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인공위성
< 124화. 인공위성 >
연구동의 한가운데 뚫려있는 거대한 아공간 게이트.
직경이 6미터 급에 달하는 이 게이트는 이틀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점점 작아지더니 사라져버렸다.
그 상황에 놀라 연구원들은 모두 패닉이 되었다.
연구원들은 다급하게 태훈에게 달려왔다.
“죄··· 죄송합니다. 아공간 문이 그만···. 사라져버렸습니다.”
“아. 제가 설명을 안드렸군요. 자연스러운 상황입니다. 제가 각성능력으로 만든 게이트는 마력이 떨어지면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됩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랬군요. 저희는 저희가 실수를 했다고 생각해서···.”
“전혀요. 필요하시면 제가 다시 바로 만들어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연구를 지속하려면 항상 아공간이 열려있어야 맞았다.
그래서 태훈은 시화호의 남은 두 개의 마나 와류지의 한 곳에 새롭게 피라미드를 쌓고 위치를 맞췄다.
그리고 대장간에 최대한 큰 규격의 차원의 링 제작을 의뢰했다.
놀란 주진환이 태훈에게 한 번 더 의뢰 내용을 묻는다.
“예? 링이 두 겹이 아니라 한 겹이면 된다고요?”
“네. 아공간만 활성화 시키면 돼서요. 최대한 크게 만든다면 얼마나 가능하실까요?”
“그렇다면 최대 직경 3.5m까지는 가능할 겁니다.”
“네. 그 정도면 충분하겠습니다.”
그렇게 제작된 아홉 번째의 차원의 링이 타임 톨게이트에 세워졌다.
그리고 9번째 피라미드는 연구원 외에는 출입 불가.
그 어디에서도 관찰할 수 없도록 튼튼한 건물로 전체를 막았다.
건물 외벽엔 거대한 전광판을 설치해 계속 영상이 흘러나오도록 만들어 어쩌다 길드의 헌터들이 등장하는 다양한 영상을 항상 상영했다.
그 건물 앞을 지나는 관광객들은 눈을 떼지 못하고 그곳 앞에 모여들었다.
“이야아 큰 화면으로 보니까 더 이쁘네···.”
“안 갈 거야? 도대체 언제까지 여기서 있으려고? 이러면 우리가 여길 이용할 이유가 없잖아!”
“아니. 나라고 안 가고 싶었나? 자동으로 눈이 가는 걸 어떻게 해?”
“어? 최선희다.”
사람들은 그 거대한 전광판 앞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하고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곤 황급히 자신의 목적지로 달려가곤 했다.
[타임 톨게이트]를 이용하는 이들은 모두가 그 건물이 연구동이 아닌 전광판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 전광판을 지나며 화면에 눈길을 주지 않는 단 한 부류.
다크 서클 가득한 연구원들만이 묵묵히 그 앞을 지날 뿐이었다.
***
아공간 차원의 링이 완성되자 [타임 스페이스]의 연구원들과 미셸 박사는 본격적으로 아공간의 특성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실험용 드론 백칠십네 번째 탐사를 진행합니다.”
“출발!”
위이이이잉--
작은 조사용 드론을 공간에 날려 대기를 분석하고 채취했다.
중력파를 검출하기 위해 검측기를 넣어보기도 하고 여러 방향으로 레이더를 조사해 안쪽의 상황을 살펴보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그 데이터를 통해 준비하던 인공위성의 설계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이 도출되었다.
“1기압에서부터 0.94기압까지 약간 불균형하게 대기가 조성되어있네요.”
“그럼 어찌 되었든 기압이 변화한다는 상황은 그 중심이 있다는 이야기군요.”
“단언하기는 힘들겠지만, 아주 미약하게라도 중력이 작용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아공간의 대기 온도는 대략 영상 4도.
아공간이 진공이 아니라 지구와 비슷한 환경의 대기가 존재한다는 것.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게이트가 열림과 동시에 진공청소기에 빨려 들어가듯 지구의 대기도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 사라졌을 터였다.
수분기가 거의 없는 대기 환경
“대기가 엄청나게 건조하네요.”
