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40화-고야마(古夜魔)(2)
"근데 언니 오빠는 어디로 가는거야?"
"헤이로카."
"헤이로카라고? 투사의 성지에 가는거냐?"
"그렇습니다만,"
벤하르트는 베라스키의 말에 대답했다.
"벤렌 잠시 이녀석과 이야기를 하고 있어라."
벤렌은 꽤나 효심이 깊어서 어머니가 하는 말을 어긴적이 없었다. 반쯤은 무서워 하기도 했지만 그 이상으로 어머니에 대해 존경을 하고 있었기에 그녀는 레니아에게 붙어 준비해뒀던 여러가지를 묻기 시작했다.
"그런데 너는 분명히 인간인데 어째서 마계의 냄새를 풍기고 있는거냐? 이상하구나."
"마계에 갔다 왔으니 그런것이겠지요."
"마계에 갔다 왔다고? 인간 주제에 마계에 발을 데고도 살았다는 거냐?"
항상 이런식으로 그녀는 은연중에 무시하는 말을 해서 그는 그녀와 이야기 하는것이 별로 즐겁지 않았다.
"언제적 과거를 생각하시고 계시는 지는 몰라도, 요즘은 인간들도 마계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인간 치고는 꽤나 강하던데, 무슨 이유라도 있는거냐?"
그녀의 말에 그는 마치 취조를 당하고 있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알것 없잖습니까?"
"입만 살았구나. 기껏해야 몇년 살지도 못할 애송이 녀석이. 딴에는 은혜를 갚으려고 노력하는 건데,"
"그러니까, 이걸로 끝내자구요. 뭣때문에 그렇게 집착하시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답례는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말이야 말로 가장 믿을수 없는 것들이야."
말을 끝내고 그녀는 졸졸 거리는 걸음으로 벤렌에게 빠른 속도로 다가갔다.
호라반에서 페펜 도시 까지 가는 길은 암석길이었다. 10살 남짓한 소녀가 걷기에는 썩 좋은 길이 아니었는데도 벤렌은 익숙한듯 뛰어나닐 정도의 여유를 보이고 있었다. 호라반에서 페펜도시까지는 그렇게 멀지 않았기 때문에 하루만 제대로 걸으면 도착할수 있었다. 왠지 불안한 여행길도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지는듯 했다.
"어?"
괜히 혼자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하늘을 보는데 슬 하게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비가 오려나? 레니아 비가 올지도 모르니까 준비해둬."
"비라니."
벤하르트는 언제나 여행을 할때 비가 안올때를 골라서 여행을 했기 때문에 그들은 어지간한 상황이 아니면 비를 겪지 않았다. 베라스키와 어울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서두른 까닭에 사전에 정보를 모으지 못한것이다.
"아니 이건 비가 아니다."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베라스키가 말했다. 검은 먹구름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듯 했다.
"무서워."
단순하게 먹구름 때문에 무서운것만은 아니었다. 은연중에 그녀는 마인이나 요마 같은 인간이 아닌 부류를 느낄수 있었기 때문에 현상에 따라 두려움을 느끼게 된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겁니까?"
곧 주변을 자욱하게 덮은 먹구름에 벤하르트도 그저 단순한 비구름이 아니라는것을 눈치챌수 있었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릴정도로 살떨릴 정도의 살기에 그는 무의식중에 검에 손을 가져가고 있었다.
"벤 뭐야."
"그러니까, 이럴것 같았다고,"
"흡."
베라스키는 한손으로 벤렌을 가볍게 기절시켰다. 그 모양을 질렸다는듯 쳐다보던 벤하르트는 그녀의 의외의 행동에 놀랐다. 그녀는 벤렌의 주위에 무엇인가를 그리고 작게 중얼거렸다.
"결계네. 아니 그게 중요한게 아니지."
레니아는 해설을 하다 말고 공중을 바라보았다.
