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비밀
< 126화. 비밀 >
탐사선 안에서 둥둥 떠 있던 족장은 심각한 표정.
“흐으냐뇨.”
그리고 옛 기억을 되짚어 보는 듯 눈을 이리저리 굴려본다.
“그때 영주님은 아주 다급했다뇨.”
“?!”
미니언 족장은 옛 기억을 떠올리며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
“나뇨?”
“미안하네. 한두 달 정도 출장을 갔다 와야 할 거 같아.”
“냐뇨냐?”
“꼭 가야만 하네. 어쩔 수 없지.”
초로의 노인.
큰 키에 거기에 수염을 배까지 기른 마법사
커다란 챙의 마법사 모자가 잘 어울리는 노인이었다.
깊게 들어간 눈을 아래로 내려 미니언 족장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혼쟈가냐뇨?”
“아니, 손녀도 같이 갈 거라네. 그러니··· 음, 어찌 설명을 해야 할까···.”
대마법사 김용우가 수염을 쓰러내리듯 마른 세수를 한다.
“나도 민주까지 데려갈 생각은 없었지만, 사람이 너무 부족해서 말이야.”
“챠원 마법샤 말이냐뇨.”
“그렇지.”
“아갸는 어쪄냐뇨?”
“태훈이는 어쩔 수 없이 맡겨야지. 생각보다는 위험한 일이거든.”
“이리 오뇨미뉴!?”
“아니. 그래선 안 돼. 여기는 지력이 마나 수치가 너무 높아, 그리고 자네들은 그 마력을 더 끌어올리지 않는가! 그러니 태훈만 이곳에 둘 수는 없다네.”
“그렇다냐···.”
노인은 천천히 손을 움직여 이것저것 짐들을 챙겼다.
그리고 세심하게 그 짐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순서대로 아공간 창고에 집어넣는다.
“뭐하냐뉴?”
“그래도 혹시 모르니 안배를 해야지. 내가 무슨 일을 당하더라도 이곳의 보물들은 지켜야 하지 않겠나!”
“뉴음···.”
미니언 족장은 심각한 표정이 되어 안절부절못하고 다리를 재게 움직였다.
자신이 그간 보물처럼 보관해왔던 최상급의 혈마석 몇 개를 챙겨온다.
“고맙네. 이건 잘 쓰지. 그리고 너무 걱정할 건 없어. 이번에도 간단하게 게이트만 잠글 테니까.”
“뇨뉴뇹!!”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 문은 단순한 던전 게이트가 아니라 마계와 연결된 출입구이니···. 우리가 가줘야지.”
“다른 헌터들이 처리해도 되지 않냐뇨. 인간들은 나라가 여럿 아니냐뇨? 그 나라 헌터보고 책임지라고 해라뇨!”
“나도 알고 있지만, 지금 세상에 남은 차원 마법사는 다섯뿐이라네. 그중 하나가 민주고. 어쩔 수 없지. 그러니 함께 갈 수밖에.”
“위험하냐뇨냐···.”
“그렇지. 음···. 위험하지. 위험한 것은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네.”
심각한 표정이 된 긴 수염의 마법사.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저기 오는구먼.”
우우웅
그가 한쪽 벽을 바라보자 그곳에 둥근 차원의 문이 생성되며 젊은 여성이 게이트에서 나왔다.
“왔느냐?”
“네. 할아버지.”
“태훈이는?”
“헌터는 믿을 수가 없어서요.”
“그럼?”
“고등학교 때 친구에게 몰래 맡겼어요. 친구는 제가 마법사인 줄 모르거든요.”
“잘했다.”
“저. 할아버지.”
“?”
“제가 가진 보주···.”
“그 여의보주 말이냐?”
“네. 그 보주를 태훈에게 주고 왔어요.”
“?!”
그 말을 듣고 커다랗게 떠진 눈.
마법사 김용우도 그렇지만, 그 옆에서 이야길 듣던 미니언 족장의 눈도 커졌다.
“넌 태훈이가 각성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느냐? 평범하게 살기를 바란 건 바로 너야.”
“보주를 품었다고 해도, 아마 평범하게 살아갈 거예요.”
“음···, 그렇다면 보주에 금제를 했단 말이냐?”
“예···.”
“그 사실을 누가 또 알고 있느냐?”
