 웃긴데?"
벤하르트는 입을 다물었다. 사실은 레니아가 살짝 당황한 모습에 웃은 것이었지만 그 말을 입에 담을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춘 너무 멀리 가면 안돼."
아이들이 제각각 흩어져서 소녀에게서 도망치자 소녀는 당황하면서 가장 가까히에 있는 아이를 잡아 냈다. 그러나 한명을 잡자 이미 흩어져 버린 다른 아이들을 전부 잡을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어어어."
"레니아 도와주자."
"으.. 음."
벤하르트와 레니아는 서로 흩어져서 양팔에 한명씩 네명을 데리고 돌아왔다. 아이들이 빨리 달려 봐야 어른의 발을 당해낼수는 없는 것이다. 그때동안 소녀는 벙찐 얼굴로 춘이라는 소년을 감시하며 기다렸는데 아이들을 데리고 오자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아니 뭘."
"어이 벤. 이 아이들이 왜 이러는거야?"
레니아의 손에서 바둥거리면서 아이들은 연신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그녀는 볼을 꼬집히고 머리를 잡아 채이는등 여러가지를 당하고 있었다. 아이들만 아니었다면 당장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그에 벤하르트는 레니아에게서 빼앗듯이 아이들을 떨어 뜨려 놓았다. 그제서야 아이들은 울음을 그치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 봤다. 그리고 아이들 너머에서 레니아는 벤하르트를 살짝 노려 보았지만 그는 눈치채지 못했다.
"바다를 건너 오신 사람님."
우물쭈물 하면서 벤렌이 말했다.
"벤하르트라고 불러. 이쪽은 레니아."
"나는 벤렌이라고 해. 이쪽은 춘 찬 루련 디랸 이파츠구.."
어린아이의 이름 까지 외울 생각은 없었지만 친절하게 설명하는 벤렌을 무시하기도 뭐해 벤하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가 은혜를 받으면 꼭 갚아 주라고 했는데 나는 가진게 없어. 미안해요."
"은혜를 받아도 꼭 갚지 않아도 돼. 지금껀 우리때문에 네가 부주의하게 된거니까 우리한테도 책임이 없다 할수는 없고, 그런걸 일일히 따지는건 꼭 좋은건 아니거든."
"현자 나셧군."
"그럼 은혜를 받으면 그냥 받기만 하면 돼?"
"아니 갚긴 갚아야지."
어린아이를 대하는데 능숙하지 못한건 벤하르트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거야?"
"은혜는 갚아야 하는거야. 자신에게 있어서 할수 있는 답례를 주면 되는거지. 정 없다면 말뿐이라도 네가 할수 있는 일을 하면 되는거야. 이쪽의 아 저 씨는 말주변이 없거든. 네가 양해해."
"아 그렇구나. 그럼 누나 아저씨 우리집에 갈래?"
아이가 웃으면서 말했다. 굳이 무언가를 바라는것은 아니었지만 매몰차게 거절하는것도 뭐해서 마을의 정보라도 얻을겸 벤하르트는 소녀를 따라가기로 결정했다.
"잠깐 정 아저씨라고 불러야 겠다면 할아버지라고 불러라!"
"응 왜? 하지만 아저씨는 할아버지 같지가 않은데,"
"난 아저씨가 아니거든."
"그럼 오빠로 할까?"
살짝 고민하는 척을 하고 벤하르트는 화끈 거리는 얼굴을 감추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좋겠네? 오빠가 되어서?"
벤렌의 집으로 가는 중 쏘는 듯한 말투로 레니아가 말했다. 아이들은 그들의 앞에서 손에 손을 잡고 걷고 있었는데 그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벤하르트는 레니아를 데리고 귓속말로 물었다.
"왜그래 갑자기."
"별로? 뭘 그런다는 거야?"
"괜히 저기압이잖아. 이유가 뭐야?"
"기분탓이야 기분탓."
하지만 그녀의 몸에서 일렁이고 있는 기분나쁜 기운을 보며 그는 절대로 기분탓으로 치부할수 없었다. 벤렌은 마을아이들의 보모역을 하고 있었다. 말이 보모지 집안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을때 애들을 데리고 나가 놀고 오는 것이었다. 아이들을 집에 넘겨 주면서 돈을 받는것을 자연스럽게 해내는것을 보니 이런 일을 한지도 꽤 오래 된 모양이었다. 나이가 얼마 되어 보이지도 않았기에 벤하르트는 약간 놀라며 물었다.
"항상 그렇게 돈을 받니?"
"응."
'위험하지는 않을까?'
아까와 같은 상황이 발생하지 않으란 법도 없는데 너무 무관심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지만 마을의 일이었기에 굳이 참견하려 들지는 않았다.
"잘가 춘."
마지막 아이를 배웅하고 벤렌은 그들을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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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알바에 몸이 지치는 군요... OTL.... <-완전 이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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