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111화-출항(4)
"결국 난 잊혀진건가. 밤새 아무도 안오다니 매정하기는."
투덜 대면서 벤하르트는 지친 몸을 배에 가져갔다. 낮에는 그렇게 더워서 걷잡을수 없었는데 아침의 바다는 시원하고 상쾌하기만 했다. 조금 그의 코끝에 느껴지는 쓰레기 냄새만 없었다면 아마 벤하르트는 그 장면을 꽤나 오랫동안 소중하게 기억했을 것이다. 무언가를 끝낸후의 여운을 즐기면서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게이즈의 지시로 레니아와 트레이야는 음식을 사러 나왔다. 본래 대로라면 배를 타고 만 하루면 가는 거리지만 최소 3일치의 식량을 사오라는 게이즈의 말이 있었던 것이다.
"바다라는건 하나의 작은 우주라고도 귀신들이 머무는 물이라고 불리우기도 하다. 하루의 거리라도 일주일치의 음식을 준비하는게 본래는 정석이지. 하지만 그정도의 여력은 없을테니 3일치 사오게나."
오르칸과 같이 있었다는 것과 나이가 얼마 들어보이지 않는 다는 것을 바탕으로 게이즈는 레니아를 오르칸의 친구 정도로 생각하는듯 했다. 그것이 세상 사람들에게 있어서 자신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관점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레니아였기에 다소 불만스러운 얼굴로 그녀는 그의 말을 따라 시장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레니아 너 이 새우튀김 먹어 봤어? 저번에 먹어 봤는데 무진장 맛있었다구. 하나 먹어 볼래?"
"트레이야 우리가 뭘 하러 왔는지 생각좀 해봐. 한가롭게 그런걸 먹고 있을 시간은 없잖아. 뭐 하지만 하나 정도는 괜찮으려나."
아침도 먹지 않고 나왔기 때문에 무언가를 달라고 레니아에게 신호를 보내는 배를 그냥 무시할수 없었던 그녀는 못이긴척 새우튀김을 손에 들고 먹기 시작했다.
"괜찮네."
"그렇지?"
여자와 함께 장을 본다는것은 벤하르트와 함께 보는것과는 꽤나 달랐다. 아니 그 이전에 트레이야와 함께 하는것 자체가 보통의 여자와는 사뭇 다른 시장이었지만 서로에게 새로운 경험인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던 것이다.
"그동안 정말 몹쓸짓 하느라 수고 많았고 미안했다. 너희라고 그런짓을 하고 싶었을리가 없었겠지. 끝까지 나를 따라와 줘서 정말 고맙다. 그래. 우리는 악인이고 세상 사람들이 전부 우리를 악인으로 보지만 나만은 너희들을 선인으로 보겠다. 절대 너희들의 부탁은 배반하지 않을거야. 지금껏 정말 미안했다. 하지만 너희들은 원래 기본이 불량배였으니 여기서 그냥 내가 사라지면 분명히 어딘가에서 오류가 생기기라는것을 알고있다. 그러므로 이것을 주마."
쿵 하고 거대한 무언가의 뭉치를 오르칸이 바닥에 던졌다. 한쪽 팔로 들기에는 약간 버거울 정도의 무게여서 상당히 힘이 드는듯 했지만 이미 부하들은 그의 얼굴에 관심을 보이고 있지 않았다.
"저게 뭐지?"
"기대하지 않는게 좋지 않을까? 괜히 기대한다 해도 상대는 철면 이라 불리는 우리 두목이니."
"그렇다면,,"
여러 추측들이 나오고 슬슬 달아 올라 부하들이 오르칸에게 무엇이냐고 묻기 시작하자 오르칸은 끈을 풀어 내용물을 보여 주었다.
"아니 저럴수가."
"도 돈.. 아니 미넬 동전인것 같은데!?"
"잘 봤다. 여기 있는건 총 500만 미넬. 그동안 내가 모아왔던 재산의 전부다. 이것들을 전부 너희들이 가져라."
"우호오 정말입니까 두목? 나중에 괜히 주먹 들이미는건 아니겠지요?"
오르칸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들은 환호성을 지르면서 좋아했다.
"잠깐 우리는 총 11명이니까 대충 1인당 40만 미넬씩은 돌아간다는 이야긴가? 최고잖아! 이거."
"그전에.."
