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마무리

< 108화. 마무리 >
배규식은 숨이 턱까지 차올라 방망이질 치는 심장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히유우우우!”
차원문을 튀어나와 정신없이 달리길 잠시.
그는 임시로 만들어 놓은 대피소 겸 관제실로 들어올 수 있었다.
“···살았다.”
힘겹게 팔을 지지하고 터벅터벅 눈앞의 관제실로 올라갔다.
관제실 안에는 이미 와 있는 감규석과 대표인 강태훈.
벌써 자리를 잡고 감시카메라의 모니터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태훈이 그를 바라보며 웃는다.
“괜찮으시죠?”
“물론입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지금 상황은 어떻습니까?”
“스카우트한 용병들이 아주 잘 싸우고 있네요. 덕분에 작전은 성공입니다.”
배규식이 잠시 숨을 돌리고 메인 화면에 출력되고 있는 광장의 화면을 바라봤다.
-므아아아아아!!
-과직! 과지직!
-투다다다다다다
그곳에는 거대한 오우거 여덟 마리가 방금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강철 갑주를 입은 기갑전사들과 싸우고 있었다.
방금도 엄청난 무게의 탱크 같은 덩치의 갑주를 하늘 높이 들었다가 바닥에 패대기쳤다.
“어이쿠!”
“저건 죽었겠는데요?”
그러자 기갑병의 관절과 찌그러진 철판 사이로 붉은 피가 흥건하게 베어 나왔다.
“오우거들이 생각보다는 잘 하고 있네요.”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유리한 전투 상황과 별개로 태훈의 얼굴은 심각하게 굳어있었다.
태훈이 감규석에게 먼저 질문을 던졌다.
“어때 보이세요. 저놈들, 구미호가 나타나 현혹 마법을 뿌리면 버틸 수 있을까요?”
“흠. 내 경험으로는 조건이 된다면 버틸 수 있다는 쪽이야.”
“조건이라고 하시면···.”
“저 뿔 달린 보스 오우거가 문제지. 보스가 살아있다면 웬만해선 현혹은 잘 먹히지 않을 걸세. 저놈을 잡기 전에는 놈들을 포섭하기는 힘들 거라고 보네.”
“그렇군요.”
“저 오우거 보스가 마지막까지 버텨주길 바라야겠지. 그렇지 않다면 현혹에 걸린 오우거는 오히려 우리 적이 될 걸세.”
“구미호는 어찌 상대할까요?”
“대적해봐야지. 어찌 풀어내면 좋겠나?”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태훈은 자신이 생각한 가장 완벽한 방법에 대해 감규석에게 설명했다.
그리고 감규석은 이해했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자네 혼자 해결할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거기 떨어진다고 해도 저에겐 블랙이 있잖아요.”
간단히 설명한다면 아공간 차원문을 만들어 구미호를 그 구멍에 밀어 넣어보자는 것.
설명은 그렇게 했지만, 태훈에게는 그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었다.
감규석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그만의 필승 전략이었다.
***
“므아아아!!”
콰앙!
방금의 오우거의 발 찍기 공격을 가까스로 피한 강철 슈트의 조직원은 바닥을 몇 바퀴 구르더니 일어나 오우거에게 머신 건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드르르르륵
콰과과과과!
“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
하지만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오우거가 그대로 공중으로 뛰어올라 자신을 덮쳐왔다.
“치잇!”
비상탈출.
그리고 자폭 스위치.
둘을 조합해 누른 조종사는 상부의 뚜껑이 폭발하며 열리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몸이 엑소슈트에서 튕겨 나가는 걸 느꼈다.
“살았···”
텁!
공중으로 튕겨 나갔던 그가 또 다른 오우거의 손에 잡혀 놈의 입으로 그대로 들어갔다.
찢어지는 비명.
“으아아악!!”
과직.
오우거 한 마리는 강철 갑주를 깔아뭉개고, 그 앞에 선 오우거는 방금 튀어나온 인간을 맛있게 씹어먹고 있었다.
그때 들리는 기이한 소리.
