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23화-모방(5)
"거기서 왼쪽이다."
여자답기 않은 마른 목소리를 듣고 벤하르트는 벽을 치고 방향을 틀었다. 모방범은 그의 팔에 매달린 채였다. 정보를 가르쳐 주는건 둘째 치더라도 그녀의 쇠사슬을 풀어 줄수는 없었기 때문에 벤하르트가 그녀를 들고 가는 방법을 취하기로 했다. 다행히 인적이 드문 길이 있었기에 그들은 페이렌을 활보하고 있었다. 레니아도 뒤를 따르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히 생각한것보다는 속도가 더뎠다. 그녀의 표정은 어두웠다. 칙칙한 얼굴을 보고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기분이 나쁠지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벤하르트의 착각으로 그녀는 원래 부터 그런 표정으로 살아왔던 것이었다. 조금 더 어두워 졌다고 해도 별반 달라진것은 없을 정도로.
"여기서는 담배.."
"뭐?"
"기다려. 담배다."
그녀가 말하는 뜻을 알수 없어 약간 두리뭉실한 기분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그녀는 고개를 까딱였다.
"자 여기서 오른쪽. 잔향을 쫓는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그의 코에 얼얼한 담배의 냄새가 들어왔다."
그녀의 말을 따라 한참을 돌고 나서야 그들은 목적지에 도착할수 있었다. 그곳은 어둑하고 축축하며 퀘퀘한 냄새가 나는 공간이었다. 비유하자면 다락방과 비슷했는데 굳이 따지고 들자면 다락방은 아니었고 조그마한 층과 층사이의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밑으로 한줄기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여기서 부터는 조용히. 감상은 자유롭게. 이정도 시간이면 한시간정도 뒤에 나불대려나 너구리영감이니."
'너구리 영감?'
세어 나오는 빛을 향해 눈을 가져갔다. 그리고 그곳에는 벤하르트를 고용했던 중년의 남자가 있었다. 얼굴을 정확하게 본것은 아니었지만 분명 그와 일치하는 실루엣으로 확신할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특이한 신발 때문이었다. 번쩍이는 보석들이 박혀 있는 신발은 얼굴을 볼수 없었기에 만날때마다 눈에 띄는 물건이었다. 그 신발을 신고 앉아있는 여유로운 한명의 중년인은 분명 고용주밖에 없었다.
"우리를 여기 데리고 온 이유가 뭐야?"
"곧 시작된다. 녀석의 '일기'가. 잘 듣고 감상하도록 해."
"일기?"
벤하르트와 레니아는 같은 의문을 품으면서 기다렸다.
'저녀석과 이 고용주는 무슨 관계가 있는거지?'
얼마나 지났을까 고용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유롭고 완만한 걸음으로 그는 방석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샤구만이시여. 오늘 저의 죄를 밝히겠나이다."
"큭."
다소 크다 싶을 정도로 모방범은 웃음소리를 내어 벤하르트는 주의를 줬지만 다행히 고용주는 눈치채지 못했다.
"이제 3일 후면 드디어 그들을 얻게 됩니다. 둘다 저의 소중한 돈벌이가 될 자들이지요. 이런 기책을 가능하게 해주신 샤구만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중년의 남자는 절을 한번 했다.
"어떤 방법으로든 후회 하지 않는 방도가 되도록 해주신 샤구만님에게 오늘도 제물을 바치겠나이다."
고용주의 행동은 거진 반쯤 미친 사람과 같았다. 자신의 팔에서 피를 뽑아 내어 잿가루에 떨어 뜨리는데 신기하게도 그의 피는 닿기도 전에 승화해 사라져 버렸다.
"저는 당신을 위해 죄를 지었습니다. K의 모방범을 잡는다고 해도 둘은 저에게서 벗어나지 못할것이고, 잡지 못한다면 못하는데로 이용하도록 하는 악행이자 샤구만님의 선물은 잘 받아 들이도록 하겠습니다."
내용은 엉망진창이었지만 그 자신만을 놓고 봤을때 숭고함 마저 느껴진 그의 기도가 끝이 났다..
"내용은 별게 없군. 이건 저 영감이 말하는 죄의 고백이다. 저 영감은 언제나 자기 전에 자신이 벌인 일에 대해 샤구만인지 뭔지 하는 녀석에게 빌어내지. 제 딴에는 참회한다고 생각하고라도 있는건지 모르겠지만, 어쨋든 벌써 수일째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을걸? 오늘 이야기가 부실한 까닭은 그것 때문이겠지. 원래가 저런 녀석이다. 너희들은 처음부터 그에게 있어서 쓰고 단물을 빼고 버릴 도구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단 거지. 속고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은 했을지 몰라고 속고 있다고 생각은 하지 않았나 보지? 실력에 자신이라도 있었던 건가. 크큭.. 내가 가르쳐준것은 배반의 정보. 즉 너희들이 벌이고 있는 일의 뒷면을 말해준거다. 이 쇠사슬의 값으로는 딱이라고 생각하지?"
