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01화-구출(6)
"우리 아들쪽이 실례가 정말 많았군. 뭐 사랑하는 사람을 앗아간것도 눈앞에서 이따위 몰골을 보여 준것도 전부 용납될수도 이해할수도 없는 일이었겠군. 하지만 그런 부조리함으로 가득차 있는게 바로 세상의 섭리. 나의 세상을 이루는 절대는 힘이라는것을 지금부터 보여주도록 하지."
쿵 하며 몸이 퉁겨 날아가는 순간에도 벤하르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벽에 닿고 두번째 공격을 정면으로 받고 나서야 자신이 맞았다는것을 깨달았지만 그 깨달음 조차도 이미 없는것이나 다름 없었다.
"아아.."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며 그는 왼손을 들어 환마왕의 공격을 막아내었다. 기이하고 듣기 싫은 울림 뼈가 으스러졌다. 한쪽 팔을 으스러뜨림으로서 벤하르트는 그 맹공에서 빠져 나올수 있었다. 축 늘어진 팔을 추스르지도 못한채 그는 검을 들어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그 자세도 분명 환마왕에게는 전혀 통용되지 않는다는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굳이 환술이라는 기술을 제외하더라도 환마왕의 실력은 요셉이나 로엔과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사랑이라는것도 일부분적인 면에서는 강할수 있다만, 보통은 힘이지. 내 아들 같은 정신병자의 행동을 해도 비윤리적인 행동을 해도 세간에서 나쁘다고 악하다고 비하하는 행동을 해도 강하면 어떤 말도 하지 못하지. 억울해도 분노해도 빼앗겨도 어떤 짓을 당해도 돌아오는 해가 없다라는 것."
"정신병자라는것은 인정한다는 것이로군."
"나름은. 행동의 잘못 정도는 인지하고 있지. 모두가 아니라고 한다 정도의 의미로는 분명 받아 들이고 있지만, 나 자신은 그런것을 상관 하지 않는다. 정의라는게 있다면 곧 강한게 정의. 즉 어떤 행동도 나의 힘 앞에서는 정의화 할수 밖에 없는거다."
잘못도 잘못이 아니게 만드는 힘을 앞세워 그가 말했다.
"그딴게 정의일리가 없지. 역시 정신병자일 뿐이다. 하지만 너만이라고는 하지 않겠어."
백색의 빛이 요동 쳤다. 하지만 그 빛으로는 승부는 커녕 버티는것도 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는 분명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백광을 날리기도 전에 환마왕은 움직였다.
"힘과 상황 둘을 이용하면 얼마든지 '얻지 못할 것'도 얻을수 있다."
충격에 몸이 날렸다. 쇠창살에 몸이 부딪쳤다. 마치 그곳에 박힌듯 벤하르트는 창살에서 떨어져 나오지 못했다.
"벤!!"
다급한 목소리. 하지만 그녀가 해줄수 있는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묵직한 환마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선택해라. 신(神)이여. 아들에게 몸을 바친다면 그녀석은 살려주도록 하지. 뭐 안바친다면 죽이고 천천히 생각해주마. 그때는 못 얻게되는 가능성도 있겠지만 그것뿐으로 끝이겠지. 조금 너라는 인물을 손에 넣지 못한게 아쉽다 정도의 의미는 가지겠지만, 상대적으로 가져간 것에 비하면 별것 아닌 문제. 어떤 선택을 해도 크나큰 후회는 없다. 결정은 신인 너에게 맡기도록 하지."
레니아는 곧장 대답할수 없었다. 잠시의 시간이 마치 몇시간은 지나간듯 고민하고 고민하며 그녀는 입을 열었다.
"나는.."
"결정하지마!!"
벤하르트가 외쳤다. 그는 그녀가 어떤것도 선택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벤하르트를 위해 자신을 버리는 행동이나 자신을 위해 벤하르트를 버리는 행동 그 둘은 전부 그녀에게는 선택해서는 안될 금기(禁忌) 였다.
"조금 결정하기 쉽게 도와주도록 하지."
벤하르트의 앞으로 마왕이 움직였다. 망가진 왼손을 들고 다시금 찢었다. 피가 새어 나오고 떨어지는 것은 살점. 배를 짖이기고 다리를 뭉겠다.
"더 해볼까?"
레니아의 몸은 떨리고 있었다. 신의 힘을 거의 다 잃어버렸지만 그녀는 아직 신이었다. 수천년간 쌓여온 그녀의 굳은 자존심이 뭉게지기 바로 직전까지 와 있는 것이었다.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엄청난 망설임속에서 그녀는 이미 결정했지만 입에서는 떨어져 나오지 않았다. 존재로서의 본능적인 거부를 이성으로 억누르며 그녀는 간신히 말했다.
"알았어. 벤하르트를 살려줘."
"우리에게 들어오겠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그.."
동의의 한마디는 나오지 않았다.
"대답하지마!!"
벤하르트의 손이 환마왕의 다리를 잡았다.
"대답하면 안돼. 하지마. 아무리 어려워도 설사 내가 죽게 된다고 해도 그 대답만은 해서는 안돼."