“저런 공기로 호흡하다가는 몇 시간 안에 기관지나 폐의 점막이 말라서 찢어져 버릴 겁니다.”
“그러니 이곳에서 미아가 되면 시체가 미라가 되는 거겠죠.”
“이건 자연적이지가 않아요. 절대로···.”
대기의 조성도 지구와 비슷하여 연구원들 모두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결과적으로 아공간의 대기를 연구한 전문가들은 이곳이 우주의 빈 공간이 아닌 임의로 설계된 ‘던전’의 또 다른 형태가 아니겠냐는 태훈의 추론에 손을 들어줬다.
태훈은 거기에 자신의 의견을 더했다.
“저는 이 아공간이 던전과 던전을 연결하기 위한 완충지 역할을 하도록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공간이 아닐가 합니다.”
“대표님께서 혹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라도···”
“그 공간이 공기 뿐만이 아니라 마나로도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제 각성 능력으로 살펴본 바로는 일반적이지 않은 두꺼운 마나로 이 공간은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태훈의 【용안】으로 살펴본 아공간의 마나는 보라색.
거의 흑사회의 나위천이 뿜어내던 마령의 기운과 비슷한 마나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그러면 마력량 측량도 실시해보겠습니다.”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연구원이 아공간을 마나를 검출할 수 있는 영상 장비로 촬영한 것에는 거대한 마블링이 찍혀있었다.
그리고 그 마블링의 영상을 수십 배속으로 빠르게 돌리자 아주 천천히 흐르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만히 수치를 확인하던 미셸 박사가 말했다.
“이곳이 중심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아주 미세하지만, 어딘가로는 분명 공간에 흩어져 있는 물건들이 모이는 장소가 있다고 생각돼요. 대기의 밀도가 당연히 그것들을 모이게 할 겁니다.”
“맞습니다.”
연구자들은 만유인력의 법칙은 마나가 가득 차 있는 던전 안에서도 당연하게 적용될 거라는 추론.
영화에서 보면 가끔 나오는 난파한 배들이 모여있는 심해의 무덤이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태훈은 연구자들의 의견을 들으며 그 장면을 상상했다.
“그 중심이 어디냐를 알아내는 것이 저희 연구의 핵심이겠군요.”
“네. 그곳에 우리가 찾고자 하는 것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니 금세 성과가 나온다.
연구원들은 미셸 박사를 통해 이미 태훈이 아공간에서 무엇을 찾고자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25년 전에 실종된 상태이니 엄마와 증조부의 유해일 터.
아마 바짝 마른 미라의 형태로 저 어둠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 것이었다.
그 덕분에 자신이 이제껏 미뤄왔던 항공 우주 연구도 본격적으로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고.
그래서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 한국인은 ‘정’에 약하고, ‘효’엔 더 약하다.
연구원들은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노력했다.
그 결과 설계와 함께 모형의 시제품도 빠르게 제작되었다.
***
“준비한 인공위성의 실재 제품이 완성되었습니다. 모델 A 입니다.”
태훈의 눈앞에는 아공간 탐사를 위한 첫 번째 인공위성이 완성되어었다.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던 태훈의 눈은 어느 때보다 진중한 모습이었다.
“공기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인공위성의 형태는 유선형의 쐐기 모양입니다.”
특이한 모습.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 인공위성 모델 A의 형태는 날렵한 미사일.
아니 이쑤시개를 닮았다.
“그리고 뒤편으로는 마나의 유동과 공기 밀도의 흐름을 감지하는 센서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날개를 움직여 가장 밀도가 높은 곳으로 찾아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했습니다.”
즉, 길게 꼬리 같은 유연한 날개를 달았다는 것.
이쑤시게 같은 몸체에 화살같은 날개가 달리고 그 뒤로 꼬리연의 긴 꼬리가 이어졌다.
전체적인 원리는 우리가 흔히 발로 차며 노는 ‘제기’.
원리도 인공위성의 헤드가 더 밀도가 높은 쪽으로 향하도록 만들고 마나의 유동에 따라 자연스럽게 중심으로 흘러 들어갈 수 있도록.
그 긴 꼬리 덕에 인공위성은 항상 아공간의 중심을 향해 나아갈 것이었다.