좋아했던 분위기가 삽시간에 시들어 버린다. 착 가라앉은 오르칸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만약에 내가 가는곳을 분다거나 하는 것이 적발 된다면 정말 목숨은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라. 어디가 되었든 비틀어 버릴테니까, 정 말하고 싶다면 들키지 말아라. 그것이 내가 할수 있는 최대한의 조언이니까."
"네. 저희가 그런짓을 저지를리 없지요. 무술도 가르쳐 주고 여러가지 재미도 주고 이렇게 돈까지 쥐어 주는데 누가 두목을 배신하겠습니까? 그런놈이 있다면 제가 나서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입에 발린 소리는 필요 없다. 그럼 나는 간다."
일말의 정이 없는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근본이 그렇게 좋은 부류도 아니었다. 아주 나쁜 부류냐고 한다면 아마 맞을것이다. 여자들을 납치해 노예로 만들고 괜히 지나가는 사람을 반죽음으로 만들고 온갖 도시에서의 만행은 다 저지르고 다녔던 그들이었다. 잔머리를 굴려서 서서히 잠잠해 질무렵만 되면 사고를 터트리기를 일수였던 부하들은 처음에 오르칸에게 있어서는 경멸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저 오르칸이 바라톤에게 당하지 않았다면 어울리지 않았을 그런 인간들이었다. 말은 험악해도 자신을 위해 움직여 주었고 온갖 더러운일도 마다 하지 않고 해 주었던 그들 실상 내용이야 어찌 되었든 오르칸은 그들에게 약간의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만약 저들이 인질이 된다고 해도 저들에 의해 배신을 당한다 해도 저것으로 인연을 끝냈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확고하게 생각하고 있는 자신을 오르칸은 비웃는다.
'몇년을 도와 주었는데 감정 조차 없다니 정말 썩어 버린건가. 후후'
위화감이 없었다. 벌써 머리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자신이 무서웠고 우스웠다. 자신이 과연 도망간 곳에서 잘 해낼수 있을지 상상조차도 할수 없었다. 그래도 그는 걷는다. 그곳에 자신이 바라는것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이 곳인가."
"!!"
급히 벤하르트는 검자루를 쥐고 일어섰다. 눈 앞에는 터벅터벅 걸어 오면서 벤하르트쪽을 아니 그 뒤에 머물러 있는 배 쪽을 보는 남자가 있었다. 약간 추레한 옷차림의 그를 보면서도 벤하르트는 남자가 상당히 멋지다 라고 생각했다. 얼굴이 잘나서도 몸이 훌륭한것도 아니었다. 그의 눈이 남자 답다고 생각한 것이다.
"누구십니까?"
존대를 한것은 그가 적이 아니라는 순간적인 느낌 때문이었다. 물론 벤하르트보다 갑절은 어린사람이었지만 벤하르트에게 있어서 그는 초면이었다. 묘하게 그런 쪽으로는 올곶은 벤하르트였다.
"그러니까 자네가 벤하르트라는 그 청년인가?"
"????"
르와느는 본적이 있었지만 게이즈는 본적이 없었기에 벤하르트는 더욱 주의를 할수 밖에 없었다.
"자네가 그 레니아라는 여자와 트레이야라는 여자의 동료 맞지?"
벤하르트는 적의를 풀고 고개를 끄덕였다. 트레이야까지 알고 있다면 지난 밤 레니아와 트레이야가 만났던 사람일것이라 생각한 까닭이었다.
'항해사 라고 되는건가?'
게이즈는 성큼 성큼 배를 향해 오더니 이리 저리 만져 보기 시작했다. 배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다. 때로는 두드리기도 하고 발로 뛰어 보기도 하고 어디서 망치를 찾았는지 망치로 두드려 보기도 했다.
"이정도면 그럭저럭 쓸만하군. 자네가 만들었나?"
"그렇습니다만,"
"어지간한 목수보다 훨씬 낫군. 기본이 되어 있어. 잘 부탁하네. 내 이름은 게이즈. 오르칸과 오르킨의 이웃뻘되는 아저씨라네."
게이즈는 손을 건넸다. 작은 배였지만 생각보다 벤하르트의 배가 잘 만들어져 있었던 까닭이었다. 그보다 원래 게이즈가 몰았던 배는 벤하르트가 만들었던 정도의 크기였던 지라 더 마음에 든것도 요인중 하나였다.
"아 네."
'이사람이 게이즈 라는 사람이었구나. 항해사인줄 알았군.'
벤하르트는 자신이 오해를 했다고 생각하면서 게이즈와 악수를 했다.
"그리고 이 배의 사공을 맡기로 했다네. 아무쪼록 잘 부탁하지."
