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99화-싸움꾼(1)
"여기가 빈트닌인가?"
항구도시라고 불리우는 빈트닌답게 바닷가의 짠 냄새가 바람을 타고 그들의 코끝을 찔렀다. 라군델에 있어 항구는 적지 않았지만 도시에 까지 취급받는 항구는 그에서도 손꼽을 정도였다. 다른 국가와 많은 교류를 하고 상업적으로 중요한 거점이 되는 항구는 필연적으로 커지게 되어 도시가 되기 마련이었다. 빈트닌도 그런 도시중 하나였다.
"우와아. 저게 바다인가."
"음. 생각한것보다 꽤나 멋스러운걸."
트레이야는 몰라도 신인 레니아마저 바다를 처음보는듯한 말투에 벤하르트는 놀라움과 그녀에 대한 연민스럽게 생각되었다. 그렇게 왜 그녀가 엔쿠라스를 그렇게 가고 싶어 했는지 다른 신들이 왜 그렇게 가고 싶어 하는건지 왠지 그는 알수 있을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똑같은 삶 똑같은 일 똑같은 경치 수년 수십년 수백년이 아닌 수천년 얼마나 지루하고 무료할지 그로서는 상상할 길이 없었다.
"어쨋든 길리어스씨에게는 정말 고맙게 생각해야겠어. 그가 없었다면 아직도 우리는 힘들게 걷고 있어야 했을테니까."
"자 마을에도 도착했으니 우선적으로 해야 할것이 있잖아."
트레이야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기대에 찬 시선으로 좌우를 두리번 거렸다.
"그게 뭔데?"
"방이지 방. 몇일이나 바닥에서 잤다고 생각해? 10일이나. 푹신한 침대에 누워서 낮잠을 잔다. 그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그때는 몰랐었지."
"여관이라. 하긴 여행길도 아니고 도착을 했으면 역시 여관방을 구하는것 부터 시작해야 겠지. 어이 레니아. 뭐하고 있어?"
레니아는 마치 끝이 없을것만 같은 바닷물의 아래를 바라 보면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어 벤. 그래 여관을 구하러 갈거라고?"
"빨리 가자."
"구하고 와. 나는 바닷가를 구경하고 있을게."
"그리고 좋냐. 알았다. 그럼 구하고 올게."
"헛소리. 좋은건 아니야. 그저 처음봐서 신기할 뿐이지."
레니아가 정정하자 벤하르트는 느긋하게 말했다.
"예 예. 트레이야 그럼 저쪽부터 가볼까?"
벤하르트와 트레이야가 여관을 찾고 있을때 레니아는 수평선을 바라 보고 있었다. 지식으로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전용 사서에 있는 책들을 전부 섭렵한 그녀는 세상의 많은것을 지식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식과 실제는 분명히 다른것이었다. 말로는 표현할수도 없을 만큼의 시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다한번 보지 못한 레니아는 자신이 살짝 한심하게 생각되었다. 그냥 멍하니 보고 있을 뿐인데도 신기했다. 바다의 끝과 하늘이 만나는 곳 하지만 지도를 봤을때 저곳을 건너면 대륙 있다는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별이 둥글다는 것도. 알고 있어도 왠지 모르게 그녀는 가슴이 뛰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동안 바닷가를 감상하고 나니 다시 무료해진 그녀는 주위를 둘러 보았다. 한 어린아이가 갈매기에게 먹이를 주는 모습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얘."
"?? 왜요?"
"그건 어디서 놨니?"
"저기 가면 살수 있어요."
소년이 가리킨 곳으로 가자 추레한 차림으로 돗자리를 펴고 앉아 있는 남자가 바닥에 먹이를 늘여 놓고 앉아있었다. 레니아가 자신쪽으로 접근해 오는것을 본 남자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는 말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그 먹이 말인데, 얼마지?"
"한 봉지에 5크닐 입니다."
"비싸!"
"비싸긴 해도 헤. 무료한 시간을 떼우는데에는 딱일겁니다. 뭐 싫으시다면 안사면 그만이지요."
"악질이네. 그럼 하나만,"
새의 모이 한봉지를 받아 들고 레니아는 소년이 모이를 주고 있는곳으로 걸어갔다. 소년이 갈매기들을 잘 모아놓은 까닭이었다. 갈매기 떼에 레니아는 먹이를 한 웅큼 쥐고 던졌다. 산탄으로 날아가는 먹이에 맞고 갈매기들은 꽥 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 올랐다.
"응? 누나 뭐하는거야?"
한껏 잘 먹이로 구슬리고 있던 소년은 갈매기들을 쫓아버린 레니아를 불만스러운 눈으로 바라 보았다.
"하여간 이래서 초심자는 안된다니까."
"하아?"
