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12화-재개(10)
"그건 그렇고 리스 너는 어떻게 할건데?"
그녀의 요구에 따라 벤하르트는 가렌더 부크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던 건물위로 자리를 옮기고 물었다.
"나? 글세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한창 고민 중이지. 네가 이틀만 늦게 왔어도 이런 고민은 안했겠지만,"
"죽임을 당하란 이야기냐? 애초에 처음에는 나를 부하로 삼고 싶다고 졸졸 따라 다니더니,"
"그건 별개의 문제지. 기르던 개가 배반을 하면 언제든지 죽일수 있는게 나란 존재라구."
"존재라니,, 거창하군, 그보다 내가 개의 취급이었어?"
그녀는 허공에 발을 딛었다. 당연히 떨어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부유하고 있는건지 날고 있는건지 정확하게 판단을 내릴수는 없었지만 달 아래에서 흰 송곳니를 보이며 떠있는 그녀의 모습은 실로 흡혈귀 답다고 할수 있었다.
"떠나는 날은 내일이라고 했었지? 너는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
"몰라."
"따라 오면 좋을까?"
"모른다고,"
"아니면 이대로 서로 갈길을 가는게 좋을까."
"....."
벤하르트는 레니아와 리스가 부딪히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왠만하면 리스와 헤어지고 싶었다. 하지만 비록 부하로 만들겠다는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하나 자신을 이렇게 도와준 자에게 차마 그런말을 할수는 없었다. 근본적으로 그도 리스를 나쁘게 보지 못할정도로 친해졌다는게 문제였다. 마음의 반을 넘게 헤어졌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하면서도 그 나머지 만큼은 헤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뭐 장난이야. 모른다라니 너무 무책임하잖아. 벤. 언제고 그런 태도라면 후회하게 될수밖에 없어. 좋은쪽으로든 나쁜쪽으로든 언제나 네 이상에 맞추어서 세상이 돌아갈리 없으니까,"
우유부단함을 지적한다. 이미 몇번이고 들어왔던 일.
"알고 있어."
고치려 하지만 쉽사리 마음먹은대로 고칠수 없는것이 사람의 마음이었다.
"따라가는건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레니아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지. 질문 하나 할까? 서로 같은 성격을 가진 한쌍과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한쌍 어느쪽이 친해지기 쉬울까?"
잠시 생각하고 벤하르트는 답을 말했다.
"서로 같은 성격?"
"땡. 답은 없다 야. 같은 성격이 더 빨리 친해질수도 다른 성격이 친해질수도 있지. 하지만 그 반대로 같은 성격이기에 맞지 않을수도 있고 다른 성격이기에 맞을수도 있어. 레니아와 나는 전자. 너와 그 요정은 아마 후자 쪽이겠지."
"요셉?"
"그 요정은 너와는 달라. 목적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할수 있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타인을 죽이는것도 서슴치 않고, 너와는 다르지? 누군가를 지키려 해도 타인까지 헤아리려 드는 바보스러움과는 달라. 반면에 나와 레니아는 비슷하지. 행동력이나 성격이나 외향은 뭐 취향차겠지만,"
외향이라는 말에 들었던 기가 밖으로 세어나가듯 빠져나갔다.
"거기서 외향이라는 말이 나오는거냐."
"결론적으로 나와 그녀는 너무 비슷해. 비슷하기에 양립할수 없지. 비슷하지만 다르기에 섞이지 않아. 반면에 그 요정과 너는 다르기에 서로의 장점을 흡수해나가지. 한번 붙었을 뿐이지만 그는 나 못지 않은 괴물이거든. 실력으로보나 마음으로보나 너와는 확실하게 달라."
"그런건 알고 있어."
"아니 그렇지 않을걸? 네가 그를 믿고 있는 시점에서 이미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것을 인정하는 꼴이니까 이번에 내가 가장 놀랐던 것은 그 요정이 너희들을 구하기 위해 환마왕 루그벨트에게 쳐들어 온 점이야. 그녀석은 본래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정에 치우치는 녀석이 아니야. 이것만은 확실하지."
