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157화-아스포에라(4)
사방에 호화로운 음식들로 널려 있는 식당. 레니아와 벤하르트는 구석에 앉아 군침을 흘리며 눈앞의 음식을 바라 보고 있었다.
"좋아 좋아."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것은 레니아. 반면에 벤하르트는 약간 걱정 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이따금씩 그녀의 음식에 눈을 돌렸다.
"뭐 2마크닐이나 낼 돈은 없었지만 이대로 나 혼자 먹는것은 예의가 아니지."
"혼자 먹으려 했던 거냐."
질린듯 그가 말했다.
"먹고 싶은건 나였잖아. 돈은 공용이지만 결론적으로 보면 벤은 먹으려 했던게 아니라는 이야기가 되는 거니까, 사실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역시 여기서는 관용을 베풀어 주지."
"관용은 무슨."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레니아의 손이 멈추었다. 왠지 서늘한 기운에 그는 흠칫 놀라며 웃으며 말했다.
"고맙게 생각하고는 있어. 어쨋든 레니아가 우겨줘서 이런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된 것이니까,"
"자. 그럼 시식을 시작해야 겠지?"
그녀가 포크 부딪히는 소리를 내면서 탐욕스럽게 음식을 쳐다 보았다.
"그럼."
벤하르트와 레니아는 거의 동시에 음식을 입안으로 집어 넣었다. 순간 그들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 버린다. 얼굴의 색이 푸르게 변하더니 곧 어쩔수 없이 음식을 뱉어 내고 말았다.
"우우.. 뭔 맛이 이래?"
식당안의 음식을 먹는것은 간단했다.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요리와 그 외에 각지에서 대표하는 요리가 존재하는데 인간 세상 뿐만 아니라 마계를 포함한 여러곳에서의 특산 음식들이 있었다. 한 종류에 인간화폐로 1마크닐. 엄청난 가격이라 할수 있었지만 중요한것은 그 안의 맛이었다.
인간의 미각과 다른 이종의 미각은 확실히 달랐기 때문에 잘 알고 있지 않는다면 그들처럼 된통 당하기 일수인 것이다.
"쓰디쓴 경험을 했군."
"레 니 아. 우리의 1마크닐은 어디에.."
"나라고 해서 이런 .... 음식을 먹고 싶어서 산건 아니라구."
잠시의 공백 벤하르트는 그녀가 그 안의 말을 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그녀가 그런 말을 입밖에 내지 않을 것이라는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머리 못지 않게 자신에 대해 가지는 자부심이 대단한 그녀였기에 어디로 튈지 알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쩔수 없지. 왠만하면 따끔하게 말해 두고 싶었지만 그것보다 허기진 배를 채우는게 우선일테니까,"
"기본식도 상당히 맛있어 보였으니까 괜찮을거야."
기본 음식은 스스로가 가지고 갈수 있다면 전부 무료 였지만 그들은 조심할수 밖에 없었다. 우선 전 종류를 아주 조금씩 담아 온 뒤 하나하나 맛을 보기 시작했다.
"음 으음. 음. 으악!"
수십여가지 종류중 무려 20여가지나 되는 음식들이 그들의 입에 맞지 않았다.
"좋아. 이제 안전 하겠지."
탐색을 끝마친 그들은 각자 음식을 담아와 맛있게 식사하기 시작했다. 두접시를 비우고 흥얼 거리면서 세번째 접시를 얻으러 가는 벤하르트에게 누군가가 부딪혔다.
"으윽."
"꺄앗."
여자의 목소리. 보라색의 무언가가 벤하르트의 눈을 스쳤다.
"너 너는."
"앗!"
서로의 존재를 깨닫고 벤하르트는 허릿춤의 검으로 보라색 머리의 여인 놉스의 전쟁터에서 보았던 두명의 마법사중 하나였던 메시아는 손을 들어 서로에 대해 경계했다. 거리 때문이었는지 조금 불리한 위치에 있던 메시아는 손을 거둬 들이고는 말했다.