백은의 옷을 입고 한 남자가 공중에서 날아왔다. 노란색과 은빛을 섞어 놓은듯한 머리카락은 상아색처럼 보이기도 했고 은색으로 보이기도 했는데 그 색이 꼭 달의 색깔처럼 느껴졌다. 얼굴은 백옥같았고 옷은 새하얘서 무슨 신선이라도 되어 보이는듯한 상(狀)이었다. 전혀 오랜 밤의 마귀라는 이름을 가진 자 답지 않은 생김새여서 벤하르트는 고야마가 아닌 다른 존재이기를 진심으로 기도했다.
"묘괴 현묘요매(炫猫妖魅) 오랜만이로군."
"고야마 달라진것이 없구나."
'역시 저녀석이 고야마라는 녀석이었던 건가!'
베라스키의 다분히 고의적인 답례의 명분이 이 상황을 위함이라는것을 알았지만 벤하르트는 그녀의 손에 놀아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어떻게 봐도 놀아날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베라스키 하나만 있다면 모를까 바로 곁에는 그녀의 딸인 벤렌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벤하르트의 복잡한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야마와 베라스키는 대화를 시작했다.
"봉인은 어떻게 푼거냐?"
"어떻게 라고 할것이 있을까. 네녀석과 로엔이 걸어놓은 봉인이 조금 약해졌기에 뚫고 나왔을 뿐이다."
'로엔!!?'
예상치도 못했던 인물의 이름이 거론되자 그는 깜짝 놀랐다.
"벤."
"쉿."
레니아에게 말을 하지 않게 해놨지만 자기 자신도 엄청나게 놀라고 있었다.
'로엔이라니 그 로엔과 동일 인물인가? 아니 봉인이 느슨해졌다는건..'
"그런데 여기까지 친히 나선 이유는 무엇이냐?"
"정말 몰라서 묻는 것이냐? 아니면 나와 농이라도 해보고 싶다는 것이냐? 어느쪽이던 걸려 주도록 하마. 네가 가진 머리카락을 가지러 왔다. 로엔의 결계는 아직도 내 살에 작용 되고 있다. 그것을 막을수 있는것은 반쪽 밖에 남지 않은 네녀석의 머리칼 뿐이다."
머리칼을 자른다는것은 말 그대로 머리카락을 자르는것이 아니었다. 목을 취해 상대의 힘을 취하겠다는 의도 였는데, 베라스키의 힘은 머리카락에서 나오는 것이었기 때문에 나온 말이었다.
"잘라주랴?"
"그런 수고까지 덜게 할수는 없지. 만검귀.(萬劍鬼)"
"예."
고야마가 서있는 먹구름에서 그림자가 튀어 나왔다. 남자 귀신의 형상을 한 요마가 한손에 손을 집어넣어 검을 뽑아 들어 고야마에게 건네 주었다. 그에 베라스키도 변형을 시작했다. 괴상한 노괴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고 그곳에는 아리따운 미녀가 싸움의 준비를 시작했다.
"벤."
"....."
막상 이지경까지 이르자 아무리 베라스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도와 주지 않을수가 없었다. 두개의 그림자가 맞붙었다. 희한하게도 고야마는 검을 들었음에도 그 검을 휘두르지 않고 한손으로만 싸웠다. 하지만 그 한손 만으로도 그는 베라스키를 압도 하고 있었다. 속도는 베라스키가 훨씬 더 빨랐지만 기본적인 능력에서 너무도 차이가 많이 났다.
"쳇. 레니아 여기 있어. 절대 나서지마. 나도 살짝만 건드릴거야."
"벤!"
검을 뽑아들고 그는 막무가내로 백색의 빛을 쏘아냈다.
"음? 저건 뭐냐?"
그때까지도 벤하르트의 존재를 눈치도 못채고 있었던 그는 여유롭게 베라스키의 공격을 막으면서 다른손에 든 검을 휘둘렀다.
"피해라!"
