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186화-수마행(數魔行)의 탑(3)
여행은 나름대로 순조로웠다. 이미 벤하르트가 수마행의 탑을 이겨낼수 있을정도로 성장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기본적인 훈련을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편안한 여행이 계속 되고 있었다. 벤하르트에게 지금의 여행중 납득이 안가는 점이 있다면 어느사이엔가 자신이 식사준비를 도맡아서 하고 있다는것 하나 뿐이었다.
나우스는 요리에 재능이 없었고 애초에 로엔과 요셉은 논외였으며 억지로 시켜본 판치스도 요리 솜씨는 형편 없었다. 인이야 요리 자체를 모르고 있었으니 결국 소거법으로 벤하르트가 남게 된 것이었다.
"후우."
불을 지펴놓고 그는 고기를 노릇하게 굽고 있었다. 그저 굽기만 하는 행위였으니 질리는것도 당연했지만 이 간단한것을 시킬수 없다는게 애석할 따름이었다.
"우와 맛있겠다."
때마침 염장을 지르는 듯한 인의 말을 듣고 벤하르트는 바짝 익은 고기를 인을 넘겨 던졌다. 인은 좋아라 하며 고기가 날아가는 방향으로 뛰어 갔고 그런 모습을 본 그는 살짝 웃으며 다시 고기를 구웠다.
"도와드리겠습니다."
"됐어. 네 도움은 도움이 아니라는걸 저번에 확실하게 알게 되었으니까,"
나우스의 요리 실력은 정말이지 형편 없었다. 10살도 되지 않은 꼬마에게 시켜도 그 보다는 잘할것 같았다. 불조절을 못하는게 이유중 하나였는데 나우스의 변명을 미루어 보면 이랬다. 뭔가 부족한 부분이 눈에 보인다는 것이다. 살짝 설익은 부분이 눈에 띄여 그쪽을 돌리고 있으면 다른 쪽이 눈에 뜨이고 그렇게 조금만 더 조금만 더가 음식을 망쳐 버리는 것이다. 새까맣게 탄 견본 요리가 있었기에 아주 간단한 구이 요리 조차 맡기지 않은 것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늙은이 답게 아는것은 많으니까 도와주지 않아도 별 상관 없을거야."
판치스의 경우 전체적으로 어떤 요리를 만들라는것은 못했지만 나우스 만큼 요리를 못하는것은 아니어서 구이 요리 정도는 능히 할수 있었다. 하지만 벤하르트는 시키지 않았다. 한번 시켜보았을때 그녀는 불쾌함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그를 보는것으로 시작해서 그 뒤로도 한동안 벤하르트에게 말을 걸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의 태도자체에는 별 불만이 없었지만 그 이유를 제공한 사람이 자신이라는것은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애초에 마음 여리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벤하르트 였기에 그들이 원치 않았던 관계인 무언가를 억지로 시키는것은 그의 성격에는 맞지 않았다.
결국 그렇게 역할은 정해졌고 그는 조금 더 요리를 편하게 하기 위해 일행이 있는 곳과 제법 먼곳에 떨어져 앉을수 있는 바위를 찾아내어 그 위에 앉아 이름모를 마수의 고기를 굽고 있었다. 적당히 소금을 치고 적당히 조미료를 가해 가볍게 먹을수 있는 저녁 식사 였다.
"어이 너희들 굳이 여기에 있을 필요는 없으니까, 가서 쉬어도 좋아."
인은 단순한 호기심으로 나우스는 벤하르트를 모시기 위해 판치스는 단순히 나우스를 쫓아 왔을 뿐이었기에 그 말을 듣고는 나우스에게 재촉했다.
"나우스 여긴 벌레가 너무 많아서 싫어. 저리 가자."
"가려면 판치스 네가 가. 조금 떨어져도 아무런 상관 없는 일이잖아. 나는 이곳에 있겠어."
일단 말을 내뱉고 나면 목석처럼 앉아 기다리는 우직함을 보여 주었기에 판치스는 포기 하고 벤하르트가 앉은 바위에 몸을 맡겼다.
"나우스 이게 다 구워 지려면 아직 꽤 남았으니까, 판치스나 데리고 놀아 줘라."
벤하르트의 말에 마지못해 판치스가 대답했다.
"네."
"애늙은이의 말은 잘도 듣네."
그 말에 돌아온것은 한방의 꿀밤이었다.
"이제 우리의 주인이 된 분인데 왜 그렇게까지 불만인거냐. 사실 백번 감사를 해도 모자를 지경이거늘."
"그거야.."
'네가 저녀석에게 빠져 있으니까 그렇지!'
라는 이유를 내뱉을수는 없었다. 사실 그녀는 암살자 같은것을 떠나 나우스와 그 외의 부하들과 함께 주인을 바꿔가면서 살아가고 싶었다. 괜히 이상한 미끼가 되어 부하들은 모두 죽고 나무스는 나우스대로 이상한 주인에게 한눈이 팔려 있는 꼴을 보기는 싫었던 것이었다. 괜시리 울분이 쌓인 그녀는 한껏 벤하르트를 쏘아 보고는 돌아갔다.
