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183화-확인(7)
그녀의 손톱이 벤하르트의 머리를 노리고 들어온다. 그 움직임을 벤하르트 자신은 비어있는 왼손으로 나름 가볍게 막았지만 그와 동시에 기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팔이 부서져 내려 살을 터트리며 뼈가 튀어나온 것이다.
"정말 괴물이다."
지금의 일격을 기준으로 힘을 가늠해 보았다. 아까의 싸움에서는 그 힘의 반 정도나 냈을까. 그녀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놀고 있었던 것이다. 불쾌함보다도 먼저 떠오른것은 우습게도 무심결에 튀어나온 생각이었다.
'그래도.. 상대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야.'
손이 움직였다. 막아낸 손이 왼손이라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는 다행스러운 일중 하나였다. 오른손의 검을 휘둘러 백광을 자아낸다. 빛과 붉은 피를 날리는 손톱이 맞붙는다. 전과는 달리 손은 쉽사리 빛을 찢어 내고 있었다. 마치 그것이 당연하다는듯 그녀는 웃으며 그의 목을 노리고 들어왔다.
하지만 벤하르트도 이상한 약을 먹고 신체가 강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움직임에 충분히 반응하고 막아 낼수 있었다. 정면에서 받는것이 무리수라면 한껏 단련한 백광으로 공격을 흘려가면서 수십합을 겨루었다.
손과 검이 한번 징하게 맡붙었다. 그 탄력을 이용해 그는 거리를 벌렸다.
"왜 그러지? 아마도 얼마 남지 않았을것 같은데, 나를 이길수 있는 시간이라는것은.'
손을 가리킨곳에서 붉은 창이 올라왔다. 지금껏 순수하게 신체의 능력밖에 사용하지 않았던 그녀의 의외의 공격이었지만 그는 여유롭게 몸을 비틀어 피했다.
"....."
"멋진 눈이야. 이 차이에서도 굴하지 않는 그 모습. 정말 나쁘게는 하지 않을게. 무리한 명령도 하지 않아. 단순히 나의 피를 받고 나의 종이 되어 주기만 하면 돼. 저녀석도 살려주지. 조금 싫지만 너에대한 어떤것도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을게. 단 한가지만 들어준다면 꼭 종 노릇을 하지 않아도 좋아. 어때?"
"거절하겠다. 그 말에 거짓이 없더라도 네 밑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없어."
머릿속에 떠오른것은 청은의 머리를 가진 한명의 신이었다.
"유감이네. 꼬맹이 주제에 건방진 태도를 보이는것도 마음에 들어. 네가 싫다면 할수 없지. '강제적으로' 손에 넣어 주겠다."
그녀에게서 나온 것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거친 어투가 입에서 튀어 나왔다. 마치 그자리에 없었던것 같이 그녀가 벤하르트에게 다가왔다. 눈을 껌벅이니 도달했다. 하는 움직임. 또다시 어우러지는듯 했건만 허공을 지른 그녀의 손에 퉁겨져 나갔다.
"막던 안막던 소용 없지. 안그래? 인간."
손가락을 까딱 거리면서 그녀가 말했다. 그것을 멀리 날아가던 벤하르트가 작게 말했다.
"고맙다."
속삭이듯이 말한 소리였지만 그녀가 알아듣기에는 충분했다. 곧 무슨 일인지 알아낸 그녀는 행복한듯이 웃었다.
"왜 저렇게 불완전한 생물이 저토록이나 멋질수 있을까. 불완전한 신체 불완전한 머리 불완전한 기술 불완전한 수명. 어느것도 가진게 없건만,"
그녀의 일격에 날아간 벤하르트가 향했던 곳은 나우스가 엉망으로 쳐박혀 있는 철골의 쪽이었다. 그를 한손으로 받아든채 곧바로 그는 달렸다. 한발 한발을 내딥을 때마다 땅이 움푹 꺼질 정도로 그는 전력을 다해 달렸다. 반인반마에게서 받았던 이상한 약의 힘을 받았고 출발 지점도 달랐기 때문에 그녀가 그를 따라 잡기란 실질적으로는 불가능했다.
"아.."
한번 울리고 그에 이어 두번 울리고 세번째 울린 심장이 저려온다. 곧 참을수 없는 가려움이 온몸의 구석구석에서 몰려오기 시작했다.
"부...작.용."
