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36화-밀항(5)
바람을 타고 달리는 밤바다. 이미 며칠 동안이나 머물렀던 배지만 밤에 나와 바다를 보는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지난날 배를 탔을때는 숨이 막힐정도의 해난(海難)에 빠져 밤바다를 감상할 틈조차 없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바닥의 깊이가 보이지 않게 검고 깊음을 드러내는 바다를 보면서 벤하르트와 레니아는 갑판 위를 거닐고 있었다. 벤하르트는 배의 생김새를 자세하게 보면서 만드는 사람 답게 배를 관찰하고 있었고 레니아는 두말할것도 없이 밤바다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디노사인트가 이런곳에 나온 걸까? 가드바드씨의 말에 의하면 원래는 이곳에서 나타나지 않는 모양이던데,"
"글세."
"혹시 말야. 이전에 우리가 관여했던 일과 관련 있는것은 아니겠지?"
"설마. 벌써 우리가 만난 디노사인트만 세번째야. 두번째 까지는 그렇다 치고 이미 몇달이나 지난 이야긴데 이제와서 관련이 있을라고,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다면 세번이나 만났다는 사실에 의문을 가져야 하잖아. 그것보다 설마하니 벤. 여유롭게 기절만 시켜서 쫓아낸것도 그이유에서는 아니겠지?"
레니아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었기에 벤하르트는 순순히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이유 맞아."
디노사인트들은 머리가 좋았다. 보통의 마수들과는 달리 영악하다고 말할수 있을 정도로 머리가 좋은 그들이 처음 벤하르트의 실력을 보고 달아나지 않을리 없었다. 그만큼의 격차를 보여 줬음에도 한번 더 자신을 공격했던 것은 지난 날 동료를 헤쳤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는 굳이 기절을 고집한 것이다.
"뭐 그때도 너는 무르기 그지 없었지만, 이런 위험했던 상황에서 조차 어느쪽편을 드는건지 알수가 없다니까,"
'너무 위태위태하다니까.'
격이 다를 정도의 차이가 있다면 무슨 일을 해도 용서받지 못할 지언정 구속당할일은 없었다. 설사 그것이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었다고 해도 결과만 좋다면 해결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더 강할때도 이렇게 행동할것 같단 말이지.'
"하아."
한숨을 쉬면서 레니아는 배의 대에 앉았다. 새삼스레 그런 모습을 보고 레니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가슴을 두근 거렸다. 그런가 하면 뒤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선원의 낌새도 확인하고 있었다. 레니아의 모습을 보고 선원도 잠시 넋을 잃고 있었는데 뒤로 끌려가듯이 당겨졌다.
'가드바드씨?'
가드바드는 선원에게 무어라 말을 하고는 그들에게 걸어왔다.
"어이."
"괜찮겠습니까? 저희와 이렇게 붙어도?"
"괜찮아. 애들한테는 담판을 짓는다는 명목으로 나온거니까, 하지만 목소리는 작게 말해라. 본의 아니게 평판은 좋아 지고 있는 모양이니까,"
"조금 사기 아니야?"
"그렇다 해도 네녀석한테 그런 말을 들을 이유는 전혀 없다."
레니아의 도발에도 전혀 흔들림 없이 가드바드가 대답했다.
"일단은 고맙다고 말해두고 싶군. 잘못하면 신참이 당할뻔 했으니까, 누브를 대신해서 이렇게 인사를 하도록 하겠다."
선뜻 고개를 숙여 그가 인사했다.
"아닙니다. 태워 주신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강하게 나가라. 지금의 너는 완벽하게 악인의 흉내를 내어야 해. 애들이 보고 있거든."
"정말 뭐라고 말하고 싶은건 아닌데, 이건 정말 사기라고 해도 좋을정도의 연기잖아."
"다시 한번 말해두지. 그런 태도는 너희에서 온거라고, 이 인사는 원래 하려고 했던거다. 애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란 말이다. 이래서 여자들이란, 실리를 따지려 드니까 안되는거야."
"크윽. 누가 실리를 따진다는거야!"
"아서 레니아. 이번에는 분명 잘못했잖아."
"쳇."
레니아는 딴청을 부리면서 바다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렇게 되었으니 편하게 지내도록 하라고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나는 이 배의 선장이다. 공교롭게도 어느정도의 위엄을 보여주지 않으면 곤란해. 저 여자의 말처럼 사기라고 생각해도 좋지만, 나는 누구에게나 주장했을것이다."
"그렇겠지요. 괜찮습니다. 생각해보면 저희들을 태워 준것 부터가 하나의 도박이었을 테니까요. 손해 밖에 존재 하지 않는 도박이었지만,"
"그럴리가. 너라는 남자를 만난것은 전혀 손해가 아니었어. 좋게만 끝낼수 있다면 더더욱 좋겠지."
움찔 거리면서 벤하르트는 살짝 거리를 두었다.
"너! 쳇. 도대체가."
"농담입니다. 그래서 위엄이라는 것은."
"담판을 지었다라고 말하고 싶은거야. 그래도 너희들의 대우는 존경해주고 싶다.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다른 쪽으로 제한을 두었겠지만 이번에는 너희들로부터 몇가지를 받는 방법으로 대가를 바꿔두고 싶다."