"나우스."
"예."
"너와 판치스를 따라 다니던 그녀석들은 어떻게 되었지?"
벤하르트의 물음에 그는 입을 파르르 떨며 대답했다.
"그녀가 남긴 사념체를 해치우고 저는 그들을 구했습니다. 하지만 각각 이미 치명상을 입은 채였습니다. 결국 저는.. 둘을 두고 판치스를 구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네가 느끼는 기분을 판치스 저녀석도 느끼고 있을지 몰라. 나에게 너는 필요 없지만 그녀에게 너는 필요한 존재가 아닐까. 이제 세상에서 판치스가 의지할수 있는건 너뿐이니까. 알겠지?"
"아.. 네."
잠시 머뭇 대던 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판치스를 따라갔다.
"한적 하구나."
이름모를 마수의 고기는 불을 쬐면 익혀지기는 익혀졌지만 그 속도가 매우 더뎠다. 벌써 30여분을 구워 냈는데도 겉면이 약간 익었을 뿐이었다. 꽤나 허기가 졌고 냄새가 너무도 좋았던 까닭에 그는 칼로 살짝 겉면을 잘라내어 맛을 보았다.
'맛있는데?'
이럴때는 요리를 하는 사람도 나쁘지 않구나 하고 좋아라 하면서 그는 조금 불을 더 지폈다. 판치스의 말대로 그가 앉아있는 곳은 벌레가 상당히 많아서 가만히 있기만 해도 몸이 근질근질 거려올 정도 였다. 오죽 했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벤하르트도 자신의 주위를 기로 덮어 벌레를 차단했을까.
"맛있는 냄새네. 요리를 잘하는 부하는 나쁘지 않은데,,"
"으에에에에에에"
벤하르트 답지 않게 뒷걸음질 치며 그는 검을 들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은 그가 얼마나 공포에 젖어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였다. 그저 그 금발의 머리를 보았을 뿐인데 그는 이미 손가락 하나 까딱 할수가 없었다.
"호오, 겁에 질려 있는 모습도 굉장히.. 귀여운데,"
"우 웃기지 마라."
"진심이라구? 네 얼굴 자세히 보니까 꽤나 귀엽단 말씀. 그런 고로 너 흡혈귀가 되는게 좋을것 같다."
그녀는 성큼성큼 벤하르트에게 접근해 왔다. 얼굴과 얼굴이 맞닿을 정도의 거리에서 그녀가 말했다.
"정 원한다면 네가 원하지 않는 일은 하지 않을게. 억지로 강요하지도 않고 누구도 죽이지 않아 주겠어. 사실 목적은 다른 것이었지만 이제는 어찌 되었든 상관 없지. 나에게 있어 삼천잔재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이 여자가 원하는게 삼천잔재였구나.'
"그것보다 네가 내 부하가 되면 좋겠어. 이것 실례해도 되겠지?"
반시간도 넘게 걸려 겨우 구워낸 고기를 냉큼 들어 한입에 먹고 그녀는 배를 통통 두드렸다.
'외모도 싸우는것도 먹는것도 괴물이로군. 그것보다 왜 요셉은 오지 않는거지?'
흡혈귀인 그녀가 왔다면 누구보다 빨리 알아 챘을것이 뻔한데도 요셉과 로엔은 아직도 나타나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는 그를 보며 그녀가 말했다.
"소용없어. 이번에는 죽이기위해서 온게 아니라 단순히 방문차 온것이니까, 기를 흩뿌리고 다니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지. 그런 고로 자.. 네 피를 마시게 해줘."
"그만 둬!"
벤하르트에게 있어서 공포 보다도 더 무서운것은 그녀에게 속박당하는 것이었다.
"억지가 아니라고 해놓고는 너같이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녀석의 수하가 될것 같나?"
"아 그건 실수네. 나는 정말 너를 놓치고 싶지 않거든. 그러니까 마음을 달리 먹을수는 없을까? 사실상 흡혈귀는 좋다구? 낮에 걸어다니지 못한다거나 그런 미신 같은건 전부 거짓말. 사실은 인간들이 그렇게 바라고 있는 불노불사에 가깝다니까? 어때 마음이 슬슬 변하고 있는것 같지 않아?"
새하얀 송곳니를 살짝 들어 내면서 그녀가 말했다. 그 모습에 왠지 마음이 울렁 거렸다. 평소에 레니아를 매번 보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그가 물었다.
"전혀 불노불사에는 관심이 없어. 그것보다 어차피 명령을 따르지 않는 부하 따위를 원하는 이유가 뭐냐!"
"단순한 소유욕."
분위기가 바뀌었다. 잔잔하게 웃고 있는 미소는 폭풍이 몰아닥치지 전의 고요함을 내포하고 있었다. 심장이 오싹하게 저려왔다.