그 말에 레니아는 발끈 해서 먹이 하나를 소년의 눈앞에 들이대면서 말했다.
"그으래? 그럼 누가 더 갈매기를 잘 모으나 내기라도 해볼래?"
"아? 제정신이야? 그런 실력으로는 무리라구. 그렇게 무작정 던지기만 해서 새가 모여 줄것 같아?"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지. 그럼 뭘 걸까?"
소년은 물끄러미 레니아를 한번 올려다 보고는 조심스레 말을 열었다.
"그럼 내가 이기면 누나의 머리카락을 조금만 잘라서 줘."
"어? 머리카락?"
"그래. 머리카락."
'별난 꼬맹이군. 머리카락이라..'
"뭐 좋아. 대신 내가 이기면 머리를 조아리고 빌어라. 졌습니다. 하고 말야."
"알았어."
레니아는 소년과 조금 거리를 두고 갈매기를 향해 먹이를 던졌다. 조금씩 갈매기들은 잘 받아 먹었지만 좀체 그녀에게는 많은 수의 갈매기가 모이지 않았다.
"쳇."
반면에 소년에게는 언제 그랬냐는듯 많은 수의 갈매기들이 그의 주위에 몰려 들었다. 조금씩 천천히 던지기도 하고 잘 던져서 먹기 좋게도 해 보았지만 레니아는 소년 만큼 갈매기가 모이지는 않았다.
'이렇게 당할수만은 없지. 음 될까?'
한때는 산의 신으로 군림해 있었던 그녀였다. 그녀는 만물 특히 동물에 관해서 노시엘트의 산에 한정하여 다루는것을 아주 잘했다. 이미 신이라기 보다 거의 인간에 가까운 그녀였지만 신이었을때의 그 느낌을 떠올려 손을 살짝 들었다. 작고 흰 그녀의 손가락 위에는 먹이 한알이 놓여 있었다. 한차례 새들이 레니아에게로 조용히 날아 들었다. 그녀의 손에서 하나의 먹이를 쪼더니 조금씩 그녀에게 새가 모여 들었다.
'무언가에게 숭배를 받는다는 것은 역시 나쁘지 않아. 그건 아직도 내가 신이기 때문일까?'
조금씩 레니아에게 갈매기들이 달라 붙었다. 그 모습에 소년은 잠시 넋이 나간듯 레니아를 쳐다보았다.
"제길."
"어때 졌지?"
소년은 바로 무릎을 꿇고 넙죽 엎드리면서 말했다.
"졌습니다."
"뭐 마지막은 조금 나름대로의 요행이 들어갔기 때문에, 왜 이걸 원하는지는 몰라도 왠지 재밌었으니 주마. 자."
레니아는 영검을 뽑아들고는 자신의 머리칼을 조금 잘라 소년에게 주었다. 소년은 삐질삐질 거리다가 레니아의 머리카락을 받아 들고는 퉁명스레 말했다.
"그렇게 새를 향해서 던져 주면 갈매기들은 잘못 먹는다구요."
"그래? 나름 잘 줬다고 생각했는데,"
"갈매기들은 먹이를 주면 자기 나름대로 낚아 채서 먹지만 가장 편안한것은 갈매기가 먹으러 왔을때 먹이가 거의 멈추어 있는 상태가 되는거애요. 이렇게."
"그렇군. 뭐 덕분에 즐거웠다. 꼬마야."
잠시나마 무료함을 떨쳐 낼수 있던 까닭에 레니아는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남은 먹이를 전부 주고 다시 바다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뭣들 하고 있는거야 정말.'
얼마나 지났을까. 아무리 도시라 해서 크고 여관을 찾기가 힘들다고 해도 점점 시간이 흐르자 레니아는 점점 초조해져 갔다. 약속 장소는 분명 여기인지라 자신은 여전히 항구 끝에서 묶여 있어야 했고 벤하르트와 레니아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것을 생각하니 배알이 틀렸다. 처음에는 드문드문 보였던 사람들도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오면 혼쭐을 내줘야지."
"어이 아가씨? 이런곳에서 혼자 뭐하시나?"
"응?"
레니아가 뒤를 돌아 보자 목소리와 전혀 다르지 않게 생긴 한 무리가 레니아를 향해 다가 오고 있었다. 자신에게 말한 목소리만 듣고도 레니아는 그들이 호의적으로 자신에게 접근하지 않았음을 알수 있었다.
"히야 가까히서 보니 더 끝내주는데? 그녀석이 말한 대로야."
"좋아 좋아. 이봐 우리랑 놀지 않을래? 아까부터 보아하니 상당히 지루한 모양이던데 말이지."
"꺼져. 너희 같은 녀석들에게 낭비할 시간은 없어. 차라리 지루한게 낫지."