약에 대해 잘 아는것은 아니었지만 레니아와 다닌지 수개월은 되었고 그녀가 약을 사용하는것도 몇번이나 보아왔기에 알고 있었다. 자신이 가질수 있는 능력 이상의 능력을 얻기 위해서는 그만한 대가가 필요한 것이라고,,
다리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는 꼴사납게 허우적대면서 바닥을 굴렀다. 아직 약효가 다한것은 아니었기에 몸에는 상처하나 나지 않았지만 이미 부작용에 노출되어 그는 도망칠수 없었다.
'1초도 낭비해서는.. 안되는데,,'
의식이 멀어져 갔다. 싸워서 비떡이 되었을때도 정신을 차릴수 있었는데 온몸을 기어다니는 가려움에는 정신이 곧이라도 끊어질것만 같았다.
"불쌍하기는. 정말 완벽했는데,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는데, 실수는 없었는데, 패인이 뭔지 알려줄까?"
이미 들리지 않는 벤하르트의 귀에 대고 그녀가 말했다.
"네가 인간이기 때문이야. 너무도 무력한 인간. 그러니 이제는 나와 함께 가자."
[서걱]
그녀의 뺨에 작게 상처가 났다. 무의식중에서 휘두른 벤하르트의 검에 새빨간 줄 하나가 그녀의 백색 피부를 그어냈다. 뺨을 타고흐르는 피는 그녀의 피부를 색칠하듯 아름답게 천천히 그녀의 볼을 메워 나갔다.
"인외(人外)의 존재가 되거라."
날카로운 송곳니를 내밀고 그녀의 머리카락이 벤하르트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서서히 다가서는 그녀의 염원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크윽."
"오랜만이로군. 흡혈귀. 설마하니 아직도 포기를 못했을거라고는 생각치도 못했네."
"어이 저거 혹시 원(原)인거냐?"
"으음.. 뭐 그렇지."
"장난 하지 말라고. 네가 뛰어난것도 유명한것도 표적이 된것도 인정하겠다만 저런것에 관계 된 건 뭐냐. 우리 둘이라도 저 녀석은.. 상대가 안좋아."
"친구 좋다는게 뭐겠나. 조금 상대 해 주게."
로엔은 발을 요셉의 뒤에 가져가 있는 힘껏 밀어 주었다. 그 힘을 타고 여자에게 날아간 요셉은 곧장 수십개의 참격을 쏘아 내었다. 푸타카들의 무리를 상대했던것과는 완벽하게 질이 다른 공격. 다름아닌 죽일 각오의 전력이었다.
"성가시군."
"하하 뭐 괜찮지 않나? 즐거운 한때는 이미 지나갔다고 흡혈귀양. 느긋함이 화를 부른 셈이지."
손가락을 퉁기자 그녀의 머리에 충격이 전해진다. 그 한 호흡에 그녀는 방금까지 지니고 있었던 느긋한 마음을 일절 끊어 버렸다.
"참연식(斬連式)"
참격이 폭풍처럼 그녀의 주위를 휘감았다. 그녀의 주위를 두르게 한 위력용이 아닌 견제용의 공격이었지만 그녀의 발을 끊기에는 충분했다.
"이쪽은 끝났네."
로엔과 인은 각각 벤하르트와 나우스를 들고 이제는 거의 보이지 않는곳까지 닿아 있었다.
"저녀석이. 자신을 노린 흡혈귀와 나를 붙혀 놓고 도망을 쳐? 친구 같은 소리 하고 있.. 으악."
피에 얼룩진 손톱이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요정은 싫거든. 죽어줘."
"그거 잘됬군 이쪽도 흡혈귀는 사절이거든."
"으음."
따스한 온기 서서히 눈을 뜬 벤하르트는 고작해야 이틀 머물렀을 뿐인 여관이 그립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생각했다.
"아."
"일어났다. 스승님 일어났어요."
"오오 일어났는가?"
인과 로엔이 벤하르트를 반겼지만 그는 로엔을 보고 실실 웃고 있을수가 없었다. 자신의 옆에는 멀리서 보면 쓰레기 더미나 걸레같다고 생각될 정도로 엉망이 되어 있는 나우스가 누워 있었다.
[드륵]
"일어났냐. 망할녀석."
문을 열고 들어온 요셉의 모습은 가관이었다. 잘난 머릿결은 한 웅큼이나 쥐어 뜯겨져 나가 있었고 머리부터 눈에 보이는 부분만 해도 상처아닌곳이 없었다.
"설마 그 녀석과."