베라스키의 다급한듯한 말은 처음 들었기 때문에 몸을 움찔 거리면서 그는 고야마에게서 물러섰다. 은색의 빛이 주위를 휘감는가 싶더니 수십갈래로 정신없이 퍼져 나갔다. 은빛 칼날은 벤하르트에게 수개의 상처를 내었는데 어느것하나 무시할수 있을 정도가 아니었다. 벤하르트가 다시 고야마를 보니 그의 손에 들려 있던 검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있었다.
"만검귀."
"옙."
그림자처럼 그의 곁을 돌면서 다시 귀신이 손에서 검을 뽑아내었다. 대장장이는 아니나 고검(古劍)을 모으는 취미가 있어 만개의 명검을 몸안에 넣고 다닌다는 귀신이 바로 만검귀 였는데 그가 가지고 있는검은 하나같이 모두 검 애호가라면 눈이 돌아갈정도의 명검들이었음에도 고야마의 일격을 버티지 못하고 사라져버렸다.
'아아 란찰의검이..'
아깝다고 느끼는것만 느껴도 단칼에 목이 날아갈지도 몰랐기에 그는 그런 낌새는 전혀 보이지 않고 고야마에게 검을 건네주었다. 그 잠시의 틈에 베라스키는 날렵한 움직임으로 벤하르트에게 도착했다.
"이번일은 꼭 답례 하도록 하겠다."
"필요 없거든요."
검을 바로 잡았지만 그는 턱 하니 다리에 힘이 풀렸다.
"하지만 도망치지 않고 도와주다니 네녀석은 미친것이냐?"
"쓸데 없는 소리 하지 마시지요. 제가 도우려 하는건 당신이 아니니까요. 벤렌이 죽게 두기 싫어서 도와 주는것 뿐입니다."
"끌끌 아무리 내 딸이 예쁘다고 하나 네 목숨보다 귀중할까. 고맙다고 일단 해두지."
베라스키가 그에게 고맙다고 한이유는 그녀의 함정이라는것을 알면서도 도와 주었다는 것에 있었다. 억지로 가고자 했다면 그녀가 그를 잡을수 있는 권한은 없었다. 이러니 저러니 하면서도 벤하르트는 남아준것이다.
"인간인가. 그런 미약한 생물에게 의지하다니 네녀석도 많이 타락했구나 묘매여."
"타락이라. 나를 이렇게 만든게 누구더냐! 밤귀신녀석이!"
둘 사이에 서있는것 만으로도 숨이 막혀 올 정도의 압박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베라스키는 고야마의 막대한 기를 넘어설수 없었다.
"봉인은 풀도록 하겠다."
"그렇게 둘것 같냐!"
다시 둘이 맞붙었다. 아래에서 벤하르트는 그들의 움직임을 보았다. 아까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한쪽팔과 싸우면서 베라스키는 다른 한손에 있는 검에게 빈틈을 내어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두 요마의 싸움에 벤하르트는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크윽."
곧 고야마의 손이 베라스키의 살을 잡아 뜯었다.
"베라스키!"
"흥 네까짓게 저녀석을 도울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하는거냐? 최후의 보루 치고는 시시하군."
'뭐?'
전광석화처럼 달려든 고야마의 손은 벤하르트의 배를 꿰뚫을 기세로 달려들었지만 그의 일격은 벤하르트의 검에 막혔다. 공격을 막았음에도 몇딜이나 밀려 암석에 부딪혀 그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으아아아."
"벤!"
"....."
고야마의 팔에서는 피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어디에 정신을 팔고 있는거냐!"
잠시 멍하니 정신을 놓은 고야마의 어깨를 그녀가 할퀴어 냈다.
"찾았다."