양발 양손을 구속하고 있는 쇠사슬을 벤하르트에게 들이 밀었다. 주위는 컴컴 했지만 이미 눈에 익은 벤하르트는 능숙하게 그녀의 양팔 양다리의 쇠사슬을 풀어주었다.
"좋아. 거래는 성립했지?"
비틀린 웃음. 그녀의 하체가 들리는것을 보았다 라고 생각하고 있을때 벤하르트는 벽 아래로 곤두박질 치고 있었다.
"음 뭐지?"
벽이 부서지고 한명의 인간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마치 고양이처럼 공중에서 자세를 바꿔 조용히 낙법으로 착지한 남자가 고용주의 눈에 띄였다.
"너는!"
벤하르트의 모습을 보고 그는 즉시 바닥을 내리 찍었다. 부하를 부르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벤하르트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것도 잊지 않았다.
"너!"
"아하하핫. 분명 거래는 끝이 났어. 이건 거래와는 별개로 이용한거다. 말했지? 인간은 어느 누구도 믿을수 없어. 본성은 악이라고, 그 영감에게 속고 나에게 속고 속고 속고 속는게 바로 인간이라는 거다. 그리고 이건 나를 묶어둔것에 대한 선물."
그녀는 손으로 원형의 무언가를 꺼내 벤하르트에게 던지려 했다.
"어?"
몸이 휘청였다. 무언가에 의해 밀쳐진 것이다. 레니아가 부리는 광탄의 마법이었다.
"이 계집이!"
레니아에 의해 밀려 그녀는 벤하르트 처럼 바닥으로 떨어졌다.
"너는 헤일프!"
모방범을 보고 고용주는 놀라며 말했다.
"아아 오랜만이군. 영감. 서서히 말려 죽이려고 했는데 역시 참을수가 없으니까, 여기서 죽어줘."
손에 든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다.
"벤 도망쳐!"
"쳇."
굉음과 함께 방은 순식간에 엉망이 되었다. 그녀가 들고 있던 것은 공격마법을 한없이 응축 시켜 놓은 하나의 소형 폭탄이었다. 잔연기와 함께 폭발의 반동이 전해졌다. 그리고 동시에 맞붙는 두 인영. 벤하르트와 헤일프는 서로의 검과 검을 맞대었다. 검명이 저릿하고 울린다. 파편에 의해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얼굴에도 수여개의 상처를 입고 있을 정도였지만 둘은 정신없이 검을 교차 시켰다.
"비켜. 그 영감을 죽이게."
"....."
벤하르트는 비키지 않았다. 침묵을 하며 그는 검을 들어 자세를 취했다.
"미쳤군. 자신을 속이려 한녀석을 구하려 하는건가? 토 나올것 같군. 위선자 녀석이!"
그녀는 혀로 자신의 소도를 핥았다. 그 행동을 끝마치자 마자 미친듯이 그녀는 검을 휘둘렀다. 전보다 힘이 강해졌다거나 빨라진것은 없었지만 벤하르트는 그녀와 제대로 싸워 낼수 없었다. 봐주고 있다던가 하는건 아니었다. 단순하게 그녀의 움직임이 좋아 졌을뿐. 자신과 동급의 실력과 싸울때와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과 싸우는 것은 달랐다. 생각의 전환. 즉 그녀는 벤하르트가 자신보다 한수 위라고 인정한 것이다.
"읏."
벤하르트는 가볍게 팔에 상처를 입었다.
"너희들 뭐하는것들이냐!"
바로 남자들은 공격을 하면서 자리를 잡았다.
"괜찮으십니까 두목?"
"나는 괜찮으니 저녀석들을 잡아라. 남자는 건드리지 않아도 좋다. 하지만 여자는 반드시 죽여라."
검은 양복의 남자들이 벤하르트와 헤일프에게 쇄도했다.
"어이 거기 용병. 이 쪽이 잘못한건 시인하도록 하지. 하지만 들킨이상 고칠 의향도 없는건 아니야. 지금이라도 저 여자를 잡으면 두배의 보상금과 함께 이전의 일들도 없었던 것으로 해 주겠네. 꽤 괜찮은 일거리지? 어차피 저 년도 자네를 배신한셈이니 이왕이면 더 득을 보는 곳에 따르면 좋지 않겠나? 내 샤구만님에게 맹세코 자네에게는 나쁜일을 하지 않겠네."