“아무도 모르리란 거 잘 아시잖아요.”
“그럼 여의보주는 우리 셋만이 그 행방을 알겠구나.”
“당연하겠지만, 또 한 분이 계시죠.”
김민주가 방긋 미소를 지었지만, 김용우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용들은 이미 이곳을 떠났다.”
분노가 가득 올라온 김용우.
하지만 김민주는 그런 김용우의 감정이 추슬러지기를 가만히 기다렸다.
“용왕은 항상 우리를 응원했어요.”
“그래···. 떠나면서도 용왕의 가호를 남았으니···, 그 덕에 우리가 뒤를 안배할 수 있겠지. 네 말처럼 오히려 고마워해야 하겠구나.”
“할아버지.”
“말하거라.”
“제가 가지고 있는 이 갑주. 태훈이한테 주고 싶어요.”
“무슨! 우린 돌아올 수 있다.”
“아시잖아요. 그게 힘들다는 거.”
“아니, 돌아올 수 있어. 내가 그렇게 만들겠다.”
김민주는 분노한 듯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김용우에게 다가가 그 손을 꼭 잡았다.
“······.”
증손주를 끔찍하게 사랑하면서도 증오했던 노인은 그 손길에 올라왔던 분노를 가까스로 잠재웠다.
“후우. 나보다 네가 어른이구나.”
“아니에요. 할아버지···.”
“아이를 이리 데려오너라.”
“네?”
“내 모든 것을 아이에게 주겠다. 만약을 위한 안배가 되겠지. 네 말대로다. 현재로선 그게 최선이구나.”
“······.”
망설이던 김민주는 차원의 문을 열고 잠시 그 문으로 사라졌다가 곱게 자고 있는 5살 남아를 가슴에 안고 돌아왔다.
“흠···.”
그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노인은 깊은 회한에 잠긴 듯 인상을 찡그렸다.
“아비를 닮았구나.”
“저도 닮았어요.”
“후우···.”
김용우가 그 둘을 바라보고 있던 미니언 족장에게 말했다.
“이 아이가 크면 던전의 주인이 될 거라네.”
“냐뇨? 지금이 아니고 크면 말이뇨냐?”
“그래, 그렇지, 이 던전의 주인인 용왕이 인정할 때만 주어지는 그 영주의 자격. 그걸 물려받을 거라네.”
김용우는 작은 태훈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아이를 축복했다.
“여의보주를 품었으니 용왕의 가호도 분명히 이 아이를 인정해 줄 거야.”
“냐뇨냐···.”
주문을 외우자 작은 아이의 손에 마법진이 각인된다.
각인된 마법진은 이내 사라져 손등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김용우가 아이를 세심하게 살폈다.
그리곤 자는 아이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이것으로 괜찮겠느냐?”
“충분합니다.”
“족장!”
“냐뇨?”
“나와 민주는 이 아이가 평범하게 자라길 바란다네.”
“냐뇨냐.”
“그러니 아이가 직접 묻기 전까진 그 어떤 이야기도 해주지 않았으면 해.”
“니니뇨냐?”
“그래. 이 아이가 각성해 이 던전을 발견하고, 헌터가 된다고 해도 말이야. 우리가 진 업은 우리 대에서 끊을 것이니, 굳이 이 무거운 짐을 함께 질 필요는 없지.”
“냐따냐.”
“그러니 아이에겐 아무 말도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구나.”
“아라땨뇨냐.”
맹세의 포즈를 취하는 미니언 족장.
푸근한 표정으로 변한 대마법사는 조심스럽게 아이를 김민주에게 넘겼다.
김민주는 그 모습으로 다시 차원의 문으로 사라졌다.
대마법사 김용우는 슬픔에 찬 모습으로 말했다.
“다시 돌아올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군.”
“다시 올 수 있다뇨! 분명 그리 해낸다뇨!”
“자네는 언제나 밝아서 좋아.”
“냐냐마뉴냐.”
“그렇지. 바로 돌아와야지.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은데···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지.”
노인이 고개를 들어 창문을 통해 통나무집 밖을 바라봤다.
그곳엔 거대한 가드 타워가 마치 등대처럼 통나무집을 내려다보며 밝게 반짝이고 있었다.
***
“그러니까···.”
