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심층부
< 127화. 심층부 >
타닥타닥 타다닥
전면부의 유리창에 무언가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레이더로 확인한 것들은 대부분 모래나 작은 자갈들.
그 25년 전 사라졌던 둥근 대지의 파편들이었다.
탐사선이 그 부유하는 이물질들 때문에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크···.”
[대표님, 속도를 최대한 줄이세요.]
“알겠습니다.”
속도를 거의 10km/h까지 줄이고 천천히 다가갔다.
[전방 30m입니다.]
“저기 보이네요.”
태훈은 커다란 잠자리채를 들고 탐험선의 천장으로 나갔다.
온몸을 보호막으로 두르고 탐험선의 라이트에 의지해 정면을 살폈다.
저 앞.
천천히 돌고 있는 디지털카메라.
투박한 모양이 초기 DSLR이였다.
휙!
“잡았다.”
[찾으셨나요?]
미셸 박사의 떨리는 목소리.
그녀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온다.
“네 수거 완료했습니다.”
[아···, 고생하셨습니다.]
카메라를 살펴봤다.
배터리만 방전되었을 뿐 멀쩡한 모습.
태훈은 그 위치에 움직이지 않도록 탐사정을 고정한 채 심장의 마나 서클에 집중했다.
그리고 바로 아공간의 공중에 차원문부터 열었다.
곧장 노량진 던전에 위치한 연구동 [타임 스페이스]의 격납고가 보인다.
그 구멍을 통해 들어가자 부서진 목재 가옥을 조사하던 연구원들의 깜짝 놀란 얼굴.
“으앗! 깜짝이야!”
“게이트다! 게이트가 나타났어! 보안팀에 신고부터···”
“어? 대표님? 대표님이셨습니까?”
태훈은 방긋 웃는 얼굴로 그들에게 인사했다.
“잘 지내셨죠? 놀라게 하려는 계획은 아니었습니다. 미셸 박사님은요?”
“중앙 관제 센터에 계실 겁니다. 항상 거기에 계시거든요.”
“알겠습니다.”
연구원은 무슨 귀신을 만난 것처럼 얼굴이 하얗게 되어서 태훈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정말 그 각성 능력이라는 게 대단하긴 대단하네···. 그 먼 거리에서 어느새···”
“어디든 차원문을 만들어 왔다 갔다 할 수 있다니···, 저런 각성 능력이면 거의 무적 아니냐?”
“일반 헌터의 전투력하고는 확실히 다르지.”
“야. 모여봐. 만약 저 능력이 있다면 말이야···”
연구원들은 태훈이 사라지기가 무섭게 머리를 맞대곤 뭔가 또 다른 아이디어를 서로 쑥덕이기 시작했다.
***
중앙 관제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미셸 박사는 정문으로 태훈을 맞이하러 달려 나왔다.
“정말로 바로 오셨군요. 이렇게 빨리 돌아오실지는 몰랐네요.”
“안녕하세요. 박사님. 아, 방금까지 통화했었죠. 통신에서 들을 때랑은 목소리가 많이 다르시네요.”
“천천히 말한다고 하긴 했는데··· 대표님 목소리도 지금은 너무 빨라서 어색하네요.”
“아하하. 그렇군요.”
근 한 달
3배의 시간차가 만들어냈던 통신 상황이 만들어낸 어색함.
한쪽이 무조건 3배 빠르거나 느리다고 느끼는 그 상황 자체가 사라지자 평범한 목소리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어색함이 차츰 사라질 때쯤.
태훈이 생각이 났다는 듯 어깨에 메고 있던 카메라를 내려 고쳐 잡았다.
“자, 여기요.”
그리고 25년간 아공간을 떠돌았을 그녀의 카메라를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
그녀는 아주 소중한 것을 받아내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잡았다.
그리고 카메라 한쪽을 누르자
탈칵!
검은색 작은 메모리 카드 하나가 튀어나온다.
[128MB]
참 작은 용량이다.