목에 검이 드리우리 직전의 상황에서도 그의 말투는 침착했다. 이 혼란이야 말로 그에게는 교섭하기 더할나위 없는 상황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제안때문에 나는 건드리지 말라고 한건가?'
"아. 그렇습니까?"
방긋 웃는 얼굴을 보인다.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철저한 속임의 미소. 그 미소에 레니아를 포함한 그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그가 고용주의 말을 듣는것으로 생각했다.
"아하하하. 좋다. 전부 덤벼라!"
미친듯이 검을 휘두르는 그녀의 곁에 섵부르게 양복의 남자들은 접근하지 못하고 있을때 둔탁한 소리와 함께 한명이 쓰러져 내렸다.
"읏!"
쓰러진것은 검은 양복의 남자였다.
"어이 고용주. 누구를 걸던 한번 신용을 잃은 녀석에게 다시 붙는 짓을 하고 싶지는 않아. 내가 당신을 구해준건 목숨만이다. 그 이후의 일은 알고 싶지 않아. 나는 당신 편을 들게 아니라 어느쪽 편도 들고 싶지 않았던것 뿐이다. 요컨대 내 마음대로라는 이야기로 당신의 이야기는 거절하도록 하지."
"아 그런가. 그것도 좋겠지. 잡아라."
벤하르트는 헤일프를 비롯해서 검은 양복의 남자들과도 싸움을 벌였다. 어쩔때는 헤일프를 돕고 어쩔때는 고용주를 도우면서 힘의 균형을 맞추고 있었다.
"착한척 위선자인줄 알았더니 더럽기 그지 없는 놈이었군."
소도와 벤하르트의 검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맞아 위선자는 원래 더럽거든. 그리고 추가로 말하자면 배반을 한것에는 별로 화가나지 않았다. 다만 나의 무신경함에 실망했을뿐. 너는 원래 그런녀석일것 같았는데도 한순간이나마 방심을 한게 너무도 한심스러웠다. 그것외에 느낀건 없다."
"뭘 한가한 소릴 하고 있는거야 벤!"
레니아의 말에 고개를 틀어 공격을 피하고 그는 다리를 걸어 손을 휘둘렀다. 고용주의 수하는 공중에서 두바퀴 가량 돌더니 등부터 바닥에 떨어져 꿈틀 거렸다. 인에게서 배운 무술기중 하나였다.
레니아의 말대로 상황은 안좋았다. 폭음에 의해 페이렌의 위병이 모이기 시작한 것이다.
"두목. 무슨일입니까?"
"라가르타인가? 잘 왔다. 저기 저 둘이 이곳으로 쳐들어 왔다. 처분해라."
이런 엉망인 상황에서도 냉정함이 묻어나오는
저번에는 본적이 없었던 거구의 남자가 나타났다. 키는 2딜을 넘었고 몸으로 누르기만해도 레니아같은 여자는 압사당할것만 같은 체구의 사나이였다. 그가 움직이는 것을 본것 만으로도 벤하르트는 그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는것을 알수 있었다. 그의몸에서 직접적으로 솟아 나는 투기를 느낀것이다.
"라가르타라니. 꽤나 빨리도 도착했나. 영감 목숨 부지한줄 알라구."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뒤도 돌아 보지 않고 건물에서 뛰어내렸다.
"벤!"
레니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제야 벤하르트는 헤일프가 두고 뛰어내린 폭탄을 발견하고 뛰었다. 폭발의 여파를 타고 벤하르트는 옆 건물쪽으로 이동하면서 한손으로는 쇠사슬을 레니아에게 던졌다. 레니아는 곧장 사슬을 받아 들었고 벤하르트는 그것을 잡아 당겨 레니아를 끌어 낸후 둘은 자리를 벗어났다.
"두목 쫓을까요?"
"아니 됐다. 네가 자리를 비우면 헤일프가 나를 칠지도 모르는 일이니.. 그녀석이 아직도 살아있다니.."
그는 말을 멈추고 라가르타라 부른 남자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노려보았다.
"두목?"
"됐다. 류슈반!"
"예? 예..!"
"뒷처리를 맡기겠다."
"아 알겠습니다."
벤하르트를 끌여들인것이 자신이었기에 분명 벌이 내려질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부들부들 떨리는 몸으로 그에게서 명령을 받아 들었다.
"헤일프와 벤하르트라."
언제부터인지 지어 보지 못했던 씁쓸한 표정이 그의 얼굴에 들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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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참대전 완료.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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