족장의 이야길 전해 들은 태훈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의 가슴을 바라봤다.
“엄마가 여의보주를 나에게 심었다고?”
“그렇다뇨냐.”
흑사회의 전대 총회주 ‘흑사’가 노린 것이 바로 그 여의보주다.
그 보주를 구미호에게 주기 위해 미국으로 갔다가 그는 증조부 손에 죽었다.
그 여파로 인하여 엄마와 증조부도 폭발과 함께 아공간으로 사라졌고.
방금 족장의 이야기는 그 여의보주를 엄마가 자신에게 줬다고 말했다.
“대마법사인 김 용우 전 영주가 절대로 이야기하지 말고 비밀을 지키라고 했다뇨.”
“여의보주가 확실하지?”
“맞댜냐.”
‘여의보주가 이미 나에게 있다?’
태훈은 족장의 말에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무슨 뜻인지 머리로는 이해가 되면서도 자신의 감각은 그것을 부정한다.
여의보주 같은 전설템이 몸에 있다면 당연히 티가 나야 하는 것 아니겠나.
“하지만 금제를 했다뇨.”
“!!”
존재하지만 닿을 수 없도록.
가지고 있지만 알 수 없도록.
태훈은 엄마의 배려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단지, 왜 자신이 할아버지의 던전에서 그런 가호와 축복을 바로 받을 수 있었는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였군.”
태훈은 족장의 이야기가 끊기지 않도록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엄마와 증조할아버지는 위험한 차원문을 막으러 갔다는 거지?”
“맞댜뇨. 그 문은 듣기로 매우 위험하다 했뇨냐.”
“자세히 말해줘.”
“영주님이 설명하기를 그 차원의 문은 보기 드물게 삼중 던전의 입구라 했냐뇨다.”
“삼중 던전?”
“그리고 그 던전의 끝에 마계가 있다고 말했뇨냐.”
‘마계?’
“던전의 입구를 강제로 막으려면 차원의 마법사가 다섯 명이 필요하다고 했다뇨.”
마계로 통하는 던전의 입구를 막기 위해!
그렇다면 그 시절 흑사회의 총회주였던 ‘흑주’의 행동도 이해가 되었다.
그는 나위천의 사부이자 마령술사.
마계의 문이 열리고 마수들이 직접 나올 수 있다면 아마도 지금은 그들의 세상이 되었을 터.
‘마계의 문을 닫으려 하는 걸 막으려고···.’
그가 캘리포니아에서 증조할아버지에게 죽은 것도 그 결과였다.
‘단지 여의주를 빼앗기 위한 행동만은 아니었군.’
잠깐···.
그럼 그 마계의 문은 닫힌 것일까?
증조할아버지와 엄마를 집어삼킨 그 사고는 마계의 문이 닫히며 만들어진 후폭풍일까?
‘아니···.’
태훈의 눈이 가늘어졌다.
“미셸 박사와 통화를 해야겠어.”
“알았냐뇨.”
태훈은 통신용 잭을 들고 원본의 차원의 링을 힘겹게 기어가는 족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들리는 목소리.
[연결했냐뇨.]
“미셸 박사님과 연결해줘.”
[알따냐.]
기다리길 잠시.
긴장한 듯한 목소리로 미셸 박사가 통신을 받았다.
***
[죄송합니다. 그 상황은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나네요.]
“······.”
미셸이 기억하고 있는 것은 테러에 집중되어 있었다.
흑사회주를 찍느라 게이트가 닫히는 장면은 기억에 없었다.
그 테러와 폭풍 같았던 폭발 사이, 중심에 있는 차원의 문이 정말 닫힌 것인지 열린 상태로 아공간으로 함께 날아간 것인지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말씀하세요.”
[지금 찾아가고 있는 그 카메라에는 분명히 사진이 찍혔을 겁니다.]
“아!”
[제가 그 빌런의 사진을 찍고 있을 때 분명 배경에 잡혔을 거예요. 분명 가까운 위치에 게이트가 있었을 테니···]
“알겠습니다.”
가정은 두 가지.
게이트를 막았다면 부서진 반원형의 대지 위에 마법진의 잔해와 네 명의 미라를 발견하리라.
그게 아니라면 아공한 한구석에 마계의 마물들이 활보하고 있을 터였다.