미셸 박사는 눈물 가득한 얼굴로 태훈을 보며 말한다.
“그러면 같이 확인해보시겠어요?”
***
128메가의 메모리카드엔 총 326장의 사진이 들어있었다.
대부분 초반에 나온 사진들은 거대한 마법진의 모습들.
그 사진들을 바둑판처럼 나누고 일련번호를 옆에 적은 판넬과 함께 찍고 있었다.
마법진 사이에 가끔 자신이 먹었던 샌드위치나 음료의 모습이 찍혀있다.
그리고 마법진을 살피는 일군의 사람들.
“여기 이분들이 차원 마법사들입니다.”
“!!”
간간이 발이나 먼발치에 등돌아 서있는 엄마의 모습이 덜컥덜컥 나올 때마다 태훈의 심장이 아른하게 져려왔다.
그리고 큰 키에 긴 수염을 달고 있는 증조할아버지의 모습.
저 나이면 여든이 넘었을 나이인데도 젊고 정정한 모습에 감탄이 나왔다.
‘던전에서만 계셔서 나이를 안 드신 걸까?’
다른 차원의 마법사들도 보였다.
한 명은 터빈을 쓴 근육질의 아랍계, 다른 사람은 키가 큰 깡마른 인도의 고승.
나머지 한 명은 흑사회의 총회주에게 죽었다던 티베트의 그 여승려다.
“넘기겠습니다.”
“네···.”
사진을 넘기자 저번 학술 행사 때 받았던 쓸쓸한 모습의 엄마의 단독 사진.
그 사진의 원본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어진 문제의 그 장면.
드디어 마법진이 운영되고 밝게 빛나는 마법진 전체의 모습이 사진에 드러났다.
“와···”
거대한 마법진은 축구장 두 배의 크기.
그 크기를 아울러 밝은 빛의 마나광이 마법진 전체를 두르며 퍼진다.
중심엔 다섯 빛의 기둥.
기둥에는 한 명씩 차원 마법사가 마력을 쏟아내며 각각의 포즈로 정 중앙에 위치한 게이트를 닫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흔들린 카메라가 잡은 곳
흑색의 무복.
그가 마법진을 뚫고 빛의 기둥 중 하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의 발아래로 부서지는 마법진, 마법석 가루들이 하얗게 날렸다.
태훈이 여우 구슬의 기억에서 본 인물.
저 검은 옷의 사내가 바로 흑사회의 전대 총회주인 ‘흑사’일 것이리라.
그가 맞았다.
거침없는 손속.
사진의 이미지만으로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그의 검에 비구니 여승의 목이 날아갔다.
이어진 사진은 비틀리는 마법진과 갑자기 흩어지는 마나들.
폭발하는 마력광
“잠시만!!”
태훈은 마지막 마법이 깨지며 마나가 흐트러지는 상황을 보여주는 사진 중 한 곳에 잡힌 게이트의 모습을 살펴봤다.
“여길 좀 확대해주세요.”
해상도가 그렇게 크지 않은 사진은 픽셀이 선명하게 보인다.
조금만 확대해도 깨지는 화면.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여전히 게이트의 모습이 온전히 마블링을 품고 소용돌이치고 있다는 것.
‘아직도 살아있어···.’
닫지 못했다.
완벽한 실패다.
게이트를 닫기 위한 마법진의 마법은 분명 저자에 의해 중간에서 취소되었다.
그 마지막 사진은 낭패한 차원 마법사와 의기양양한 흑사의 모습이 하얗게 흩어지는 마법진의 마력석 가루 사이로 찍혀있었다.
태훈이 키보드로 손을 올렸다.
미셸 박사가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잠시만···.”
탁탁탁탁!!
키를 눌러 빠르게 마지막 사진들을 돌려본다.
그러자 마치 애니메이션처럼 뚝뚝 끊어지지만, 현장의 상황이 그대로 전해졌다.
영상 속 구석의 거대한 빛의 기둥에서 현장을 살펴보는 증조부의 모습이 눈에 걸렸다.