나타났을때부터 단 한번의 미소도 짓지 않았던 고야마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고야마가 공격을 할때는 막대한 양의 기가 집중되기 때문에 검이 버티지를 못하는것이었고 그가 공격을 할때의 손은 어떠한 것보다도 단단했다. 그런 그의 손에 맞고도 벤하르트의 검은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고 그의 팔은 베여 있었다. 쓰러진 벤하르트의 앞에 놓여 있는 검을 들고 그는 조용히 미소지었다.
"승부는 났다 묘매여."
달려드는 베라키스를 향해 그는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다.
"음?"
검에서는 한차례 검풍이 일 뿐 그의 기가 전혀 실리지 않았다. 검풍 만으로도 암벽이 베여 떨어질 정도로 강력했지만 그가 원하는 공격은 아니었다.
"....."
"하압!"
벤하르트는 로엔에게 배웠던 급소를 가격하고 고야마에게서 검을 빼앗아 들려고 했다.
"인간주제에. 용왕에게 대드려느냐!"
고야마의 일격이 벤하르트에게 날아드려는 찰나에 그는 폭염에 휩쌓여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곳에는 성난 얼굴로 레니아가 다음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저런 녀석도 있었나. 음? 이 기운은 '신'이로군."
'이녀석 레니아가 신이라는걸 알고 있잖아.'
"레니아 나서지마."
"저녀석이 나서지 않았다면 네녀석은 이미 죽어 버렸을거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벤하르트의 몸은 몇가닥의 검상을 입어 피가 흘러 내렸다. 그 짧은 시간 사이에 수차례의 공격을 가한 것이다.
"고맙구나 고야마여. 자연스럽게 보답을 할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니 말이야."
베라스키가 나서며 말했다.
"베라스키."
그녀는 점차 변해가고 있었다. 전날처럼 점차적으로 아름다웠던 모습은 더할나위 없이 추한 노괴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네녀석 로엔과 맞닿은 적이 있었구나. 이 모습이 되어서야 그 내음을 기억해내다니, 나도 엄청나게 늙어버렸어. 아까 보답을 하겠다고 했었지? 그 보답을 해주마."
"설마 네녀석."
고야마는 베라스키를 벤하르트와 떨어트리기 위해서 공격하려 했지만 그녀는 여유롭게 그 공격을 피하면서 벤하르트에게 다가왔다.
"잠깐 뭘 하려고?"
"조금 짜릿 할게다. 벤렌을 부탁한다."
강렬한 충격이 몸안을 휘저어 놓는가 싶더니 그의 몸에 기운이 솟아났다. 카도스에서나 느껴볼수 있었던 느낌을 받으면서 그는 있는 힘껏 검을 휘둘렀다. 검은 허공을 가른듯 했으나 백옥같은 고야마의 얼굴에서는 한가닥의 피가 흘러내렸다.
"믿기지가 않는군. 자신의 머리카락을 고작해야 인간에게 줘 버리다니. 현묘요매 이것이 네 선택이냐!"
"베라스키. 베라스키씨!"
주위에는 미인도 노괴도 없었다. 벤하르트의 머리칼은 한치의 잡색깔도 들어가지 않은 칠흑의 색깔로 물들어 있었다.
"만검귀."
"예."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온 만검귀에게서 검을 받아들고 그는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인간 벤하르트와 대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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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판타지의 세계관은 퓨전 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은데
적당히 서양이랑 적당히 동양적으로 섞어 놓고 싶었습니다. 구상해놓은 소설들의 세계관은 다 하나로 묶어 놓을 생각인지라..(만약에 짓는다면,) 그렇다고 해도 벤하르트가 있는 세계라는건 아니지만요,,
그냥 전체적인 배경은 서양쪽에 가까우나.. 고야마나 베라스키(현묘요매)같은 경우가 섞인
마계쪽은 두개의 사상이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한문법이 간혹 튀어나오는 타이의 대모험 처럼요..
별로 궁금해 할것 같지는 않지만, 한문을 많이 쓰게 되니 혹시나 궁금하신 분이 계실까 하여 끄적여 봅니다.
그나저나 내일이 연참대전 끝이 사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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