"....."
섵부르게 생각하는것을 그만두자고 벤하르트는 되뇌었다.
예상외로 바라톤은 벤하르트가 있는곳을 건드리지 않았다. 적어도 한번 벤하르트를 습격했던 카라신은 나타날줄 알았건만 그뒤로 밤이 될때까지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와 이제 형과 있을수 있는거야? 하지만 여기를 떠나는건 별로 안좋은데,"
"참아. 여기를 떠나지 않으면 영원히 우리는 같이 있을수 없으니까,"
"그런데,"
르와느는 초조함과 불안함 난처함이 섞인 표정으로 말을 열었다.
"아직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는데 사실 바라톤은 오르칸 말처럼 별로 사악하지 않다던가. 아니 오르칸 네말을 안믿는다는게 아니라 실제로 그가 우리에게 한것은 아무것도 없잖아요."
자신의 고향에서 한번도 벗어난 적이 없었던 르와느였다. 갓난 아기 때부터 살아왔던 곳을 오르칸의 말 하나 때문에 떠나게 될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고 그만큼 지금의 일은 갑작스러웠던 것이다. 아직도 꿈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그녀는 혼란해 하고 있었다. 이때까지 아무런 이상 없이 잘 지내왔던 그녀였기에 그런 생각은 더했다. 생각해보면 게이즈와 르와느는 오르칸의 말만 빼면 직접적으로 바라톤에게 타격을 입은게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의혹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할수 있었다. 오히려 냉정한 게이즈가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르와느 마음 잡아 먹어. 그때 그 말을 했던건 나도 아니고 에마스나 오르칸 오르킨도 아니야. 다름 아닌 너라고, 오르칸은 거짓말을 한게 없어. 정말 우리는 어쩔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된거라고, 그 말을 잊지 말자. 그곳에 가서도 그곳이 고향이 될수 있도록 노력을 하지. 저 아이들을 포기하지 말자. 응?"
"아 알았어요. 미안해요. 정말."
"아니 전부 이해해. 나야말로 이렇게 몰아 세워서 미안해."
게이즈가 르와느를 꼭 껴안고 천천히 한명씩 배를 타기 시작했다. 하늘은 맑았다. 그야말로 별천지나 다름 없었다. 반짝이는 별이 바닷가에도 빛으로 반짝일 정도로 그 광경은 아름다웠다.
벤하르트와 르와느 게이즈를 제외하고는 전부 배를 타는게 처음이었다. 바람을 타고 살같이 나아가는 배를 탄다는 것은 그야말로 설레는 일이었다. 그 중에서 레니아는 눈을 지긋히 뜨고 아무렇지 않은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어 레니아 굉장하지 않아?"
"뭐. 신나는 편이네."
가볍게 이야기 하는 말에는 흔들림이 섞여 있었다.
"너.. 설마?"
"뭐?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거야?"
레니아는 벤하르트를 노려 보았다. 그 이상 이야기 했다가는 용서 안하겠다는 듯한 결의의 눈빛에 벤하르트는 입을 다물었다. 심증이 가던 증거를 잡던 상관 없이 그가 그 말을 입밖에 낼 일은 아마 평생 가도 없을 것이었다. 별이 반짝이고 있다고 해도 기본은 어두운 바다 였다. 슬슬 빈트닌도 보이지 않게 되자 게이즈는 조금 속력을 낮추기 시작했다.
"이왕에 밤에 바다를 나왔다면 아래를 한번 보는것도 나쁘지 않겠지."
벤하르트와 더불어 배에 탄 일행들은 배의 아랫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검은 바다. 하지만 술렁이고 있다는것은 분명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거기에 끝도 보이지 않을것만 같은 깊음. 그것은 말로 형언할수 없을 정도의 신비스러움이었다. 단순하게 깊은것과 어두운것 둘이 섞여서 나오는 수준의 느낌이 아닌 두려움마저 일으킬정도로 요사스러운 기운을 느끼고 한동안 그들의 시선은 바닷가에 향해 있었다.
"그렇게 너무 오래 보고 있으면 혼을 빼어갈지도 모른다는 사공만의 농이 있지. 실제로 그렇게 구경하다 실수로 빠져 죽은 사람도 옛날에는 많았다 하지만,"
밤에 배를 낼 일은 흔하지 않았다. 빈트닌 같은 항구 마을에서도 뱃사공처럼 전문적으로 배를 모는 사람이 아니라면 밤바다를 보는것은 그렇게 쉬운일이 아니었다. 밤에는 위치를 구별할 표식도 보이지 않고 여러 모로 항해를 하는데 불편한 점이 많기 때문이었다. 수십년전 게이즈는 그런점이 아쉬웠다. 이런 절경을 못보고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젊은 날에는 어찌나 아깝게 느껴졌는지 몰랐다.