그땐 전쟁을 치르는 수밖에 없다.
놈들 중에 자신과 같은 차원의 능력이 있는 마수가 있다면 당장 지상으로 마물이 쏟아져 나올 터였다.
태훈의 눈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아직 한 주는 더 달려야 그 카메라가 있는 곳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카메라만이 답을 알고 있었다.
***
태훈은 무료한 아공간 항해를 이겨내기 위해서 새로운 훈련에 돌입했다.
구우우우우우-
탐사정의 문을 열고 나온 태훈이 거친 바람을 이겨내려 고글을 착용했다.
“쿨럭! 쿨럭!”
조심스럽게 호흡기까지 착용하고 아공간 창고에서 가고일 블랙을 꺼냈다.
“쿠엉!”
“좋아. 날아라!”
그렇게 탐사정과 나란히 블랙과 함께 아공간을 날았다.
하지만, 아무리 날랜 블랙이라고 해도 600km/h로 날아가는 탐사정과 같은 속도를 유지하기는 무리.
10여 분을 힘차게 날던 블랙은 더는 버거운지 조금씩 속도를 줄여나갔다.
“자. 그럼 준비해!”
태훈이 준비한 것은 【차원 점멸】.
4 서클이 된 후 차원문을 만드는 것이 쉬워지면서 게이트를 순간적으로 열고 그사이를 점멸로 통과하는 것이 가능할지 훈련을 하고 싶었다.
이 기술이 있다면 [단축]을 이용해 점멸을 하더라도 혼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가고일 블랙과 함께 점멸을 해낼 수 있으리라.
“간다!”
“쿠어엉!!”
태훈이 아공간의 정면에 차원문을 만들었다.
출구는 저 멀리 자신의 앞에 보이는 공간.
마치 공간을 끊어내듯 차원문이 순간 열리며 블랙과 함께 점프.
그러자 순식간에 500m 정도를 넘어 탐사정을 앞질러 날고 있었다.
“크! 이거지.”
탐사정의 라이트가 밝게 켜지며 충돌 방지를 위한 경고음이 자신의 뒤에서 따라왔다.
위잉- 위잉- 위잉-
“괜찮네.”
그렇게 처음에는 공간을 끊어내는 것부터 시작해서 나중에는 출구의 방향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실험까지.
처음엔 힘들던 것들이 연습을 거듭할수록 차츰 적응되었다.
이젠 입구와 출구를 거의 나란히 만들어 낼 수 있을 만큼 마나 감응력이 좋아지고 있었다.
‘이거면 공격도 방어할 수 있겠는데?’
태훈은 탐사정을 따라 공간을 날며 계속 【차원 점멸】을 실험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탐사정은 태훈을 그 미셸 박사가 잃어버린 카메라로 점점 인도하고 있었다.
***
마이크를 손에 쥔 미셸 박사.
마른침을 삼키고 아주 천천히 발음을 한다.
“대~ 표~ 님~!”
3배나 느리게 흐르는 시간.
그 시간이 압축되며 태훈에게 전달된다.
[대표님!]
“네. 박사님.”
[탐사정의 속도를 차츰 줄여 주세요.]
“알겠습니다.”
탐사정을 타고 이 검은 심연, 아공간을 항해한 지 24일 차.
드디어 저 앞에 미셸이 잃어버린 카메라가 레이더에 잡히기 시작했다.
전방 12km
태훈은 탐사정의 엔진 추력을 낮추고 속도를 줄이기 위한 에어브레이크를 열었다.
청새치처럼 생긴 탐사정의 주위로 앞지느러미 같은 날개가 차례로 펼쳐졌다.
태훈은 그 모습을 보며 말만 그런 게 아니라 정말 물고기 같다고 생각했다.
차츰 속도가 줄며 공기의 흐름이 안정감 있게 변하길 잠시.
태훈은 탐사정을 천천히 움직였다.
전투기 조종사가 쓰는 것 같은 태훈의 헬멧 고글에 한쪽 팝업 화면이 열리며 아공간을 유영하고 있는 카메라가 확대되어 보였다.
[120m]
[110m]
······
[50m]
태훈의 고글엔 위치 추적 표시가 푸른색에서 충돌 위험을 알리는 붉은색으로 잡히기 시작했다.
선작과 좋아요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겁게 보셨다면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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