삡- 삡- 삡- 삐~!
콰아앙!!
커다란 폭발과 함께 오우거 두 마리의 몸이 산산조각이 되어 날아갔다.
그와 함께 게이트에서 나왔던 강철 갑주의 각성자들도 함께 튕겨 날아간다.
다른 다섯 오우거와 보스 오우거가 잠시 귀를 두드리며 머리를 흔들더니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무아!”
“크아아아!”
“브아아!”
놈들끼리 이런저런 대화를 하더니 광장에서 물러나 나무를 하나씩 뽑았다.
던전의 시설물 중 기다랗게 생긴 전봇대나 조명등 같은 것들도 뽑아서 들고 돌아오기도 했다.
어떤 오우거는 방금 죽은 강철 갑주의 다리를 붙들고 있는 놈도 있었다.
그렇게 기다리길 잠시.
광장 중앙의 게이트가 또 한 번 크게 울렁거렸다.
무언가가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하얀 덩치의 수인이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수인은 마치 공작이 꼬리 날개를 펼치듯 일곱의 긴 꼬리를 펼쳐 보인다.
아직 다 자라지 못한 두 개의 짧은 꼬리가 달랑달랑 가장 아래쪽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구미호.
그녀가 주위를 살피며 말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오우거라니?”
그녀와 함께, 그 뒤로 수백 명의 흑사회의 조직원들이 그녀를 따라 오우거의 던전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
“놈이 나왔네요.”
태훈과 감규석은 트윈 헤드 오우거를 응원하며 우선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하지만 4미터 정도 크기로 몸집을 키운 구미호가 손을 한번 휘저어 가장 앞줄에서 달려들던 오우거의 머리를 참외 따듯 딱 떼어냈을 때, 이 전투가 그리 길게 이어질 거로 보이지 않았다.
태훈이 뒤를 돌아보며 배규식 헌터에게 물었다.
“이곳 던전은 자폭 모드가 있다고 하셨죠?”
“예. 자폭은 저 앞쪽 게이트의 입구 시설물이 폭발하는 겁니다. 만약의 사태에 오우거가 던전 밖으로 나가는 던전 웨이브를 막으려는 조치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저 싸움이 이어지고 있는 광장과는 반대쪽, 던전의 입구에 관문 형태로 만들어져 있는 성벽이 오우거를 마지막까지 막지 못했을 때 폭발하며 무너질 수 있다는 이야기.
그럼 그 잔해에 게이트가 막히고 한동안은 오우거가 던전 밖으로 나오진 못한다.
예전 신성 길드에서 관리할 때 마지막 최후의 수단으로 만들어 둔 것이었다.
잠깐 대화하는 동안 벌써 구미호는 두 번째 오우거의 머릴 따내고 세 번째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거대한 화염구가 놈들의 방향으로 날아가 떨어졌지만, 뒤에 따라 들어온 각성자들이 펼친 보호막에 막혀 큰 피해를 주고 있지는 않았다.
“어찌할까요?”
“우리도 나가보세.”
태훈은 고개를 끄덕이고 배규식에게 말했다.
“만약 놈들이 성벽으로 나가려 한다면 그땐 시설을 폭파해버리세요.”
“괜찮겠습니까?”
“저들은 모두 빌런입니다. 한 명도 살려서 내보낼 생각은 하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배규식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도 상황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마령의 소환수를 사용하는 놈들이 무슨 인간이겠는가?
“조심하십시오.”
“그럼 부탁합니다.”
배규식은 관제실의 기계들을 급하게 뜯어내 비밀스러운 공간에 새로운 관제실을 만들라는 명령에 요 며칠 투덜거리긴 했지만, 이렇게 대규모의 빌런들과의 전쟁을 진행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 신성 길드에 있을 때와는 다른 소속감에 힘이 불끈 솟는다.
그간 어쩌다 길드가 보여준 행보는 그에겐 신세계와 다름없었다.
중풍에 시달리고 있는 노모를 위해 힐러 20명이 찾아왔을 때는 눈물이 앞을 가려 감사의 말도 전하지 못했었다.