"인간도 그렇잖아? 인형이라던가 장난감이라던가. 쓸모가 없어도 가지고 싶어하는 그런것과 같은 욕구지. 부하가 아니어도 좋아. 네가 내가 만든 흡혈귀라면,,"
그녀에게 있어서 처음으로 만나는 형식의 인간. 처음으로 놓친 인간이라는 꼬리표는 점점 소유욕으로 변해 갔고 로엔의 삼천잔재는 어찌되도 좋을정도로 그 욕구는 커져만 갔다. 그녀가 굳이 희미한 잔향을 따라 이곳에 온것도 그 이유중 하나였다.
"하지만 너는 억지로 손에 넣을수는 없을것 같은 기분이야. 주종의 속박을 걸어도 너같은 타입은 굉장히 성가시거든. 설사 나를 배신해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납득할수 없는것에는 결코 납득하지 않을것 같았어. 그래서 생각했지 어떻게 하면 네가 나를 따르게 될 것인가? 하고. 그래서 우선은 네가 나를 싫어하는 이유부터 없애기로 했지."
그녀는 손을 들어 붉은 형체를 만들어 냈다 그 형체는 곧 인간과 비슷한 형상으로 바뀌었는데 전날밤 벤하르트가 확인했던 판치스의 부하들이었다.
"너!"
"아직 살아 있어. 내가 흡혈귀로 만들었으니까, 가지고 싶은 녀석들이 아니니까 속박을 걸지도 않았어. 단순히 피를 갈구하며 살아가게 된거지. 어때. 조금은 마음이 풀렸나?"
"흡혈귀라니 피를 갈구한다고?"
"식량이 피라는 이야기인것뿐 괴물 같은건 아니라고, 만들고자 한다면 못만들것도 없지만 그래서야 자꾸 미움만 받게 될것 아냐? 나는 너를 부하로 만들고 싶으니까, 단순히 장난감이 구하고 싶을 뿐이라면 죽이고 피로 움직이는 인형으로 만들어 버리면 그뿐이지만, 그건 나의 미학(美學)에 어긋나거든. 결국 이녀석들은 피를 먹는다는것 빼고는 인간과 똑같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거야. 하는 김에 녀석들의 종족으로서의 인자도 내 피로 없애 주었어. 나에 대한 기억도 깔끔하게 지워주었으니 앞으로는 녀석들이 하기 나름이겠지. 어때? 조금은 감동했을까?"
"네가 죽인게 이들뿐은 아닐테고 이해타산으로 뭉친 행동에 감동할정도로 나는 바보가 아니야. 거기에 저번에는 나를 억지로 부하로 삼으려 했으면서 이제와서 미학을 따질 여유가 있는건가?"
"조종할수만 있다면 상관 없어. 그게 나의 미학이지. 내가 이렇게 나오는건 너를 내 피로 조종하지 못할것 같기 때문인것 뿐이지. 자신의 미학을 결정하는건 자신으로 충분한 일이잖아? 그러니까 다시 한번 말할게. 나쁘게는 않알테니 흡혈귀가 되어줘."
"흡혈귀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어."
그녀와 그의 차이는 말 그대로 천지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만 그는 끝내 그녀에게 말을 높히지 않았다.
"생각보다 더 어려운 녀석이구나. 너 이름은?"
갑작스러운 그녀의 질문에 벤하르트는 이름을 말하지 않으려 했으나 입을 누군가가 강제로 찢어 여는듯한 기분으로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벤하르트 하르크."
"그런 이름이었군. 조금 부르기가 번거로운데, 이름 줄여서 벤으로 좋지 않아?"
"아니 절대 안돼. 그것만은 안돼."
"어째서? 아.. 그런 반응도 너무 좋아. 앞으로 너는 벤으로 불러주지. 그럼 벤. 다음에 또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자. 방해꾼이 와버렸으니.. 이것들은 너를 위한 선물로 남겨 주도록 하겠어."
그녀의 몸이 짙은 혈색의 안개로 휘감겼다. 왜 피에서 나는 냄새가 그리도 달콤한걸까 하는 얼토당토한 생각을 하고 있던 벤하르트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그녀는 없었다.
'기억하고 있어. 언제고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소름 돛는 구만, 정말 마계라는 곳은 나와 안맞는것 같아."
닭살이 올라오며 으슬으슬해지는 몸을 손으로 부비며 그는 그녀가 떠나간 곳을 바라보았다.
====================================
연재한담에서 컴터다운님 曰
"약 50회 가량 글을 올렸을 때 최신작과 첫 조회수의 편차가 1/4이하로 줄어들지가 않는군요."
.... 저는...? 저는..? 저는.? 백의 자리를 반올림 해서 계산해보니..
16000 : 100 이네요. 한번 웃어 봅니다. 하하하~
아니 근데 요즘 왜 이런 글만 올리는지 모르겠군요. 진심으로 별 뜻은 없습니다.
이제 연참대전도 슬슬 중후반에 접어 들고 있습니다. 완주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Comment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