"웃기지마 죽는다고!"
"그 선택을 한다고 해도 나는 죽어. 죽을테니까, 말하지마."
"끔찍하군. 힘에 굴복하지 않는 모습을 본다는것은. 그거야 말로 힘에 대한 반란이로군. 탐탁치 않아. 자 말해라. 빠르게 더 빠르게."
그는 잡힌 발에 매달려 있는 벤하르트를 걷어찼다. 한번의 행위에 한군데씩 나가지 않는 곳이 없었다. 수십번의 공격 아직 살아있는게 신기할정도의 벤하르트를 쥐어 들고 환마왕이 말했다.
"선택은?"
"역시 안되겠어. 죽는건 보고 싶지 않아. 네가 죽는건 보고 싶지 않아."
방울진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어떤 선택도 할수 없이 어떤 행동도 할수 없이 그저 눈물만 흘릴수 밖에 없는 여신은 자신의 무능함을 저주했다.
"선택하지 않는건가."
"당.... 연.. 하 지. 내가.. 믿..는 여신 레..니아는 그런 선..택은. 하지..않아. 절대."
간신히 움직이는 손가락을 퉁겼다. 퐁하는 소리와 함께 마왕의 얼굴이 꺽였다.
"그...렇지? 레니..아?"
피범벅이 된 얼굴로 그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안그래. 안그렇다고 나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까지 나는 너를 구하고 싶단 말야. 멋있는척 하지 마. 멋대로 죽으려 하지 마. 왜 이렇게 제멋대로인거야. 왜 너는! 처음부터 끝까지!"
"작별인사는 그걸로 끝내도록. 나 자신도 나를 부정하는 짓을 더 하고 싶지는 않으니, 이젠 끝내도록 하지."
"벤!"
"잡.. 았..다."
작은 소리 그것은 살을 도려내는 소리였다.
"하아 하아."
"대단하네. 역시나 마계에서도 패왕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남자 다운 실력. 감탄했어. 하지만 이래서야 그 자랑스러운 복면도 지키지 못하겠지?"
그녀는 손을 휘둘렀다. 한손에는 지팡이가 다른 한손에는 투명한 검이 들려 있었다. 휘두른손은 검쪽으로 하나하나가 결계로 이루어진 빛이 반사되는 것으로 윤곽만을 볼수 있는 투명한 검이었다. 붕대를 감은듯 얼굴을 둘러싼 천이 떨어져 내렸다.
"이제 요셉이라는것을 부정하지 못하겠지?"
"쌍둥입니다."
하고 하하 웃으며 말하고는 곧바로 그는 미소를 거두었다.
"뭐 여기까지 와서 발뺌할수도 없겠군. 요셉은 아니지만 요셉이라고 해두시지."
"여기까지 와서 발뺌을 할 생각? 정말 웃기는 녀석이네. 뭣하러 그런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하려 하는거지? 사실 처음 봤을때부터 나는 네가 이곳에 올것 같았어. 여황의 결정에 불복할것만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 기대했지. 아니나 다를까 이렇게 손수 찾아와 주더라고. 당신과 나 구면이라는건 알고 있을까?"
"뭐 가볍게 가볍게 가고 싶었다만 역시나 그렇게 일이 술술 풀리지는 않는군. 세상은 게임이 아니니까, 되돌릴수 없다면 확실히 가야 겠지?"
다시 요셉의 팔이 움직였다. 그것에 그녀는 검을 휘둘러 그 공격을 베어내려 했다. '전이'를 담는 결계에 일부분이 닿으면 그 일부분만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고도의 결계검이었다. 요셉 정도의 수준이면 닿자 마자 사라지는 일은 없었지만 닿자 마자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 그만큼의 기를 투자 해야 했다.
결정적인 우위를 점할수 없었기에 점차적으로 요셉은 밀리고 있었다.
'정말 여기서 발목을 잡힐 줄이야.'
한쪽 팔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전력으로 싸운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시금 저리듯 마비가 오기 시작했다. 마계에서 직접적으로 싸운것은 흡혈귀때 뿐이었지만 정면승부도 아니었기에 도망치는것은 어느정도 수월했다. 양팔이 멀쩡 했다면 부득이한 공격을 당하지 않아도 충분했지만 머리를 다치고 돌아온것도 이전에 벤하르트 때문에 다친 한쪽팔 때문이었다.
"다치지만 않았다면 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설마. 언제고 만전을 기한 상태라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잖아? '피차일반'이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죽어도 뭐라하지는 않겠네. 당신의 명성은 내가 가지도록 하겠어."
그녀의 몸이 움직였다. 한쪽은 둥근 결계폭탄을 만드는 지팡이가 한쪽은 닿기만해도 몸을 분리시키는 절계의 검이 요셉에게로 다가왔다.
"패왕 인가."
쓸쓸히 웃고 그는 몸을 날렸다. 맨손으로 결계를 잘라내면서 그녀의 검과 맞붙었다.
"스스로가 죽으러 오는건가!"
"진짜 일류는 강하고 약하고의 문제가 아니겠지?"