앞 사진은 하늘 높이 손을 올리고 있고,
그다음 사진은 그 손을 힘차게 내려뻗었다.
“주문!”
“네?”
“이순간 주문을 걸었어요.”
태훈의 눈이 가늘게 내려앉았다.
마력 폭주로 마법진이 폭발한 게 아니다.
한 명이 살해당한 순간 마법은 자동으로 취소되었다.
‘그렇다면···?’
실패를 직감한 증조할아버지가 일부러 마법진 전체를 아공간으로 옮겨버린 게 아닐까?
여러 컷의 사진을 번갈아 돌려보니 증조부의 흐릿한 모습이 명확하게 주문을 완성하는 모습으로 보였다.
태훈의 [용안]이 그 흐릿한 자세를 분석했다.
【확장】
【단절】
【······】
마지막 주문은 모르겠지만, 순식간에 세 개의 주문이 완성되었다.
“25년 전 그 사고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한 조치였네요”
의도된 전복.
그렇다면 아직 그 게이트는 아공간에 있다.
태훈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
삐이이이이--
관제 센터 전체에 울리는 경고음.
다른 화면에 집중하고 있던 연구원들이 박사를 찾는다.
“미셸 박사님!”
“네?”
“여길 잠깐만 봐주시겠습니까?”
적외선 레이더의 화상을 살피던 연구원이 자신의 화면을 중앙 관제실의 메인 화면으로 옮긴다.
“무슨 일입니까?”
“지금 대기 중이던 탐사선의 레이더가 무얼 발견한 거 같습니다.”
“?!”
원격으로 주변을 조사하던 레이더에 기이한 형태의 화상이 잡혔다.
“저건···”
어군 탐지기의 영상처럼 모노톤의 화면이었지만,
그곳엔 마치 은하처럼 거대한 조각들이 소용돌이치며 천천히 돌고 있는 모습이 선명하게 잡혀있었다.
***
위치는 카메라가 발견된 곳에서 더 심연으로 30만km
또 20일을 가야 할 거리였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언제든 돌아올 수 있으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알겠습니다.”
태훈이 카메라를 가지고 돌아왔던 격납고의 게이트도 아직 닫히지 않았다.
그길로 아공간으로 돌아온 태훈은 바로 탐사선의 조종석에 앉아 엔진의 추력을 높였다.
타다탁 부딪치는 이물질들.
벌써 유리창의 몇 곳엔 우리가 속칭 돌빵이라고 부르는 방사형의 균열이 생겨있었다.
삐잉- 삐잉- 삐잉-
충돌 방지 경고등이 계속 들어온다.
이어 들려오는 미셸 박사의 목소리.
[대표님? 속도를 200km 아래로 내려야겠습니다. 이물질이나 부유물과의 충돌을 회피하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속도로만 유지해주시길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크드드드드드득
작은 모래에 부딪히는 소리였지만, 선체가 유난히 흔들렸다.
시속 200km의 속도에 모래가 부딪혀도 이 정도 문제가 발생하는데, 초속 7.9km의 속도로 날아가는 인공위성이 우주쓰레기에 부딪힌다면 상상도 못할 데미지를 입을 터였다.
자동으로 항로를 계산하던 항법장치가 부유물을 발견하고 회피 기동을 하자 문제가 발생했다.
“으앗!”
탐험선이 자세 제어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며 마치 청룡열차를 탄 듯 곡예 운전을 하게 된다.
충돌을 막으려는 탐사선이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자 기우뚱하며 차체가 쏠렸다.
“으어어어엇!”
휙-
휙-휙-
키리링-
텅!
점점 심연으로 들어갈수록 무언가에 부딪히는 소리가 커졌다.
‘이거··· 심각한데?’
이전이라면 하나씩 수거해 자료로 남겼겠지만, 지금은 저 안쪽 깊은 곳에 소용돌이치고 있는 공간의 물질들을 확인하는 게 급선무.