"....."
"그러니까 어울리지 않는 레니아와 같이 여행을 다닐 마음은 없어. 너를 포기하는건 아니지만, 지금은 레니아에게 양보해 두도록 해야지. 철저하게 정을 씌워 둬야 나중에라도 네가 부하가 되기 쉬울것 아냐? 몇년이고 몇십년이고 이몸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시간이니까,"
"이미 년을 생각하는 단위가 틀리구나."
"단순한 녀석.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은 언제고 분명 후회를 하게 돼. 그런 성격이기에 말야. 벤 나와 레니아가 위험에 처해 있다면 누구를 구할거야?"
그 말에 경직된듯 벤하르트의 몸이 움찔 거렸다. 즉각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언제나 그가 선택하는것은 치사하고도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답변.
"둘다. 어느쪽도 포기할수 있을리가 없잖아."
"그러니까 그것이 너를 잡아 먹게 될거라는 거야. 나름 나는 오랜 시간을 살아왔어. 아 이건 말실수.. 나름의 수준은 아니지. 네가 대단하다 여기는 요셉보다도 한쪽에서 신으로 지내고 있었던 레니아보다도 어쩌면 이세상 누구보다도 오래 살아왔을지도 몰라. 그렇게 살면서 설사 생각이 없다고 해도 어느정도는 느끼는게 있기 마련이라고, 누군가를 구하고 자신을 헤아리지 않는건 좋아. 하지만 반대로 누군가를 구하는데에 선택이 필요하다면 어떻게 할거지? 가령.."
살짝 운을 띄우고 그녀가 작은 입을 열었다.
"먼저 구하는 쪽은 살되 나중에 구하는 쪽은 죽는다라는 극적인 상황이 나온다면, 나와 레니아가 그 저울대에 올려져 있다면 그때는.."
답변은 없었다. 대답할수 없었다. 누군가를 그런식으로 저울질한다는것은 지금껏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지금까지는 분명 그런 상황이 주어질리가 없었다. 죽으면 자신 혼자로 끝 이라는 단순하고도 편한 사고로 돌아가던 그의 세계관이 뒤섞이고 있었다.
"지금 고민할 필요는 없겠지만, 꼭 이런 상황이 아니더라도 분명 고민하게 될때는 올테니까, 생각해두는게 좋아. 어때 인생의 도움은 되었나?"
"리스.."
"참고로 말하자면 방금전의 대답 나와 레니아를 비교하는데에도 대답을 못해준것은 왠지 말야. 기..뻤을지도.. 아니 하하 우습네. 분명 얼마전까지만 해도 서로의 살을 바를 각오로 처참하게 싸웠던 서로가 지금은 이런 시덥잖고도 평범한 대화라니.."
잠시 쑥쓰러운듯 고개를 돌리고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듯 웃으며 말을 이었다.
"뭐 어찌되었든 하고자 하는 말은 이번일처럼 딱딱 알맞게 누군가 도와준다는 일은 본래 형편 좋게 일어나는게 아니니까 매사에 고민을 하면서 살아가라고,"
"그럼 이제는 보지 못하는건가?"
"그럴리가, 분명히 말했잖아. 포기 하지는 않는다고, 언제고 분명히 만날 날은 올테니까 걱정은 하지 마."
"별로 걱정을 하지는 않았는데,"
리스는 순식간에 벤하르트에게 접근하더니 이마를 손가락으로 퉁겼다. 가벼운 장난 같은 움직임이었지만 정작 맞는 벤하르트의 입장은 그게 아니었다. 붉게 달아오른 이마를 손으로 어루만지며 괴로워 하는 벤하르트에게 리스가 말했다.
"꼭 한마디를 더 하더라, 그런거 레니아도 좋아하지는 않을텐데,"
"아.. 요전번에도 한마디 들었지. 역시 닮은꼴이긴 닮은꼴이라는건가? 아니 이런 말보다 그렇다고 이렇게 치는거냐?"