"괜찮지? 뭐 내 생각에는 곧 이 느낌이 공포가 될것 같지만 말이지."
한참을 검은바다를 내려다 보던 레니아가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어제도 이상한 말을 하던것 같았는데,"
"그 전에 이 줄을 모두 받아 몸을 묶어 두게나. 내 추측이지만 바라톤이 우리를 못 알아챈건 아닐것 같군. '지금'이기 때문에 놓아준 것일뿐."
"서 설마. 아저씨."
"그래. '아넷테르타'가 일어나는 철이다. 요즘은."
게이즈의 말에 오르칸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 졌다. 그것은 절망 어린 표정이었다. 심지어는 어린 오르킨 마저 그 뜻을 아는지 얼굴을 창백하게 바꾸고 있었다.
"그렇게 겁먹을것 없다. 이이는 내가 아는한 빈트닌 최고의 사공이니까."
빈트닌을 떠나기전 그렇게 초조해 보였던 르와느는 아무렇지도 않은듯 그렇게 말했다.
"뭔데 그 '아넷테르타'가?"
벤하르트의 물음에 오르칸이 대답했다.
"로터스강중에서도 기이한 현상중 하나가 바로 아넷테르타야. 시기는 일정하지만 장소는 불확정하지 그 영역에 들어가게 되면 절대로 살아 돌아올수 없다고 전해지는 마의 영역이야. 빈트닌 뿐만 아니라 로터스강의 이곳 저곳에서 그런 현상은 목격 되곤 하는데 하필 그런 시기였을줄은. 아저씨 이런 나룻배로는 절대 통과 할수 없을거에요. 돌아가죠. 지금이라도 제가 돌아간다면.."
"나약한 소리 하지 마라! 네가 할 일은 오르킨과 즐겁게 사는것과 바라톤을 몰아내는일 뿐이야. 이미 물을 엎질렀다면 더는 뒤로 갈 생각 하지 마라. 또 그 과오를 돌이킬 생각이냐! 그렇게 못나게 구차하게 살아가고 싶나!"
호통과 파도가 한데 부딪힌다. 물 몇방울이 오르칸의 뺨을 적셔왔다.
"너는 겁쟁이다. 동생을 잃는게 두려워 어둠과 타협하고 이번에는 그깟 '아넷테르타'라고 하는 재앙에 무릎 꿇을 생각이냐?"
"가죠 아저씨. 이성을 잃었습니다."
"죽을지도 모르는데 그쪽은 괜찮나?"
"에. 레니아 미안하다. 나름 괜찮은 생각이다 싶었는데 내 착각이었나봐."
벤하르트가 레니아에게 그렇게 사과하자 트레이야는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벤하르트 그럼 나는?"
"당연히 트레이야에게도지. 하지만 게이즈씨는 자신이 있어 보이니까, 죽을지도 몰라 라고 말했어도 아마 반정도는 살 확률이 있을거라 생각해."
"신의 목숨이 운에 달리게 되었군. 그 그래."
덤덤하게 이야기 하려는것 같은데 그 모습이 어딘지 묘하게 어긋나 있어 벤하르트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려다가 급히 입을 막았다. 여기서 웃었다가는 죽던 살던 좋은 꼴을 보기는 힘들것이라는 생각때문이었다. 점차적으로 파도는 거세어져 갔고 그렇게 맑았던 하늘은 먹구름이 가득했다.
"에... 읏."
파도가 한번 칠때마다 배가 한번 들렸다. 파도의 크기가 벤하르트가 만든 배의 크기보다 더 컷으니 잡아 먹힌다 해도 이상할것이 없는 상황. 벤하르트는 이런 꼴이 되기 30초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후하하하하하하하"
멀리서 웃음 소리가 들려 오고 있었다. 그 웃음의 정체를 가장 빨리 알아 차린것은 다름아닌 오르칸이었다.
"저녀석! 어떻게 여기를!"
거대한 배가 무서운 속도로 벤하르트를 향해 다가 오고 있었다. '아넷테르타'의 파도조차 무시할만큼 큰 배였기 때문에 그 위용은 더 했다. 곧 바라톤의 목소리가 들릴 정도 까지 그들은 근접했다.