"후우. 그만 둬야지. 별로 싸워서 이길수 있을것 같지도 않고,"
"....."
"못들었어? 그만 두겠다고 하잖아."
별로 적의가 들어 있지 않은 그녀의 말투에 벤하르트도 자세를 풀었다. 그녀는 살짝 그를 보고는 깨끗하게 포기하고 인파속으로 사라졌다.
"스승님 스승님!"
조금 급하게 메시아가 군트리온을 부른다.
"무슨일이냐. 메시아."
"그녀석이 나타났어요."
여행을 다닌지 하루이틀도 아니었고 마법사 답게 좋은 관계던 나쁜 관계던간에 발이 넓었던터라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군트리온이 반문했다.
"그녀석이라니 누구?"
"왜 그때 있잖아요. 놉스에서 스승님과 저의 합격 마법을 이겼던 그.."
그제서야 누군지 상상해낸 군트리온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메시아에게 물었다.
"그녀석은 어디에 있지?"
"그러니까 조심하는게 좋겠어. 네 얼굴을 아는건 아니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위험하지 않은건 아니니까,"
벤하르트는 메시아와 군트리온의 이야기를 꺼내며 말했다.
"별로 상관 없지만, 이곳에서 싸우면 강제 퇴출 이라면서? 그런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우리에게 덤비지는 않을거야. 한번 벤에게 당하기도 했을테니까 더더욱 일격으로 끝낼수 있다고는 생각하지도 않을테고, 적어도 이 배 안에서라면 위험할건 없겠지."
"글세."
그들과 처음 만났을때를 떠올렸다. 머리를 굴리고 또 굴려보아도 그것을 어떻게 막았는지는 참으로 의문이었다.
'카도스에 있었을 당시의 힘만 있어도 이런 걱정 하지도 않을텐데,'
카도스는 정신계이기 때문에 정신을 다루기 쉽고 수행의 터로는 더없이 좋은 곳이었지만 아쉽게도 카도스 한정이라는 단점이 있었다. 정신계는 다른 말로 깨달음의 터 라고 불리우는데 그곳에서 밖으로 나올때 힘을 가지고 올수는 없지만 그것의 경험은 실재했기 때문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그곳에서 얻어갈수 있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지만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 한계의 깨달음을 얻게 해주는 일도 빈번했다.
"다 먹었으면 방으로 돌아갈까?"
"그래. 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들러볼 곳이 있어."
"음?"
레니아가 찾아간 곳은 도서관 이었다. 이계의 고서를 모아놓은 그 공간은 비교하자면 레니아가 소유하고 있던 책들보다도 훨씬 더 많은 지식이 쌓여 있었다.
"대단하다."
책에 레니아 만큼의 관심은 없었던 그가 놀라 탄성을 지를 정도로 그 양은 막대 했다.
"그럼 나는 저기서 책을 읽고 있을테니까 벤도 나름대로 놀고 있어."
"놀다니 이런 곳에서?"
주위를 둘러보면 여러종이 책을 읽고 있었다. 상당히 집중 해서 읽고 있는 자들도 있었고 반대로 가볍게 읽고 가는 자들도 존재하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조금 소란 스러운 무리들이 있었는데 괜히 그런 취급을 받고 싶지는 않았던 벤하르트는 지나가던 도중 책 하나를 발견하고 뽑아 내었다.
"대장장이의 길."
간단한 도공술과 그에 따른 설명 해석이 쓰여 있는 책이었는데 벤하르트는 자신이 가진 실력과 비교하면서 시간 가는줄 모르고 책을 읽었다. 한참을 읽고 있는데 누군가가 어깨를 두드린다.
"벤. 뭐하고 있어?"
"어? 아니 뭐 그냥."
반사적으로 책을 숨기면서 그가 말끝을 흐렸다.
'내가 왜 숨겨야 하는거지?'