"음? 애교섞인 몸장난으로 받아주면 좋겠는데,"
"멀리서 보면 그렇게 볼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이 어디에 애교가 섞여 있다는거냐? 어 어?? 부어 오르잖아!"
손가락이 가볍게 닿은곳은 혹처럼 부어오르고 있었다.
"금방 나을테니까 걱정마. 아니면 피라도 주입시켜 줄까?"
"정중히 사양하도록 하지."
"난 너희들이 떠날때 인사하러 가지 않을거니까,, 오늘을 끝으로 한동안 너희들을 볼일은 없을거야. 그런 의미에서 좀더 이야기하지 않을래?"
"뭐? 내일 마중을 나온다거나 마지막 인사를 하지는 않을거야?"
놀라며 묻는 벤하르트에게 그녀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말했다.
"마지막이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건가? 이거 실망이네."
'읏 한동안 이라고 했었지.'
벤하르트가 마지막이라고 말했다 해서 그런 의미로 믿을리 없었다. 그저 단순한 꼬투리 잡기였고 그런 사실을 잘 아는 벤하르트는 답변하듯 말했다.
"'한 시 적 인' 마지막. 이라고 말해주면 되겠냐? 어쨋든 왜?"
"별로.. 인사를 하지 않고 이곳에서 끝내는게 더 운치 있어 보인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흡혈귀가 낮에 나와 모두와 뒤섞여 인사하는 장면은 역시 좀처럼 폼이 나지 않거든."
여전히 제멋대로인 성격이었지만 그것이 리스답다고 그는 생각했다. 고독하면서 고귀하게 밤을 즐기며 살아가기에 그녀는 그녀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 이야기는 할거야?"
"물론."
그런 제안을 벤하르트가 거절할리 없었다.
"내 이야기를 해봐야. 피에 젖은 이야기들 뿐이니까, 그간 쌓아왔던 관계를 허물어 내고 싶지는 않기에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아. 그런 고로 지금껏 여행했다고 하는 네 이야기나 좀 들어 보자."
본래 들려주기 싫다는 사실을 말하면 더 듣고 싶은게 인간의 심정이었지만 알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도 차마 벤하르트는 그것을 물을수는 없었다. 그 본인도 지금의 관계에 나름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이야기를 한다는것도 꽤나 갑작스러운 방향이어서 그는 조금 놀라고 말았다.
"어? 내 이야기?"
깊은 밤. 아무도 없는 가렌더 부크의 가장 높은곳에서 분명 흔히 볼수 없는 기이한 광경으로 둘은 이야기하고 있었다. 작별인사는 끝까지 없었던 그런 이야기를..
다음날 벤하르트와 레니아는 소지품을 챙기고 있었다. 그 전날에 늦게 들어왔던 것을 알면서도 레니아는 별다른 추궁은 하지 않았다. 아니 추궁 이전에 벤하르트에게 이야기 자체를 별로 하지 않았다. 오후가 될때 까지 각자의 준비를 하던 차 레니아가 넌지시 물었다.
"선물은 전부 전해 줬어?"
"어? 물론이지."
"리스도 말이지?"
"너 말야. 왠지 리스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것 같은데, 사실 이해를 못하는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건 조금 심하잖아?"
"뭐가 심한데?"
눈하나 까딱하지 않고 레니아가 물었다.
"그래도 우리를 구해준 은인이나 다름 없는데,"
"그것에 대한 감사는 이미 끝마쳤으니까, 다시 처음의 관계로 되돌아 가야지."
"....."
"나는 그저 방심하기 싫은것 뿐이야."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됐어. 그런 이야기는. 아스포에라에 타는 것은 오늘 몇시야?"
레니아는 별다르게 화가 났다거나 했던것은 아니었고 무엇보다 치졸하게 보이는게 싫었기에 말을 돌려 물었다.
"4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 아닐까?"
"그때까지 별로 할일은 없지?"
"어."
"자 그럼. 같이 서점에라도 가지 않을래?"
"서 서점? 아니 나는.."