가고일을 타고 날아가는 태훈과 감규석을 보며 배규식은 이 전투가 끝나고 나면 이 길드는 전혀 다른 행보를 걷게 되리라 예상했다.
그리고 그 행보에 자신도 함께라는 점이 마냥 즐거웠다.
이제껏 적이라고만 생각했던 오우거들이 힘겹게 상대와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보며 처음으로 힘껏 오우거를 응원했다.
제발 한 놈이라도 더 죽이고, 한 놈이라도 더 잡아먹기를.
“크흐흐흐. 잘한다!”
자신이 오우거를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 웃긴 상황을 생각하니 실소가 터져 나왔다.
“크흐흐 그래 잘한다. 밟아!! 찢어버려!!”
그는 저 뿔달린 보스 오우거가 제발 구미호를 상대할 수 있기를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
태훈과 감규석은 곧바로 가고일을 타고 전투가 진행되고 있는 광장으로 날아갔다.
그곳에는 겨우 오우거 세 마리와 보스 오우거 하나가 남아 힘겹게 놈들과 대적해 싸우고 있었다.
남아 있는 놈들은 대부분 트윈 헤드 오우거였다.
“여기서 내리죠.”
태훈과 감규석은 놈들이 멀리 보이는 자리에서 가고일부터 내렸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저 SS 급 구미호에게 블랙과 그린이 다칠 위험이 있었다.
“너희는 여기서 기다려!”
“쿠어엉!”
“아니. 괜찮으니까 여기서 무조건 기다려라.”
“쿠엉!”
이놈들을 다시 돌 조각으로 만들어 아공간 창고에 넣어 가고 싶었지만, 그 변신을 기다릴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급하게 달려 나가는 감규석을 따라 태훈이 먼저 공간을 압축하며 【단축】을 시전했다.
파바방!
공기 터지는 소리가 던전을 메아리쳤다.
“가세요!”
감규석에게는 보호막을.
그리고 자신은 높이 뛰어올라 꾸역꾸역 빌런을 토해내고 있는 게이트부터 가서 잠갔다.
차원문의 마력을 흩어내자 공간이 일그러지며 타원형으로 소용돌이치고 있던 게이트가 서서히 흩어졌다.
“앗!”
“게이트가 닫힌다!”
“모두 물러서!!”
게이트가 닫히자 놈들은 우왕좌왕.
아마도 이쪽 차원문을 없앴으니, 중국 상하이 극장 무대 위의 게이트도 사라졌으리라.
저쪽 중국에서 들어왔다가 이리 나가지 못한 빌런들이 아공간으로 튕겨 나갔다면 좋았겠지만, 실상은 그렇게 되진 않았다.
한번 만들어낸 차원문의 한쪽만을 사라지게 하는 것은 전혀 다른 기술.
차원의 링에서 기계적으로 분리한 아공간을 없애는 것과는 전혀 상황이 달랐다.
게이트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구미호가 먼저 괴성을 질렀다.
“이놈! 어디냐!”
분노한 그녀가 강력한 얼음의 주문을 펼쳐 보였다.
***
태훈의 【용안】으로 살펴본 그녀의 능력은 네 가지.
【수인화-구미호】, 【현혹(眩惑)】, 【설화(雪華)】, 【흡정기(吸精氣)】
하얀색 은여우여서 그런지 빙결의 주문이 손에서 쏟아졌다.
파바바박!
방금도 그녀의 손에서 쏟아져나온 수십 발의 얼음 창이 태훈과 감규석이 달리고 있는 방향으로 날아들었다.
그 얼음창을 검기로 갈라내며 감규석이 먼저 길을 열었다.
그사이 교묘하게 감규석에게 날아오는 얼음 창은 태훈이 【확장】의 기술로 막아냈다.
“저쪽 놈입니다.”
태훈과 감규석이 노리는 것은 얼음창을 쏟아내는 은여우도, 화염구를 날리며 그에 대응하는 트윈 헤드 오우거도 아니었다.