라고 생각했지만 왠지 지금 상황에 책을 보이면 안될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그는 자신의 허벅지 사이로 책을 더 밀어 넣었다.
"이거 말야. 책을 빌리는데에도 사용할수 있더라고, 대단하지?"
"대단하긴 하다만,"
흘끗 자신의 책을 쳐다보았다.
'좋아 이대로 자연스레..'
"그럼 나도 하나 빌려볼까?"
"응? 벤도 빌리려고?"
"내가 이래뵈도 대장장이 아니냐. 그래서인가 이 책이 어떤가 한번 읽어보고 싶어서 말야."
대장장이의 길을 꺼내들면서 그가 말했다.
"그으래? 잘됐네."
말을 길게 늘인것은 그가 잘못 들은 까닭은 아니었을 것이다. 모든것을 읽혔다는 것에 얼굴을 붉히며 그는 레니아와 함께 책을 빌려냈다.
방으로 돌아가 하루의 마지막을 고하고 있었다. 패마다 각자 방이 따로 준비 되어 있었기 때문에 오랜만에 둘은 독방을 사용했다. 전체적으로 편했지만 뭔가 허전한 기분을 동시에 느끼며 그들은 책을 꺼내 들었다.
"이것도 꽤 그럴사 하군."
자신의 실력이 어느정도 인가. 하는 것은 그 자신도 어느정도 알고 있었다. 잘난척이 아니라 실제 어떤 명공을 데리고 와도 이길 자신이 있을정도로 그의 실력은 걸출하다 할수 있었지만 그에게는 다른 도공이 검을 만지는것을 볼 기회가 상당히 적었다. 거의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을것이다. 명검을 만들었다면 그 명검을 보되 그 검을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는 잘 알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듯이 그의 경우도 검을 보고 감탄할수는 있되 검을 만드는 광경을 보는것은 극히 드물었다. 그래서 인지 자신의 방법과 책안의 방법을 비교하는게 왠지 재미 있게 느껴졌다.
전체적으로 벤하르트보다 낮은 실력을 가진 대장장이가 지었기 때문에 조금의 우월감도 맛볼수 있었고 또 검을 만드는 새로운 기법도 알수 있었기 때문에 오랜만에 그는 채을 끼고 시간을 보낼수 있었다.
아스포에라에는 낮과 밤의 개념은 없었다. 굳이 나누자면 흑의 공간과 백의 공간으로 나뉘었지만 시간적인 차원의 문제는 아니었고 장소에 따라 배경이 백색이나 흑색으로 바뀌어 보이는 현상이었다. 또 지정되어 있는 장소를 제외 하면 배경도 없어서 바람이 없다면 마치 멈추어 서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드는 곳인 것이다. 얼마나 책을 읽었을까. 두께가 상당한 대장장이의 길을 거의 다 읽은 벤하르트의 방문을 누군가가 두드렸다.
"음? 레니아야?"
"....."
"누구시죠?"
답이 없다는 것이 뭔가 불안한 그는 차마 문을 열지 못하고 조금 긴장하고 서 있었다.
"저기 날세. 기억하겠나? 그 놉스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문 밖에서 들려온다. 낮에 메시아를 만나기도 했기 때문에 그 목소리가 누군지 짐작하고 그가 말했다.
"알긴 압니다만, 무슨일이시죠?"
"아 이 늙은이가 한가지 청이 있어 왔네. 전혀 싸울 의도는 없으니 안심하게나."
"또 누가 있습니까?"
"내 제자인 메시아가 있다네."
순순히 제자를 밝히고 나서자 그는 조심스레 문을 열어주었다. 위험하지 않다고는 할수 있었지만 낮의 일 처럼 그의 말투에서는 전혀 살기가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주의하는것 만큼은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럼 실례 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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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요즘은 일찍 자고 조금 일찍 일어나는데 왜 이렇게 피곤한건지 모르겠네요. 만성 피로가.. 연참대전 반을 넘기는게 이제 얼마 남지 않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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