“이 형태라면 저 아공간 안에 물체들이 모이게 되는 장소로 이 인공위성을 인도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위치를 실시간으로 기준점에서 모니터링할 수 있습니다.”
“예상되는 문제는 따로 없을까요?”
“문제는 시간이죠. 얼마나 많은 시간을 떠돌아야 하는지··· 그건 알 수가 없을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설계대로 제작이 진행되는 데 얼마나 시간이 필요할까요?”
“이미 시제품 48기가 완성단계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요?”
“이게 추진체도 군용 미사일에 사용되는 모양이라 따로 만들 필요가 없거든요. 거기에 우주에 올릴 것도 아닌 이상 제작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진 않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세상 밖의 한 달은 시간차 던전에서는 3개월.
곧 시제품이 아닌 진짜 제대로 된 성능의 인공위성이 완성되었다.
연구원들은 두 번째 설계와 다르게 더 얇고 바늘처럼 긴 형태의 제작품을 최종으로 선보였다.
그 뒤로 로켓포와 마찬가지로 커다란 추진체의 2단 로켓이 완성 형태로 등장했다.
“공기 저항을 최소로 하면서 추력을 가장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형태로 발전한 모양입니다.”
이쑤시개처럼 긴 형태가 바늘처럼 얇아졌다.
그것보다 열 배는 길게 천으로 된 꼬리를 내려 암흑 속으로 날아갈 첫 시제품이 완성되었다.
***
완성된 인공위성이 속속 아공간에 자릴 잡고 위치했다.
우주복을 연상시키는 작업복을 입은 작업자들이 무중력의 공간에서 미사일처럼 생긴 인공위성을 조립했다.
이 인공위성은 날아간 후 5분 뒤부터 꼬리에서 일정 시간마다 하나씩 작은 GPS 유도체를 떨군다.
이건 미셸 박사의 연구.
그 GPS 유도체들이 아공간을 유영하다가 다른 던전의 게이트로 빠져나가게 된다면 또 다른 아공간 지도를 만들 수 있지 않겠냐는 가설.
아공간에서 미라가 된 미아들이 발견되는 상황에서 이 공간이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지 밝히는 방법이 될 터였다.
그 GPS들의 사라진 위치와 세계에 실존하는 던전 게이트의 위치가 매칭될 때 아공간이 어떤 형태로 만들어졌는지 확인하는 것이 이 연구의 또하나의 목적이었다.
이 인공위성을 360도 전 방향으로 발사할 계획.
“오늘이 드디어 발사네요.”
“그렇군요.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미셸 박사와 태훈은 간단하게 식사를 마무리하고 인공위성이 제작되고 있는 연구동으로 향했다.
그곳엔 벌써 연구원들이 다양한 장비를 아공간으로 옮기고 있었다. 태훈이 훌쩍 날아가 살펴본 아공간.
그곳엔 제법 규모 있는 형태로 제작된 발사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발사대라고 하여도 모양이 이상했다.
“이건 대포네요?”
“하하하. 대포라고 표현해주시니··· 그렇게도 볼 수 있겠군요.”
“대포라고 표현하기보다는 무반동포가 가장 적절한 표현입니다.”
한 마리로 추력을 뒤쪽으로 뿜어내며 날아갈 로켓을 붙잡고 있는 형태였다.
“어떻습니까?”
“최종으로 확인된 추력으로는 마하 7의 속도로 1,800km까지 날아갑니다. 그리고는 자유 유형의 형태로 바뀌어 마나와 공기의 흐름에 따라 흘러가게 되겠죠.”
“우주하고는 다르네요.”
태훈이 처음 예상한 아공간의 탐색 범위는 수백억km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공간엔 공기와 마나가 가득 채워져 있다.
마찰부터 공기 저항까지 많은 문제가 존재했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25년 전 사라진 엄마와 증조부도, 그 거대한 땅덩어리도 그렇게 멀리까지 날아가진 않았을 수도 있다는 작은 희망.
“그럼 발사하겠습니다.”
첫 모듈은 360도를 팔 등분 한 세트로 가로, 세로, 좌, 우. 4세트.