바닥에 죽어서 뒹굴고 있는 오우거 세 마리의 시체.
저 강철 갑주의 자폭 공격에 흔적도 없이 날아간 오우거 둘을 제외하고, 온전한 형태로 죽어버린 오우거의 시체 안에 잠자고 있는 ‘혈마석’이 그 목표였다.
“왼쪽부터요!”
“알겠네.”
지금 태훈에겐 중국에서 이곳 오우거 던전으로 오는 차원문을 열어낸 것만으로도 용의 마력의 5할을 소모한 상황.
거기에 자잘한 마법과 좀 전 배규식과 셋이 함께 이동하느라 거의 기운을 소진한 상황이었다.
다른 것 보다 저 은여우나 트윈 헤드 오우거를 동시에 상대하려면 ‘혈마석’을 이용한 마력 충전부터 선행해야만 했다.
감규석이 구미호에게 죽은 오우거의 머릴 반으로 가르며 그 속에서 꺼낸 혈마석을 태훈에게 던졌다.
“여기!”
“예!!”
날아오는 눈 폭풍을 감규석이 잘린 오우거의 머리를 발로 차 막고 그 틈을 비집고 태훈이 블링크로 몸을 날려 다음 오우거 시체로 달려갔다.
“둘이면 되겠나?”
“셋이요!”
“알겠네.”
“쿠어어어!!”
거대한 화염구가 날아와 바닥에 박히며 커다란 불꽃을 만들어냈다.
그사이를 둘이 힘껏 뛰어올라 누운 오우거의 다음 시체를 향해 검을 뿌렸다.
“여기!”
텁!
“앞으로 하나만 더요!”
“오케이!”
한 개의 혈마석만 더 모은다면 태훈은 또 한 번 저 은여우와 트윈 헤드 오우거도 데려갈 수 있는 거대한 게이트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지막 오우거의 시체로 달려가는 순간.
바닥에서부터 기이한 형태의 얼음벽이 튀어나와 태훈과 감규석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와 함께 번개처럼 달려온 은빛 구미호.
그녀의 손에서 길게 자라난 얼음 창이 다발로 송곳처럼 태훈과 감규석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이 쥐새끼들 무슨 짓을 하는 것이냐?”
또 다른 방향에선 보스 오우거의 화염구가 구미호를 향해, 아니 보스 오우거와 구미호 사이에 있는 둘을 향해 날아들었다.
***
“위험!”
태훈은 본능처럼 움직였다.
얼음창을 피해 뛰어오르려는 감규석의 어깨를 붙잡아 거대한 오우거 시체의 베어진 상처로 밀어 넣었다.
그러면서 감규석을 감싸듯 몸을 구부리며 신룡의 갑주에서 다시 보호막을 불러냈다.
최대한 작고, 최대한 단단하게.
콰-앙!!
“크아아아앗!!”
[보호막의 방어력을 뛰어넘는 공격으로 인하여 보호막이 깨집니다.]
[신룡 파르데나안의 갑주가 당신을 얼음 창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합니다.]
[신룡 파르데나안의 갑주가 당신을 화염의 구 공격으로부터 보호합니다.]
이글이글 타들어 가는 화염의 공격과 얼음창의 날카로운 공격 모두를 갑주가 막아냈다.
자신과 감규석이 보호막과 함께 오우거의 시체로 파고들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공격을 막아냄과 동시에 오우거의 시체 속에서 감규석이 검격을 날렸다.
죽어 누워있던 오우거의 시체가 갈라지며 마지막 세 번째 혈마석이 태훈의 손으로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됐습니다.”
태훈의 눈이 황금색으로 밝게 빛났다.
선작과 좋아요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겁게 보셨다면 부탁드려요.
- 작가의말
삼연참은 무리입니다.
마무리가 아니어서 죄송합니다아아.
(^-^*);
연참을 하고 제목도 마무리 라고 지었는데 막판 마무리가 부족했네요.
내일 회차분에는 분명하게 마무리 하는 걸로...
조금만 기다려 주시어요.
읽어주셔서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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