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회상
< 93화. 회상 >
미셸은 깜짝 놀란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쌍꺼풀 없는 동그란 눈.
나이를 알 수 없는 고운 피부.
깜찍하면서도 활동성 좋은 마법사 복장.
커다란 창이 있는 모자는 그녀가 마법사임을 대번에 알아볼 수 있게 만들었다.
이름은 알고 있었다.
킨? 아니··· 킴 민주 박사.
“괜찮나요?”
“가··· 감사합니다.”
그녀는 방긋 웃더니 자신이 쓰러질 뻔한 마법진의 한쪽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흙이 떨어진 곳 여기저기를 꼼꼼하게 수정했다.
마법석 가루를 다시 뿌리고 조심스럽게 새로운 홈을 파 연결했다.
“덕분에 고마워요.”
“네?”
“왠지 이곳 어딘가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
“어디일까 계속 고민했는데 덕분에 발견했네요.”
“아···, 네···.”
“사진 찍는 거죠? 그 카메라. 이 마법진을 자료로 남기려고.”
“네. 맞습니다. 데이비드 올트먼 교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그렇군요. 저··· 부탁이 있는데 들어줄래요?”
“말씀하세요.”
“저 사진 한 장만 찍어주세요.”
“사진이라고 하시면···.”
“고향에 있는 우리 아들에게 보내주려고요.”
“아. 네!”
그녀는 마법진 앞에서 홀로 포즈를 취했다.
그녀의 뒤에는 보라색의 커다란 게이트가 천천히 마블링 같은 소용돌이를 만들며 주위의 먼지를 삼키고 있었다.
그 묘한 분위기 속에서 미셸은 화각에 비친 그녀의 슬픈 듯 애써 감춘, 감정을 참아내는 표정을 느낄 수 있었다.
“······.”
찰칵.
“디지털 사진인데 어떻게 보내드리면 될까요?”
“음···.”
“?”
“그 사진을 꼭 가지고 있어 줄래요?”
“네?”
“곧··· 아니 조만간, 그 사진을 받으러 갈 거예요. 지금은 아니고요.”
“아··· 네.”
“그때 꼭 좀 전해주세요. 부탁할게요.”
“알겠습니다.”
받으러 오겠다고 했으니 곧 다시 만날 거로 생각했다.
미셸은 그 부탁이 금방 이루어지리라 여겼다.
빠르면 이삼일.
길면 한두 주?
하지만, 그 시간이 25년이나 걸릴 줄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
그녀가 회상에서 빠져나왔다.
미셸은 자신의 앞에 있는
그 시절 김민주와 똑 닮은 청년을 향해 말했다.
“사진을 찍었습니다.”
“······.”
“그 사진을 꼭 좀 전해달라는 부탁도 받았고요.”
“네?”
놀란 청년을 향해 그녀는 가방에서 낡은 태블릿을 꺼내 보였다.
그리고 오래도록 간직해 왔던 파일 하나를 열어 그에게 보여주었다.
***
태훈이 가지고 있었던 엄마의 사진은 증명사진이자 고등학교 졸업사진.
그 한 장이 전부였다.
그 한 장뿐인 사진을 항상 소중하게 간직했다.
주민등록을 겸하기 위해 찍었을 이 증명사진의 엄마는 굳은 표정.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외로워 보였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던전에서 두 번째의 사진을 발견했고.
저번 주에 학회의 운영위원장에게서 세 번째의 사진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
자신에게는 네 번째의 사진이 될
가장 나이 많은, 성인인 엄마의 사진을 처음으로 받아봤다.
사진 속 엄마는 슬픈 눈.
안타깝고 미안하고 처연한 감정을 숨기고 힘겹게 웃고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살짝 마법사의 모자를 눌러쓰고 조심스럽게 짧은 지팡이를 말아쥐고.
그녀는 거대한 마법진 앞에 홀로 서 있었다.
그 뒤에는 검게 소용돌이치는 게이트.
‘엄마는 이 사진이 25년 후에 나에게 전해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이번 일로 놀랐던 것은 엄마도 외증조할아버지처럼 차원 마법사였다는 사실.
전 세계 다섯 뿐인 차원 마법사 중에 한 명이라니.
초등학생 모습으로 차원 법사 4명과 함께 찍은 사진에서는 느껴지지 않았던 마법사로서의 풍모가 이 사진 속에선 온몸에 물씬 배어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분명하게 이 사진이 당신에게 전해지리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
차원 마법사였으니···.
혹, 예지의 힘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저 마법 같은 할아버지의 던전, 엄마도 용왕의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리고 그 힘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마법사라면···.’
‘예지’의 힘 정도는 해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감사합니다.”
태훈은 태블릿의 화면을 정지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미셸은 큰 숙제를 끝냈다는 듯, 못다 한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다섯 차원 술사분들은 그 사진의 거대한 마법진을 구동해 던전의 차원문을 사라지게 하는 작업을 하셨어요.”
그녀의 눈이 다시 과거로 돌아갔다.