그곳 어딘가에 엄마나 증조할아버지의 유해가 떠돌고 있다고 생각하니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하아···”
그때 미셸 박사에게서 새롭게 연락이 들어왔다.
[대표님?]
“네. 말씀하세요.”
[부유물들을 치워내는 새로운 방법을 방금 연구원들이 고안해냈습니다.]
***
지금 상황은 모래와 자갈이 뿌려져 있는 공간을 날고 있는 것과 같았다.
엔진도, 주 방향으로 들어가는 탐험선의 외부도 속도가 조금만 높아져도 데미지를 입었다.
이미 앞 유리와 전방의 철판은 곰보가 된 모양새.
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연구원들이 제안한 방법은 날아가야 하는 방향으로 먼저 추진체를 발사하자는 것.
[이 추진체가 발사되면서 뿜어내는 화염이 분명하게 행로에 위치한 모래와 이물질들을 밖으로 밀어내며 뚫어낼 걸로 기대합니다.]
[맞습니다. 이전에 준비한 인공위성의 발사용 추진제라면 충분히 여유도 있고요. 한 번 발사하면 일정 거리는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도록 확보해 줄 거로 기대합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해보죠.”
[격납고에 게이트 열어주세요.]
그래서 탐험선 밖으로 나가 제법 커다란 게이트를 열어 보였다.
미셸 박사가 연구원들을 아공간으로 보낸다.
“발사팀 들어가세요!”
윙슈트를 입은 연구원들이 긴 로프를 붙들고 아공간으로 넘어왔다.
커다란 기중기가 로켓을 들어올려 아공간으로 밀어 넣는다.
격납고에 비치되어있던 아공간 조사용의 인공위성용 2단 로켓.
그 로켓을 탐사선의 진행 방향으로 위치시켰다.
“탄두는 앞쪽만 무쇠로 채워져 있습니다. 안쪽은 모두 연료로 채운 것이니 최대한 멀리 길만 뚫어낼 거예요.”
“목표지점과 0.2도만 비틀어서 발사하도록 하겠습니다. 대표님은 잠깐만 비켜 계세요.”
“발사 준비 완료”
“아공간에 계신 연구원들 대피하세요.”
“대피 완료!”
“발사합니다.”
“쓰리!”
“투!”
“원!”
“발사!”
콰아아아아!
추진체를 발사했다.
그러자 탐사선의 조명에 무수하게 반짝이던 모래들이 뻥 뚫린 것처럼 구멍이 뚫렸다.
이물질들이 옆으로 퍼져나갔다.
“성공입니다.”
“좋네요.”
“최소한 2,000km마다 한 번씩 이렇게 주친체로 길을 뚫으면 될 것 같습니다.”
“레이더로 확인 완료했습니다. 기존 행로 상에서 99% 이상 이물질이 제거됐습니다.”
연구원들은 금방 태훈에게 손을 흔들곤 게이트에서 다시 노량진의 격납고로 돌아갔다.
“좋아···!”
이제 다시 여행은 온전히 태훈의 몫.
그기 탐험선으로 돌아오자 원본 차원의 링에서 튀어나온 미니언 족장이 도시락을 펼쳐놓고 태훈을 반긴다.
“오늘은 치킨셀러드에 참스테이크냐뇨”
“아니. 지금은 먹고싶지 않아. 먼저 좀 달려야겠어.”
“밥은 먹고 달려냐뇨!”
“아니야. 속도를 좀 높여두고 나중에 먹자.”
“으혜뇨~!”
태훈이 엔진 추력을 높이자 아까와는 다르게 이물질이 부딪치는 소리 없이 탐사선이 어두운 구멍 속에서 부드럽게 달렸다.
레이더에 비치는 검은 이물질의 소용돌이.
그곳이 분명 이 아공간의 무덤.
이곳을 떠도는 모든 부유물이 모이는 장소이리라.
“엄마···.”
태훈의 심장이 강하게 떨려왔다.
선작과 좋아요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겁게 보셨다면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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