"뭐 그렇지. 꽤나 고생했다. 하아 역시 불사신이라는 녀석들은 상대하기가 영 까다로워."
"불사신.."
"그것보다 이것아. 너 머리가 어떻게 된것 아니냐? 도대체 그런곳에는 왜 간거냐? 자신의 실력에 뭔가 자신이라도 있었다고 생각한거냐? 지금이라도 말해주지. 네 실력은 말이지. 그거다 그거 별 10개중에 보면 2개? 아니지. 1개반. 아니 그보다 못하다고 쳐두도록 해야 겠다. 바보니까."
"아니 애초에 저 혼자 보내지 않았으면 될것 아닙니까? 화를 내고 싶은건 이쪽이라구요."
벤하르트로서도 말하고 싶은것은 많았다. 쌍방이 조금씩 잘못을 내포하고 있었을 때에는 누구도 이득을 보기 힘들다는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냥 듣고 있을 정도로 그는 호인이 아니었다.
"충분히 안전했단 말이다. 쫓아오는 여덟중 일곱과 상대했을때 네가 이길 가능성은 5할을 넘었고 설사 지더라도 너라면 도망칠수 있었으니까. 거기에 한명은 살기도 풍기지 않았고, 하지만 그쪽이 혹이었을 줄이야."
아쉽다는듯한 표정으로 말하며 그는 뜯긴 머리에 손을 가져갔다.
"그거야 그쪽의 생각이었겠지요. 애초에 이유를 만든건 요셉의 쪽 아닙니까?"
"아니 네녀석이 바보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된 일이었는지 말이나 해봐. 듣고 나서 누가 잘못했는지 따져 보자고."
벤하르트는 그 일에 대해 설명했다. 설명이 끝나기가 무섭게 요셉의 오른쪽 주먹이 그의 머리를 쳐냈다.
"그러니까 네녀석이 바보라는 거잖냐. 도대체 어제 적이었던 녀석의 무슨 말을 믿고 적의 근거지에 얼굴을 들이민거냐. 아니 그 말이 사실이었다고 해도 마찬가지지. 결국 그 흡혈귀는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인데, 최소한도 너를 잡을수 있을 정도는 준비되어 있는게 당연하잖아!"
"....."
"감정에만 치우치는 바보같은 녀석은 언제고 죽음에 놓여 있다... 만. 뭐 지난 밤 내가 말했던 말을 잊지는 않았을거라 생각한다. 가령 그곳에서 죽었다 해도 말이지."
100번도 더 벤하르트는 죽을뻔 했다. 그 한 시(時)에.. 그것을 실감한것은 그 당시도 쓰러질때도 아닌 요셉의 말에 의한 것이었다. 요셉이 화를 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는 신(神)이 아니었다. 전능하지도 않았고 최대한으로 벤하르트를 도와준다고 해도 언제나 붙어 있을수 있는것은 아니었다. 감당할수 없는 예측불허의 사고에는 여유롭게 대응할수 없는 것이다. 결국 이 일은 원인보다 그 과정에 있어서 벤하르트의 경솔함에서 생겨난 일인 것이다.
"어느정도는 강해졌고, 이런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르지. '어떻게든 될지도 몰라.' 하고, 무조건 그것을 생각했다는 말이 아니야. 무의식적으로 안되더라도 빠지면 그만, 이라는 생각이 박혀 있었을 거다. 전혀 터무니 없고 근거도 없는 생각이었지만, 다시한번 말해줄까?"
"죄송합니다."
"그 책임을 질수만 있다면 상관 없어. 그래 가령 레니아에게 네 시신만을 보여줄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오더라도 용서할수 있겠냐? 적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그렇게 쉽사리 네 목숨을 걸수 있는거냐? 그저 잘 풀린다면 하다못해 자신의 위치를 알수 있고 그럴만한 힘이 있다면 어느정도 감안해서 생각할수는 있지만 너는 그런것도 아니야. 약해. 그리고 그 자각도 네 스스로는 하고 있었다. 조금의 착각이 일으킨 단순한 일이 아니야 이건."
어느샌가 요셉의 말에 그는 동조하고 있었다. 선택에 후회는 없었다 라는 정말이지 경솔한 생각. 실제로 몇번이고 죽을뻔 한 고비가 분명 있었다. 죽었다면? 그것으로 끝 이라고 웃으며 말할수는 없을터인데도,,
"그래서 흡혈귀라는 그 여자는 뭡니까?"