25년 전, 커다란 게이트와 그 앞에 그려진 커다란 마법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
며칠째.
카메라를 든 젊은 미셸은 연신 마법진 주위를 돌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드디어 오늘, 마법사들이 마법진을 움직일 거라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숙소에서 서둘러 사진기의 백업을 마치고 나와 급하게 촬영을 시작했다.
“시작합니다. 모두 물러나세요.”
다섯 마법사는 마법진의 중심에.
동심원으로 꾸며진 내부 마법진의 축에 서서 마력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쿠웅!
마법사들의 머리 위로 거대한 빛의 기둥이 세워지며 마법진이 밝게 빛을 뿜어냈다.
“와!”
찰칵! 찰칵!
미셸은 그 믿기지 않는 모습을 신기해하며 연신 카메라에 그 모습을 담았다.
그 마법진에서 쏟아진 빛이 중앙 게이트와 연결되자 기이한 마력의 파도가 게이트에서 뿜어져 나왔다.
마치 거대한 커튼이 바닥을 따라 펼쳐지듯, 게이트에서 쏟아져나온 마나의 흐름은 진주 빛 오색의 광채를 품고 바닥을 넘치듯 흘러나왔다.
아니 게이트를 중심에 둔 마법진이 게이트의 마력을 바깥쪽으로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고 있었다.
중앙으로 빨려들 듯 다섯 기둥이 뿜어내는 빛의 향연 속에 게이트의 소용돌이가 점차 흩어지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나타난 검은 옷의 헌터.
빌런이었다.
***
뚜벅뚜벅.
그는 활성화된 마법진 안으로 거침없이 걸어들어갔다.
그의 발걸음에 부서진 마법진이 하얗게 빛의 가루를 날리며 타올랐다.
미셸은 그 남자의 모습을 위험하다는 의식도 하지 못한 채 연신 카메라에 담았다.
아무것도 몰랐기에 그도 이 장엄한 연극의 한 명 배우라고 생각했다.
마치 영화를 보고 있는 것처럼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 남자는 거침없이 다가와 마력을 쏟아내고 있던 티베트 여승의 등 뒤에서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어?!”
그 검이 그대로 휘둘러졌다.
여승의 머리가 그녀가 뻗어낸 손 사이로 천천히 구르듯 떨어졌다.
마법진을 둘러싸고 그 광경을 보던 사람들 사이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끼야아악!!”
“테··· 테러다!”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찰칵!찰칵!찰칵!찰칵!찰칵!찰칵!찰칵!찰칵!
‘아!’
그 여승과 함께 마력 기둥의 한 축이 꺼지듯 사라졌다.
뒤틀어진 마력과 비틀린 공간이 기이하게 마력을 흘리며 틀어졌다.
드드드드드드
시간이 정지한 듯.
보라색으로 터져 오르던 마법진의 불꽃들이 일순 하늘에 붙박였다.
“아아앗!!”
“안돼!”
“모두··· 도망쳐요!!”
거대한 마법진 전체가 그 게이트 색깔로 물들었다.
빠져나가려던 빌런이 그 비틀린 게이트 사이로 가장 먼저 꺼지듯 사라졌다.
그리고 거울을 뒤집는 것처럼 미셸이 보고 있던 세상 전체가 순간 암흑으로 변했다.
***
미셸이 눈을 떴을 때.
천지 사방이 어둠에 싸여 있었다.
정말 자신이 눈을 뜬 것인지 감고 있는 것인지도 구별이 되질 않았다.
미셸은 암흑의 공간을 마치 유영하듯 떠돌고 있었다.
자신의 눈앞에서 천천히 돌고 있는 카메라.
손을 뻗어보았지만, 그 카메라를 잡을 수는 없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손이 닿질 않는다.
‘아아아!’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앞에는 거대한 반구의 땅이 검은 하늘 위에 떠 있었다.
천천히 돌고 있었다.
그 땅 위에선 예의 커다란 마법진이 심지가 타들어 가듯 마지막 보라색 광원을 뿜어내며 불티를 날렸다.
그렇게 마법진은 그 힘을 잃고 천천히 죽었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
그 자리엔 네 명의 마법사가 코와 입에서 피를 뿜어내며 힘겹게 서 있었다.
그들을 향해 예의 빌런이 검을 휘두르며 공격을 쏟아냈다.
촤앙!
쾅!!
반구의 땅이 빌런의 공격에 폭발하듯 터져나갔다.
귀가 먹먹했다.
폭발의 소리는 그렇게 크게 들리진 않았다.
소리가 아닌 울림만이 그녀에게 폭사 되었다.
그 폭발의 파동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는 그 반구의 땅에서 점점 멀어지며 빙글빙글 돌거나 밀려 나갔다.
겨우 자세를 바로 하고 바라본 반구.
쓰러져 있는 세 명과는 다르게 한 마법사가 그 빌런과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다.