"너희들 '아넷테르타'를 눈앞에 두고 어쩔 방도를 모르겠지? 이제 그런 배로는 돌아갈수 조차 없다. 고깃밥이 되던지 내 노예가 되던지 둘중 하나겠지. 우우 우에엑."
아무리 큰 배라도 바도에 의한 흔들림을 억제할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는 한차례 멀미를 하고는 다시 손가락으로 오르칸을 가리켰다.
"선택할 기회를 주마. 거기 있는 여자들과 남자를 전부 바친다면 이제껏 있었던 일들은 모두 없었던 일로 해주겠다. 너는 지금껏 해왔던 일들을 하면 되는거지. 아니 보상으로 1년에 3번으로 줄여줄 생각도 있다. 어떠냐 오르칸 꽤나 매력적인 대답 아닌가? 동생이 물고기 밥이 되는것을 보고 싶은건 아니겠지?"
"....."
"오르칸."
벤하르트가 한차례 오르칸의 이름을 부른다. 그리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끊임없이 게이즈의 시선이 느껴졌다. 굳이 그쪽을 보지 않아도 충분히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아넷테르타'는 아직 시작도 안했고 시작도 하기전에 이미 전의를 상실할 만큼 그것은 공포스러웠다. 누군가와 싸우는것보다도 더욱 무서운 근원적인 공포가 그의 가슴에 느껴졌다. 동생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파도소리 하나마다 출렁임 하나마다 머릿속에 상기된다.
"으으.."
"이 나쁜놈아!"
오르칸의 망설임을 깬것은 목소리였다. 너무 안들어서 그런지 익숙하지 않은 큰 외침에 흐리멍텅해서 넘어가기 직전까지 왔던 오르칸의 머리가 확 깨이는 느낌이었다.
"우리 형을 괴롭히지 마! 너같은 녀석 때문에 형이 형이 저렇게 되어 버린 거잖아! 이 빌어먹을 돼지 놈아!"
"뭐 뭐라고!"
"말한번 잘했다. 아무래도 어머니의 피를 진정으로 이어 받은건 아무래도 오르킨 너같다. 들었지? 동생의 대답이다. 나도 한마디 해도 될까? 귀 후벼파고 잘 들어라 바라톤. 아니 이 왕돼지야. 언제고 너를 몰아 내기 위해 한번 빈트닌을 밟아 주마. 그때까지 목 잘 씻고 기다려라."
"'아넷테르타'를 건너겠다고 말하는거냐! 이 정신 나간녀.."
바라톤의 말은 끝까지 잇지 못했다. 순간 백색의 빛이 껌벅이면서 자신의 볼을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이쪽의 이야기는 이걸로 끝. 어딘가의 돼지씨는 더는 말을 꺼내지 마시길."
"돼지씨라. 나도 한번 말해볼까? 왠지 입이 근질거리는걸?"
트레이야는 살짝 중얼 거리면서 바라톤을 쳐다 보았다. 시뻘게진 얼굴을 보니 어지간히 화가난 모양이었다.
"오 벤이 왠일로 그런 이야기를."
레니아가 의외라는듯 말하자 벤하르트는 머리를 털면서 씁쓸하게 웃었다.
"헥. 나도 할수는 있다고 터무니 없는 악인에게는 인정 사정 봐줄 필요는 없잖아? 참고로 말하자면 오르칸에게도 할수 있어. 그때 실제로도 말하려 했었고,"
그 모습이 로터스 강의 재앙이라고 불리우는 '아넷테르타'에 들어간 모습 같지가 않았다.
"여튼 말한번 시원하게 잘했군. 그럼 진짜로 간다."
게이즈가 그렇게 말하고 노를 한번 젓자 그곳에 있는 모두는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하나의 소용돌이 처럼 느껴지는 곳으로 뛰어드는 듯한 느낌 지금까지의 일이 장난 이었다고 생각하며 벤하르트는 일순간 지금까지의 기억이 나열되는것을 느꼈다.
'주 주마등!?'
얼마만의 주마등인지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이미 벤하르트가 취할 행동은 하나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
비명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런 비명소리가 하나도 세어나가지 않도록 탐욕스럽게 검은 바다는 그들을 집어 삼키고 있었다.
===============================================
8천자라.. 꽤 많이 썼네요. 어떻게든 출항을 끝마치고 싶었기 때문에 열심히 써봤습니다. 부제를 결정하는건 언제나 조금 건성틱하긴 하지만 끝은 항상 고민을 하곤 합니다. 네..
Commen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