"뭐야? 이녀석이 우리가 누군줄 알고!"
레니아는 그 말에 피식 하고 웃음을 내었다.
"너희가 누군지 내가 알게 뭐야? 내가 이 도시 토박이도 아닐뿐더러 토박이라 할지라도 너희들의 이름을 외우는 일은 없을텐데 말이지. 그리고 가뜩이나 화가 나고 있는데 자꾸 내 신경을 거슬리게 하지 말아 줬으면 해."
"하하. 들었냐? 신경을 거슬리게 하지 말아 줬으면 해. 란다."
한껏 빈정대면서 중앙에 있던 남자가 말했다.
"상황이 안보이냐? 주위에 몇명이 있는지 안보이는 모양인데,"
레니아는 품안에 약이라도 있다면 금방이라도 확 뿌려 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면서 말했다.
"귀찮다. 네녀석들."
약해졌어도 레니아의 신체는 일반적인 성인보다는 확실히 뛰어난 편이었다. 순식간에 달려서 한 건달을 때려 눕히고는 말했다.
"빨리 사라져. 이꼴나기 싫다면 말야."
"보기보다는 꽤 하지만, 우린 전문 싸움꾼이어서 말이지. 안됬지만 그정도로는 어림도 없어."
"응?"
뒤에서 날아온 기척을 느꼈을때는 이미 늦어서 레니아는 곧바로 정신을 잃었다.
"으아 큰일났다. 레니아 녀석 뭐라고 할지. 트레이야라도 있었다면 상대적으로는 덜들을텐데 에휴."
귀찮다고 침대 위에서 늘어져 손을 흔드는 트레이야를 생각하며 벤하르트는 부지런히 발을 놀렸다. 에코트에서의 축제 동랑제 때문에 왔던 방문객들이 배를 타고 돌아가기 위해 빈트닌의 여관에 방을 예약하고 잡아 두어서 벤하르트와 트레이야는 빈방을 찾아 다니는데에 상당한 시간을 쏟아야 했던 것이다.
"레니.. 어? 어디갔지?"
분명 레니아가 있어야 할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너무 썰렁해서 레니아의 이름을 부르려한 벤하르트가 오히려 뻘쭘해질 정도였다.
"어디 잠시 놀러 갔나. 하긴 적은 시간도 아니었으니까,"
레니아가 앉아 있었던 의자에 앉아 벤하르트는 그녀를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10분 20분 시간이 지났지만 그녀가 돌아오지 않자 슬슬 벤하르트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자리를 비웠다고 해도 내가 돌아올것이라는것을 아는 레니아가 이렇게 오래 자리를 비울리가 없는데, 숨어서 놀리고 있는건가? 아니면..'
안좋은 일쪽으로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그렇게 노력하면 할수록 더더욱 불안함은 커져만 갔다. 하지만 레니아를 찾아 보려 해도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거니와 정말 어딘가 놀러 갔을 가능성도 배재할수 없는 까닭에 벤하르트는 초조해했다. 그때 한 기척에 벤하르트는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곳에서 걸어오는것은 한 소년이었다.
"저기. 혹시 이런 머리를 가진 누나를 찾는건가요?"
소년의 팔에 놓여 있는것은 한눈에 봐도 단번에 알아차릴수 있는 레니아의 머리카락이었다.
"그래. 그런데 뭐 아는것 있니?"
"저기. 그 누나가 위험해요. 빨리 가야만 하는데,"
소년은 벤하르트의 생김새를 보았다. 특별할것도 없는 차림새 긴 장검이 눈에 들어왔지만 본인은 그다지 강해보이지 않았다. 그는 벤하르트를 데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빨리 말해. 레니아가 어디에 있는지 말야."
"그녀는 지금 '올스레이'일당이 데리고 갔어요."
"올스레이?"
"이 마을의 싸움 집단인데, 흔히 말하는 싸움꾼이에요. 시장도 마음대로 간섭하지 못할정도로 난폭한 무리죠. 눈치만 잘 보면 마을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지만 외부에서 온 사람들은 경우가 달라서."
"빨리 그곳이 어딘지 말해!"
올스레이라는 집단에 대해서는 많이 듣지 않아도 충분히 예상할수 있었다. 노시엘트의 산 아래 레니아 마을에서도 똑같은 무리가.. 지금은 일방정이었지만 친구가 되어버린 디논도 그와 같았다.
"저 제가 알려 주었다고는 말하지 말아주세요."
"물론이지. 어딘지만 알려주면 꼭 따라 오지 않아도 되. 근처 까지만이라도 데려다 주었으면 좋겠다."
"네."
그렇게 말하고 벤하르트는 소년을 따라 올스레이라는 집단이 있는곳으로 발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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