즉 32개의 인공위성이 전 방위로 발사될 계획이었다.
마치 포병처럼.
철모를 쓴 연구원들이 아공간에서 거의 30미터나 되는 대포의 방향을 조정했다.
“아공간 탐사체 001호 발사합니다.”
“쓰리”
“투”
“원”
“발사.”
쿠아아아아아!!
아무것도 없는 검은 공간으로 인공위성이 불꽃을 뿜으며 날아갔다.
태훈의 염원을 실은 검측 위성이 거친 화염을 뿜어내며 사라져갔다.
‘부탁한다.’
태훈이 감상에 젖을 사이도 없이 연구원들은 작업을 서둘렀다.
“위치 잡았습니다.”
“아공간 탐사체 002호 발사합니다.”
연구원들은 같은 작업을 서른두 번을 하고서야 아공간에서 돌아올 수 있었다.
***
몇 주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삡- 삡- 삡- 삡-
미셸 박사는 인공위성이 보내온 신호를 해석하고 영상을 출력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그 연구소로 소식을 듣고 온 태훈이 헐레벌떡 찾아왔다.
“미셸 박사님?”
“어서 오세요. 대표님.”
“찾았습니까?”
“아··· 음. 우선 일단 와서 한 번 보셨으면 해서요.”
미셸은 연구소 한쪽에 마련된 관제실로 태훈과 함께 들어갔다.
그곳엔 32기의 인공위성이 보내오는 영상과 데이터들이 실시간으로 정리되고 있었다.
공간을 넓게 스캔하며 날아가고 있는 인공위성들.
이미 공기 저항과 추력을 상실한 위성들은 가만히 정지한 듯 떠 있거나 아주 천천히 어딘가를 향해 흘러가고 있을 터였다.
미셸 박사가 화면을 조정하자 커다란 둥근 원의 형태로 인공위성 32기의 위치가 잡혔다.
“여기에서 발견한 물건들을 보여드릴게요.”
그 화면에서 인공위성의 궤적과 그 위성이 지나가면서 발견한 물건들.
첫 번째로 확인한 것은 오백원짜리로 보이는 동전이었다.
그 외에도 영수증 조각과 담배꽁초.
그리고 신발 한 짝이 보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예전 흑룡 길드 시절의 박찬만과 세 명의 헌터들이 차원의 링을 훔쳐보려다가 테러에 당해 아공간을 헤맬 때 흘렸을 거로 추정되는 물건들.
그 물건들이 흘러가 노량진 던전에서 만든 아공간과 1,850Km 떨어진 지점에서 발견된 것.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미셸이 화면을 좀 더 키우자 인공위성들이 지나가는 궤적으로 다양한 물건들이 떠다니는 모습이 잡혔다.
대부분은 작은 모래, 돌과 흙. 나뭇잎과 같은 자연물.
그것들의 위치가 붉은색 포인트로 표시되자 검었던 공간에 붉은 점들이 화면 가득 찍히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점들이 점점 많은 숫자로 불어나고 있었다.
“기준선에서 정북 방향입니다.
“이렇게나 많았나요?”
“저 지역만 특히 그렇습니다.”
“수가 계속 불어나네요?”
“네··· 발견되는 이물질의 밀도도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정말로 저 방향에서만 발견되고 있군요.”
“네. 맞아요.”
그리고 나타난 적외선 사진.
그 사진을 드래그해서 확대하자 제법 큰 물건이 나타났다.
천천히 월면을 돌 듯 유영하는 물체.
“카메라?”
태훈이 미셀을 바라봤다.
그리고 미셸도 태훈을 바라본다.
“저··· 저건.”
예전 미셸이 학술대회에서 말했던.
엄마를 찍었다던 바로 그 카메라임이 분명했다.
“정말 그 카메라라고 생각하세요?”
“제가 제 카메라를 왜 모르겠어요.”
미셸의 눈에는 무언가 모를 회한과 함께 눈물이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거리는요?”
“상당히 먼 거리입니다. 위성이 적외선 레이더로 파악한 상황이라서···”
“얼마나 되는데요?”
“이 아공간 게이트에서 정북 쪽으로 344,560km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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