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마령사(3)
< 118화. 마령사(3) >
창창쾅팡!
퍽퍽퍽퍽!!
힐러들은 힐 포션의 웅덩이에 빠져 발바닥부터 녹아내리고 있는 마수들을 향해 힐을 난사하고 모닝스타를 휘둘렀다.
“끼···에···에···”
“죽어!”
고통에 몸부림치다 물리적 타격을 받고 쓰러진 놈들은 모닝스타에 맞으면 폭발하듯 부서졌다.
그리고 그대로 포션 속에서 녹아내렸다.
물청소.
검은 곰팡이 얼룩을 청소하듯 태훈과 힐러들은 쉽게 쉽게 마수들을 물리쳤다.
그리고 그 덕분에 여유가 생긴 감규석.
그는 머리 위에 수많은 마령의 주문을 돌리고 있는 마령술사 나위천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를 막는 상급 마인들은 온몸에 구멍이 숭숭 뚫린 상태로 천천히 무너지고 있었다.
***
“이게 대체···”
마령술사 나위천은 도저히 자신의 눈에 보이는 지금의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상급의 마인이라면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온몸이 흑마석으로 이루어진 괴물들.
돌과 같은 단단함에 원소 마법은 무용지물.
거기에 A급을 능가하는 근접 무력과 형태를 변형해 공격하는 기술은 몇 마리만 뭉쳐도 S급 정도는 충분히 상대가 가능한 놈들이었다.
그런 놈들을 총 50마리나 끌고 왔다.
거기에 다른 하급까지 전체가 대기하고 있던 상황.
“이··· 이렇게 약하다고?”
문제는 이 여우 구슬이었다.
“제기랄!!”
여우 구슬의 마력은 넘치도록 충만했다.
하지만 이상했다.
여우 구슬을 취해 마력을 흡수하면 흡수할수록 의문은 더욱 커졌다.
“······.”
흑수한 마력은 마령의 기운을 북돋아 자신을 마령사로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온몸을 돌며 아픈 곳들을 치료했다.
마령의 주문을 완성하기 위해 날카롭게 갈아냈던 문신과 상처들까지 건들이자 마령과 동조하는 감각이 무너지는 느낌.
그 여우의 마력은 마령의 힘이 깃들어 있는 심장의 서클 근처에는 가지도 않고 따로 몸을 돌 뿐.
그 덕에 집중만 흩어졌다.
“여우 이 계집년이··· 대체 무슨 기운을 넣은 것이냐!”
나위천은 여우 구슬의 기운이 태훈에 의해 바뀌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거기에 다른 마력을 채워 넣을 수 있을 거로도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단지, 전대 총회주였던 장렌이 기이한 사술로 여우 구슬에 못된 장난을 쳐 놓았다고밖에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년이 죽으면서까지 나에게 저주를 걸었느냐!!”
전전대 총회주인 흑주를 죽이려 모의한 것은 자신이었다.
흑주가 용인의 여의주를 구하러 간다는 소식에 떠나는 그에게 사술을 걸었다.
그의 마령식이 완성하도록 지켜볼 수는 없었다.
그는 자신의 사부였지만, 자신에게 기회를 양보할 위인이 아니었다.
사부는 여우 구슬이 9령으로 완성되면 그걸 흡수해 마령의 힘을 완성하고 마신수가 되려는 욕망만 보였다.
놈이 마신수가 되면 불사의 몸이 된다.
그 이후는 생각할 것도 없었다.
회와 사부에 대한 헌신도 지긋지긋했다.
거기에 더해서 마령의 소환식을 몸에 새긴 자신은 언제고 놈을 위한 희생양이 될 터였다.
마령에게 혼을 바친 이의 혼이 어떻게 될 거라는 건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용의 꼬리보다는 뱀의 머리가 나았다.
“크으으으!!”
폭주하는 여우 구슬의 마력을 잠재우고 하나씩 자신에게 떠오르는 계약의 주문들을 다스렸다.
부하가 하나씩 상급의 마수를 소환할 때마다 자신에게 떠오르는 계약들.
부하의 영혼을 빌미로 하나의 명령을 강제할 수 있으니 그래서 이 사술이 무서운 것이다.
나위천은 그 명령으로 저 눈앞에서 날뛰는 S급 헌터를 지목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비가 내리며 상급의 마수들이 무너져내렸다.
“말도 안 돼···”
그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번개처럼 파고든 감규석의 검이 자신의 가슴을 깊게 뚫고 지나가는 섬뜩함을 느꼈다.