그녀의 몸이 흔들렸다. 한쪽 팔과 한쪽 다리가 그림자에 묶여 있었다.
"말도안돼."
"소유주와 혼연일체 죽어도 죽지 않는 결계 추구하는 완전함은 다른 법이지. 네 쪽도 분명 어떤 의미에서는 로엔보다 좋겠지만,"
'고작해야 움직임을 봉한 정도 나에게는 이 검이..'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진짜 일류는 강하고 약하고의 문제가 아니겠지?'
요셉의 목소리 분명 검을 들고 있었던 팔은 나우스가 공격을 했던 그 부분이었다.
'어째서?'
튀어나오는 피를 보며 그녀는 이해하지 못한채 서서히 쓰러져 내렸다.
"이류인것은 네쪽이겠지. 이 검은 신조차도 베어버리는 천하의 명검. 방심한 결계로 웃으며 막을수 있을리가 없잖아. 뭐 촉매제가 된것은 로엔의 결계술 이겠지만, 포석이 아닌듯 포석을 준비하는것도 일류다. 약한것을 일류라고 볼수 없듯이 단순히 강한것만이 일류라고 볼수는 없지."
"바보같은 일."
"뭐 한동안은 움직일수 없겠지. 한끗의 차이였군. 이샤. 아니 별명인 전사(戰奢)라고 불러줄까?"
앞으로 5분 이라는 느낌 정도로 그는 몰려 있었다. 언제 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까지 그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알고 있었던 거야?"
"로엔도 나도 분명히 처음만났을때는 얼굴을 가리고 있었으니 몰랐지만 얼굴을 들어낸 지금 모를리가 없지. 로엔은 학사(學奢)로 너는 전사(戰奢)로.. 같은 동문이잖아? 생김새나 이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데 잘도 아직까지도 이런 일을 하고 있었군."
"이름따윈 관계없잖아. 그나저나 잘도 알고 있었네. 면식도 별로 없었고 수백년전의 일인데도,"
"네가 나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것과 별로 다르지 않아. 수백년전의 녀석들도 내가 패왕인지 뭔지 하는지도 아는 녀석들은 얼마 없듯이. 하아. 이거 참. 네가 쓸데 없는 짓을 해서 완벽하게 손해보는 일을 해야 하잖아."
그 자리에서 그는 손에 기를 둘렀다. 지독한 살기. 그녀 이샤는 과거를 떠올렸다. 상대가 어떤 자라고 해도 달려 들어 한번도 지지 않았던 패왕이라는 멋진 명칭 뒤에 숨겨진 이면의 그를..
"'나'라는걸 알아 버린 이상 어쩔수 없군. 아주 약간은 미안하지만 어쩔수 없지. 너희들 전부 전력을 다해 덤벼라. 가능한한 최소한의 고통으로 끝내 주도록 할테니까."
"으아아.."
"살려줘!"
"뭐하는거냐 도망치지 마라! 상대는 지쳤단 말이다."
나우스나 판치스를 노리는 것과는 이미 차원이 틀렸다. 흡사 마왕에게 덤비라는것과 같은 것. 설사 빈사상태에 이르렀다 해도 들을수 있을리가 없었을 터인데 아직도 그들을 이기기에는 충분하리만큼 그는 강했다. 마왕에 대한 충성이 없는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대가 없는 죽음을 원하는 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그 뒤로 이어진 것은 무차별적인 학살이었다. 개중에는 그나마도 한 힘 쓰는 요괴나 마족도 있었지만 개개인으로는 상대도 되지 않았고 이미 전의를 상실한 마족들이 뭉칠리도 없었다. 개중에는 그저 명령을 따르는 종족도 착한 종족도 있었을테지만 그는 인정사정 없었다. 그런 학살을 보며 그녀는 생각했다.
'나도.. 죽겠구나.'
방금전에 대화했던 가벼운 말투가 정말 거짓말같이 전투에서 몸을 굴린 자신이라도 저렇게 할수 있을까 생각될 정도로 처참하게 그는 살육했다.
한참 후 자신을 본 전부의 마족을 죽인 그는 백색에서 이미 여러가지의 색으로 물든 옷으로 그녀에게 접근했다.
"당장에라도 죽일수 있지만, 처음 만났을때의 빚. 그것으로 목숨은 살려주지. 하지만 내 일을 입밖에 내는 것도 곤란하니까. 여기에 서명은 해줘야 겠어."
그 혈의를 입은채로 그가 내민것은 군트리온의 계약서였다.
"하아.. 고작해야 제자 한명 때문에 내가 이렇게까지 나서게 될줄은 몰랐군. 벤하르트 살아 돌아온다면 이자까지 쳐서 차근차근 받아내주마."
그렇게 말하며 그는 그자리에 쓰러지듯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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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아쉽네요 본래는 이 밑에까지 조금 더 쓰려고 했는데 시간이 시간인지라 내일로 미룰수밖에 없군요. 낮에 글을 쓰면 좋을텐데 항상 저는 야행성이라.. 밤에만 글을 쓰게 되네요. 빨리 자야지...
모두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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