"그것은?"
"설마하니 오늘 같은 일이 일어날줄은 몰랐어. 우리 아이들은 마을 내에서도 꽤 날렵하고 강한 녀석들로 구성 되어 있거든. 신입들이야 앞으로가 있지만 기존에 있던 고참두명 마저 고전을 면치 못할줄은 생각도 못했거든. 그래서 말인데, 자네가 나서서 우리 애들을 조금 가르쳐 주게나. 보아하니 검술에 굉장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것 같은데,"
"음.."
이렇게 까지 나온다면 벤하르트로서 들어주지 않을수 없었지만 사실 그는 거절 하고 싶었다. 연기를 하기가 굉장히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가급적 호라반에 도착하기 까지의 며칠간은 홀로 바다를 구경하면서 편하게 보내고 싶었는데 가드바드가 그리 제안해오자 난감해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이미 은혜를 입은 가드바드의 부탁을 들어 주지 않는다는것은 그에게는 불가능했다.
"좋습니다만, 그 생각은 가드바드씨 스스로가 한 생각입니까?"
"그런데?"
"알겠습니다. 그럼 하루에 얼마간이라도 보아 주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항해는 괜찮은겁니까?"
"그점이야 자네가 수고해 줘야지. 어차피 배를 몬다고 해도 전부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 교대로 가르쳐 주면 되는것이다. 해줄수 있겠지?"
조금 혹을 덜어 보려 했다가 도리어 붙히고 만 격이 되어 벤하르트는 실실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다 선원들이 보고 있다는것을 기억해내고 비열한 웃음을 짓는것처럼 연기했다.
'역시 힘들어'
'저녀석 굉장히 예리한걸.'
사실 담판을 한번 지어야 했던것은 사실이었지만, 이 의견은 가드바드가 낸것이 아니었다. 제안의 출처는 쉔이었던 것이다. 기왕 무엇인가를 제안하려 한다면 그의 검술을 배워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쉔이 미심쩍어 한다는것은 벤하르트에게 넌지시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는 쉔을 잘 알고 있었다. 배에서 함께 한것도 몇년째 가끔씩 눈밖에 나는 행동을 하기도 했지만 그라면 조용히 벤하르트를 이해할수 있을것만 같았고 가드바드는 그것을 은근히 바라고 있었다.
"우와 선장님. 굉장하시던데요."
"그래. 무섭지도 않았다. 저정도야."
그렇게 말하면서 가드바드는 쉔을 흘끗 바라보았다.
"무언가 달라진 점이 있습니까? 선장님."
"내일부터 원하는 놈들에 한에서 저녀석에게 검술 지도를 받을수가 있게 된다."
"네에에!"
페켓은 소리치면서 껑충 뛰었다. 비록 무섭기는 했지만 그 검술에 반했던 것이다.
"뭘 그렇게 좋아하냐?"
"그 검술을 배울수 있다는데 너는 아무렇지도 않냐?"
"그 배우는 사람은 현상범이라고, 평소처럼 겁을 먹지는 않는거냐?"
"그렇기는 한데,"
페켓은 쉔의 귀에 대고 작게 말했다.
"사실 왠지 몰라도 조금 그렇게까지 무섭지가 않아. 건들지만 않으면 검술만 살짝 배우고 빠져 나갈수 있지 않을까? 가드바드 선장님도 계시니."
"그래?"
페켓같은 반응을 보이는 선원들도 있었고, 얼굴을 하얗게 질려 겁을 집어 먹은 선원들도 있었다.
"걱정 마라. 원하는 사람한에니까, 바라지도 않는 녀석들이 배워봐야 얼마 익히지도 못할거다. 그리고 한가지 더 해둘 말이있다."
"뭡니까 선장님!"
페켓이 손을 번쩍 들면서 활기차게 말했다.
"이런 일이 된 것은 제대로 검사하지 않은 선장의 책임이 크다고 할수 있다. 만약 항해가 끝나고 나가고 싶다면 잡지 않겠다. 어차피 이런 일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잡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남을 거라면 앞으로도 잘해보자꾸나. 바다는 이렇게 위험하기만 한건 아니거든. 나는 너희들에게 언젠가 그런 사실들을 깨닫게 해주고 싶다. 어이 페켓 쉔. 배를 틀어라."
"예입."
페켓은 숙련된 움직임으로 조타를 잡았다.
"한번 선물로 보여 주도록 하마."
"어디로 몰까요 선장님."
"좌현으로!"
쩌렁 쩌렁한 목소리가 배위에 울렸다.
다음날 벤하르트는 주섬주섬 준비를 했다. 하지만 배 위에는 마땅한것이 없었기 때문에 잤을때나 단장을 했을때나 그렇게 큰 차이는 없었다. 그런 벤하르트를 보면서 레니아가 물었다.
"뭐해? 벤."
"아. 사실은."