장난처럼 들리는 감규석의 목소리.
“어이쿠! 이런!”
“!!”
나위천의 커진 눈.
입에선 검은 피가 울컥 쏟아져나왔다.
***
“음?”
푹!
감규석은 쏟아지는 물줄기를 뚫고 방금 대적인 나위천의 가슴에 자신의 애검을 찔러넣었다.
“어이쿠 이런.”
너무 쉬웠다.
이렇게 죽일 놈이 아닌데.
그는 조금 아쉬운 마음에 그의 눈을 바라봤다.
놈은 커다랗게 뜬 눈으로 입에서 검은 피를 울컥 토해냈다.
놈의 머리 위에 떠 있던 붉은 마수의 소환주문식이 하나씩 꺼지듯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게임이 끝났음을 확신했다.
하지만 눈앞에서 기이한 상황이 발생했다.
“뭐지?”
놈이 검을 밀어냈다.
아니 검이 자연스럽게 밀려 나왔다.
놈은 마령의 마력을 빼앗기는지 온몸을 부르르 떨었지만, 그와 동시에 쏟아지는 힐 포션이 입은 상처를 치유하며 검을 밀어냈다.
“이게 어떻게···.”
힐과 마령이 놈의 몸에서 얽혔다.
고통과 환희
희열과 공포
놈이 기괴한 표정을 지으며 힐 샤워에 미친 듯 몸을 떨어댄다.
입에서는 마령의 검은 기운을 토해내며 온몸은 힐 포션의 힘으로 살아났다.
그 두 가지의 상황이 놈을 미치게 만들었다.
“끄으으으으!!”
“허허! 거참.”
태훈이 감규석의 옆으로 뛰어내렸다.
아직도 그의 손에선 물줄기가 대포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그 힐을 그대로 놈의 입에 처넣는다.
과아아아아!
“꾸르르륵!!”
튀어나오려는 마력의 기운이 힐에 막혀 뱃속으로 밀려들어 갔다.
놈의 몸에서 찐득한 원유 같은 악령의 기운이 깨끗하게 씻기며 떨어져 나갔다.
온몸에서 연가시가 빠져나가듯 놈의 몸에 걸쳤던 수많은 마령의 사술이 풀려나가고 있었다.
“끄어에에엑!!”
털썩.
놈이 쓰러진 순간.
태훈의 손에 들린 차원의 링도 힐 포션을 토해내는 것을 멈췄다.
그 많은 물탱크의 포션이 쏟아져나왔으니 노을이 끝나는 검은 하늘 아래 공항의 아스팔트는 파란색 빛의 호수로 변해있었다.
그곳으로 속속 마수들을 때려잡은 힐러와 헌터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감규석이 태훈에게 물었다.
“죽일 수 있을까?”
“네?”
“힐 포션에 빠진 놈을 이 칼로 죽일 수 있을까 하는 거지.”
“단번에 머릴 자르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어디···”
머리를 숙이고 자빠진 놈의 머릴 잘라내기엔 자세가 나빴다.
그래서 감규석은 놈의 머릴 잡아서 들어봤다.
그곳에 보인 얼굴은···
뽀송뽀송한 피부에
아무것도 몰라요라는 백치의 표정.
감규석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놈이 뒤로 자빠지며 첨벙 소리가 들렸다.
“굳이 죽일 필요도 없겠군.”
“그래 보이네요.”
태훈이 돌아서서 헌터들에게 소리쳤다.
“상황 끝났습니다.”
“벌써요? 이히!”
그 소리에 고호권이 빛나는 호수 위에서 엉덩이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춤에 까궁이가 어느새 달려와 포션 위를 날며 엉덩이를 흔들었다.
“아! 쪼옴!!”
대부분 힐러들의 야유와 함께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태훈의 발밑에는 마력을 다 소진해 검게 죽은 여우 구슬이 은은하게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태훈은 그 구슬을 얼른 주워 자신의 아공간 창고에 집어넣었다.
***
“모두! 모두 물러나세요.”
위-오-위-오-위-오.
필리핀 경찰 소속의 쾌속정이 바다를 가른다.
바다 위에 가득 떠 있는 피난선을 요리조리 피하며 시아르가오 섬 서쪽 항구로 헌터들을 상륙시켰다.
필리핀 정부는 다음 날이 되어서야 자국의 헌터들을 파견했다.
소문엔 던전이 깨지고 마물들이 튀어나왔다고 했으나 어떻게 알았는지 관광객과 주민들은 미리 알고 대피한 뒤였다.
“상황은 어떤가?”