"으음. 그 질문에는 내가 대답해야 겠구만, 학사(學奢)라고 불리는 나는 그 별명에 걸맞게 다른 이들이 모르는 많은 양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네, 이 몸은 그저 사치를 부리는 것 뿐이지만 다른 이들에게 넘어가게 되면 곤란한 내용을 많이 가지고 있거든. 그것을 노리고 접근하는 많은 것들이 있지. 결계를 쳐두고 생활하는것도 그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라네.. 내가 가진 정보는 악의로 도용되어서는 안되고 사실 누구라고 해도 내가 가르쳐 주고자 하는 자가 아니라면 가르쳐 주고 싶은 마음도 없기 때문에 특기를 살려 결계로 자신을 지키면서 단련 했던 것이지. 솔직히 실력에 자신이야 있지만 무적도 아니니 이기는 방법이야 준비를 한다면 충분히 만들어 낼수는 있다네. 잠시잠시 몇개월 정도는 나올수 있어도 년 단위로는 나오지 못한다네. 시간이 지나면 잡기 위한 수단이 만들어지기 때문이지. 그것을 위한 포석으로 아마도 이자들은 실력 확인을 위해 보낸 실험대 일게야."
나우스를 보며 로엔이 말했다.
"하지만 이젠 알았겠지. 여기 있는 요셉의 실력에 한시적이기는 해도 벤하르트 자네의 실력도 대단하다는것을 깨달았을테고, 이제 습격하려 하는 간이 튀어 나온 자들은 없겠지. 한세력의 왕 정도라고 하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아무리 나라도 그정도의 세력이 노릴리는 없을테니 걱정 말게나."
"그거야 모르지. 네녀석이 가지고 있는 정보는 어떤 의미에서는 나라같은것은 우스울정도의 보물이니까, 마왕이 달려들던 흡혈귀가 달려들던 잡종이 달려들건 사실 이상할건 없지. 이번에는 놀랐지만 말이다. 설마하니 원류(原類)도 아닌 원(原)의 흡혈귀가 나올줄은 몰랐다."
"그녀는 왜 나를 쫓는지 모르겠군. 생각해보면 아마 100년쯤 전부터 이따금씩 나타나곤 했었지. 빈번히 결계때문에 오지는 못했지만,'
"그런데 그 원 이라는건 뭡니까?"
"흡혈귀의 근원 이라는 뜻이다. 인간적인 표현으로 보면 흡혈귀의 신 정도 되려나. 세상에 떠돌아다니는 여러 잡다한 흡혈귀가 있겠지만 탁해진 피를 나누고 나눠서 생긴 그런 잡류와는 틀리지.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면 그 신에 해당하는.. 흡혈귀를 만든 흡혈귀다. 떠돌아다니면서 생긴 흡혈귀의 약점이라는 것도 없고 이미 차원을 달리한 종이지. 불사신의 육체에 늙지 않는 조각같은 외모. 성격이야 만들어지는 문제지만, 뭐 그런 거다. 벤하르트 너는 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지? 믿는가? 아니면 믿지 않는가? 하는 이분적인 질문이다."
대답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 없는 질문.
"믿습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네가 알고 있는 그 신은 인간이 모시는 신.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신이겠지. 그런 의미에서 보면 그 흡혈귀야 말로 더 신에 가깝다고 할수 있을거다. 능력으로의 문제로만 본다면 말이지."
자극이라도 주려는듯 싱글거리며 말하던 요셉의 표정이 조금 바구었다.
"뭐 이야기는 이걸로 끝내도록 하자.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에 시간이 여유로울때 하도록 하자고, 너 너무 빨리 일어났어."
요셉이 벤하르트의 왼손을 가리켰다. 감아 놓은 붕대에서 붉은 피가 세어 나왔다. 살이 갈라지는 소리가 벤하르트의 공포를 서서히 자극해오고 있었다.
"자 그럼 내일에나 보자고 벤하르트."
그것으로 벤하르트의 의식은 편하면서도 아주 부드럽게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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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왠지 만족 스럽게 쓸수 있었습니다만 아쉽게도 중간중간에 생각했던것을 조금 빼먹은듯한 기분이 듭니다. 뭔지는 생각이 안나는게 더 짜증나네요. 이래서 적어 놔야 되는데 전 적지를 않아요.
그래서 이제부터는 좀 적어 놓고 쓰기 위해 핸드폰을 끄적이며 메모장을 열었다 말았다 합니다 'ㅅ' 모두 즐거운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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