황금빛 빛의 향연이 마법사의 손에서 춤을 추자 빌런은 몇 번 움찔거리더니 코와 입에서 분수처럼 피를 뿌려댔다.
“크아아아!”
검을 잡은 손끝에서부터 금색 빛 가루를 뿌리며
빌런은 천천히 무너졌다.
가루가 되어 타올랐다.
하지만 그도 가만히 사라지진 않았다.
마지막 발악.
빌런이 쏘아낸 무언가가 반구의 땅에 닿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반구의 땅은 온 사방팔방으로 초신성이 터지는 것처럼 붉은 흙과 화염을 뿌리며 폭발했다.
“!!”
파편들이 자신을 향해 쏟아져왔을 때,
미셸은 속절없이 죽는다고 생각했다.
아공간의 미아가 되어 영원히 암흑을 떠도는 상상이 머릴 스쳤다.
그때.
그 여파의 한가운데를 누군가가 깜빡이는 것처럼 나타났다.
번개처럼 자신의 앞에 나타난 것은 김민주였다.
“뒤!”
그녀가 미셸의 어깨를 붙잡곤 슬쩍 밀었다.
동시에 등 뒤에 생긴 마나의 파동.
“앗!”
미셸은 마치 거꾸로 번지점프를 하듯 다시 지상으로 튕겨 나왔다.
“여긴···.”
그곳은 전혀 다른 공간.
캘리포니아의 변두리 마을이 아닌 저 멀리 캔자스의 이름 모를 황무지였다.
눈앞은 넓디넓은 초원뿐.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밭만이 그녀를 반기고 있었다.
***
“저는 그곳에서 보름을 넘게 길을 헤매다가 극적으로 구조되었어요.”
“······.”
“카메라는 찾지 못했습니다. 아공간에서 분실한 거죠.”
“!!”
“겨우 전날 찍어 저장해두었던 당신 어머니의 사진이 그 사건, 기록의 전부예요. 그 사진만큼은 제가 따로 보관했었거든요.”
“···그렇습니까?”
“다른 모든 사진과 정보는 헌터 협회의 누군가가 나타나 거둬 가버렸어요. 던전의 게이트가 폭발했다는 기사가 났지만, 그 티베트의 여승을 죽였던 빌런도, 아니 다섯 명의 차원 마법사에 관한 이야기도, 어디에도 없었죠.”
“······.”
“저 또한 비밀 엄수를 강요받고 20년 가까이 숨어지내야 했습니다.”
그녀는 뭔가 시원한 듯 빙긋 웃었다.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는 이야기를 오늘 처음··· 당신에게 하는군요.”
그녀의 눈이 붉다.
울고 싶은 마음과 울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이 서로 실랑이하는 느낌.
“지난 25년 동안 그 사진을 보며 매번 고맙다고 말했었어요.”
“······.”
“아무도 들어주질 않았는데, 오늘은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서 좋네요.”
태훈은 방금 들은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랐다.
사고가 있었다.
다섯 차원의 마법사는 게이트를 없애는 마법진을 활성화하고 있었다.
그리고 빌런의 침입.
예상치 못한 살인.
마력의 축이 무너지자 발동 중이던 마법진 전체가 아공간으로 무너졌다.
증조할아버지는 그 빌런을 죽였고, 엄마는 함께 휩쓸린 사람을 구했다.
그리고 그 모두는
아공간 속에···
깊게 가라앉은 눈.
태훈의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모두 차원 마법사들이다.’
그것도 자신처럼 이제 막 풋내를 벗어난 어설픈 초보가 아니었다.
완숙의 경지에 오른··· 외증조할아버지가 그 자리에 있었다.
대마법사.
만약 아공간에서 살아있었다면 쉽게 차원을 찢고 현실로 돌아왔을 터였다.
그렇다면 왜 돌아오지 못했을까?
첫 번째로 생각난 것은 마력 고갈.
만약 증조할아버지든 엄마든 마지막 마력까지 고갈되었다면···.
그 뒤의 이야기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대표님?”
“?!”
미셸은 생각에 잠겨있는 태훈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아. 예. 감사합니다.”
“이 사진 어떻게 전해드리면 될까요?”
태훈은 USB 메모리를 건넸다.
미셸은 태블릿에 그걸 꼽아 김민주의 마지막 사진을 복사했다.
“전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복사가 마무리되자 미셸은 자신의 낡은 태블릿에 있던 김민주의 사진을 지웠다.
“미셸 박사님.”
“네. 말씀하세요.”
“그 아공간에 대한 연구···.”
“?”
“제가 후원하겠습니다. 그러니 계속 연구를 진행해보시면 어떤가요.”
그녀의 멍한 얼굴.
하지만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다.
“하고는 싶지만···.”
“?”
“하려고 해도 이젠 할 수가 없습니다.”
“왜죠?”
“저희에겐 게이트를 함께 가줄 헌터도, 아공간을 열어줄 차원 마법사도 없으니까요.”
그 대답에 태훈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선작과 좋아요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겁게 보셨다면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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