“그게··· 이상합니다.”
헌터들이 주의 깊게 조사한 바는 이렇다.
희생자는 총 4명.
생존자는 1명.
2명은 관제사로 공항을 지키던 이들이었다.
남은 2명은 뼈만 확인했으나 신원 불명.
그리고 섬을 배회하는 사람을 한 명 발견했다.
그는 흑사회의 총회장으로 알고 있는 나위천.
그를 데리고 와 여러 가지로 검사를 했지만, 이상한 상황만 나왔다.
정신은 백치가 되었고 얼굴은 그대로였지만, 피부나 기타 모든 신체 조건은 20대의 청년이 되었다는 것.
사람들은 그가 던전의 괴물에 의해 정신을 빼앗기고 대신 청년의 몸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시아르가오 공항의 모습.
아침이 되어 찾아간 공항은 아스팔트 위에 거의 수십 미터까지 자란 거대한 숲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이 공항이 위치했던 자리라는 것은 폐허가 된 관제탑의 모습으로만 알 수 있었다.
하루아침에 공항의 활주로와 건물들이 원시의 숲에 먹혀버린 것은 두고두고 연구할 일.
거기에 추가로 확인한 것은.
그 원시의 숲에는 파손된 한국 국적의 비행기 한 대가 있을 뿐이었다.
그 비행기의 주인인 ‘어쩌다 길드’에서는 한국 대사관을 통해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공항에 도착해 마물을 만났고 헌터들을 동원해 퇴치하였다. 비행기가 파손되어 어쩔 수 없이 가고일을 타고 자국으로 돌아왔으니 필리핀 정부에는 이해와 양해를 바란다.』
***
남아있던 흑사회의 다섯 지회장이 모였다.
흑사회는 2달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두 명의 총회주를 잃었다.
한 명은 25년간이나 총회를 휘어잡았던 구미호의 수인화 각성자 장렌.
다른 하나는 25년 전 갑자기 사라졌던 흑사회의 전설이자 마령술로 흑사회를 키웠던 전대 ‘흑사’의 제자였던 나위천.
그 둘과 그 둘이 수족처럼 부리던 각성자들이 사라진 지금.
흑사회의 남은 다섯 지회장은 전혀 새로운 마음으로 지회의 모임을 참석할 수 있었다.
“이게··· 천운이라고 해야 할까요?”
“무슨 항암치료를 받은 것 같군요.”
“총회주 나위천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크흐흐흐흐. 아주 백치가 되었어요. 회의 힐러들이 조사한 바로는 뇌에 있는 기억이 전부 사라진 것 같다더군요. 거기에 환골탈태를 한 것처럼 온몸이 새롭게 태어났다 합니다.”
“대체 무슨 일을 저지른 거죠?”
“글쎄요···. 삼백에 가까운 마령 소환사들을 제거한 것을 보면 그 한국의 길드가 어마어마한 힘을 숨기고 있는 것만은 사실로 보입니다.”
“회에 남아있는 기록이 없다는 것이···.”
“그쪽이 더 다행입니다.”
“예?”
“여우의 사술과, 마령의 사술. 그 둘을 모두 끊어낸 것 아닙니까? 저는 되레 어쩌다 길드라는 그 한국 길드에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군요.”
“하하하. 저 역시 그렇습니다.”
“그래도, 저희 회가 천 명에 가까운 조직원을 잃은 것은 사실입니다.”
“음···.”
그렇게 수 시간 이어진 회의
결론은 세 가지로 압축되었다.
하나.
총회주는 뽑지 않는다.
이제 다섯 지회주가 원로회의 승인을 얻어 원탁회의로 모든 의사를 결정한다.
둘.
어쩌다 길드는 더 이상 접근도 관여도 하지 않는다.
어떤 복수도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고 되도록 피하는 쪽으로 활동한다.
셋.
두 총회주와 천 명의 조직원을 몰살시킨 사건의 도화선이 된 한국의 ‘오성’길드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서든 계약에 따른 책임을 묻는다.
그렇게 회의를 마감한 흑사회는 1년간 회문을 닫고 앞으로는 음성적인 사업보다는 양성적으로 활동하는 것으로 전체 회의 상황 개선에 임하자는 결의를 다졌다.
그렇게 어쩌다 보니 어쩌다 길드가 거대한 세력 하나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태훈은 연신 귀를 후비며 아직 잡혀 전투 노예로 쓰이고 있는 흑사회의 빌런들을 어찌 처리해야 할지 고심하고 있었다.
선작과 좋아요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겁게 보셨다면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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