가는 손이 어느샌가 벤하르트의 목을 둘렀다.
"그렇게 빼지 말고 가자. 어차피 할일도 없다고 했잖아."
"마.. 지막. 컥. 점검이라던가.. 켁. 아니 알았어 갈게 갈테니까 좀 놔."
울며 겨자 먹기로 그는 레니아를 따라 서점으로 향했다.
서점에 묘한 거부반응을 보이기는 했지만 레니아의 영향을 많이 받은 까닭인지 가렌더 부크에 종류가 다양했던 까닭인지 지루하다고는 말할수 없는 즐거운 시간이 지나갔다. 여행을 시작하는 당일에 한가하게 책이나 사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뭔가 이상한 일이었다.
'그래도 예상했던것 만큼 나쁘지는 않네.'
좋고 나쁜것을 따지면 좋은 쪽이었을 것이다. 시간이 거의 다 되어 서점을 나설때 그의 품에는 세권의 책이 걸려 있었다.
"어.."
마지막으로 짐을 챙겨 나설때 떨어진 무언가를 쥐어 들었다. 하나의 인형. 상황에 따라 같은 인형이 천차만별로 느껴지는 설명하기 복잡한 인형을 보고 그는 살짝 웃었다. 리스는 인형에 대해 대수롭지 않은듯 말했지만 내심 버리지 않아줬으면 좋겠다는 태도를 보였었다. 그런 상황은 별개로 벤하르트는 인형을 버릴 마음은 전혀 없었기에 가방에 집어 넣으려 하다 생각했다.
'그렇다곤해도 왜 하필 인형인거야?'
인형을 쥔 젊은 남자. 그것도 얼핏 보면 굉장히 아름다운 인형. 설마하니 들킨다면 이상한 남자로 낙인 찍힐것이 뻔한것이다.
"그럴일이야 없겠지만 역시 조금 조심해야 겠지."
"벤하르트님 레니아님 아무쪼록 몸 조심 하십시오."
정각 4시 곧 출발할 기세로 한 아스포에라가 도착해 있었다. 지난번과는 미묘하게 틀린 배라는것을 형태만으로 알아차린건 벤하르트 뿐이었다. 나우스의 인사를 시작으로 돌아가면서 작별인사를 고했다.
"고마워 너희들도 건강해라."
"밋밋하구만 벤하르트. 이런 곳에서는 멋진 말을 한번 전해주는게 좋은데 말이지."
"그러는 요셉이야말로 한번 보여주시죠?"
"그럴까? 일단 이건 선물이니 아스포에라 안에서 열어 보도록 하고,, 에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벤하르트 앞으로 어떤 일에 대한 선택을 강요받게 되더라도,"
"그것을 선택하는것은 나 자신이라는 것. 말이죠?"
요셉이 한 말도 멋진 말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벤하르트가 호응하자 왠지 그럴듯하게 보여서 자신있게 그렇게 대답한 벤하르트도 내심 놀랐다.
"뭐지 벤하르트? 또 얼빠지게 네. 하는 소리나 할줄 알았는데 어제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건가?"
불안한 기운이 살짝 등골을 엄습했다.
"아니 별로 그런 일은 없어요. 그보다 시간이군요. 모두 나와 줘서 고맙고 건강히들 계십쇼."
"마지막은 천박하게 끝을 내는 구만,"
한창 레니아와 무언가를 이야기하던 로엔이 한마디를 꺼냈다.
"또 보자고 벤하르트."
'역시 오지 않은건가? 리스는.'
약간의 서운함을 느끼며 벤하르트는 패를 들어 아스포에라에 탑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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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재개 끝!!!! 지금껏 썼던 부제중에 가장 길지 않았나.. 싶네요. (쓸데없이..)
에.. 앞으로가 문제로군요. 어쨋든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직 연참대전도 꽤나 남아 있고 말이지요.
연참대전중일때 댓글이 많이 달리면 힘이 납니다. 최근 무언가에 의해 에너지드레인을 당하고 있는것 같아서요.. (무슨 소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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