벤하르트는 간밤에 가드바드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으음. 조금 무리가 아닐까. 어차피 조금만 이야기를 해보면 쉽게 들통 날것 같은데,"
"괜찮아. 가르치는것 외에는 일절 이야기 하지 않으려고 하니까,"
"조심해. 네가 좋은 녀석이라는게 밝혀진다고 선장과의 일이 들통나는건 아니지만, 처음 보여준 성격의 변명은 할수 없어."
"알았어."
"못 믿겠다. 아무래도 내가 따라 가야 겠어."
"그 빌어먹을 선장 때문에 이런 꼴을 당해야 한다는것이 심히 기분 좋지 않지만, 일리는 있으니 검술을 지도해 주도록 하겠다."
'바보같은 벤. 전혀 악당같지가 않잖아.'
머리를 흔들면서 레니아는 말을 덧붙히려고 했지만, 그녀도 딱히 생각나는것은 없었다.
'마음대로 되라지.'
"그런 고로 필요할때 이외에는 말을 하지 않겠다."
누군가를 가르치는게 처음은 아니어서 벤하르트는 기억을 떠올려 선원들을 가르쳤다. 중간 중간에 괜한 시비를 한번씩 걸어 보기도 했지만, 말자체는 꽤나 그럴사 해도 말하는 사람의 분위기가 제대로 잡혀 있지 않아서 체면이 깍이기만 했다. 그런가 하면 한번씩 살기를 내뿜어 무서운 남자라는 각인을 시켜 주기도 했다.
"나는 제멋대로 검술이나 익히고 다녔기 때문에 정식화된 무언가를 가르쳐 줄수는 없으니 몇가지 기술이나 가르쳐 주겠다."
벤하르트가 가르친것은 검을 다루는 기본적인 동작이었다. 조금 다른것이 있다면 각각의 상황에서 벤하르트가 몸소 사용하는 방법을 보여준다는 것이었다. 가르치는 사람의 열성이 느껴질정도의 행동이었다.
"거기 잡는법은 아무래도 좋지만 그 다리 모양은 좋지 않아. 다음 공격에 빈틈이 생기거든."
검집에 쌓여 있는 검으로 툭툭 쳐가면서 그는 다리를 교정해주었다.
'이정도면 꽤나 기분이 나쁘겠지.'
딴에는 불쾌함이 느껴질정도로 쳤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이 생각한 벤하르트의 인상은 그정도의 시비에는 미치지 못할정도로 두려운 것이었기 때문에 벤하르트의 의도대로 속아준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그저 제대로 가르쳐 준다는 확신감만 심어줄 뿐이었다.
'역시 이상해.'
쉔에게 의심을 사고 있다는 것을 알지도 못한채 벤하르트는 어설픈 악역연기를 계속한 것이다.
이미 몇번이나 자신이 해왔던 것을 다시 보는것이 지루했기에 배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레니아는 몇명 모여 있는 선원들을 발견했다.
"음? 너희들은 뭐하는 거냐?"
"으하아악."
"뭘 그렇게 기겁하고 그래? 아 괴롭힐까봐 그러는구나? 하기사 그렇게 떨면 괴롭히고 싶어지지만,"
말에서 끝나는것이 아니라 직접 반쯤은 행동을 보이는게 벤하르트와 레니아가 다른 점이었다. 손에 이글거리는 화염구를 한번 불러들였다가 아무일도 없다는듯 그녀는 하늘로 화염구를 던져 버렸다.
"사 살려주세요."
'못쓰겠구만,'
"그러니까 여기에 왜 있느냔 거야. 사람이 물었으면 대답을 해야 되지 않겠어? 입을 가지고 있다면,"
전날 벤하르트가 입을 잘라 버리겠다는 말을 떠올리고 그들은 몸을 으스스 떨었다.
"저희들은.. 겁이 너무 나서."
선원은 말을 하다 레니아가 여자라는 것을 생각하고 입을 다물었다. 더 말하는것은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은것이다.
"아하. 벤에게 겁먹었다는 거구나."
'의외로 먹혀드는건가. 그런게.'
다시 하늘을 날아 벤하르트를 보면 전혀 아닌것 같았다.
"너희 생각은 잘 알겠어. 저녀석이 무섭다는거지? 그럼 내가 가르쳐 줄게."
입꼬리를 올려 웃으면서 레니아가 말했다.
"어때? 나같이 마법을 사용할수 있게 되면 좋겠지? 저런 검술 보다 훨씬 빨리 익힐수 있어."
"아 네에."
하지만 선원은 말할수 없었다. 사실은 레니아쪽이 더 무섭다는 것을. 그저 양쪽다 무서워서 참여하고 싶지 않았다는것을.
"그럼 따라와. 가르쳐 줄테니까,"
선원들은 눈치를 살피면서 어쩔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레니아를 따라갔다.
========================================
거짓말을 하면 왠지 모르게 꼬리에 꼬리를 물리는것 같은 경험 해보신적이 있는지요. 뭐 그런걸 떠올리면서 쓰고 있는데 왠지 조금 부족한 느낌도..
앞으로 한두화면 배위도 끝이 나겠군요.
그런데 원래 목적 했던 연참대전중 목표는 한 10화 정도는 더 써야 할 기분이..
그리고 내일은 하루 휴식 'ㅅ'~
Comment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